한국일주걷기행사참여기(14) - 노령산맥을 넘어 장성에 이르다
4월 14일,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이 파랗다. 전국적으로 맑고 따뜻한 날씨라는 예보다. 가까운 식당에서 돌솥밥으로 아침을 들고 8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장성으로 향하였다. 도로변으로 활짝 핀 벚꽃이 아름답고 안개가 자욱한 국도를 따라 걷는 발걸음들이 가볍다.
고창에서 장성으로 가는 길은 노령산맥의 줄기를 따라 솔재라는 큰 고개를 넘는다. 읍내에서 벗어나니 곧바로 길게 뻗은 오르막길이 나타나고 산중턱에서 백양사로 가는 길과 장성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굽이굽이 도는 산길에는 새빨간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해마다 이맘때 쯤 광주에서 고창으로 성묘하러 가는 길에 는 언제나 활짝 핀 진달래가 우리를 반겨주곤 하였다.
고개 마루에 이르니 전라남북도를 가르는 경계표지가 보인다. 차로 지날 때도 한참을 달리는 높은 고갯길이서 꽤 힘들 것이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쉽게 큰 재를 넘어서니 내리막길은 날아갈듯 가볍다. 삶의 내리막길도 이처럼 경쾌하면 좋으리라.
고창을 출발하여 두 시간이 지났는데 도로변에 용무를 볼 장소가 마땅치 않다. 한참을 걸어 나타난 작은 주유소가 반갑다. 고개를 넘어 8km쯤 걸어가니 도로변에 두 개의 학교가 있다. 하나는 신흥중학교, 다른 하나는 북일초등학교다. 토요일이라서 조용한 교정에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안녕하세요' 하며 손을 흔든다. '우리들은 희망입니다.'라고 교문에 걸린 표어가 어울리는 새싹들이다. 일행들도 동심으로 돌아가는가, 나의 살던 고향을 합창하고 이별을 노래하며 일본여성이 만남을 가사와 곡조도 정확하게 부르는 등 즐거운 행보다.
북일면 소재지에 이르니 11시 반, 북일식당이라는 작은 음식점에서 추어탕으로 점심을 들었다. 맵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맛이 칼칼하다. 식당주인이 하는 말, '맵지 않게 해달라고 하여 고추를 넣지 않고 접시에 놓았습니다.' 우리 입에도 매운 편인데 이를 참고 잘 먹는 일본인들이 고맙다.
좁은 식당에 버티고 앉아 있기가 미안하여 바로 옆에 있는 면사무소에 들러 화장실을 이용하고 잠시 쉬어가겠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청사 옆 벤치에 앉아 살피니 약간 높은 언덕둘레를 친 담벼락이 운치가 있다. 가까운 곳에 비석이 있어 내용을 보니 노령 기슭의 옛 오산현 터에 새로운 청사를 지은 것을 축하하여 면내 이장들 이름으로 세운 기념비다.
노령이 갈재라는 뜻이라 여겨 면사무소 직원에게 이를 확인하니 갈재라는 이름을 모른다고 한다. 이곳에 있던 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모른다. 잠시 뒤에 면장이 나타나 그에게 물어도 모른다고 답한다. 둘 다 부임한 지 한 달 남짓이라서. 글쎄, 그 고장의 공복들이 자기 지역의 기본적인 지식도 모르고 어떻게 주민들의 삶을 보살피는지 답답한 느낌이다. 자기 청사에 들어온 손님들에게 눈인사조차 안하는 자세도 그렇고.
12시 20분에 면사무소를 출발하여 오후 걷기에 나섰다. 면소재지에서 작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장성읍의 경계에 들어선다. 옆으로는 호남고속도로가 뻗어 있고 곧 이어 장성댐이다. 이곳에서 장성군청까지는 약 8km, 낮이 되니 걷기에는 약간 더운 날씨다.
길옆의 장성소방서에서 잠시 쉬었다가 읍의 중심가로 들어서니 이 고장 특산명주인 보해 장성공장이 넓게 터 잡고 장성군의 마스코트인 '홍길동'을 내세운 표지들이 여러 개 보인다. 홍길동의 출생지가 어디인지 규명된 것이 없는데 이를 마스코트로 선점한 아이디이가 좋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군청에 도착하니 오후 2시 40분, 예정보다 빨리 도착하였다. 마일리지를 살피니 25km가 찍혔다. 일정표에는 28km인데 더 짧아졌다. 대부분 일정표보다 늘어나서 막판이 약간 지루하였다. 장선군청 건물에 '문불여장성'이라고 한자로 새긴 글이 현판처럼 크게 걸려있다. 재일동포가 그 뜻을 묻기에 '문장으로 장성만한 곳이 없다.'는 의미라고 답하였다. 장성에는 황룡면의 필암서원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 등 걸출한 학자들을 많이 배출하였고 군에서 10년 넘게 지속하는 '장성아카데미'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회교육프로그램이다.
오후 3시, 장성군청에서의 몸 풀기를 마치고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러 터미널로 가서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병원에 도착하여 어머니를 뵈니 표정이 없으신 체 빤히 쳐다보신다. 어제 성묘 행사에서 부른 찬송을 불러드리고 메시지를 담은 글과 공로패의 문안을 읽어드리노라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제도 메시지를 전하며 목이 메었는데. 아내는 그런 나를 울보라고 부른다. 저녁식사는 미음이다. 이를 먹여드리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사랑하는 어머니여, 하늘의 축복을 얻으소서.
추신,
고창읍에 만개한 벚꽃이 외곽에는 아직 피지 않았다. 장성군에 들어서도 시골길에는 미처 피지 않았는데 장성읍에 접어드니 눈부시게 피었다. 도심과 외곽의 기온차 때문일까, 광주의 아파트에 활짝 핀 벚꽃이 보름만에 돌아오는 주인을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