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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히딩크 수기 연재 (동아일보) 관련자료:없음
[146184]
보낸이:박만지 (박찬우 ) 2002-07-09 18:30 조회:384
『스포츠-네티즌 추천 스포츠 (go SPORTSBB)』 42608번
제 목:[축구] 히딩크 수기 (from 동아일보) 읽음:514
올린이:kamics (전진형 ) 작성:02/07/09 13:49 추천:02/07/0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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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수기]<1> 제2의 조국 대한민국
히딩크 감독은 '한국민 모두와 독자에게 감사한다'는 문구를 넣어
본보 취재진에게 사인을 했다. - 이종승기자
《거스 히딩크 감독(56)이 한국에 첫발을 디딘 지 1년반. 그간 한국인
들은 그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울고 웃었다. ‘신드롬’으로 묘
사된 히딩크 열풍이 전국을 휩쓰는가 하면 ‘오대영’이란 수치스러
운 별명이 그의 발 앞에 던져지기도 했고 ‘4강영웅’으로 추대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그는 이 변덕스러운 바람에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제 갈길만 걸어왔다. 그의 애창곡 ‘마이 웨이(My way)
’처럼….
히딩크 감독은 한국과 한국축구에 대해 어떤 추억을 안고 이 땅을
떠날까. 지난달 29일 터키와의 2002 한일월드컵 3, 4위전을 끝으로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임기를 끝낸 그는 무거운 짐을 벗은 듯 홀가분
한 표정으로 자신의 짧지 않은 한국 생활을 속시원히 털어놨다. 》
터키와의 월드컵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붉은 물결로 가득한 관중석을 올려다봤다.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솟았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꺾고
승승장구하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뜨듯해짐을 느꼈다.
이제 한국은 나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존재다. 한국을 사랑한다. 당당히
제2의 조국이라 말할 수 있다. 앞으로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한국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며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한국팀 감독으로서 한 일을 ‘히딩크식 경영 혁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간에 벌어진 현상에 ‘히딩크 신드롬’이란 말을 갖다 붙이기도
한다. 나에 대해 과도한 평가를 해주는 한국 국민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한 인간에 불과하다. 나도 실수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영웅심’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한국팀 감독으로서 한 일은 지난 몇 년간 해오던 일이다.
선수 개개인의 자기 계발을 도왔을 뿐이다.
나는 돌려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나는 선수 개개인에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고 직접적인 화법으로
이야기한다. 그것이 선수 개개인의 재능을 극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래야 선수들의 ‘화학적 결합’을 이끌어내 팀의 역량을 최대로 끌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한 일이다.
당부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한국 국민들이 인내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 앞으로
새 감독이 지휘봉을 잡게 되면 새로운 팀을 구성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팀
을 구성하고 새 기반을 만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한국팀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한다면 계속 훌륭한 팀으로
성장할 것이다. 아울러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새로운 선
수를 발굴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뛰어보지 못한 선수는 경험을 얻을 수 없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선수든 팀이든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한국 선수들도 그동안 너무
열심히 뛰어줬다. 하지만 마지막 게임도 이겼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몇 분 동안 수비의 움직임이 맘에 안 들었다. 축구는 경기의 흐름을 타는 것
이다. 처음에 허둥대지 않고 제 위치를 지키다 리듬을 타다보면 골을 넣게 되고
훌륭한 경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터키와의 경기는 그런 면에서 안 좋았다.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전반적으로 한국팀의 경기에 대해 만족한다. 무엇
보다도 내가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전세계에 충격을 준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남미, 북미, 유럽의 많은 나라 사람들이 나에게 한국팀이 펼친 경기를 보고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전화나 e메일을 보내왔다. 한국 사람들의 열띤 응원과 한국
팀의 수준높은 경기력에 놀랐다는 내용들이다. 나는 터키와의 경기에 만족하지 않았
지만 많은 사람들은 한국팀의 공격적인 플레이를 즐겼다고 전해왔다.
내가 한국팀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조금 경기가 안 풀릴 때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다. 그들은 금방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싸웠다. 한국 사람들이 그런 것 같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 시작한다. 한발짝 물러선 뒤에도 다시
시작한다.
한국팀도 그랬다.
내가 한국팀 감독을 맡으면서 생각한 건 미래였다. 그저 월드컵에 나가 승리를 이끌
어내는 것 이상을 이뤄내겠다는 생각이었다. 한국팀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팀이 다른 팀들과 다른 뭔가를 갖춘 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초 경쟁력을 키우게 되면 세계 어느 나라 팀과도 맞서 싸울 수 있는
역량이 생긴다. 특히 경기를 하다보면 힘들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다시 일어
나 싸울 수 있어야한다. 그러려면 튼튼한 기초가 있어야 한다.
월드컵 4강 성적보다도 내가 더 뿌듯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이런 면에서 거둔 성과
들이다. 이제 한국 선수들은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주눅들
지 않는다. 평소 하던 대로 개인의 역량을 모두 펼쳐 보이며 멋진 경기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됐다. 상대를 존경하되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 바로 한국축구의 미래다.
간혹 주위 친구들이 한국에 온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지금
나는 아무런 후회도 없다. 오히려 행복하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한국팀이 장기적
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려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이것은 나의 축구인생에서 매우 기억에 남는 성과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
로도 매우 유용한 경험이었다. 나는 한국에 와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나에게 보여준 우정을 오랫동안 간직할 것이다.
[히딩크 수기]<2> 한국축구와의 인연
"해냈습니다"
《2000년 11월 대한축구협회로부터 한국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받고 매우
영광스러웠다. 한 국가의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는다는 것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큰 도전이니 해보라고 했다. 월
드컵 개최국 감독이라는 점과 내게 접촉을 시도한 축구협회 관계자의 진
지하고 프로다운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심사숙고한다. 하지만 때로는 느낌을 믿을 때
가 있다. 내가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는 사
람에 대해 어떤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그 사람들과 가슴을 열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 느낌이 더욱 강해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생각보
다는 느낌을 믿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느낌이 매우 빨리 오기도 한
다. 한국의 경우가 그랬다.》
감독직을 수락하기 전까지 내가 한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떠올려 봤다. 98년
프랑스월드컵 때 한국팀을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 봤던 선수 중 일부
는 내가 이끌어온 현 대표팀에도 소속됐다.
그당시 한국 선수들은 다소 소극적(modest)이었다. 물론 나는 한국에 대해 많이 알
지 못했다. 한국이 상대팀이었기 때문에 정보를 수집하려고 노력했지만 한국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당시 기자들도 한국팀에 대해 취재하려고
했지만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는 말들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끌던 네덜란드팀
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졌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감독직을 수락하고 한국팀 경기 테이프를 구해 봤다. 그해 아시안컵 경기를 포함해
30개 정도였던 것 같다. 12월20일 한일 정기전이 끝난 후에는 한국 대표팀 선수 개
개인의 장단점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경기 테이프를 보니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양발을 자유자재로 써 나를 놀라게 했다. 나
는 한국팀의 문제점은 체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 들어와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을 만났다.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원칙에 충실
한 사람이었다. 정 회장은 내가 한국팀의 전력을 상승시키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
는 모든 조건을 제공해 주기로 약속하며 “목표는 우승”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목표가 있으면 솔직하게 내놓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목표를 세우는 데 겸손할 필요는 없다. 목표를 분명하게 정하는 것이 좋고 목표는
높을수록 좋다.
한국팀이 그걸 증명했다. 목표를 높게 정하게 되면 더욱 노력하게 된다. 높은 목표
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높은 목표를 정하고 그걸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한 한국과 한국팀이 자랑스럽다.
이듬해 1월12일 울산에서 선수들과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선수들과 의사소통이 잘
안돼 애를 먹었다. 물론 훌륭한 통역사가 있긴 했지만 선수들이 내게 조금 거리를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
각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올해 들어서는 코치나 선수들에게 이야기할 때 통역이 필요 없었다. 선수들도 내게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영어를 잘 하지는 못해도 아는 몇 단어를
가지고 내게 이야기했다. 나는 선수들에게 호텔에서나 휴식시간에 영어를 공부하라
고 권했다.
당시 나는 선수들이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물론 나는 한국은 후배가
선배를 존경하는 사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한국 사회를 존중한다. 하지만
팀워크를 위해 조금 바꿀 필요가 있었다. 선후배간의 벽이 있으면 팀워크를 100%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나이별로 친한 선수끼리만 앉아 먹는 식사 습관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식사시간에 선후배가 함께 앉아야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
식사시간을 엄수하도록 지시했다. 함께 시작해 함께 끝내도록 했다. 테이블에 선후
배가 고루 섞여 앉도록 했다. 식사시간 중에는 일절 사적인 전화도 못 받게 했다.
선수들이 처음엔 불편해 했다. 나는 선배들을 불러 후배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서
서로 격의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느낌을 나누라고 했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위치에 서게 되면 후배들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처음 감독직 제의를 받았을 때 축구협회 관계자에게 “내가 선수들에게 나무에
올라가라고 하면 그대로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영웅보다는 독재자가 되기를 원
했다. 스타에 의존하기보다는 팀 전체가 기계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력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헌신이 필요했다. 규율도 필요했다. 선수들이 처
음에는 옷을 마음대로 입었는데 이동 중에도 복장을 통일하도록 했다. 모든 일과도
내 시계에 맞추도록 했다. 규율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나에게 신사적이다는 평가는 선수들이 규칙과 규율을 지켰을 때는 맞는 말이지만 그
렇지 않을 경우는 아니다. 규율과 규칙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다.
물론 선수들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했다. 지난해 고종수 선수가 물의를 일으켰을 때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대표팀 소집 기간 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선수들이
그라
운드에서 내가 요구한 조건만 충족시켜 주면 그걸로 만족한다. 나머지는 모두
선수들
이 자율적으로 판단해 행동하면 된다.
한국 선수들은 대단히 순수했다. 내 요구 조건을 기대 이상으로 잘 따라줬다. 학습
속도도 내가 지금까지 지도한 선수들 중 가장 빨랐다. 나는 지금도 선수들에게 감사
한다. 어디서도 이런 선수들을 만나는 행운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한국과의 첫 만남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선수단과 처음 만난 날 저녁
함
께 식사를 하러 갔는데 도무지 젓가락을 들 수 없었다. 내가 마늘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코치들이 살아 움직이는 낙지를 먹어보라고 권했을 땐 현기증마저 났다.
한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한 건 지금도 미안하다. 선수들에 비해 나의 헌신이 부족
했기 때문일까.
[히딩크 수기] <3> 컨페더컵-골드컵 시련딛고
"불가능은 없다"
지난해 12월 파주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에서 강연하는 히딩크 감독.
- 동아일보 자료사진
《내가 할 줄 아는 한국말은 몇 가지 안 된다. 변명 같지만 축구에
집중하느라 말을 배울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내 별명이 ‘오대영’
이란 건 안다. 난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웃고 말았다. 재미있는
조크였다. 사실 나는 신문을 별로 안 읽는다. 나는 내 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물론 주위의 충고를 다 무시하고 나의 깅만을 고집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닥터 리(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등 협
회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올 초 북중미골드컵대회 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난했다. 하지만 골드컵은 선수들
이 자신들의 역량을 증명하는 시기였다. 어떤 선수들은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고 어떤 선수들은 실패했다. 또 골드컵 때는 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
이 아직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사실 한국팀의 플레이가 그렇게 형편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한국 선수들이 상대팀을 효
율적으로 공격할 만한 역량이나 파워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건전한 비판을 수용한다. 내가 선수들을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
진 사람들의 코멘트도 환영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이 건전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때로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 팀의 분열
을 시도하는 기사들이 나올 때는 매우 화가 났다. 예를 들면 내가 닥터 리와 싸웠다
는 유의 기사들이다. 나는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와서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보
라”고 했지만 그 기자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닥터 리는 지금 나의 가장 친한
한국인 친구 중 한 명이다.
또 월드컵 개막 직전엔 최용수가 나의 팀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훈련을 거부
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나는 그 신문사 기자에게 “당신들은 기자도 아니다. 앞으로
내 인터뷰 때 들어오지도 말라”고 했다. 너무 심했던 것 같아 다음날 사과를 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유의 기사가 나올 수 있나. 최용수는 부상으로 벤치 멤
버였지만 팀이 승리할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그라운드로 뛰쳐나가 기뻐했다.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여러분의 팀을 스스로 분열시키려는 의도를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5로 지고 난 후 나는 언론의 강한 비판을
예상했다. 내가 당시 프랑스의 전술을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투톱 대신
원톱으로 나서는 바람에 미드필드에서 수적 열세를 보이며 코너킥과 프리킥을 너무
많이 허용했다. 나는 결과에 책임을 지며 이에 대한 비판을 즐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사는 없었다. 오히려 너무 부드러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비판은 수용한다. 언론은 국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장기적인 목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베스트 11
을 확정하지 않고 선수들을 여러 포지션에 배치해가며 계속 테스트하자 “언제까지
테스트만 할 거냐”고 비난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여러 포지션을 소화한 선수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큰 역할을 해냈다.
나는 지난해 8월 체코전에서 또 0-5로 패배한 후에도 “강팀과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팀을 상대로 승수를 쌓는 것은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강팀과 경기를 계속해야 강팀을 상대로 싸울 능력이 생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한국팀은 월드컵 이후 한동안 슬럼프를 겪을 수밖에 없다. 세대교체 때문이다. 황선
홍 홍명보 등 나이 많은 선수들이 은퇴하고 젊은 선수들이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떤 감독이 오든 그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 젊은 선수들이
실수하더라도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선수 선발과 관련해서도 비난이 많았다. 김병지에게 힘든 시간(hard time)을 줬는데
이유가 있었다. 나는 선수들에게 개인 기술, 팀 전술, 정신력을 강조했다. 그중에서
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우쭐해 팀 플레이를 망치
면 대표 선수로서의 자격이 없다. 안정환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이 때로는 스타 선수
들을 너무 과대 포장해 발전할 기회를 빼앗고 있다. 안정환은 스스로 잘못을 고쳤고
이번월드컵에서 만족할 만한 플레이를 펼쳤다. 김병지는 월드컵 직전 이운재보다 컨
디션이 좋지 않아 기회를 못 줬다. 김병지가 이운재보다 못했기 때문은 아니다.
(세종대에서 명예체육학박사 학위를 받는 히딩크 감독)
이동국이나 고종수 등 몇 사람이 리스트(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해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최종 엔트리를
결정하기까지 선수들을 대상으로 많은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나는 결국 23명만을 선택해야 했다. 물론 27명이나 28명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모두
들 엔트리에 포함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표팀 엔트리가 한정돼 있는 상황에
서 나는 포지션별로 균형을 맞춰야만 한다. 내가 만약 스트라이커를 5명이나 6명
뽑는다면 그만큼 엔트리에서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팀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그래서 이동국이 빠진 것이다. 이동국은 다른 공격수들과의 경쟁에서
진 것이다. 고종수는 조금 다른 경우다. 그는 부상 때문에 경기를 할 만한 몸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동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리스트를 발표하기 전날
밤 이동국에게 불가피한 상황을 직접 전달했다. 2006년 월드컵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올 초 골드컵 때 동아일보 기자가 나에게 4년 더 대표팀 감독을 맡는다면 한국축구
를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국제축구연맹 (FIFA)랭킹
으로 톱 10”이라고 대답했다. 가장 어려운 시기였지만 한국축구의 능력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한 팀을 이끄는 감독이라면, 더군다나 한 국가를 대표하는 팀의 감독이라면 멀리 내
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외로울 수 있다. 한국 언론과 축구팬도 이제는 이 점
을 이해할 것이다. 새 감독이 오면 그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 나는 그게 한국팀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히딩크 수기]<4>평가전 잇단 선전 희망을 봤다
"생각하는 축구를…"
《내가 너무 흥분했었나보다. 한국이 프랑스와 경기를 펼친 날 (올
5월26일) 밤이었다.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온 내 오랜 친구 얍 베
그로트(네덜란드 더 텔레그라프 기자)와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오래
간만에 오전 3시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사실 나는 술을 즐기는 편
이다. 인생도 음미할 줄 안다. 그라운드에서는 딱딱하고 엄숙한 이
미지로 비칠지 몰라도 다른 면이 많다.》
▼“마지막 1분에 기회 만들 역량 갖게됐다”▼
나는 그 친구에게 “한국이 너무 좋고 선수들도 너무 잘 따라줘 모든 것이 순조롭다
”고 말했다. 월드컵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자신이
있었다.
한국은 이날 프랑스에 패했지만 훌륭한 경기를 펼쳤다. 한국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방
식과 흐름은 박수를 받을 만했다. 한국 선수들이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고
사기도 크게 올랐다.
한국팀은 앞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얻었다.
하지만
프랑스 팀은 특히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매우 매력적인 선진 축구를 펼치는
팀이다.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는 한국팀이 오히려 과거 전성기 때의 프랑스팀 전력
만큼 매력적인 경기를 보여줬다. 한국팀이 상대 선수들을 압박하고 견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프랑스팀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 내게 와서 “우리에게는 경기하기에 무척 더운
날씨였다. 한국팀은 원하는 대로 맘껏 플레이를 펼쳐 보였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
다”면서 불평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 프랑스팀 선수들은 매우 화가 난 것처럼 보였
다. 나는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세계 일류의 프랑스팀이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은 한국팀에는 더없는 찬사였다.
나는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한국팀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한국 선수들은 휘슬
이 울리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찬스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없어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한국 선수들은 희망을 만들어냈다. 인저리 타임에 들
어가 91분이나 92분이 되었을 때도 한두 차례의 찬스를 만들어냈다. 한국 선수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상대팀을 무너뜨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나는 평소 선수들에게 “이제 마지막 1분을 남겨두고도 충분히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말해왔다. 한국 선수들은 나중에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8강전에서
그걸 분명하게 증명했다. 나는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0-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이 다 되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은 절대로 멈추는 법이 없었
다.정말 자랑스러운 팀 아닌가.
사실 나는 지난해 한국 선수들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희망을 봤다. 한국 선수들은
월드컵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했고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이런 마음가짐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지난해 2월12일 두바이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 전날 밤에 설기현이 유럽에
서 도착했다. 다음날 나는 일부러 그에게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정신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설기현은 “이틀 전에 90분을 풀타임으로 뛰어 피
곤하지만 30분 정도는 자신 있다”고 대답했다.
바로 이 점이었다. 한국축구가 이전까지 어떤 성적을 거뒀는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
았다. 나는 월드컵 때 응원석에서 선보였던 카드섹션의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좋아한다. 강한 의지가 있으면 못할 게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선수들을 강하게 조련했다. 싸움닭을 만들고 싶었다. ‘나이스 가이(nice guy)
’는 책임을 회피하는 겁쟁이에 불과하다. 우리 선수들이 실전에서나 연습경기 때
어지간히 다쳐 쓰러져 있어도 팀 닥터를 안내보냈다. 선수들이 강한 정신력을 갖추
고 있어야 기술이든 전술이든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훈련 때 욕을 많
이 하는 것도 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대표팀 선수를 선발할 때도 이 점을 가장 먼저 봤다. 체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과거 한국대표팀은 유럽에 이기기 위해 키가 큰 선수들을 좋아했던 모양인데 그럴
필요가 없다. 과거의 명성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나는 무명 선수들이 대선수가
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내가 데려다 키운 호마리우나 코쿠도 그중 하나다. 선수들이
이기고자 하는 의지만 갖고 있으면 된다. 이후에 이들이 어떤 종류의 플레이를 할
수
있는지 본 후에 감독이 가장 적합한 전술을 찾아내면 된다.
한국 선수들은 훌륭했다. 투지가 넘칠뿐더러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내가 지난해 프랑
스, 체코에 대패를 당하고도 계속 유럽 강팀과 경기를 갖길 원했던 것은 선수들의
정신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물러서지 마라. 유럽에 이기기
위해서
는 유럽과 계속 싸워 실수를 하고 그 실수에서 배움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
가 신인 선수들을 과감히 기용한 것도 이들이 실수에서 배우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크로아티아와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 처음으로 유럽에 대한 두려
움을 극복했다. 1승1무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수비 불안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크로아티아 공격수의 빠른 2선 침투에 당황하지도, 속지도 않았다.
오랜 기간 반복한 실수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한국 선수들
이 늘 세련된 축구를 하기 원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나는 상당히 공격적인
축구로
매력적인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한국팀은 올 3월 내 마음의 고향인 스페인 라망가에서 실시한 전지훈련 때부터 누구
도 무시 못할 팀이 됐다. 2월 골드컵대회 때까지 주변의 비판을 무시하고 꾸준히
실시
한 체력훈련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는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다. 우리는
핀
란드에 완승을 거뒀고 터키전 때는 수비수들이 스리백과 포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무실점으로 비겼다.
월드컵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이 경기 파주 트레이닝센터를 방문했다. 나는 대통령
에게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면 선수들의 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
고 꿈은 이루어졌다. 한국 선수들은 이제 더 큰 꿈을 위해 세계무대로 나갈 것이다.
[히딩크 수기]<5>16강 약속 지키다
"해냈다"
《솔직히 말하길 원하는가? 6월4일 폴란드와의 월드컵 첫 경기 전날 밤
나 역시 흥분했고 긴장했다. 한국 국민의 기대가 너무 높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내가 늘 이미 완성된 강
팀만 이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한국인 친구가 “최선을 다했으
니 하늘이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꿈을 이뤘다,하지만 더 큰 꿈이 있다”▼
나는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결과를 장담할 순 없지만 한국팀은 활력이 넘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폴란드를 맞았다. 대단한 경기였다. 한국 선수들은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훌륭한 플레이를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한국 선수들은 큰 정신적 부담을 가지고 경
기에 임했다. 홈구장에서 경기를 하는 만큼 사상 처음인 월드컵 첫 승리를 얻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국민의 기대가 엄청나게 높았던 것만큼이나 선수들의 긴장감
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팀은 결국 폴란드와의 경기를 이겼다. 선수들은 큰 성취감을 얻었고 나는 너무
도 기뻐 몰래 혼자 비명을 질렀다. 늦은 밤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친구가 “아직도 사람들이 거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한국인
들의 기쁨을 전해줬다. 나는 비로소 이날 승리가 한국팀과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
가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첫 승리였고 첫 단추였을 뿐이다. 내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게는 2회전(16강)에 진출해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폴란드전
승리는 끝이 아니었다.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에게 말했다.
“이봐, 친구들! 오늘 훌륭한 경기를 펼쳤어.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제
시작일 뿐이야. 우리는 앞으로 갈 길이 멀어”라고.
두 번째 미국과의 경기는 그다지 실망스러운 편은 아니었다. 이 경기 역시 선수들이
매우 긴장된 상태에서 그라운드에 나섰다. 미국은 매우 훌륭한 팀인데도 다소 과소
평가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포르투갈조차 미국팀과의 경기에서 어려운 경기를 펼
치다가 결국 패하지 않았는가.
한국팀은 몇 차례의 찬스를 살리지 못하는 불운이 계속됐다. 하지만 한국팀은 물론
한국 국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이 점이 내가 한국 선수들과 한국 국
민에 대해서 가장 좋아하는 점이다. 한국 선수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대로 물러
서는 법이 없었다. 항상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섰다.
미국팀과의 경기를 마친 후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었다. 나는 이것을 좋은
조짐으로 해석했다. 선수들이 미국과 비긴 데 만족하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선수들이 자신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날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쳤다면
나는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선수들은 완벽한 찬스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했고 나는 이 점을 높이 평가했다.
미국과의 경기 후 한국이 속한 D조는 새로운 ‘죽음의 조’로 떠올랐다. 앞서
포르투
갈이 미국에 패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포르투갈은 미국을 과소평가했고 명성에
못미치는 형편없는 플레이를 보여줬다. 포르투갈이 미국에 패함으로써 한국은
상황이
조금 어려워졌다. 당초 예상은 우리가 폴란드를 이기고 포르투갈이 미국을 이기고
나
면 한국과 포르투갈이 쉽게 2회전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포르투갈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비록 미국과의 첫
경
기에서 졌지만 포르투갈은 세계적인 축구강국 중 하나다. 한국 선수들은 포르투갈과
의 경기를 앞두고 매우 긴장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긴장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플
레이와 전술을 보여줬다. 그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는 포르투갈과의 경기도중 폴란드가 미국을 이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선수들
은 전반전에 그런 사실을 몰랐다. 전반전이 끝난 뒤 하프타임 때 일부 선수들이
폴란
드-미국전 상황을 알았던 것 같다.
폴란드가 미국을 이기게 되면 우리는 포르투갈에 져도 16강에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협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스포츠가 아니다. 선수들은 어떤 상황에
서도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 한국 선수들이 바로 그랬다. 포르투갈은 한국과
비기
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과 대충 경기를 치르고 비기자는 생
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플레이를 펼쳐 포르
투갈을 당당히 이겼다. 우승후보로 꼽히던 포르투갈을 이김으로써 한국은 비로소 세
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날 경기에서 박지성이 골을 넣은 후 내게 달려들었던 것이 뉴스가 됐다는 걸
안다.
나는 평소 선수들을 개인별로 따로 만나지 않는다. 그게 나의 팀 관리 노하우다. 선
수들을 따로 만나면 내가 누구만 좋아한다는 말이 나오게 마련이고 팀워크를 해치게
된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박지성을 꽉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넣은 골은 유럽
프로리그에서도 보기 힘든 세계 톱클래스의 골이었다.
한국이 16강 진출에 성공했을 때 난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을 가졌다. 한국팀의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한국의 16강 진출은 월드컵 역사상 처음이었다. 드디어 꿈이 이루
어진 것이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나는 큰 경기를 마치고 나면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와인 한 잔을 마시며 그날 밤을
자축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상대가 강팀이면 강팀일수록 반드시 이
기겠다는 승부욕이 샘솟았다. 마침 다음 상대는 이탈리아였다.
[히딩크 수기]<6> 8강에 이은 4강 신화
"고맙습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독일과의 4강전이 끝난 후 월드컵 주관방송사
(HBS)와의 인터뷰가 있었고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
쳤다. 왜 눈물이 나왔는지 나도 잘 모른다. 여러분이 알아서 해석해도
좋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축구감독일 뿐이다. 좋을 땐 웃고 슬플 땐
울 수도 있다. 다만 한국에 온 이후로 울어본 적은 없다. 왜 하필 그
날 울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너무도 아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전을 앞두고 한국팀이 조
금만 더 쉴 수 있었다면 나는 요코하마에서 울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와의 2회전 경기(16강전)가 한국팀의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이탈리아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힐 만큼 강팀이
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어떻게 보면 이탈리아의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강팀들에
비해 상대하기가 쉬울 수도 있었다. 이탈리아는 수비 위주로 플레이를 하다가 반격
을 가하는 스타일이고 한국은 상대팀을 압박하고 끊임없이 공격하는 스타일이기 때
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탈리아전에 대해서도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았다. 물론 매우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말이다.
▼독일전 너무나 아쉬웠다
나는 경기 내내 한국 선수들이 잘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기
전
에도 한국은 한두 차례 결정적인 찬스가 있었다. 설기현의 골은 다소 의외였다.
골을
만들기에 그렇게 쉬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선수들에게 “너희들은 이제 종료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상관없이
언제
라도 찬스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말해왔다. 차두리에게는 “골지역에서는
최대한 슈팅에 집중하라. 단 1초 만에 볼이 돌아올 수 있는데 고개를 뒤로 꺾고
아쉬
운 표정을 지을 여유가 있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아 어려워 보일 때에도 말이다. 우리는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도 그걸 분명히
증명
했다. 그래서 이탈리아전 때 시간이 다 돼 갔지만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선수들
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마침표는 안정환이 찍었다. 나는 안정환이 골을 넣기를 바랐다. 그가 앞서 페널티킥
을 놓쳤기 때문이다. 나는 안정환에게 “페널티킥을 놓치는 것도 경기의 일부일 뿐
이니 기죽지 말라”고 당부했다. 안정환은 자신의 실수를 놀라운 집중력으로 만회
했다.
나는 두달 전만 해도 이탈리아 같은 팀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둔다는 것은 불가능하
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팀은 짧은 기간에 놀라운 속도로 전술을 소화해 냈고
불같은 투쟁심을 길렀다. 한국 선수들은 당당히 실력으로 이탈리아를 이길 자격이
있었다.
안정환은 이날 골로 소속팀인 이탈리아 페루자 구단주의 ‘더러운 말’(“소속팀 국
가를 상대로 골을 넣는 것은 배은망덕한 짓이다”)을 들어야 했다. 그 구단주의 말
대로라면 브라질은 절대 월드컵에서 우승해서는 안된다. 호나우두를 비롯해 스타 선
수들이 모두 월드컵에서 맞붙는 유럽 각국에서 뛰고 있지 않은가. 물론 나는 내심
뿌듯했다. 이 사건은 한국 선수들과 한국팀이 얼마나 세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지
입증했기 때문이다.
8강전 상대인 스페인은 이탈리아와는 다른 스타일의 팀이었다. 한국팀은 피로가
쌓였
고 스페인은 우리보다 이틀이나 더 쉬었다. 오후에 하는 경기는 체력 소모가 심해
체력이 바닥난 우리에게는 더욱 힘든 경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또 이겼다. 경기 내용도 50대 50으로 대등했다. 우리 수비가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스페인 또한 이날 경기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스페인보다 휴식시간
이 적었는데 우리가 이겼다는 것은 선수들이 그만큼 노력했다는 이야기다.
▼패인은 언제나 ‘내’게 있어
4강에 오른 것은 한국팀으로서 볼 때 엄청난 성과였다. 내 기쁨도 98년 프랑스월드
컵 때 내가 이끈 네덜란드팀이 4강에 올랐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하지만 문제는 체력이었고 우리는 4강 상대인 독일에 패했다. 패배에 대한 변명은
필요없다. 나는 늘 “원인은 자신에게 있지 외부적인 것에 있지 않다”고 말해왔다.
독일전에서 김남일이 빠진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그의 부상이 악화된 것은 모
두 내 탓이었다. 김남일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의 승리를 위해 스페인전에
출전했고
그래서 우리는 4강에 오를 수 있었다.
경기 후 나는 선수들에게 “우리가 어떤 상대와 싸웠는지 잊지 말라. 우린 4강에 와
서 진 것이다. 그걸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16강전부터 우리는 매경기 사실상
대회 결승전을 치러왔다. 우리가 상대한 팀이 모두 월드컵 우승후보였지 않은가. 이
제 한국팀은 세계 어떤 팀을 상대로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한국팀에겐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이 아니라 다음, 그 다음 월드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팀이 언젠가는 월드컵에 키스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도 가까운 시일 내에.
▼붉은 악마들 자랑스러워
터키와의 3, 4위전 때도 내가 반드시 이기려고 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꿈을 이어
가야 했고 마지막 경기를 이기고 싶었다. 일부에서는 경기에 안 뛰어본 교체 멤버를
투입하라고 말했지만 나는 가장 컨디션이 좋은 최상의 선수로 최고의 경기를 치르기
로 했다. 그게 스포츠다. 더군다나 3,4위전은 월드컵의‘작은 결승전’이기도 했다.
결과는 한국팀의 패배였다. 수비 쪽에 문제점이 많았다. 선수들이 다치고 지쳤기 때
문이다. 하지만 한국팀은 이날 경기에서도 종료 직전 송종국이 끝내 한골을 더 터뜨
려냈다. 세상에 이런 팀을 봤는가.
나는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더 자랑스러운 건 경기장은 물론이고 숙소, 훈련장까지
몰려들어 뜨거운 성원을 보내준 한국 축구팬들이다. 나는 유럽의 숱한 팀들을 지도
하며 수많은 축구팬을 봐왔지만 한국팬처럼 열성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이
4강에 오른 것은 선수들의 노력과 함께 팬의 성원 덕분이었다.
[히딩크 수기]<7> 재회를 기약하며
"몸은 헤어지지만…"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과의 인연을
여기서 끝내자는 것은 아니다. 나와 한국팀을 위해 한동안의 이별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나는 선수들과 늘 함께하길 좋아한다. 아침부
터 저녁까지. 매일매일…. 한국팀은 당분간 그럴 기회가 없다. 한국
에서는 내가 영웅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축구감독일 뿐이
다. 축구감독은 그라운드에서 살아가야 한다. 내가 안정환 등 한국
의 스타 선수들을 심하게 다룬 것도 이들이 그라운드 밖 인기에 취
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팀으로서도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이뤄낸 것들을 평
가하고 분석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팀은 이제 스스
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나는 오히려 한국축구의 미래에 더 관심이 많다. 내가 청소년팀의 어린 선수들 (최
성국 정조국 등)을 대표팀에 데리고 있었던 것도 그들이 한국축구의 미래이기 때문
이다.내가 한국인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한국축구가 ‘근본적’으로 세계 톱 클
래스 수준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 선수 중 일부를 데리고 갈 것이란 보도가 있었다. 일정 부분 사실이다.
내가 갈 구단과 좀 더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한국축구를 돕고 싶다.
그게 내 마음이다.
나는 한국 선수들이 유럽시장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데 공감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팀에는 유럽 리그에서 훌륭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선수가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유럽에 진출하고자 한다면 자신에게 맞는 팀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돈을 더 준다고 해서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팀을 선택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미 안정환의 선례가 있지 않은가.
상대적으로 명성이 약한 팀에 가더라도 충분히 경험을 쌓고 한걸음 두걸음 나아가다
보면 명문 팀으로 갈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한국팀 이젠 홀로서기 할때
내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팀에 있을 때 카메룬에서 온 포워드 에투를 데리고 있었
다. 당시 그는 17세였다.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명문 프로팀은 팀 내의 경쟁도 치열
해서 선수들을 매우 긴장시킨다. 에투처럼 어린 선수들은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
을 수밖에 없다. 경기에도 자주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레알
마드리드보다
는 순위가 떨어지는 스페인의 다른 팀으로 옮겨줬다. 그때부터 에투는 훌륭한
경기를
펼쳤고 그 팀의 주전 자리를 굳혔다. 물론 경기마다 출전할 수도 있었다.
한국선수들
도 에투처럼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적당한 팀을 골라야 한다.
내가 누구를 데려갈지는 밝힐 수 없다. 한국 선수 개개인을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선수들을 존중한다. 한국 K리그에서 뛰는 선수라고 해서 다음 월드컵의 주인공
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지난해 내가 한국 K리그를 두고 ‘워킹 게임(Walking Game)’이라고 한 게 오해를
샀
던 모양인데 K리그를 모욕(insult)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경기인데도
관중석 중 많은 자리가 비고 팬의 압박(pressure)이 약한 경기장 분위기에 대한
생각을 말하려 했던 것뿐이다.
프로 선수는 매일 강한 압박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은 플레이에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경기력도 향상될 수 있다. 선수들의 스피드와 투지도 관중의
압
박이 심하면 심할수록 향상된다. 월드컵 전까지 한국 대표선수들의 잔실수가 많았던
것은 한국 프로축구의 싸늘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느슨한 경
기에 적응이 돼 있다 보면 중요한 순간에 강력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다.
솔직히 나는 처음에는 한국의 축구 열기가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경기장에 가
족 단위로 오는 관객이 많은 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유럽에선 경기장이 열성팬 때
문에 너무도 위험스러워 어린이를 데리고 오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6월 한달 동안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한국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팬이 가장 많이 있었다. 오히려 세계 축구팬이 한국 관중의 모습을 배워야 한다
고 생각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토록 열광적인 응원을 하고도 사고 한 건 벌어
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건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나는 월드컵 기간 중 선보인 한
국인들의 열광적인 응원이 프로축구로 이어지길 바란다. 한국이 빠른 시일 안에 월
드컵에 키스할 수 있다고 내가 믿는 것도 한국엔 세계에서 가장 멋진 응원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간 내가 한국팀과 한국에 실망한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터키와의 3, 4위전 때처
럼 선수들이 해서는 안되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와 언론이 엉뚱한 기사로 한국팀을
분열시키려 했을 때 그랬다.
▼프로축구 더 활성화돼야
모든 경우에 나는 한국 사람들에게 돌려서 얘기하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
적으로 얘기하려고 애썼다. 한국 사람들도 내게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논쟁이 있기
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서로를 존중했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 한국은 내게 많은 것을 의미하는 나라가 됐다. 나는 유럽에서
프로축구팀 감독이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함께 이뤄낸 것은 내 인생의 그 어느 부분보다 많은 것을 의미한다. 정몽준 회장이
나 한국 국민의 성원과 도움이 없었더라면 앞으로 한국 국민이 두고두고 동화처럼
얘기할 수 있는 한국의 4강 신화는 분명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 국민은 따뜻한 사람들이다. 나는 한국 국민을 사랑한다. 한국에서의 추억을
영원히 가슴속에 간직할 것이다. 한국과 한국축구에 영원한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