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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 남산(南山) 나들이 - 남산길 오르기 -
지난 17일, 오전 10시 30분경 정각원을 나와 장충단공원으로 가 장충단의 사연을 살피 려 했으나 동대 출입문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남산길이 나타나, 장충단공원으로 향하면 시간도 그렇고 번거로움을 더할 것 같아 이내 남산길을 올랐으나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장충단(奬忠壇)은 원래 일본의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인 을미사변(1895) 때 이를 저지하다 순국한 훈련대장 홍계훈, 궁내부대신 이경직 등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은 무예훈련장인 남소영(南小營)에 장충단을 세워 그들의 충절을 기렸습니다.
그런데 일제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장충단을 폐사시키고 공원으로 만들고 안중군 의 사에 의해 죽은 이등박문을 기리는 박문사(博文寺)를 세우고 벚꽃을 심어 민족혼을 우 롱한 곳입니다. 장충단공원은 이러한 한이 서린 곳이니 나중에 이곳을 가시게 되면 이런한 사실도 새겨보면 어떨까 해서 적어 보았습니다.
사실 남산을 자세히 알게 되면 일제가 벌였던 수많은 사연을 알게 됩니다. 남산의 벚 꽃도 그런 일제의 일본심기의 일환으로 심었던 것이지요. 벚꽃은 사실 우리나라가 원 산지이지만 벚꽃의 원산지가 우리나라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제는 벚꽃을 일본의 국화로 여겨 자기들의 혼을 심어 놓고자 남산을 비롯하여 창경궁 등에 벚꽃을 심기에 열을 올렸던 것입니다. 그런 의도가 벚꽃 에 있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이입을 버리고 순수한 아름다운꽃으로만 대하고 즐기는 봄 꽃입니다.
이것은 무슨 기념비일까?
남산길을 오르자마자 만나는 기념비입니다. 무슨 기념비인가 궁금했습니다. 사실 이 길은 처음 가는 길입니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 선생의 기념비가 우둑 솟아 있습니다. 선생은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대하여 주도적 역할을 하신 분이자 한글을 사랑하신 한글학자로 유명하신 분이지요. 여기에 이 기념비를 세운 것은 우리의 민족혼을 진작시키기 위함이 아닌가 합니다.
외솔 최현배 선생에 대한 알림글
「외솔 최 현배 선생님은 천팔백구십사년 시월 열아흐렛날 경상도 울산 하상면 동리에 서 나시어 천구백칠십년 삼월 스무사흗날 새벽 일흔일곱의 생애를 서울에서 마치시었 다.
소년 시절 나라 형편을 개탄하시어 주 시경의 국어와 신 채호의 국사에서 나라와 겨레 를 마음에 간직하시었다. 선생님은 '조선민족 갱생의 도'에서 청년 학생에게 민족 구 원을 호소하여 민족 갱생의 길을 일깨워 주셨으며 그 정신의 표현으로 '우리말본'과 '한글갈'에서 우리말과 글을 소중히 쓸 것을 일러 주시었다. 연희 학원과 조선어학회 에서 일하시던 중 일본 경찰에게 고초를 당하시었으나 해방이 되자 정부와 대학과 한 글학회에서 말과 글의 교육과 연구를 바로잡고 '나라사랑의 길'과 '나라건지는 교육' 에서 겨레의 나아갈 길과 번영의 방도를 밝히시었다.
나라 독립과 겨레를 위한 학문에 대한 불멸의 공적을 생전에 치하하였으나 선생님의 정성어린 일을 뒷날에 길이 전하고자 선생님 가신 이듬해 오월 세종 임금 오신 날을 잡아서 저 뜻을 새긴 비를 장충단 햇빛 밝은 언덕 위에 세우다.
글 홍 이섭 글씨 김 기승 조각 최 기원 천구백칠십일년 오월 보름날 외솔 최 현배 선생 기념비 건립 위원회」
외솔 선생의 '임'
임
임이여 어디 갔노, 어디매로 갔단 말고. 풀나무 봄이 되면 해마다 푸르건만, 어찌ㅎ다 우리의 임은 돌아올 줄 모르나.
임이여, 못 살겠소, 임 그리워 못 살겠소. 임 떠난 그 날부터 겪는 이 설음이라. 임이여, 어서 오소서, 기다리다 애타오.
봄맞이 반긴 뜻은 임 올가 함이러니, 임은랑 오지 않고, 봄이 그만 저물어서, 꽃지고 나비 날아가니, 더욱 설어 하노라.
강물이 아름아름, 끝간 데를 모르겠고, 버들가지 출렁출렁, 물속까지 드리웠다. 이내 한 길고 또 길어 그칠 줄이 없어라.
1945 년 봄, 함흥 옥중에서 조국 광복을 기다리며 외솔 읊음
기념비를 둘러보고 다시 남산을 오릅니다. 이제 남산은 푸르게 푸르게 변모하고 있습 니다.
라일락 향기가 그윽합니다.
복사꽃도 환하게 피었네요.
남산길 오르기
길을 오르다가 신발의 느낌이 이상해서 보니 앗~! 밑창이 분리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신고 온 등산화는 그동안 오랫동안 별로 신지 않은 새 등산화인데 밑창이 분리 되다니 난감한 노릇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ㅋㅋㅋ
뭐하시는 걸까요? ^^ -염화님 사진-
이렇게 응급조치로 묶었습니다. ^^
처음엔 한 쪽만 그러더니 나중엔 양쪽 다 분리되어 폭소가 만발했네요. ㅎㅎㅎ
걷다 보니 이렇게 되네요. ^^
단단히 조여 매 약간은 발이 조였지만 별 지장없이 무사히 잘 걸었고 잘 왔습니다. 재미있는 두 신발사진은 미소님께서 담으셨습니다. ^^
팔각정에서 잠시 쉬기
차 한잔과 빵 등을 나누어 먹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산순환길 걷기
남산의 이곳은 4월이 되면 벚꽃터널로 유명합니다. 예전에 묘법님의 안내로 이 길을 걸 었던 생각이 납니다. 일주 전만 해도 절정기로 화려했을 터인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라 했던가 이제는 그 자취만 남기고 말았네요. 전날의 비바람도 낙화에 단단히 한 몫 을 했을 터입니다.
화려했었을 벚꽃은 거의 다졌지만 그래도 아름답습니다.
그래도 이 길은 화엄경(華嚴景)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늦둥이도 있는 법입니다. ^^
만개한 산벚꽃나무가 그 아쉬움을 달래 줍니다.
이 꽃은 무슨 나무 꽃인지 모르겠네요.
보라빛 라일락에서 풍기는 향기 그윽했습니다.
금낭화가 고운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순환로 가에는 인공으로 조성된 듯한 개울이 흐르고 있는데 개울가는 온갖 꽃나무가 자라고 있어 탐방객들을 기쁘게 맞이 하고 있었습니다.
이 꽃은 돌단풍입니다.
이 돌단풍은 중부지방 하천의 바위나 돌틈에 많이 피고 있는 식물입니다.
잎새가 단풍나무잎과 흡사하고 돌이 있는 곳에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왼쪽은 붓꽃으로 여겨지고 오른쪽은 창포입니다.
오월 단오 수릿날 창포에 머리를 감는다는 창포입니다.
흐드러지게 핀 조팝나무
걷다보니 어느덧 남산타워가 눈앞입니다.
남산타워를 향하여
12시 무렵 남산 타워가 있는 남산의 정상에 도착 했습니다. 남산은 그동안 수도 없이 올라보았지만 근래에 실로 오랜만에 올라본 남산입니다. 남산 위의 정경은 다음 장에 서 소개해 보겠습니다. _(())_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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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우님의 신발을보니 다시금 입가의 웃음꽃이 활짝 ㅎㅎㅎ
불편한 발로 수고하셨습니다. _()_
보내 주신 신발 사진 웃음이 나서 올렸습니다. _()_ _(())_
응급처치로 생각보다 발이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한 시간 많이 행복했습니다, ~~~~~~~~~
함께하는 시간은 행복의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_()_ _(())_
법우님들과 거닐은 남산의 정취...거웠습니다. _()_
남산의 모습이 옛날의 기억과는 다른 바가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_()_ _(())_
신발이 말을 안 들었군요.... ㅎ
봄 꽃이 만발했네요. 보기 좋습니다.
멀쩡했던 신발이 그렇게 되어 있는 줄은 몰랐네요.이 지니 너도 나도 그 뒤를 잇겠다고 야단이었습니다. _()_ _(())_
봄의 대세 벚
남산은 자연체험장 자연학습장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