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거인 - 2집 별리 (릴마스터테잎 Digital Remastering) LP 미니어쳐 CD 12월 14일 입고 예정 가격/14,500원
김수철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른바 '난놈'이었다. 용산공고 1학년 때 록 밴드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고3 때는 명동성당에서 최초로 록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폭발적인 하드 록 사운드가 경건한 성당을 발칵 뒤집어놓았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김수철 스스로도 대중음악평론가 성우진과의 인터뷰에서 "난 고등학교 다닐 때 이미 프로였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랬던 김수철이 대학교에 가서 결성한 밴드가 '작은거인'이다. 기타, 베이스, 드럼, 건반의 4인조로 구성되었는데, 김수철은 기타와 리드 보컬을 맡았다. 이들은 1979년에 처음 열린 〈전국대학가요경연대회〉에서 「일곱색깔 무지개」로 금상을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같은 해 1집 『작은거인의 넋두리』를 발표했다. 1집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았다. 강렬하고 실험적인 록을 구사하고자 했으나 녹음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아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뒤 작정하고 내놓은 앨범이 바로 한국 록의 명반으로 꼽히는 '작은거인' 2집이다. 그 사이 밴드 멤버들이 하나 둘 떠나 2인조로 축소됐다. 김수철이 보컬과 기타에다 베이스까지 연주했고, 최수일이 드럼 스틱을 잡았다. 환하게 웃는 네 명의 컬러 사진의 1집 재킷과 달리 2집 재킷에는 두 명만 남은, 그것도 얼굴 부분을 잘라내 표정을 알 수 없는 흑백사진을 실었다. 다만 2집은 꽤 좋은 녹음실을 쓰고 일본인 전문 엔지니어의 손길을 거친 덕에 원하던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었다.
2집의 첫 곡은 「별리」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국악을 접목한 가요라 할 수 있는데, 김수철의 국악에 대한 열정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훗날 김수철은 국악 쪽으로 방향을 틀어 『황천길』, 『팔만대장경』, 『기타산조』 같은 앨범을 내놓는다. 캠퍼스 밴드답게 젊음과 패기를 품은 「새야」, 발라드처럼 시작해 경쾌한 후렴구로 이어지는 재즈 록 「행복」, 훵키 리듬이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연주곡 「어둠의 세계」, 댄스곡이라 해도 무리 없을 신나는 로큰롤 「어쩌면 좋아」, 서정적이고 애절한 발라드 「외로움」, 시원한 정통 하드 록 「알면서도」 등 모든 수록곡이 다 주옥같다.
백미는 역시 마지막 곡 「일곱색깔 무지개」다. 〈전국대학가요경연대회〉 수상곡이자 1집 수록곡을 새롭게 편곡해 다시 실었는데, 러닝 타임 5분 12초가 지독히도 짧게 느껴질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중간에 이빨로 기타 줄을 뜯으며 연주한 대목도 있다. 깡충깡충 뛰는 등 스테이지 매너 또한 파격적이었다. 해외 거장 기타리스트들에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 연주와 스테이지 매너는 한국 록 역사에 깊은 고랑을 파고도 남았다.
'작은거인' 2집이 나온 뒤 최수일마저 밴드를 탈퇴하자 김수철은 신윤식, 허준과 함께 밴드를 재편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결국 해체했다. 부모님의 심한 반대로 음악을 그만두기로 한 김수철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다 음반사의 제안으로 솔로 1집을 발표한 후 「못다핀 꽃한송이」, 「나도야 간다」, 「젊은 그대」 등이 크게 히트하면서 인기 가수 반열에 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수철은 국악과의 크로스오버에 심취해 새로운 영역을 꾸준히 개척해나갔다. 그렇다고 록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김수철은 젊은 인디 음악인들과 교류하며 여전히 '작은 거인'이자 '젊은 그대'로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1-1. 별리
1-2. 새야
1-3. 행복
1-4. 어둠의 세계(경음악)
1-5. 어쩌면 좋아
1-6. 외로움
1-7. 알면서도
1-8. 일곱색깔 무지개
첫댓글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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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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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위의 곰 사장님, 이화 앙그라 작은거인과 함께 mahatma - reason for silence 와 new justice 있으면 같이 킵해 주셔용~ 없어도 괜찮아요 ^^ 곧 서울집으로 받겠습니다.
@ggerubum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