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림박물관 비정의 현판 글자 '碑'에 점이 하나 없다. 이것은 아편전쟁의 영웅 임칙서와 관련이 있다.
▲ 비림 내 전시실에 전시된 비석들. 비림은 비석의 숲이다.
중국에는 각 시대의 비석을 모아놓은 숲 비림(碑林)이 여러 곳 있다. 각지의 비림 중 시안(西安) 비림박물관은 최고로 꼽힌다. 비석을 가장 일찍부터 보관했다. 유명하고 가치 높은 비석도 많은 예술창고다.
▲ 비림은 문묘의 흔적이 남아있다. 비림의 연못은 반원형의 반지이다.
▲ 경운종은 우렁차면서도 은은한 소리로, 중국에서 천하제일종으로 찬사 받고 있다.
비림박물관에 들어서면 문묘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공자는 유학의 창시자로, 중국 역대 왕조에게는 문선왕(文宣王)으로까지 봉해졌다. 옛 중국인들은 공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동서 두 문을 열어놓 았다. 이 동문을 의로(義路), 서문을 예문(禮門)이라 했다. 남문은 폐쇄하여 새문(塞門)이라 했다.
▲ 제1전시실에는 개성석경이 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경전을 베껴 쓰는 과정에 틀린 글자가 많았기에 이 비석을 교본으로 사용했다.
문 안에는 반원형 연못이 두 개 있다. 중국 봉건왕조시대에는 국가에서 공묘를 조성했다. 이에 대한 규정을 두어 국가급 공묘는 연못을 원형으로 하여 벽옹(辟雍)이라 했다. 지방의 공묘 연못은 반원형 으로 반지(冸池)라 불렸다.
▲ 제2전시실의 대진경교유행중국비는 기독교의 중국 전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비림 중앙에는 가장 큰 비정이 있다. 이 비정은 청나라 때 건립된 것으로, 석태효경이 안치되어 있다. 석태효경은 745년 현종이 친필로 효경을 비석에 새긴 비석이다. 효경은 공자와 그의 제자인 증자가 나누었던 효에 대한 문답을 적은 경서이다. 비림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비석으로 유명하다.
▲ 제6전시실에는 탁본을 뜰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탁본 가격은 비석의 가치에 따라 다르다.
비정에는 비림이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는데, '碑' 자에 점 하나가 없다. 현판 글자는 청나라 말기 아편을 싣고 온 영국의 배를 태워 아편전쟁을 부른 임칙서가 썼다. 당시 임칙서는 아편전쟁 이후 청이 영국으로 화친하자, 전쟁 유발자로 몰려 신강성으로 유배됐다.
▲ 석각예술관에 전시된 자오링 육준.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있는 부조물의 진본은 해외로 유출되어 미국에 있다.
▲ 환성공원에서 바라 본 시안성의 남문. 성벽 앞에 수로가 있어 조교를 이용해야만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 남문 위 성벽에서 바라본 성곽과 환성공원의 전경.
비림 앞은 고성벽인 시안성곽이 있다. 시안성곽은 12m 높이로 시안 시내를 둘러싸고 있다. 성벽의 위쪽 폭은 12~14m, 아래쪽 폭은 15~18m에 달한다.
▲ 시안성곽 위는 버스 두 대가 다닐 수 있는 정도로 넓다. 성벽 폭은 최대 14m에 달한다.
서안성곽은 1370년 명 태조 때 공사가 시작하여 1378년에 완성했다. 오늘날 중국 고대 성벽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됐고, 난징(南京)성과 더불어 중국 양대 성벽으로 꼽힌다.
▲ 남문에서는 멀리서 귀빈이 올 경우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다를 바 없다.
성벽 건설 당시 남쪽과 서쪽은 잔존했던 수당시대의 성벽을 기초로 했다. 길이는 동벽이 2886m,
서벽이 2706m, 남벽은 4256m, 북벽은 4262m로, 총 13㎞912m에 달한다. 이후 세 차례에 걸친 보수
작업으로 원래의 흙 성벽에 푸른 벽돌을 쌓았고, 성루도 개조하고 배수로도 만들었다.
첫댓글 중국 문화의 방대함, 절묘한 솜씨들의 뛰어난 예술 성 들은 중국의 역사만큼이나 깊고 넓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