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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23
#.1 씬. 술집 앞.(밤)
강석, 단아, 나오는데, 눈이 내리고 있는.
단아 : (하늘을 올려다보는)
강석 : .....
단아 : 눈이 오시네요.
강석 : (단아의 팔을 잡는)
단아 : (보는)
강석 : 한번만, 오늘 한번만 참아주겠습니까?
단아 : .....
강석 : (단아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단아 : (멍한 느낌으로 있다가, 천천히 눈을 감는)
강석 : (잠시 그러고 있다가 몸을 떼어내는. 물끄러미 단아를 보는)
단아 : (천천히 눈을 뜨고 강석을 바라보는)
강석 : 왜 참아 준 겁니까?
단아 : ......
강석 : (자조적으로 미소 지으며) 뺨 때려도 됩니다.
이 쪽 저 쪽 번갈아서 대 여섯 번 때려도 참아줄 테니까.
단아 : 슬퍼 보여서요. 그쪽이.
강석 : 슬퍼 보이는 놈들한텐 다 이렇게 관대합니까? 그 어린놈도 오늘 나못지 않게 슬퍼 보인 적 많을 텐데.
아, 그 놈한테 보였다는 빈틈. 조금 전 같은 그런 거였습니까?
단아 : 진하 오빠와 많이 닮았어요, 그 아이.
그 아이가 입학 한 그해 봄에, 친구들과 농구하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봤어요.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았어요. 아, 저 사람이 왜 저기 있을까.
강석 : 대체 그 인간, 추운데 있다는 그 인간, 당신한테 뭡니까?
왜 그 인간을 빼곤 당신 인생에 아무 것도 없는 거냐구?
단아 : 대리기사 불러서 들어가세요. 전 전철 타고 갈게요. (걸어가려고 하면)
강석 : (단아의 팔을 잡는)
단아 : (돌아보는)
강석 : 동정심 좀 더 발휘해볼 수 있습니까?
단아 : .....
강석 : 슬퍼 보여서 입맞추는 것도 허락했잖아요?
단아 : ......
강석 : 오늘 밤 같이 있어줄 수 있습니까?
단아 : .....
강석 : 안됩니까?
단아 : 그래서 뭐가 달라지죠?
강석 : .....
단아 : 남자와 여자로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요?
강석 : .....
단아 : 그건 어쩌면 서로를 더 슬프게 만드는 걸 거예요. 그래서 안 되겠어요.
꼭 대리기사 불러서 가세요. (걸어가는)
강석 : (눈 오는 거리를 걸어가는 단아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는)
#.2 씬. 강석의 집 거실.(밤)
강석, 들어오는, 천갑 술을 마시며 앉아있는.
천갑 : 이리 와라. 한잔 하자.
강석 : 전 좀 했어요. 아버지.
천갑 : 이리 와서 한 잔 더 해. 아줌마, 여기 잔 하나 더 가져와요.
강석 : (마지못해 다가와 앉는) 혜주는요?
천갑 : 조금 전에 들어왔다. 왜 그렇게 뭔 일만 있으면 기겁을 해서 뛰쳐나가는지.
아줌마, 잔을 가져다 놔주는.
천갑 : (술을 따라서 강석에게 주는)
강석 : (쭉 마셔버리는) 어머니는요?
천갑 : 울고불고 하는 걸 조금 전에 독한 술 한 잔 먹여서 겨우 재웠다.
네 엄마, 너 봉변당한 게 더 속이 상한 모양이다.
강석 : 봉변 아니잖아요.
천갑 : 뭐?
강석 : 그 양반들 입장에선 죽이고 싶은 놈이잖아요, 저.
천갑 : (술을 마시면서) 에비는 그렇다. 부모 복 없이 태어나, 10살 때부터 넝마 주우러 떠돌면서
이게 내 운명이겠거니, 그랬다. 남이 버린 거나 주워다 팔아서 먹고 사는 드럽게 지저분한 팔자.
그 어린 나이부터 안 당해본 수모가 없고, 안 받아본 괄시가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도둑놈이라고 멱살이나 잡히고. 분명히 버린 줄 알고 주워든 고무신짝인데도
안 버렸다고, 도둑놈의 새끼라고 붙잡혀서 안 죽을 만큼 얻어터진 적이 어디 한 두 번인 줄 아냐.
그래서 이 악물고 살았다. 나 괄시한 니들 내가 가만 두나 봐라. 내가 당한만큼 다 갚아주면서 살 거다.
그 오기 하나가 오늘날의 네 에비를 만든 거다.
강석 : (술을 따라 마시는)
천갑 : 천천히 마셔, 천천히.
강석 : .....
천갑 : 인생이란 건 말이다. 딱 두 가지 종류 밖에 없어. 뺏기는 놈과 뺏는 놈.
사람들 우리더러 그러지, 돈 밖에 모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이라구.
그런 말 새겨 두지마. 뺏기는 놈들이 저 못났다는 거 인정하는 말이니까.
강석 : 아버지?
천갑 : 왜?
강석 : 한번도 후회 한 적 없으세요?
천갑 : 후회라니? 무슨 후회?
강석 : 과연 이 길 밖에 없었을까. 그래보신 적 없느냐구요?
천갑 : 열쳤냐. 거지새끼나 다름없었던 놈이 오늘날 회장님 소리를 듣고 사는데, 후회는 무슨 염병할 후회.
(보고) 너 오늘 마음 많이 상한 모양이다?
강석 : 자야겠어요.
천갑 : 그래, 푹 자고 나서 다 떨쳐버려.
#.3 씬. 강석의 집 2층 거실.(밤)
강석, 올라오는. 혜주의 방 앞에 서서 노크하는.
혜주 : (문을 여는)
강석 : 괜찮니?
혜주 : 응.
강석 : 오빠, 또 미안하다고 해야겠다.
다신 회사 일 집으로 끌어들이는 일 없을 거라고 해놓고, 또 그런 일 만들어서 미안하다.
혜주 : 매번 겪으면서도 매번 울면서 뛰쳐나가는 내가 바보지 뭐.
강석 : 오빠, 많이 밉지?
혜주 : 이제 곧 끝날 건데 뭐.
강석 : (보면)
혜주 : 결혼해서 이 집 떠나면 그런 일은 안 겪어도 되잖아.
그건 다행이라고 생각해. 가서 자. (문을 닫는)
강석 : (닫긴 방문을 바라보고 있는)
#.4 씬. 강석의 방.(밤)
강석, 들어와서 웃옷을 벗어 방바닥에 패대기치는.
#.5 씬. 단아의 방.(밤)
단아, 진하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단아 : 그게 전부였을까? 오빠? 정말, 그 사람이 슬퍼 보여서, 그랬던 걸까?
나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오빠? (책상에 팔을 올리고 얼굴을 묻는)
#.6 씬. 병실.(밤)
말순, 만화책을 보고 있는데. 들어오는 태영.
말순 : 왜 또 안가고 다시 들어와?
태영 : 야, 말순아? 눈 온다.
말순 : 근데?
태영 : 눈 온다구. (창 밖을 가리키면서) 푸짐하게도 온다니까.
말순 : 별명이 똥개라서 그러냐? 개도 아니면서 눈 오는 게 왜 좋은데?
태영 : 넌 여자애가 정서가 그렇게 메말랐냐?
#.7 씬. 병원 앞. (밤)
태영, 말순 눈 오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태영 : (웃옷을 벗어서 말순의 어깨에 걸쳐주는)
말순 : (약간 움찔하면서 보는)
태영 : 너 남자가 옷 벗어서 걸쳐주고 그런 적도 없지?
말순 : 왜, 왜 없어.
태영 : 됐거든. 진짜 연말 분위기 확실하게 난다. 그지?
말순 : 그런가.
태영 : 넌 눈 오는 날 가슴 저린 추억 같은 거 없지?
말순 : 왜 이래. 나 경찰 시험 합격하던 날 첫눈 왔다.
태영 : (보고) 진짜 대따 가슴 저린 추억이다. (슬쩍 말순의 어깨에 손 올리고) 친구야?
말순 : 왜?
태영 : 올해는 네가 갈비뼈에 금이 가서 안 되겠구,
내년엔 너의 베스트 프렌드께서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 보내게 해줄게.
말순 : 어떤 거?
태영 : 그걸 지금 말하면 되냐? 기대해봐라, 내년 크리스마스를.
말순 : 친구야?
태영 : 왜?
말순 : 너 참 좋은 놈이야. 간.... (간통이라고 말하려다가 멀뚱해지는)
태영 : (홱 옆으로 고개 돌리고 보면서) 너 간통이라고 말하려고 했지? 간통만 안했으면 그러려고 했지?
다신 안하겠다고 해놓고 또 하려고 그랬지?
말순 : 간만에 좋은 인간 만났다고 하려고 한 건데.
태영 : 아냐, 아냐, 간통이라고 하려고 했던 거야.
말순 : (웃옷 벗어서 주고 돌아서며) 가라. 집에.
태영 : (따라가면서) 간통이라고 말하려고 했어? 안했어? 했지? 했지?
#.8 씬. 길.(밤)
눈 오는 길을 나란히 걷고 있는 수영과 진아.
진아 : 아, 좋다. 아저씨랑 눈 오는 밤길을 이렇게 걸어가니까.
(보고, 씩 웃으며) 비싼 밥 배부르게 먹고 걸으니까 더 좋은가.
수영 : (미소 지으며 보는) 나 무슨 말 하면 비웃을 거죠?
진아 : (보는)
수영 : 나 눈 오는 밤길 걸어보는 거 처음이에요.
진아 : 설마?
수영 : 나 좀 이상한 구석이 있는데, 눈하고 비 맞는 거 진짜 싫어하거든요.
회사 들어가선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차타고 다녔으니까 맞을 일 없었구.
학교 때는 비 오거나 눈 오면 도서관 같은 데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어요. 그칠 때까지.
진아 : 독하시다.
수영 : (웃는) 내가 좀 독한 구석이 있어요. 진아씨랑 다니니까 정말 태어나서 처음 하는 일 너무 많이 한다.
(걸어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이런 맛에 사람들이 눈을 맞고 걸어다니나 봐요.
진아 : (웃고 보다가, 길에 내린 눈을 뭉쳐서 수영의 뒷덜미 속에 집어넣는)
수영 : (놀라서) 아 차거.
진아 : 경험은 제대로 하셔야 기억에 오래 남죠.
수영 : 지금 싸움 건 거예요? (허리 꺾고 눈을 뭉치는)
진아 : 아저씨, 아저씨. 진정하세요. 아저씨 캐릭터에 안 어울리시거든요.
수영 : (눈을 뭉치면서) 나 안 해본 일 다 해보기로 모질게 작정한 사람이거든요.
진아 : (도망치면서) 잘못했어요, 잘못 했다구요.
수영 : 늦었거든요. (눈 뭉쳐서 일어서는)
#.9 씬. 종가 전경. (밤)
영인E : 배고파.
#.10 씬. 석호의 방.(밤)
영인, 일어나 앉아있고, 석호, 눈 부비고 일어나는.
석호 : 응?
영인 : 나 배고파.
석호 : (시계 보면 새벽 2시다) 밥 차려다 줄까?
영인 : 아니, 밥은 싫구. 군고구마 먹고 싶어.
석호 : 군고구마?
영인 : 응. 갑자기 군고구마 생각이 나서 잠이 안와.
석호 : 그럼 먹어야지. (일어나는)
영인 : 사러 가려구?
석호 : 사와야지 어떡해, 와이프가 먹고 싶다는데? (옷을 꺼내는)
영인 : 늙은 마누라 얻어 들였더니 별 고생을 다 시키지?
석호 : 알긴 하네.
영인 : (베개를 던지는)
#.11 씬. 길.(밤)
운전하는 석호, 길을 이리 저리 둘러보는.
석호 : 아니, 왜 이렇게 군고구마 장사가 없나.
#.12 씬. 석호의 방.(밤)
영인,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들어오는 석호.
영인 :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석호 : 어떡하냐? 군고구마 장사가 없다. 다른 동네까지 다 찾아봤는데도 없어.
영인 : 없으면 할 수 없지 뭐. 추운데 고생 했어.
석호 : 가만 있어봐. (나가려고 하는)
영인 : 또 찾으러 가는 거야? 그러지 마, 참고 잘게.
석호 : (돌아보며) 결혼해서 뭐 먹고 싶다고 하는 거 처음인데, 어떻게 참고 자게 만들어. (나가는)
영인 : 괜찮은데. (그러면서도 흐뭇하게 웃는)
#.13 씬. 부엌.(밤)
석호, 조심스럽게 여기 저기 뒤져서 고구마 찾아내고 고구마 굽는 후라이팬 찾아내는.
#.14 씬. 삼월의 방.(밤)
삼월, 자다가 눈 뜨는. 조만 잠들어 있고.
삼월 : (코를 킁킁거리면서) 아니, 이게 무슨 냄새야. (몸을 일으키는)
#.15 씬. 마루.(밤)
태영, 방에서 나오는.
태영 : 여자도 아니고 오줌소탠가. 왜 자다가 한번씩 화장실을 가야 하는 거야, 귀찮아 죽겠네.
삼월, 방에서 나오는.
태영 : 왜 나오세요?
삼월 : 무슨 냄새나지? 타는 냄새 안나?
단아, 방에서 나오는.
태영 : 넌 왜 또 나와? 아직 안잔 거야?
단아 : 이상한 냄새나는 거 같아서.
태영 : (킁킁거리며)
삼월 : 부엌에 누구야?
#.16 씬. 부엌.(밤)
석호, 군고구마 꺼내면서 아 뜨거 하는 느낌으로.
삼월, 태영, 단아 들여다보는.
삼월 : 하사장 뭐해?
태영 : 아버지 안 주무시고 뭐하세요?
석호 : (돌아보고 놀라면서) 어. 아 아니다, 아무것도.
#.17 씬. 석호의 방.(밤)
석호, 군고구만 껍질 까서 영인에게 건네는.
영인 : 식구들이 낫살이나 먹어서 입덧도 요란하게 한다고 흉보겠다.
석호 : 너 흉 안 봐. 흉보면 나를 보지.
영인 : 자기가 왜? 와이프가 먹고 싶다고 해서 해주는 건데.
단아E : 아버지?
석호 : 어, 그래?
단아E : 문 좀 열게요.
석호 : 그래.
단아, 쟁반에 물과 김치 담아서 들어오는.
단아 : 고구마만 가지고 들어가셔서요. 어머니 목메세요. (가져와 놓는)
영인 : 그래, 군고구마는 김치하고 먹어야 제 맛이야. 고맙다, 단아야.
#.18 씬. 마루.(밤)
태영, 퉁퉁 부어서 서있는. 삼월 부엌에서 나오는.
삼월 : 왜 안자고 그러고 서있어?
태영 : 아니에요.
삼월 : 들어가 자.
태영 : 들어가세요.
삼월 : 우리 하사장, 평생 저런 재미는 모르고 살 줄 알았드만. (방으로 들어가는)
태영 : (입이 댓발이나 나와서 석호의 방을 노려보고 있는)
단아E : 드시고 주무세요.
석호E : 그래, 자거라.
단아, 마루로 나오는.
태영 : (단아 팔목 잡아끌고 단아의 방으로 끌고 들어가는)
단아 : 왜 이래? (하면서 끌려가는)
#.19 씬. 단아의 방.(밤)
태영, 단아 끌고 들어오는.
태영 : 넌 뭐가 이쁘다구, 물하고 김치까지 챙겨다 주냐?
단아 : 왜 또 이래?
태영 : 넌 밸도 없냐구?
단아 : 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태영 : 우리 아버지 정말 저러셔도 되는 거냐?
단아 : 뭘?
태영 : 우리 아버지가 우리 엄마한테 평생 저렇게 해보신 적이 있냔 말이야?
단아 : 우리가 어려서 몰라서 그렇지, 엄마 입덧하셨을 때 잘 하셨을 거야.
태영 : 넌 몰라. 나 어렸을 때, 엄마가 삼월 할머니랑 얘기하는 거 들었어.
형하고 나 가졌을 때 한밤중에 메밀묵 장사가 지나가더라는 거야. 엄마가 그게 그렇게 잡숫고 싶으셨대.
삼월 할머니가 그럼 신랑더러 좀 사오라고 하지 그랬냐구 하니까 우리 엄마 그러시드라.
마주 앉아 얼굴 보는 것도 어렵기만 한데, 그런 심부름을 어떻게 시키냐구.
그때 그렇게 먹고 싶어서 그런지, 나중엔 메밀묵이 그렇게 싫드라구.
그러시면서 웃으시는데 그게 얼마나 슬퍼 보였는지 너 아냐?
단아 : (애잔하고) 가서 자.
태영 : 우리 아버지, 나 정말 밉다. (나가는)
단아 : (앉으며. 위를 올려다보면서) 우리 엄마, 어떡하냐? 너무 많이 쓸쓸하시겠다.
#.20 씬. 종가 전경.(아침)
#.21 씬. 마루.(아침)
영인, 삼월, 조만, 단아, 태영, 동동 식사하고 있는.
삼월 : (영인을 보면서) 왜 입맛이 없어요?
영인 : 그렇네요, 좀.
태영 : 밤에 군고구마를 워낙 많이 드셔서 그렇겠죠 뭐.
영인 : (태영 보고) 비꼬는 것처럼 들리네요, 작은 아드님.
태영 : 전 그냥 말씀드리는 건데 왜 그렇게 들리실까요?
동동 : 할머닌. 저도 깨워서 좀 주시지.
태영 : (버럭) 임마, 네가 입덧하냐?
단아 : (태영을 쿡 찌르는)
태영 : 넌 왜 밥 먹는 사람을 찌르고 그러냐?
단아 : (무안하고)
#.22 씬. 만기의 방.(아침)
만기, 석호, 수영, 주정 식사하고 있는.
태영E : 좋으시겠어요, 어머님. 평생 부엌엔 들어가 보신 적이 없는 아버지가 군고구마까지 해다 바치시고.
주정 : 어머, 조카가 그랬어? 군고구마를 어떻게 만들었어? 조카가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석호 : 사러 갔었는데 없어서 그냥 만들어 봤어요.
수영 : (표정이 밝지 않은)
주정 : 입덧하는 아내가 무섭긴 무섭구나. 우리 조카가 그런 일을 다 해보고.
만기 : 그만 떠들고 먹어라.
주정 : 너무 신기하니까 그렇죠.
만기 : 그만 좀 하라니까.
#.23 씬. 회사 복도. (아침)
석호, 영인, 수영, 태영, 걸어오는데.
영인 : (미끌하면서 비틀거리는)
석호 : (놀라서 영인을 잡으며) 조심 좀 하지 않구.
영인 : 괜찮아.
진아, 달려와서 걸레로 몸 구부려 앉으며 닦는.
진아 : 죄송합니다, 닦는다고 닦았는데 물기가 남아있었나 봐요.
수영 : (그런 진아를 바라보는)
진아 : (열심히 닦으며) 죄송합니다.
태영 : 또 얘네?
수영 : (태영을 흘겨보는)
태영, 걸어가는.
#.24 씬. 수영의 사무실.(낮)
수영, 결제하고 있는. 그 앞에 서있는 태영.
수영 : 청소하는 사람한테 제발 얘 쟤 좀 하지 말라고 했지?
태영 : 형은. 그것만 마음에 걸리지?
수영 : (보면)
태영 : 아버지, 이영인 실장님한테 끔찍하게 하는 거 보면서는 속 안 뒤집히고?
수영 : 어머님이라고 꼬박 꼬박 부르더니 왜 또 그래?
태영 : 그거야 부르지 말라니까 약 오르라고 더 그러는 거구.
난 우리 아버지, 저렇게 하실 줄은 정말 몰랐어. 우리 엄마한테는 늘 손님처럼 구시던 양반이잖아.
수영 : 그거야, 어머니가 워낙 아버지를 어려워하셨으니까.
태영 : 그러니까 그 마음을 더 알아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구.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셨으면 그러셨겠냔 말이야.
수영 : 사람마다 받는 사랑도 다 가지고 태어나나보다.
우리 어머니가 새 어머님보다 아버지를 덜 사랑하셨을 리는 없을 텐데
사랑을 누리고 사시는 건 새어머님인 거 보니.
태영 : 에이, 세상 참 불공평해서....(서류 들고 나가버리는)
수영 : (혼잣말로) 그래서 산다는 게 쓸쓸한 거 아니겠냐?
#.25 씬. 학교 교정.(낮)
혜주, 책을 꼭 껴안고 땅만 바라보면서 걸어오는. 막아서는 현규의 발.
혜주 : (고개를 들면)
현규 : 사람이 왜 그래요?
혜주 : .....
현규 : 아르바이트 관둘 거면 관두다고 하고 그만두던지?
사람이 그렇게 직업의식이 투미해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구요?
혜주 :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옆으로 비켜서려고 하면)
현규 : 투미한 게 그것만 아니잖아요?
혜주 : ......
#.26 씬. 커피숍. (낮)
혜주 앉아있으면, 현규, 쥬스 가져다 놓고 앞에 앉는.
현규 : 그쪽이 연락도 없이 갑자기 안 나와서 나 혼자 얼마나 뺑이 친 줄 알아요?
혜주 : 죄송합니다.
현규 : 아, 그 놈의 죄송하다는 소리가 아주 입에 붙었어.
혜주 : 죄송합니다.
현규 : 뭐가 그렇게 죄송한데요?
혜주 : 죄송합니다.
현규 : (기가 막혀서 웃고) 결혼 한다고 했다면서요?
혜주 : (멍하니 보고)
현규 :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그쪽 오빠 죽을상을 하고 왔었어요.
혜주 : .....
현규 : 대체 왜 그래요? 나 같은 놈이 한 소리 했다고 얼굴 보고선 숨도 못 쉬어서 사람 기막히게 만들더니.
이젠 또 뭐. 결혼? 내가 뭐라구? 나 같은 놈이 뭐라구? 인생 그렇게 함부로 살려고 하냐 그 말이에요?
억울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벽창호 같은 나 같은 놈 때문에 인생 시궁창에 던지는 게
대따 억울하다 그런 생각 안 드냐구요?
혜주 : 안 들어요.
현규 : 정말 왜 그렇게 답답하게 굴어요? 그쪽 겁나면 숨도 못 쉬고 그러는 거, 그래요, 여린 사람이라 쳐요.
그럼 그냥 쭉 여리게 굴던지. 뜬금없이 결혼은 뭐냐구요?
그거 보통 독한 마음먹지 않고선 못하는 짓이거든요. 그냥 살던 대로 살아요. 갑자기 센 척 하지 말구.
혜주 : 날.....
현규 : (보면)
혜주 :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현규 : ......
혜주 :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거란 거.....깨달았어요.
현규 : (보다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예요?
혜주 : 아니에요, 그런 거. 많이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에요. 내 자신한테.....
현규 : 날 왜 그렇게 사랑하는데요?
혜주 : .....
현규 : 우리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쪽이 언제부터 날 따라다녔는지 모르겠지만, 나 그쪽한테 눈길 한번 준적도 없고.
혜주 : 재작년 봄부터였어요.
현규 : (어이없어서 보는) 독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니구나.
혜주 : 학교 축제 때, 벚꽃 나무 밑에 서서 웃고 있었어요. 친구들하고 무슨 말인가를 하면서.
마치 눈을 맞는 것처럼, 두 손을 벌리고 서서 웃고 있었어요.
현규 : 그런데요? 그게 뭐요?
혜주 : 웃는 모습이 그냥.....눈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그냥 쫓아다녔어요.
자꾸.....그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현규 : 이게 짝사랑의 특징인가.
나도 어느 날 날 이상한 눈빛으로 보던 그 사람이 눈에 들어오면서 그냥 빠져들게 되더니.
우리 그러고 보면 닮은 구석이 좀 있긴 하네요.
혜주 : 갈게요. (일어서려고 하면)
현규 : 내 말 안 끝났어요.
혜주 : (보고, 하는 수 없이 앉는)
현규 : 그거 하지 말아요. 마음에도 없는 결혼,
그냥 막 살아보겠다고 작정하고 하는 결혼 같은 거, 하지 말아요.
혜주 : .....
현규 : 그럼 나 때문에 인생 엉망된 어떤 여자 때문에 술 처먹고 엉망으로 살지 몰라요, 나.
나 그렇게 사는 거 보고 싶어요?
혜주 : ......
현규 : 쭉 나 때문에 마음 아플 거 알지만,
아픈 거 겁나서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하는 거 아니면, 하지 말라구요.
날 가장 사랑하는 그 이상한 방법, 내가 싫어요. 내가 싫은 거, 하고 싶어요?
혜주 : ......
#.27 씬. 회사 옥상.(낮)
수영, 진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수영 : 내 동생놈이 무례하게 구는 거 미안해요.
진아 : 그게 왜 아저씨가 미안해하실 일이예요?
수영 : 내 동생 놈이니까.
진아 : 정말 희한한 성격이세요. 저 그런 일 일일이 마음에 담아두고 살면 밤에 다리 뻗고 못자거든요.
수영 : 하여간 희한한 성격이야. 담대한 건지, 그냥 깡만 좋은 건지.
진아 : 존경스러우시죠?
수영 : (웃으며) 그쪽도 나못지 않은 자뻑이거든요.
그러는데, 웃고 있는 진아의 얼굴 위로.
민준E : 진아야?
수영, 진아 돌아보는, 민준 서있는. 난감한 수영과 진아.
민준 다가오는.
진아 : 너 정말 질리게 왜 이러니?
민준 : 그날은 내가 흥분해서 그냥 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다.
너 나 때문에 상처 받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저런 늙다리 아저씨랑 엮인 거 같은데.
진아 : 말 함부로 하지 마.
민준 : (수영 앞으로 다가서며) 연세도 웬만하신 분이 이러시면 안 되죠?
진아 : 너 정말 이럴 거야?
민준 : 진아 쟤, 저 정말 많이 사랑했거든요.
그래서 저 나름으론 상처 좀 치료해보겠다고 아저씨랑 그렇게 된 거 같은데.
아저씨? 힘 있고, 돈 좀 있다고 청소하는 불쌍한 애 이렇게 데리고 노시면 정말 안 되거든요.
진아 : (수영 밀어내면서) 가세요, 아저씨. 저런 쓰레기 같은 말 듣고 계실 거 없어요. 가세요, 네?
수영 : .....
민준 : 아주머니는 아세요? 아저씨가 밖에서 이러고 다니는 거?
가정 깰 자신은 있으시면서 이러시는 거냐구요?
수영 : 나, 아내 없는 사람입니다.
민준 : (벙하고)
수영 : 내가 오진아씨 데리고 노는 거 아니라고 하면 다신 안 나타날 겁니까?
민준 : 그, 그럼 뭡니까? 어린 여자 애랑 도대체 뭘 하시는 거냐구요?
수영 : .....
진아 : (수영 밀어내며) 더 상대하지 마시고 제발 가세요, 아저씨.
민준 : 청소하는 어린 여자애랑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거냐구요?
수영 : ......
진아 : 제발요, 제발 좀 가세요, 네.
수영, 진아에게 떠밀려 뒤돌아서 걸어가는데.
민준 : 그런 것도 아니면, 이러지 말아야지.
진아 : (민준의 뺨을 갈기는)
수영 : (돌아보는)
진아 : 제발 그냥 좀 가세요.
수영 : (안타깝게 보다가 돌아서서 걸어가는)
진아 : (민준에게) 너 같은 새끼하곤 다른 사람이니까 제발 귀찮게 하지 마.
민준 : 봤잖아? 너. 저 인간 아무 소리 못하는 거?
진아 : (톤 높여서) 그게 뭐?
걸어가는 수영의 얼굴 위로.
진아E : 네가 계속 이렇게 귀찮게 굴면 저 아저씨 나 안 만나줄지도 모른단 말이야.
너 내 인생 또 망치고 싶어?
#.28 씬. 수영의 사무실.(낮)
수영, 들어오는.
수영 : (괴로운 심정으로 서있는)
#.29 씬. 강석의 사무실.(낮)
강석, 책상 앞에 앉아있고, 서있는 진호.
진호 : 윤태호씨랑, 이재섭씨랑 약속 잡아놨습니다.
강석 : (끄덕이고)
진호 : 그리고.....
강석 : (보면)
진호 : 명성 세 째 아들이 국내로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강석 : 마카오에서 뒹굴고 있는 거 아니었나?
진호 : 들어온 거 같습니다.
강석 : 일은 깨끗이 마무리 짓고 들어온 거겠지?
진호 : 네, 그렇긴 한데.
강석 : 그렇긴 한데?
진호 : 일을 봐주던 마르코란 놈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강석 : ......
진호 : 그 놈을 통해서 뭔가 눈치를 챈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강석 : 이미 끝난 게임이다. 신경 쓰지 마라.
진호 : 알겠습니다. (인사하고 나가는)
강석 : (핸드폰 꺼내서 버튼 누르는) 나, 지금 퇴근 할 거니까 데리러 갈게요.
단아E : 저 혼자 갈게요.
강석 : 왜요? 어젯밤에 입맞춘 놈과 마주하는 게 거북합니까?
단아E : 네. (전화 끊기는)
강석 : (핸드폰을 바라보는)
#.30 씬. 학교 교정.(낮)
단아, 걸어오는, 강석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단아 : (다가와서) 말 참 안 듣네요.
강석 : 그쪽은 언제 내 말 들었습니까?
단아 : 말 안들은 기억 없는데요.
강석 : 그런가. 하긴 뭐 딱히 반항이라고 할 건 없는데.
왜 그러지, 난 이 여자가 내 말 무지 안 듣는다는 기분이 드는 게. (차 문 열어주는)
단아 : (올라타는)
강석 : (운전석에 올라타고) 직설신공의 달인인 거 압니까?
단아 : (보면)
강석 : 입맞춘 놈과 마주하는 게 거북하냐고 묻는데, 네, 그래버리면 맥 빠지는 거 알아요?
단아 : 몰라요.
강석 : 저봐, 저봐, 직설신공, 진짜 내공 하난 알아드리겠습니다. 청학동에서 무술 수련도 하고 내려왔죠?
단아 : 수련이 부족했어요.
강석 : (보면)
단아 : 지금 받아칠 말이 생각나지 않거든요.
강석 : (큰 소리로 웃는)
#.31 씬. 방송국 사무실.(낮)
주정, 일하고 있는데. 병도, 다가오는. 자료 잔뜩 들고서.
병도 : 찾아다녀야 하는 종가가 대체 몇 집인지 모르겠다.
국장 다가오는.
국장 : 잘들 돼 가나?
주정 : 뭐 빠지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국장 : 니는 여자가, 니가 빠질 기 뭐가 있는데? 야, 구정 특집으로 내보낼 수 있겠나?
주정 : 국장님.
병도 : 그건 좀 곤란하죠. 국장님. 붕어빵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무슨 다큐를 한 달 만에 만들어내라고 하세요?
국장 : 구정 특집으로 내보내모 딱 좋겠는데.
주정 : 저 못하겠다고 뻗는 거 보고 싶으세요?
국장 : 하여간 쟈는 성질머리도 진짜 몬때 처묵었어. (가버리는)
병도 : 난 진짜 선배 그 깡이 무지 부럽다. 사회생활 선배처럼 하면 무서울 거 없는데.
주정 : 잘라봐라 하는 정신 상태로 버티면 무서운 거 없는 법이다.
전화벨 울리고.
병도 : 네? 네, 맞습니다. 하주정씨요?
주정 : (보면)
병도 : 잠깐만 기다리세요. 선배?
주정 : 누군데? 방송국 전화로 날 찾아?
병도 : 몰라.
주정 : 넌 아무 전화나 다 바꿔 주냐? (하면서 받는)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제가 하주정인데요. (멍하니 굳어지는)
#.32 씬. 커피숍.(낮)
주정, 들어와서 누군가를 찾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경섭.
주정 : (다가오는)
경섭 : 놀랬지?
주정 : .....
경섭 : 그대로구나, 주정이 넌. 우리 악수 한번 해도 되지? (손 내밀면)
주정 : (앉아버리는)
경섭 :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앉는) 많이 놀랜 거 같다.
주정 : 우리 만날 일 없는 사람들 아닌가?
경섭 : 18년 만이다. 우리.
주정 : .....
경섭 : 어떻게 살았냐고도 안 물어?
주정 : 우리 죽어서도 만나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이잖아?
경섭 : 넌 내가 너 버리고 떠난 거 같니?
주정 : (보는) 아니면?
경섭 : .....
주정 : .....
#.33 씬. 커피숍 앞.(낮)
주정, 나오는, 경섭 따라 나와 주정의 팔을 잡는.
주정 : (보는) 그런 변명하자구 18년 만에 나타난 거야?
경섭 : 보고 싶었다.
주정 : .....
경섭 : 18년은 참았는데, 더는 못 참아져서 왔어.
주정 : 그렇게 못 참을 거였으면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지.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말 하려고 나왔던 거야. 다시는 연락하지 마. (걸어가는)
경섭 : 그때 나 너 버린 거 아니야.
주정 : (잠시 멈추지만, 걸어가 버리는)
#.34 씬. 강석의 집 거실.(밤)
강석, 단아 들어오는. 영자 소리 지르고 있는.
영자 : (일어서서 앞에 서있는 혜주에게 소리 지르는) 너 지금 장난해? 엄마, 아버지 갖고 장난하냐구?
천갑 : (앉아서) 이 자식이 왜 또 골질이야?
영자 : 네가 먼저 결혼하겠다고 했잖아?
혜주 : 못하겠어요.
천갑 : 이 자식이, 정말.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거야. 잔말 말고 해.
혜주 : 죄송해요. (2층으로 움직이는)
영자 : 너 이리 못 와?
강석 : (다가서며) 그냥 두세요.
영자 : 그냥 두긴 뭘 그냥 둬. 약속 다 잡아놨는데.
강석 : 하기 싫다잖아요.
천갑 :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
강석 : 혜주는 그렇게 살게 해주세요.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면서 사는 건 우리만 하자구요, 아버지.
천갑 : .....
강석 : (영자에게) 하교수님 그냥 가시라고 할까요?
영자 : (단아를 보는)
#.35 씬. 천갑의 방.(밤)
천갑, 강석 끌고 들어오는.
천갑 : 하교수 앞에서 그런 말은 뭐 하러 해?
강석 : (보면)
천갑 :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면서 사는 건 우리만 하자느니 하는 말 말이야.
그런 말 새겨뒀다가 나중에 저 인간들도 갈등하는구나 하고 딴 생각 품으면 어쩌려구?
저 아가씨 네가 데려오고 데려다주고 하니까 혹시 자기한테 맘에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 할지도 모르잖냐?
그거 빌미로 나중에 너한테 엉겨 붙으면 어쩌려구 그래? 그럼 너 귀찮아진다.
강석 : 올라갈게요.
천갑 : 넌 네 엄마처럼 순진하고 단순한 여자랑 결혼해.
강석 : (보면)
천갑 : 우리 집안엔 그런 여자가 딱이야. 네 엄마 봐라.
혜주 때문에 열 받아 있으면서도 내일 여편네들 모임에 나가서
야코 죽이고 싶은 욕심에 하교수랑 공부하는 거 보라구. 난 그래서 네 엄마가 진짜 귀엽다.
강석 : (미소 짓고 나가는)
천갑 : 저 아가씨가 우리 강석이한테 딴 생각 품으면 안 되는데.....
#.36 씬. 강석의 집 2층 거실.(밤)
강석, 올라오는. 혜주의 방 앞에서 노크하는.
혜주 : (문 여는)
강석 : 어떻게 마음 바꾼 거니? 어떻게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했냐구?
혜주 : .....
강석 : 혹시, 그 친구 만난 거니? 그 친구가 너한테 뭐라고 한 거야?
혜주 : 하지 말래. 자기 때문에 막 사는 거 보고 싶지 않대.
그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 하고 싶지 않아. 그 뿐이야. (방문 닫는)
강석 : ......
#.37 씬. 길.(밤)
운전하는 강석, 그 옆에 앉은 단아.
강석 : 정현규, 그 놈. 우리 혜주한테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인정해야겠어요.
단아 : 현규가 설득한 건가요?
강석 : 그 자식, 설득 같은 거 하지 않았을 겁니다.
단아 : 그럼?
강석 : 그냥 툭툭 지가 하고 싶은 말만 했겠죠. 우리 혜주한테는 제대로 먹히지만.
단아 : 고맙네요, 현규.
강석 : 전혀 마음에 없는 건 아니죠? 그 어린놈이?
단아 : .....
강석 : 그 자식, 같은 사내자식으로 볼 때도 괜찮은 놈이다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럼 여자들이 볼 때는 더 할 거구.
단아 : 그 아이.....남자로 본 적 없어요.
강석 : 그게 가능한가? 사랑하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놈을 남자로 보지 않는다는 게.
단아 : 그 사람이 아니란 걸 아니까요.
강석 : 그 사람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남자로 안 보이는 겁니까?
단아 : ......
강석 : ......
#.38 씬. 병실.(밤)
태영, 치킨 봉투 들고 들어오는데. 말순, 엠피쓰리 귀에 꽂고 있는.
장기 그 앞에 서있는.
장기 : 죽이죠? 음악들?
말순 : (이어폰 빼면서) 그래, 선곡은 이렇게 해야 하는 거지. 음악 죽인다. 너 밖에 없다.
태영 : (아니꼬운 눈길로 보는) 뭐하냐?
말순 : 어 왔어. 이경장이 엠피쓰리에 노래들 담아다줬어.
태영 : 내가 넣어놓은 건.
장기 : 어, 그건 지웠는데.
태영 : 댁이 뭔데, 내가 넣어놓은 걸 맘대로 지우고 난리야?
장기 : 선배가 노래 좀 넣어오라고 해서, 있던 건 듣기 싫은 건가 해서.
말순 : 야, 너 그거 지웠어? 그냥 새노래 좀 담아오라고 했지, 있던 거 지워버리라고 누가 그랬어?
장기 : 왜 성질은 내고 그러세요?
말순 :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그러냐구?
장기 : 진짜 뭘 해줘도 난리야. (확 나가버리는)
말순 : 야, 야, 다시 그 노래들 찾아서 담아와.
태영 : (다가서며) 일부러 그러는 거지?
말순 : 뭐가?
태영 : 나 기분 나쁠까봐, 일부러 오버하고 그러는 거잖냐구?
말순 : 나 요즘 날아라 로보트야, 그 노래 안 들으면 잠이 안 온단 말이야.
태영 : (씩 웃으며) 치킨 사왔는데.
말순 : 양념으로 사오지.
태영 : 후라이드로 사왔는데.
말순 : 난 양념이 더 좋은데.
태영 : (버럭) 그럼 주문을 해서 먹든가.
#.39 씬. 병원 복도. (밤)
태영, 치킨 봉투 들고 걸어오는. 말순, 엠피쓰리 듣고 앉아있는.
태영 : 야, 양념 사왔다.
말순 : (귀에서 이어폰 빼면서) 후라이드 다 먹었는데, 그걸 왜 또 사와?
태영 : 양념이 더 좋다면서?
말순 : 참 인간 그런대로 쓸만한데, 인간미도 있고, 의리도 있고, 간....
태영 : 너 또 간통만 안했으면 그 말하려고 했지?
말순 : 아, 아니야. 간신배 노릇은 절대 안할 인간이다 그 말 하려고 했어.
태영 : 웃기지 마. 너 분명히 간통이라고 하려고.....
하는데, 울리는 말순의 핸드폰.
말순 : (전화 받고) 네가 웬일이냐? 큰누나한테 전화를 다 하구?
태영 : (혼잣말로) 분명히 간통이라고 하려고 했어, 저 큰 누나.
말순 : (벌떡 일어서며) 야, 이 미친놈아?
태영 : (놀라서 보는) 얘는 왜 식구들 전화만 받으면 이렇게 벌떡 벌떡 일어선다니.
말순 : 무슨 학교를 또 들어가? 한번 들어갔으면 졸업을 해야 할 거 아냐? 그 말 한 두 번 해?
그러니까 네 적성 잘 따져서 전공 정하라고 했어? 안했어?
이제 와서 전공이 안 맞으면 어떡할 건데? 또 시험 쳐서 들어가면, 그 학비 누가 대는데?
너 정말 큰 누나 죽는 꼴 볼래. 몰라, 몰라, 이 미친놈아. (핸드폰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는)
태영 : 야, 야, 말순아? 너 정말 왜 그러니? (하면서 뛰어가는)
#.40 씬. 병원 복도.(밤)
말순, 힘없이 앉아있으면. 태영, 핸드폰 들고 걸어오는.
태영 : 성질 좀 죽이면서 살아라. 하필이면 물웅덩이에 빠졌다. 멀쩡한 맨바닥 놔두고 하필이면 물웅덩이냐?
앞으로 들이받아도 미등 나가는 나나 너나 재수없기는 매한가지다.
잘했네, 잘했어, 돈도 쥐뿔 없는 게, 휴대폰 새로 하나 장만 해야겠다.
말순 : 잘됐어. 그럼 웬수같은 식구들 전화 안받아도 되잖아.
태영 : (옆에 앉으며) 또 무슨 일이냐?
말순 : 내 막내 동생 놈. 우리 엄마, 아빠한테 하나 밖에 없는 귀하디 귀한 아들놈이 또 대학을 들어가시겠단다.
태영 : 또 라니?
말순 : 스물여덟이나 처먹은 놈이 매일 전공이 적성에 안 맞네 뭐네 하면서
벌써 네 번째 시험 쳐서 대학 옮겨 다니고 있다.
태영 : 머리는 좋은가보다.
말순 : (보면)
태영 : 난 삼수해서 겨우 삼류 대학 들어갔는데.
말순 : 그래, 머리는 좋지, 너무 좋아서 탈이지. 그때마다 지 큰누나 골을 빼먹어서 문제지.
태영 : 말순아?
말순 : 왜?
태영 : 양념 치킨 먹자. 내가 보기에 넌 기운 빠지면 큰일 날 팔자다.
말순 : 친구야?
태영 : 응?
말순 : 사는 게, 사는 게 말이다. 왜 이렇게 만만치 않은 걸까?
태영 : 넌 그릇이 좀 큰가보다.
말순 : (보고)
태영 : 난 내가 사고 치면서 그 뒷감당 못해 허덕이며 사는 놈이거든.
근데 넌 스스로는 절대 사고 안치는데, 남들이 친 사고 때문에 허덕이며 살잖냐?
네가 감당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거야.
말순 : 그거 칭찬이냐?
태영 : 아쉽다.
말순 : 뭐가?
태영 : 네가 여자로 보이면 한번 매달려볼 텐데.
그럼 난 사고 치고, 넌 내 뒷감당 해주고, 천생연분이 따로 없는데.
말순 : 아주 악담을 해라, 악담을.
#.41 씬. 마루.(밤)
주정, 술에 취해 들어오는. 삼월, 단아 놀라서.
삼월 : 아니, 또 마신 거야?
주정 : (하옹의 방으로 들어가는)
삼월 : 술 마셨으면 씻고 자지 않구서.
만기, 방에서 나오는.
만기 : 주정이 놈 또 술 마시고 들어왔나?
삼월 : 요즘 한동안 안 먹더니 오늘은 좀 마신 거 같네요. 아버님 방으로 들어갔어요.
단아 : (하옹의 방 쪽을 보는)
#.42 씬. 하옹의 방.(밤)
주정, 울고 있는. 만기 들어오는.
만기 : 술 마셨으면 씻고 자지, 왜 그러고 있냐?
주정 : (우는) 오빠?
만기 : (앉는) 왜 그러냐?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거냐?
주정 : 오빠? 오빠?
만기 : ......
단아, 문 옆에 서서 보고 있는.
주정 : 이 집안이 사람 인생을 얼마나 망치는지 아세요?
만기 : ......
주정 : 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구요. 이렇게 술주정뱅이로 살고 싶지 않았다구요, 오빠.
만기 : .....
주정 : 그냥 좀 내버려두지 왜 그러셨어요? 그냥 너 좋은 사람하고 살아봐라, 그러지 왜 그러셨냐구요?
이게 뭐예요? 이게 뭐냐구요? 저 아버지랑 오빠 죽어도 용서 못해요. 아니 안 해요.
단아 : .....(애잔한 느낌으로 보고 있는)
#.43 씬. 주정의 방.(밤)
주정, 술에 취해 누워있는,
단아, 문 앞에서 삼월에게 젖은 수건 받고 있는.
단아 : 제가 할게요, 가서 주무세요, 할머니.
삼월 : 이젠 그만 잊을 때도 됐구만.
단아 : 할머닌 아세요? 고모 할머님이 왜 저러시는지?
삼월 : 가서 잔다. (문 닫아주는)
단아 : (주정 옆으로 다가와서 얼굴을 닦아주는)
주정 : (눈물을 흘리고 있는)
단아 : 할머니?
주정 : 이 집안 여자들 팔자는 왜 이렇다니 단아야?
단아 : .....
주정 : 왜 다들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냐구?
단아 : .....
주정 : 가문이 뭐구, 집안이 뭐냔 말이야?
고등학교 겨우 졸업한 너 명문가에 시집보내겠다고 하다가 이 꼴로 만들어놓고.
단아 : 전요, 할머니. 아무도 원망 안 해요. 어른들이 정해놓으셔서 한 결혼이지만,
그래도 그 사람을 못 만났던 것보단 낫다, 그렇게 생각해요.
주정 : 난 있지, 단아야. 차라리 안 만난 거였으면, 그럼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다, 단아야. (눈을 감고 돌아눕는)
단아 : (그런 주정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주정 : (숨죽여 우는)
F.O
#.44 씬. 학교 전경.(낮)
#.45 씬. 남교수 새로운 사무실.(낮)
단아, 남교수, 현규 짐 나르고 있는.
남교수 : 현규 너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니? 우리 둘이서 고생 직살나게 했을 텐데.
현규 : 힘센 어린놈이 이래서 좋은 거 아니겠어요?
남교수 : 누가 아니래니. 좋지? 하교수? 내가 이 방 얻어내려고 학장님께 얼마나 아부를 떨었는지 아니?
단아 : 좋아요.
남교수 : 그럼 둘이서 정리 좀 하고 있어. 나 학장님 나오셨을 때 가서 아부 좀 더 떨고 올 테니까.
단아 : 학장님 나오셨어요?
남교수 : 응.
단아 : 학장님, 중국에 세미나 가시지 않으셨어요? 어제?
남교수 : 그런가, 난 나오신 걸로 아는데, 가보고 올게. (얼른 나가는)
현규 : 나 밀어주시느라 거짓말 하는 거 너무 표 내신다.
단아 : (보면)
현규 : 우리 둘만 있게 해주고 싶으신 눈물겨운 배려 안 느껴져요?
단아 : .....
시간 경과.
얼추 정리가 좀 된 느낌으로.
단아, 앉아있고, 현규, 커피를 가져다주는.
단아 : (받고)
현규 : (앉는)
단아 : 고맙다.
현규 : 그건 커피 받을 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여간 타이밍도 못 맞춰요.
단아 : 혜주에게 해준 일.
현규 : .....
단아 : 혜주 오빠도 고맙게 생각해.
현규 : 고마워 해달라고 한 거 아니에요. 뭐 딱히 한 일도 없지만.
단아 : 조금만 곁을 내주면 안 되겠니? 혜주한테?
현규 : 거긴 왜 그거 안 하는데요?
단아 : .....
현규 : 누군가 날 짝사랑하고 있는 게 가슴 아프면, 그거 알면 거기도 그래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단아 : 미안하다. 왜 안 되는지는 너도 알잖아.
현규 : 혜주, 걔가 그러대요.
단아 : ....
현규 :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거다. 그래서 결혼하려고 했다구.
단아 : .....
현규 : 난 걔만큼 착한 놈이 아닌가 봐요, 그게 안 되는 거 보면.
단아 : (보는데, 울리는 핸드폰) 네?
강석E : 학굡니까?
단아 : 네.
강석E : 30분 정도 걸릴 겁니다, 기다려요. (끊기는)
현규 : 그 사람이에요?
단아 : 응.
현규 : 정말.....그 사람한테 다른 마음 있는 거예요?
단아 : 응.
현규 : 그 사람한테도 경고 했지만, 두 사람 쇼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단아 : (보면)
현규 : 거기까진 용서하겠다구요. 날 사랑하지 않는 거.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거.
그치만 내 사랑이 부담스러워서 쇼한 거면 거기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날 가지고 논 거니까. (일어나서 나가는)
단아 : ......
#.46 씬. 학교 교정.(낮)
단아, 강석 차 옆에 서있는.
단아 : 오늘 과외 없잖아요?
강석 : 친구 놈들 모임 있습니다. 연습한 실력 발휘할 기회 놓치면 안 되잖아요.
단아 : 저 아직 발휘할 실력 없는데요.
강석 : 그럼 다른 데 신경 좀 더 씁시다.
#.47 씬. 의상실.(낮)
단아, 멍하니 서있으면. 여자, 어깨가 드러난 드레스 보여주고 있는.
단아 : (강석을 돌아보는)
강석 : 그냥은 섹시해보이지 않으니까 의상에라도 신경 써야 할 거 아닙니까?
단아 : (돌아서서 나가려고 하면)
강석 : 선물 이런 식으로 거절하는 거 무례한 겁니다.
단아 : (나가려고 하는데)
강석 : (더 힘껏 잡으면서) 그냥 좀 입어줘요.
송년 모임인데, 저 정도는 입어줘야 분위기 띄울 거 아니냐구요?
단아 : (돌아서는데)
강석 : (더 거칠게 잡으면서) 어깨 좀 파졌다고 그러는 거예요? 저것보다 더 야한 옷 많아요.
당신 촌스러운 건 아는데, 내 기분 좀 맞춰주면 안되겠어요?
단아 : 저 저런 옷 못 입어요.
강석 : 요조숙녀신 건 아는데....
단아 : (자르며) 어깨에 흉이 있어요.
강석 : ......
#.48 씬. 의상실 앞.(낮)
차 안에 앉아있는 단아와 강석.
단아 : 10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어깨에 큰 흉이 있어요.
강석 : ......(그 위로, 영자의 말 스치는)
영자E : (16회) 그날 공항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남편은 그 자리에서 죽고,
하교수는 거의 죽다가 살아났대.
강석 : 지금은 어떤 겁니까?
단아 : (보면)
강석 : 다 나았냐구요?
단아 : 가끔 도질 때가 있지만, 크게 문제는 없어요.
강석 : 다리에도 문제 있습니까?
단아 : (보면)
강석 : 예전에 축구 하던 날, 버스 정류장 앞에서 만난 적 있잖아요? 그때 갑자기 주저앉던데.
단아 : 있어요, 다리에도 보기 흉한 흉터가.
강석 : 미안합니다.
단아 : (보면)
강석 : 그런 말 하게 만들어서. (차 출발 시키는)
#.49 씬. 재즈바.
강석, 단아 들어오는. 친구1 다가오면서.
친구1 : 애인 생기더니 자주 본다.
강석 : (웃으며) 벌금 안 내니까 겁날 거 없잖냐?
그 위로.
동주E : 이강석?
강석 : (돌아보고, 반색하는) 동주형?
동주 : (와인잔 들고 씩 웃고 있는)
강석 : (다가서는, 동주와 끌어안는) 웬일예요? 동주형? 런던에 있는 줄 알았는데.
동주 : 잠시 다니러 온 거야.
강석 : 그런데 나한테 전화도 안했어요?
동주 : 어제 왔어. 오늘쯤 전화 할까 했는데,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상현이 자식을 만났잖냐.
오늘 너 여기 올 거라고 해서, 그냥 와봤다. (뒤에 서있는 단아 보고)
자식, 인생관이 바뀐 거냐? 파트너 동반 모임에 다 나타나구?
강석 : (단아 보고) 이리 와요.
단아 : (다가오는)
강석 : 여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배 형이에요.
동주 : (악수 청하면서) 반갑습니다. 신동주라고 합니다.
단아 : (인사하며) 하단아입니다.
동주 : (자기가 내민 손 보면서 씩 웃는)
친구2 저번에 악수 청했다가 묘하다 분위기라고 말했던. 옆으로 다가서며 동주의 귀에다가.
친구2 : 나한테도 그랬어요, 형, 분위기 묘하죠?
동주 : (웃으며, 단아를 보는)
#.50 씬. 수영의 사무실.(밤)
수영, 일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
수영 : 네.
진아 : (문 열고) 들어가도 돼요?
수영 : 네, 들어와요.
진아 : (들어오는)
수영 : 아직 퇴근 안 했어요?
진아 : 늦게까지 일하시나 봐요?
수영 : 네, 일이 좀 남아서.
진아 : (뒤에 감추고 있던 봉투 책상 위에 올려놓는)
수영 : 이게 뭐예요?
진아 : (도시락을 꺼내는) 늦게까지 일하시면 출출하시잖아요.
수영 : 진아씨가 무슨 돈이 있다구?
진아 : 지금 없이 산다고 무시하시는 거예요?
수영 : (웃는)
문 벌컥 열고 들어오는 태영.
태영 : 형? (두 사람을 보는)
진아 : 심부름 맞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수영 : 아, 네, 고마워요.
진아 : 그럼. (인사하고 나가는)
태영 : 쟤한테 이런 거 사오라고 심부름 시켰어?
수영 : 얘 쟤 하지 말라니까.
태영 : 무슨 청소하는 애, 분한테 이런 심부름까지 시켜?
그리고 형, 이런 거 안 먹잖아? 집 밥 외엔 안 먹는 사람이 웬일이야?
수영 : 점심 못 먹어서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박비서도 퇴근했구 해서.
태영 : 쟤 이렇게 늦게, 아니 저 분은 이렇게 늦게까지 퇴근도 안하고 청소하나?
수영 : 왜 들어온 거냐?
태영 : (서류 내밀면서) 이거 다 정리 했으니까 내일 이강석 그 자식한테 형이 일찍 결재 좀 받아줘.
그래야 바로 대금 지불할 수 있으니까.
수영 : (서류 받으면서) 그 자식이란 말도 좀 삼가구.
태영 : 형 앞인데 어때? 이강석 그 자식은 진짜 팔자 하난 늘어진 놈이야.
우린 이렇게 야근까지 하면서 기를 쓰는데, 저는 결재 칸에 사인이나 하다가, 제 때 제 때 퇴근 하구.
#.51 씬. 재즈바.
동주 와인을 마시면서 옆에 서있는 강석을 보고 있는.
강석, 조금 떨어진 곳에서 와인을 마시며 서있는 단아만 바라보고 있는.
동주 : (묘하게 웃으면서) 너 같은 놈도 여자한테 빠질 줄 아냐?
강석 : (돌아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형은. 그런 거 아니에요.
동주 : 그런 거 아니면?
강석 : .....
동주 : 아니면 뭐냐구?
강석 : 모르겠어요.
동주 : (더욱 묘한 눈길로 보는) 이강석이 모르겠다고 할 때도 있구. 안 본 사이 많이 변했다, 너.
친구1, 무대에 올라가는.
친구1 : 자 주목 좀 해주시죠.
그동안은 저희가 파트너 분들의 장기 자랑에만 너무 심취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오늘은 송년 모임이기도 하니 특별한 이벤트로 한번 가볼까 합니다.
듀엣 장기 자랑. 새롭지 않습니까?
사람들 박수 치며 웃는.
친구1 : 오늘의 심사위원은 우리의 영원한 보스, 우리의 영원한 큰 형님. 신동주 형.
사람들 박수치면.
동주 : (한 손 들고 답례 하며 웃는)
파트너들끼리의 장기 자랑. 춤추는 커플. 노래하는 커플 등등.
친구1 : 놀라운 파트너십 무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살다 살다 처음 보게 되는 이벤트. 이강석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오겠습니다.
모두, 박수 치고 좋아라 난리가 났다.
강석 : (웃으며 단아의 손을 잡고, 무대로 올라가는)
동주 : (신기한 느낌으로 보면서, 옆에 있는 친구2에게) 강석이 자식, 저런 거 안 하잖아?
친구2 : (웃으며) 기대하세요, 형. 강석이 파트너 노래 실력 장난 아니에요.
동주 : (의아하게 무대를 보는)
강석과 단아, 반주가 나오자, 강석은 웃지만, 단아는 사뭇 긴장해 있는.
강석 : (단아의 귀에 대고) 연습한대로만 합시다.
단아 : .....
동주 : (그런 단아와 강석을 유심히 바라보는)
강석과 단아, 댄서의 순정을 안무까지 맞춰서 부르는.
사람들 박수 치고, 남자들 배를 잡고 웃는 분위기로.
친구1 : (동주와 친구2 옆으로 다가서며) 강석이 자식 미친 거 아니냐?
친구2 : 곱게 미친 거 같진 않다.
동주 : (흐뭇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깊은 시선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강석과 단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단아 : (무안하지만, 강석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부르고 있는)
강석 : (그런 단아를 웃으며 바라보면서 노래하는)
시간 경과.
단아, 선물 상자를 들고 서있고, 그 옆에 강석 서있고.
동주 :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사람 많이 놀래킨다?
강석 : (웃으며) 제가 물욕이 심하잖아요?
동주 : 데낄라 때문에 그 주접을 떨었다구?
강석 : 박애정신도 좀 발휘했구요. 저같이 까칠한 놈 친구라고 안 잊어버리고 매번 연락하는 저 놈들
기분 좀 맞춰줄까 싶어서, 주접 좀 심하게 떨었어요.
동주 : (강석 옆으로 다가서서 귓말로) 저 여자 없었어도 그런 주접을 떨고 싶었을까?
강석 : ......
동주 : (단아 옆으로 다가서는) 저 곧 출국해야 하는데, 그 전에 식사 한번 같이 하죠?
단아 : (강석을 보는)
강석 : 이 친구가 너무 순종적이거든요. 뭐든 내가 하자고 해야 하는 타입이라서요.
동주 : (웃는)
강석 : (단아에게) 시간 아무 때나 괜찮지?
단아 : .....
강석 : 제가 아무 때나 만나자고 하면 뛰어나오는 친구거든요.
동주 : (그런 강석을 의미 있는 눈길로 보면서 웃는)
#.52 씬. 길.(밤)
운전하는 강석, 단아, 데낄라 상자 들고 앉아있는.
강석 : 축하해요, 2연패.
단아 : 저도 맘먹고 하면 잘해요.
강석 : 지금 설마, 잘해서 받은 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단아 : 제일 웃겨서 받은 거 아니에요?
강석 : 알긴 아네. 웃겨서 2연패 한 게 무안하다는 생각은 안합니까?
단아 : 안 하는데요.
강석 : 정신력도 아주 강해요.
단아 : 그냥 뻔뻔하다고 해도 되요.
강석 : (웃다가 차 세우는)
단아 : (의아하게 보는)
강석 : 다르게도 살 수 있다는 생각 안 해봤습니까?
단아 : .....
강석 : 죽어있는 것처럼, 매일 빨리 늙어서 할머니나 되라, 그러고 사는 게 아니라,
다른 걸 꿈꾸면서 산적은 없냐구요.
단아 : 없어요.
강석 : 아니잖아요?
단아 : (보면)
강석 : 나랑 있을 때 가끔은 그러지 않나?
단아 : (시선 피하면서) 그런 적 없어요.
강석 : 언제까지 죽은 사람 그림자로 살아갈 겁니까?
단아 : .....
강석 : 놀라지 않는군. 죽었다고 말 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단아 : 추운데 있다고 하는데, 더 많은 거 묻지 않아서 짐작하고 있겠구나 했어요.
강석 : 초례청에 놓이는 기러기처럼 살아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거 아닙니까?
한번 짝을 잃으면 다시는 짝을 찾지 않는다는 기러기처럼?
단아 : ....
강석 : 근데 그거 고집 아닌가? 사랑에 대한 고집이고, 아집?
사랑해야 하니까, 한번 사랑했으니까 다른 누군가를 다시 사랑한다는 게 배신 같아서 부려보는 아집?
단아 : 내릴게요. (차 문 열고 내리는)
강석 : (차에서 내려 단아를 쫓아가 어깨를 잡는) 그런 거잖아? 당신?
단아 : ....
강석 : 내가 정곡을 찌르니까 도망가는 거구?
단아 : 왜 나에 대해서 아는 척 하죠? 우리 그러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그게 이 게임의 룰 아니었어요?
강석 : 당신한테는 그냥 게임이기만 한 건가?
단아 : 아니면요?
강석 : 내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면?
단아 : ......
그렇게 마주 보고 서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