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의 작은 고구마를 유리그릇에 담아 물을 적게 하여 반 찜, 반 삶은 식으로 여린 불 위에 놓아 한시간만에 나온 걸 먹어보니 맛이 달다. 어제 밤 냉동실에 넣어둔 얼린 물과 냉장실의 국순당 생 막걸리 두통, 안주로 여러 외국에서 갖고 온 말린 블루베리, 크란 베리, 구운 바나나, 마카데미아를 배낭에 넣었다. 갈아입을 상의 한 벌, 선글라스, 사탕 약간, 얼굴은 파라솔크림을 바르고 반바지에 모자를 쓰고 발걸음 가볍게 7시 반 집을 나선다.
마침 일요일 아침에는 잘 오지도 않는 마을버스를 타고 서초구청에 도착을 하니까 주말 청계산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교통카드로 환승이 되지 않으나 요금은 일금 오백원. 8시 정시에 도착한 원터골 느티나무 아래에는 학생 세 명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늦게 온 학생은 제일 어린 학생, 복장도 부실하여 운동화 바람, 선배들로부터 주의를 받고, 이것도 교육의 연장이다. 오늘 불참학생은 유럽여행으로, 교회에 가기 때문에, 또 한 학생은 어제 밤새도록 구토와 설사로 고생하여서 못 나왔다 한다.
서울시 보물인 미륵당을 구경 해본다. 그러나 굳게 잠겨진 문, 언젠가 문을 열고 청소할 때를 보았었는데 토속미가 가미된 부처님이었고, 당집 앞에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보이질 않은 작은 3층 석탑이 있다. 커다란 옥잠화 하나가 뒤뜰에 숨어 꽃을 피우고 있네. 이 때 한 학생이 벌에 쏘였다. 청계산 입구 쉼터에서 배낭의 응급조치함에서 호랑이연고를 꺼내어 바르게 하고 일회용 반창고를 붙였다. 학생들이 신기해하여 호랑이연고의 역사를 가르쳐주었지요. 홍콩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왕년에는 만병통치약으로 홍콩 인기 쇼핑 목록 중 하나, 개발한 여자 ? 는 아마 재벌이 되었고 홍콩이 중국에 넘어가기 전 지금은 호주로 이민하였다 한다.
숲길은 공기가 약간 눅눅하나 태풍 뒤끝에 온 비로 “쏴아” 하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계곡 너머 무덤가에는 인부 몇이 예초기로 벌초가 한창이라 학생들에게 “예초기가 무엇이지” 하니까 한 학생이 끝에 톱 같은 것이 달려 있어 풀을 자르는 것이라고. 사실은 강철 줄만 달려 있는데. 추석명절이 다가오니까 벌초를 하는 모양이다. 뉴스에도 이에 의한 사고가 적지 않게 보도된다. 오늘의 산행 코스는 일단 조용한 진달래능선을 오르기로 하고 주등산로에서 빠져 나와 우측으로 올라가다 첫 번 쉼터인 쏟아져 나오는 물이 풍부한 샘가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벌의 종류는 흔히 보이는 일벌, 말벌, 땅벌, 호박벌 등이 있고 이들 중 어떤 놈은 벌집을 공격해 꿀을 뺏는 놈, 곤충을 잡아먹는 육식 벌까지 다양하고, 나나니벌은 흙으로 집을 짓는다고. 그리고 벌에 쏘여 사망하는 경우는 vasoactive substance에 의한 shock와 anaphylaxis 있다. "땅벌 집을 보았느냐" 하고 물었더니 못 보았다고. 이들은 땅속에 몇 층짜리 아파트를 짓고 산다고 온갖 실력을 다 발휘하여 가르쳐 주었는데. 학생이 묻는다. "교수님도 벌에 쏘여 번 적이 있습니까? 암 있지, 어릴 때 마당 넓은 집이 나무담장으로 둘러 싸여 있었는데, 담장 버팀나무를 딛고 올라갔다 말벌한테 쏘여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다며 보여 주었지요. 십 여 년 전 동대문 병원의 윤교수가 신체감정을 한 예를 들었다. 젊은 남녀가 동네 뒷산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여자가 벌 떼의 공격을 받았는데, 남자가 얼른 동네에서 살충제분무기로 벌들을 죽이고 나니까 여자도 죽었다고 사인이 벌 독 때문인지 살충제 때문인지 구별이 안 되더라.
심은 나무들이 잘 자라서 숲이 우거진 언덕길을 오르면 여기부터가 진달래 능선, 진달래를 식재한 600미터의 길이고 지난 봄 4월에 화려하게 핀 꽃들을 보았지요. 원래 북한산 진달래 계곡이 유명하나 요즈음은 진달래능선과 깔딱 고개는 어디 던지 있는 능선과 고개이다. 쉬엄쉬엄 걷다가 나무그늘에 앉아 또 이야기판을 벌린다. 성묘 때 잘 생기는 사고나 질환은? 무덤이 양지바르고 습하지 않는 곳에 위치하니까 벌이 집을 지어 멋모르고 건드리면 땅벌들이 쏘고, 독사에 의한 교상 등, 아니면 유행성 출혈열이나 쯔쯔가무시까지 발생한다. 바로 이런 것이 산교육이지.
다음에 안내판이 있고 전망 좋은 곳으로 강남이 일견 조망되고 land mark를 표시해 두었다. 여기부터는 높낮이가 없는 걷기 좋은 길, 바람이 살랑 불어 더욱 좋다. 양옆으로 나무를 심어 버팀대를 해 놓았는데 이름을 알리는 표지가 없어 아직은 무슨 나무인지 알 수가 없다. 다시 바람골 쉼터에서 얼음물을 마시며 놀다가 등산객들이 많이 올라가는 옥녀봉 오르는 계단 길 아래 조용한 길을 택한다. 옥녀봉은 그 이름만큼 멋있는 봉우리는 아니다. 길은 태풍의 잔재로 나뭇잎들이 수북하게 떨어져 쌓여있고, 큰 나무가 뿌리 채 뽑혀 넘어져 있고 그 보다 작은 나무는 줄기가 꺾여 있다.
옥녀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마주치는 곳의 쉼터에서 전을 펼친다. 가져온 음식들은 화교인 정군은 송화단 몇 개를, 다른 학생들은 쇠고기 불고기, 돼지고기 수육, 육포와 오징어, 내가 가져간 안주와 과일 등. 먼저 아직도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고 나니까 누가 한산의 소곡주까지 페트병으로 한 병을 가져왔다. 그런데 먹다보니까 벌들이 장난 아니게 몰려 와서 안주와 술에 앉다가 정군의 얼굴에 앉으니 꼼짝도 못하고 날라 가기만 기다린다. 최 인호 소설의 “별들의 고향”이 아니라 “벌들의 고향”이다. 가까운 나무에 박새가 찾아 왔다. 손에 먹을 것을 얹어 놓고 한참을 먹기를 기다려 보아도 배가 부른지 나무에서 벌레만 쪼고 있다. 귀여운 말티즈를 데리고 온 부부가 있어 말을 붙인다. “몇 살이 되었어요?” “세살이예요” “나도 15년간 개를 키우다가 우리 곁을 떠난 지 2년이 지났어요.” 개들은 주인과 친밀도를 보고 감을 잡는다. “이리 와” 하니 나에게 와서 손을 핥는다. 털이 길어 여름나기가 힘들었겠네.
매봉 가는 천 여 개의 나무 계단 길을 포기하고, 좌측으로 돌아 산토끼 샘 쪽으로 하산을 결정하니까 학생들이 좋아한다. 샘에서 물을 한 모금씩 마시고 내려와서 7부 능선으로 해서
제1야영장과 팔각정으로 내려온다. 항상 물이 많이 흐르는 샘은 음용불가로 모처럼 세수를 해 본다. 학생들 보고 저 위의 쉼터를 한번 가보자. 내가 강의를 하고 싶은 곳인데. 천장은 유리로 덥혀 있어 비가와도 그만인 곳이다.
내려오는 길에는 노란 색의 원추리와 보라색의 비비추 꽃은 지고, 아직 가을꽃들은 피질 않았네. 이제부터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많아진다.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폭풍우가 분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미적대다가 온 사람들이다. 12시가 조금 넘어 하산완료, 오늘의 산행은 “청계산 쉼터 산행”이 맞다.
점심은 “정선 가는 길”에서 먹었다.
들어가니까 일하는 여자가 아는 체를 한다. 지난번 오셨을 때 저 자리에서 드시지 않았냐고. 산에서 벌써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먹었으니까 따로 안주는 시킬 필요 없고, 9천원 짜리 돌솥비빔밥 6개를 시켰다.
먼저 맥주 찬 한잔씩으로 건배를 하고, 지난번 마셔보지 못한 곤드레 막걸리 두통을 시켰다. 이 집은 반찬이 여러 가지이고 맛이 있다. 오늘은 오가피 장아찌까지, 전번에는 취나물 장아찌이었는데. 계란찜, 싱싱한 무 꽁치조림, 된장찌개 등등. 돌솥 밥을 먹을 때는 밥을 퍼 담고 물을 부어두면 누룽지로 또 먹을 수 있다. 나중에 모자라 빨간 뚜껑 25도짜리 소주 한 병까지도 추가. 만드레 막걸리는 황기를 넣었고 둘 다 국순당에서 제조로 맛이 깨끗하다.
양재역에서 하차, 차를 바꾸어 집에 도착하는 순간 갑자기 하늘이 검어 지며 “후두둑”하고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불암산 낙뢰사고로 십여명이 부상을 당하였다는 저녁 뉴스가 나왔다. 몇 년 전 송추 여성봉을 등산하다 의상능선에 벼락이 치는 것을 보고 걱정을 하였더니 용혈봉 오르는 쇠줄에 번개가 쳐서 여러 명이 죽거나 다친 기억이 난다 비록 짧은 산행, 긴 휴식이었으나 어떠랴! 학생들과 야외에서 가진 즐거운 시간인데.
첫댓글 학생들과도 재미있게 다닐수 있는 재주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