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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3. 대민(주일낮)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3-11) 대민성결교회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성도 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안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의 삶 가운데 범사에 일어납니다. '범사'는 모든 일, 평범한 일을 뜻합니다.
좋은 일, 나쁜 일, 기쁜 일, 슬픈 일, 감사할 일,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일까지 포함한 내가 숨 쉬며 겪는 삶 전체에 일어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 전체에 임합니다.
사실 보통 사람들은 잘 될 때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하지만 아닙니다. 잘 되지 않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는 있습니다. 성도 된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란 사람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없고, 무가치한 존재인데, 하나님은 자원하셔서 사죄의 은총을 주시고, 풍성한 생명을 약속하시고, 지금도 계속하여 호의를 베풀어주시는데, 이 모든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은혜의 핵심이요, 은혜의 통로요, 은혜 그 자체이십니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조상 때부터 물려내려 온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유명한 율법학자였던 가말리엘 문하(門下)에서 배운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당시의 왕과 대제사장들도 그를 인정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율법에 열심이었고 헌신적이었습니다. 유대교를 지키기 위하여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일에 증인으로 서기까지 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을 없애기 위하여 종교 당국의 허가서를 받아 원정을 다닐 만큼 확신에 찬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낮추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모든일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설 수 있으며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할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된 우리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직분,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사명은 내가 잘나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1,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이신 것(3-8)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바울은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고 인격이 전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 사실 증거의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원수도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던 바울이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까닭은,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때문이요, 또 자신의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십자가 못 박혀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가 부활했다고 하는데, 바울은 그것이 모두 거짓이요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 종교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고, 그들의 주장은 허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던 길가에서 자기가 그렇게도 부인했던 그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죽은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 자기에게 나타나셨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그렇게도 핍박했고, 이단의 괴수라고 생각했던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이름도 사울에서 바울로 바꾸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경우 예수님과 함께 사역을 담당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이후에 교회를 핍박하다가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볼 기회는 없었지만, 예수님은 이미 승천하신 이후에 바울에게 부활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행전9장4-5절에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정말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5절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게바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 그 분이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도 부활한 주님을 보았다." "나도 부활의 증인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는 자들을 배척하고 죽이려고 했던 자신이 이제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한 자기 자신을 보면서 바울은 자신에게 놀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물론 우리는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면서 그동안의 결실에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성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잘된 일, 좋은 일, 복된 일을 열거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바울의 고백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한 차원 끌어 올려야 합니다.
그는 우리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현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도가 되지 않았더라면 바울은 오히려 세상에서 더 잘 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도가 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복음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에게 보여주시고,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얻는 믿음이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복음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주어집니다. 사도 바울이 받았던 복음 그대로, 사도 바울이 전했던 복음 그대로 믿을 때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바울을 포함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성령 충만을 체험한 후에 정말 담대해졌습니다. 세상은 제자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온갖 위협을 했습니다. 감옥에 가두웠습니다. 시범적으로 야고보 사도를 죽였습니다.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때리고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배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담대하게 거리에 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미지의 지역을 찾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안전은 무의미합니다. 오로지 도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만이 관심사였습니다.
바울이 남긴 공로가 많습니다.
먼저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바울이 남긴 선교적 공헌을 보면 그는 소아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누가,실라,디모데,디도등 기라성과 같은 수많은 신앙의 인물들을 길러냈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묘미요,특정입니다. 아무 못난 사람, 아무리 바보 같은 인물일지라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이와같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백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내가 나 된 것(9-10)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성도 된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 속 깊이 체험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각양 은혜를 값없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10절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생의 전부다” 또는 “그리스도가 내생의 전부라”고 한 고백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고백입니다.
다른 사도들보다도 많은 수고를 한 바울은 자신의 수고가 자신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전파에 사력을 다했습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12사도들이 전하는 것이나 바울이 전하는 것이나 동일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들은 내용과 믿고 있는 내용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혹시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12사도에 들어가지 못하니 그의 복음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소문으로 떠도는 후메내오와 빌레도와 같은 자들의 낭설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무엇을 잘해서 내가 열심히 있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은 모든 교만으로부터, 헛된 자랑과,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공포로부터, 세상의 평가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복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내가 잘나고 열심히 노력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성도 된 우리는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나를 택해서 나를 만드신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들을 보내신 목적과 계획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지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오늘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고, 이끌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한 것만 주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았음에도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끊임 없이 실수하고,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는데도 우리 자존심을 망가뜨리지 아니하시고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가 고개를 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이 사실이 감격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분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내가 나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내가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로만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거기에서, 그런 마음에서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
성도 된 우리의 한 생애는 내 의지나 계획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섭리 경륜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지금까지 지나 온 동안 뒤안 길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넘치는 은혜에 감사를 느낍니다. 바울처럼 내가 나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살아오신 인생길이 어떠하든지 오늘 여기서 지난 세월 주님이 나를 인도해주셨고, 오늘 여기 내가 이만한 역할을 감당하면서 살아가게 된 것, 이것을 인하여 사도 바울처럼“내가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성도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3.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되심과 부활을 전파한 것(11)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성경의 모든 약속은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구속사의 정점이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데 있습니다. 지엽적인 종교 활동에 열심을 내기보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거룩한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백성답게 바르게 인도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이후의 구속사는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어 가는 쪽으로 계속 진행되며, 그 나라가 극치에 도달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드러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은혜를 받았을 때는 당연히 감사해야만 하지만,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은혜를 받았을 때는 감사에 대한 부담을 별로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이 감사하는 정도만큼만 나도 감사하고, 충성하는 만큼 나도 충성하면 되는 것이지, 특별히 나만 더 많이 수고하고, 감사하고, 충성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오로지 부활의 복음 전도를 위해 아낌없이 전폭적으로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였습니다.
바울은 전도를 많이 하고 교회를 많이 세웠습니다
전도에 관한 현대적인 경향은 십자가와 부활을 생략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이 말만 생략했어도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이 말만 적당하게 얼버무렸어도 환난과 핍박의 제물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상자에 대하여 접촉점을 발견하고 지혜롭게 접근할 필요는 있지만 샤머니즘이 팽배한 한국 문화권에서는 분명한 선을 그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도의 내용은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3-4절에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전도는 설명이 아니고 선포입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고린도전서2장1-2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복음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 하신대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를 고통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죽고 다시 사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죽음은 우리의 죄에 대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죄의 값을 치루셨고 부활은 그 죽은 예수님을 다시 살게 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하신것 처럼 우리에게도 새 생명을 주신 증거입니다.
사람은 저주의 대상이었습니다. 죄의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그 복된 소식을 받아들여 믿는 사람들은 그 내용대로 영광스러운 존재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지혜와 진리로 기쁨과 평안과 권세로 옷을 입게된 것입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었고 저주의 대상에서 사랑의 대상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그 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눈 앞에 확실하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구원의 일이 우리 삶에 나타났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늘 마음에 품어서 그 힘으로 삽니다. 또한 그 힘으로 사람들과 나눌 것입니다.
사도행전2장42절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여기에 ‘저희가 사도의가르침을 받아.’ 라는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직계제자들입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숙식을 같이하면서 예수님의 입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친히 눈으로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했고, 부활을 목격했고, 부활하신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친히 만 저 본 사람들입니다. 감람산에서 하늘로 승천해 가시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이만하면 예수님에 대하여는 가장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내용과 가르침을 가장 잘 기억하고 그대로 전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교회 강단에서 들려지는 설교 중에서도 사도들의 설교만큼 정확한 설교와 복음적인 가르침을 따를 수 가 없습니다. 복음의 원형이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감 없이 가르치고 전하고 설교하였습니다.
실제로 바울이 전파했던 복음의 내용은 시종 일관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의 약속과 계시에 입각해 고대해 온 것들이었습니다. 즉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과. 그분의 인류 속죄를 위한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것이 바울이 전파한 복음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되심과 부활을 전파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이신 것(3-8)
2.내가 나 된 것(9-10)
3.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되심과 부활을 전파한 것(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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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까지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앞으로도 은혜로 고백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바라가님 감사합니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샬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