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 7:12~14 황금률을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곧이어 황금률을 따라서 걷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여정을 설명하기 위하여 좁고 비탈진 길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셨다. 예수께서는 구원의 길이 좁기 때문에 그곳으로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셨다. 왜 어려울까? 왜냐하면 황금률이 좁은 문으로 들어 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만과 자기 본위의 마음을 제거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대는 넓고 평탄한 길을 택할 수도 있지만, 그 길은 멸망의 길이다. 만일 그대가 진정으로 하늘에 가길 원한다면, 그대는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 좁은 길은 하늘을 향하여 뻗어진 오르막길이다. 그대가 오르막길 즉 좁은 길을 가기로 선택할 때, 그대는 매우 적은 무리들과 동행하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넓은 길인 내리막길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로 올라 가는 길이 좁고 험한 길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길이 어둡고 타락한 이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에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부정직하고, 부도적한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마음이 이끄는대로 살아가게 된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특별하게 신경을 써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문과 길이 넓어서 우리의 발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을 향하여 저절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그 입구가 험해 보인다. 만일 이기심, 돈을 사랑하는 마음, 세속적인 정신, 그리고 애지중지하는 어떤 죄를 가지고 있다면, 그대는 생명으로 가는 길이 매우 좁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진정, 주님께서 지정하신 좁은 길을 가기 원한다면, 자신의 길과 자신의 뜻과 자신의 악한 습관을 버려야 한다. 하늘 가는 길은 이 세상의 높은 지위나 재물을 웅켜진채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좁으며, 자기 중심적인 야망을 불태우기에도 너무나 협소하고, 안락을 즐기면서 그 길을 걷기에도 너무 험하고 힘들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서 감당하셨던 것이 고통, 인내, 자아 희생, 핍박, 궁핍일진대, 우리가 하늘 낙원에 들어가고자 할 때에 감당하여야 할 몫도 그러한 것들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올라가는 길은 힘든 길이며, 내려가는 길은 쉬운 길이라고 단정짓지 말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에도 줄곧 고통과 형벌이 있고, 슬픔과 실망이 있으며, 가지 말라는 경고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부주의하고 완악한 사람들의 양심에 성령을 통하여 호소하심으로써,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하신다. 멸망으로 인도되는 길이 매력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기만에 불과하다. 사단이 인도하는 길에는 쓰라린 후회와 점점 깊어지는 고뇌가 있을 뿐이다. 쾌락과 세속적 야망을 즐기면서 살 수 있지만, 그러한 인생의 종말에는 고통과 슬픔만이 있을 뿐이다. 이기적인 삶의 길은 그 전도가 유망하고 장미빛 꿈으로 가득찬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길에는 참된 행복이 없으며, 허무함만이 있을 뿐이다. 멸망으로 가는 내리막길은 그 입구가 꽃으로 덮혀 있고, 환하게 빛날지 모르지만, 환하게 빛나던 희망의 빛은 얼마 안가서 절망의 암흑 속에 묻혀 버리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깊은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된다. 양심 속에서 속삭이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성경 말씀에 순종하며, 진리를 위하여 희생하고, 시련 속에서 인내하며, 유혹을 거절하는 것은 최후의 영광을 위하여 전진하는 발걸음들이다. 하늘 가는 길이 좁고 험할지라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나 하늘문을 들어갈 수 있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유일한 인도자로 삼는 자마다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늘 가는 길이 험하고, 비탈져 있고, 좌우편에 함정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여행길에서 겪는 고통을 견디어야 한다. 피곤할 때도 수고해야 하며, 연약할 때도 싸워야 하고, 낙심될 때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인도자 되신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소망의 항구로 틀림없이 인도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친히 걸어 가셨고, 우리의 발을 위하여 그분께서 그 길을 평탄케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시는 동안에 남기셨던 발자취를 따라서 걸어야 한다. 영생으로 가는 길이 비록 가파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그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의 피곤을 씻어주고, 생기를 돋구어 주는 기쁨과 보람의 샘이 준비되어 있다. 그 길을 걷는 자들은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낙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을 사랑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동행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한걸음 한걸음 위로 올라갈 때마다, 그들은 그분의 인도하심을 더욱 더 분명히 깨닫게 되고, 매 발걸음마다 보이지 않는 분으로부터 나오는 밝은 영광의 빛이 그들의 길을 비추어 준다. 해가 지기 전에 성문에 들어가기 위하여 서두르는 나그네는 길가에 있는 어떤 매력적인 것에도 한눈을 팔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성문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한가지 목적만을 생각한다. 하늘 성문을 향하여 걷고 있는 그리스도인도 이와 동일한 열심과 목적을 가져야 한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나는 나의 희생과 죽음을 통하여 너희에게 하늘에 들어 올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았다. 하늘은 너희가 최고의 관심과 노력을 쏟아부을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 문을 열어 놓았다고 해서, 싸워야 할 싸움이 없고, 쟁취해야 할 승리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너희가 하늘 왕국에 들어오기 위하여 노력하고 필사적으로 싸우라고 명령하는 바이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전쟁과 투쟁을 통하여 전진하는 행군이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는 장소는 마음이기 때문에, 거기서 얻어야 할 승리는 인간의 힘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투쟁은 지금까지 인류가 싸웠던 전쟁 중에 가장 큰 전쟁으로서, 그것은 자아를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것이다. 곧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마음 속에서 지시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분의 음성이 양심 속에서 지시하는 바에 따라서, 우리 자신의 의지와 뜻을 굴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진리와, 양심 속에서 속삭이시는 성령의 음성에 우리 자신의 의지와 뜻을 굴복시켜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구원과 영생을 사모하지만, 그것을 소유하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넓은 길은 쾌락과 자기 중심의 길이지만, 그 길을 가는 사람 중에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때때로 그들은 죄악의 속박에서 빠져 나오기를 열망하지만, 자기 자신의 힘으로 악을 극복하려고 하다가 실패한다.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사랑의 깊이를 이해해야 하며, 그분께 대한 감사와 충성심으로 마음이 채워지는 참된 거듭남이 선제해야 한다. 오직 마음이 변화된 거듭난 그리스도인만이 승리할 수 있다. 포도나무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포도를 맺을 수 있는 포도나무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는 것처럼, 먼저 우리의 마음이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마음이 순결과 사랑으로 채워진 자에게 있어서, 죄에 대한 승리는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좁은 길을 바라보지만, 쾌락을 사랑하는 마음과 세상에 대한 애착심, 그리고 교만과 깨끗하지 못한 야망들이 그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아와 세속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라고 요구하지만, 그들은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진리의 요구를 거절한다.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 13:24. 그들은 선을 바라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어느 정도 노력하지만, 그것을 결정적으로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하나님의 진리와 성령의 음성에 따라서 순종하고자 하는 확고한 마음이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죄와 세상을 이기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아를 땅 속에 뭍어버리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일치시켜야 한다. 우리 자신이 살아 있는 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거하실 수 없다. 자아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일을 통하여 우리는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게 된다. 교만과 이기심은 십자가에 못박아 버려야 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 사도 바울 역시,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간증하였다(골 1:29). 사도 요한이 설명하고 있는 믿음에 대한 정의는 우리 모두에게 무엇이 진짜 믿음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세상을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