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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6:13~23 맡기신 지경과 감당해야 될 field. 2026. 5. 24.
오늘 본문의 13절은 사무엘 선지자가 장차 왕이 될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장면인데, 이 13절과 14절의 내용에서 두 사람의 명암이 엇갈립니다. 한 사람은 기름부음을 받는 즉시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이 되는 다윗이고, 한 사람은 영광이 끝나면서 세상의 어두움과 악한 영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는 사울 왕입니다. 문제는 이 악한 영 때문에 다윗이 등장한다는 거지요. 왜 다윗이 등장하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수금을 연주하는 다윗의 재능 때문입니다. 15-20,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을 것입니다.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라.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다윗은 어리지만 수금연주를 잘했습니다. 더하여 하나님께서 늘 함께 했습니다.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으로 왕을 치료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울 왕과 다윗의 이 모습이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이어집니다. 사울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다윗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물론 사울과 다윗은 사울이 죽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부딪칩니다. 이제부터는 사울은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수단으로 쓰임을 받는 위치로 바뀌게 됩니다. 누구를 위해서 수단으로 쓰입니까? 다윗을 세우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는 수단으로 전략합니다. 왜 악령과 어두움에 사로잡힌 사울이 됩니까? 다윗의 등장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맡기신 지경과 감당해야 될 field가 있습니다.
1. 항상 준비하고 준비가 되도록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대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의 시대가 열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으로 여러분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까? 준비되어져야 합니다. 무엇으로 준비 됩니까? 맡기신 지경과 감당해야 될 field로 준비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맡기시는 지경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감당해야 될 field는 사명입니다. 다윗이 그렇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시대가 그냥 쭉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시온의 대로 이지만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굴곡이 있습니다. 일본의 도로는 일직선이 없어요. 왜 그렇습니까? 안전과 주의를 위해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소원의 항구로 이어지는 시온의 대로는 열려 있지만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려움과 고난이 있고 굴곡과 커브가 있고, 방향표지판이 있지만 잘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초점은 다윗 쪽으로 확실하게 방향을 바꿉니다. 다윗에게 얽힌 이야기가 많고 재미있고 교훈이 큽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실 만큼 다윗의 생애는 위대했습니다. 어떻게 통합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사울 왕을 치료해주고 회복을 시키게 됩니까?
1-1.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는 것입니다. 허락하신 지경에서의 기름 부으심 입니다. 그래야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이 되고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44:3에서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혼을 너의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너의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사울 왕에게 이런 복을 주셨습니다. 블레셋을 물리치고 아말렉을 물리쳤습니다. 승승장구 했습니다. 그런데 허락하신 지경에서의 기름 부으심을 소홀히 했습니다. 맡기신 지경에서 여호와의 신을 떠나게 했습니다. 동행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맡기신 능력과 은혜가 떠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므로 악신이 사울을 괴롭혔습니다. 다윗은 허락하신 영역에서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이 됩니다. 13절, 사무엘이 기름 뿔 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이 되니라,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하나님이 비밀리에 만들어 놓으신 프로그램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받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애 중에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일까요? 바로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입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어떤 힘과 어떤 종류라도 무섭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장 사모해야 할 선물이 성령 충만 입니다. 가장 크게 준비되고 훈련이 되어야 하는 것이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은 구해야 주시는 field입니다. 준비하고 훈련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신과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나옵니다. 요한 1서 4:1-3절,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 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 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라. 성령과 악한 영입니다. 여호와의 신을 줄여서 성신이라고 하고 사탄의 사악한 영이 악한 신입니다. 악신은 히브리어로 루아흐 라아 인데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억누르고 파괴합니다. 하나님의 신은 인간의 영적생활을 고양시키고 미래에 되어 질 일과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성신에 충만해서 성신의 감동으로 살지만 사울은 악신에 사로잡혀 괴로움에 피폐해 갑니다. 그러면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통합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사울 왕을 치료해주고 회복을 시킵니까? 주시는 지경인 여호와의 신에 감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여호와의 신에 감동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괴롭힘을 받는 사람들을 회복시키시기를 축복합니다.
1-2.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입니다. 18절에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다른 사람이 본 다윗에 대한 평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만 훈련의 대상인 내가 직접 하나님과 함께 라는 훈련이 되어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살아가잖아요? 때때로 낙심하고 포기하고 비전 앞에 내려놓잖아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너무나 크고 많은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준비하고 훈련하고 더 잘 다듬어야 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준비하고 훈련하고 잘 다듬어서 전문성을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 가운데 자신을 다스리고. 감정을 억제하고 생각을 깊이하고 판단에 냉철하며 행동에 신중하면 편견을 갖지 않게 됩니다. 다윗은 무던히 준비했고, 연습했습니다. 하나님의 교육과정과 훈련의 프로그램에 철저히 따랐습니다. 힘들어도 견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경에서 알게 모르게 훈련이 되어졌습니다. 여러분, 다윗에게 주신 달란트는 수금을 타는 것과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기의 달란트를 끊임없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한 시인이 없고, 다윗만한 작곡가가 없고, 연주가가 없고, 연출가가 없고, 그만한 장수가 없습니다. 자연히 습득되고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다윗의 달란트의 능력은 뼈를 깎는 노력이었습니다. 18절,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삶이 무엇입니까? 주신 달란트와 주신 field를 관리하고 연습하고 준비하는 것 것입니다. 주신 것을 땅 속이나 수건에 감추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 왕이 악신이 들어서 번뇌케 될 때 성신에 감동된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23절에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악신을 내어 쫒는 능력자가 됩니다. 상쾌하데요. 어떻게 이렇게 됩니까? 예레미야 애가3;25, 기다리는 사람들에게와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엡3:20. 우리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여러분, 하나님은 기다리는 사람과 구하는 영혼들에게 주시고 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넘치게 하십니다. 준비되고 훈련되어져야 합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삶이었습니다. 삼상18: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사람들이 다윗의 달란트와 능력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삼상18:28-29,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으로 사는 사람은 삶 전체가 하나님으로 함께 삽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권력도 두려워서 벌벌 떨게 됩니다. 사울 왕과 세상이 그렇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투시의 은사를 가지고 모든 것을 꾀 뚫어 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슨 일이든지 해결해 가고 하는 일 마다 잘되지요. 병도 고치지요. 귀신도 쫓아내지요. 그래서 두려워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맡기신 지경을 잘 관리하고 연습하고 준비하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1-3. 허락하신 지경에서 묵묵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감당하는 것이 내일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여러분, 어느 때이든지 역사의 전환기는 옵니다. 전환기가 오면 사람들의 명암도 바뀌게 됩니다. 오늘 말씀이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자기들도 여느 나라처럼 강력한 왕을 요구해서 사무엘이 기도드린 결과 하나님께서 그 요구를 마지못하여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사울 왕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그는 처음 겸손하고 온유했던 모습과는 달리 왕이 되면서 포악해지고 교만해지면서, 결정적으로 세 번의 불순종을 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물론 꽤 오랫동안 왕의 자리를 유지하지만, 그것은 사실 의미가 없는 세월이었고 죽는 날까지 내내 불행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왕으로서 지위는 있지만 그냥 주어진 시간 속에 다윗을 위하여 있는 시간입니다. 사울과 사무엘과 다윗에게 역사의 전환기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 왕에게 그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을 암시하는 역사의 전환기를 맞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제 시작하는 역사의 전환기입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이 일에 대해서 낙담한 사람이 사무엘이었는데 하나님이 그와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사람을 선택해서 왕을 세우는데 바로 다윗입니다. 이 모두가 역사의 전환기에 바뀌어 지는 사람들과 지도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시고 주어진 지경에서 묵묵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탄성계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고무줄이나 용수철이 가지고 있는 특성입니다. 먼저 우리가 준비되어야 하지만 항상 긴장되면 힘들어요. 여유가 없으면 준비 또한 눈에 빠뜨리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있습니다. 시대에 대비하고 상황에 늘 대처해야 합니다만 항상 긴장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긴장하면 인간의 탄성계수가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탄성계수가 떨어집니다. 시대와 여건과 상황을 읽어내는 순발력이 떨어지고 대응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시대의 여건과 삶의 상황을 읽어 내려면, 탄성계수가 그대로 유지 되려면, 신앙인의 특성이 유지 되려면 주시고 주어진 필드에서 묵묵히 감당해야 합니다. 다윗은 묵묵히 감당을 했습니다. 잊혀 진 존재로 들에서 몇 마리 안 되는 양을 목양했습니다. 처음에는 억울했습니다. 시51;5절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다고 고백을 합니까? 그래도 주시고 주어진 field에서 감당을 했습니다. 그러면 다윗만 그렇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렇습니다. 요셉은 수없는 인생의 곡절을 겪습니다. 그런데 이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시고 주어진 field이었습니다. 그 주시고 주어진 field에서 다윗은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왜 묵묵히 감당을 해야 합니까? 해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감당을 했기 때문에 오늘 사울을 고치게 됩니다. 감당했기 때문에 재정을 보고 감당했기 때문에 나라의 살림을 맡게 되고 감당했기 때문에 관리와 대안을 세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당했기 때문에 시23편의 고백이 나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고 주어진 field에서 묵묵히 감당한 것 때문에 양과 목자사이를 압니다. 묵묵히 감당한 것 때문에 모르던 것을 알고 하시고, 미래의 되어 질 일과 감당해야 될 일을 알고 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묵묵히 감당한 것 때문에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것을 알고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고백합니다. 묵묵히 감당한 것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알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안위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묵묵히 감당한 것 때문에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역전의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감당하지 않고 주시고 주어진 field를 떠나면 이 모든 것을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복과 은혜가 있는 것 자체를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고자 작정하시면, 그 때부터 그 사람은 하나님이 마련해 두신 훈련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됩니다.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를 수 도 있지만 이후에 돌이켜 보면서 알게 됩니다. 모르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토라지고 배신하고 삐죽거리고 뒤 돌아서고 후회하고 낙심하고 불평을 합니다. 요셉도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혹독한 훈련을 받고 모세도 출애굽하기까지 엄청난 시간의 훈련을 받습니다. 훈련 없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지금 조그만 일에라도 쓰임을 받는다면, 그 사역마저도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서 준비시키시고 훈련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우리를 내동댕이치듯 당신의 일을 시키지는 않으시고 반드시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훈련과정 역시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그 훈련을 이길만한 능력까지 주십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field에서 아무것도 주시지 않고 시키시는 무모한 분은 아닙니다. 그래서 주신 지경에서 묵묵히 감당해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괴롭고 아프고 뛰쳐나가고 싶으십니까? 허락하신 지경에서 묵묵히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1-4. 감당해야 될 필드에서 최선과 성실로 식물을 삼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오늘 다윗은 사울을 위하여 비파와 수금을 탑니다. 그래서 사울이 일어나고 악령에서 자유 함을 얻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자리에 쓰임을 받게 되나요? 주신 field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느 field입니까? 적진 속에 넣습니다. 그냥 성공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들어가서 최선을 다 합니다. 21-22절,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청컨대 다윗으로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든 자를 삼았습니다. 크게 사랑받고 왕에게 은총을 얻었습니다. 어떤 field입니까? 관계입니다. 무슨 관계입니까? 자기생명같이 사랑하게 되는 사람을 만나는 관계입니다. 사람을 만나되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여기는 사람을 만나야 되는데 자기 생명같이 여기는 그런 사람을 만나게 합니다. 삼상 18:1-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 하니라.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 아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지 아니하였고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진정으로 사랑해주고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자기 생명같이 여기는 사람을 만나야 위험에서 빠져나오고 위기에서 구출을 받고 목표한 소망의 항구로 전진하게 됩니다. 또 어떤 field입니까? 신앙의 훈련입니다. 무슨 신앙의 훈련입니까? 신앙의 훈련 속에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믿음의 훈련과 절대 신앙의 훈련입니다. 하나님만이 죽이시고 살리시고 복과 함께 화도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상황 때문에 입으로 죽는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어도 살고 살아도 영원히 산다는 절대 신앙으로 훈련되어지는 field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7; 47절에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습니다.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만 됩니다.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여러분, 믿음과 신앙 안에서 악착같이 끈질기게 견디고 버티고 이겨내야 합니다. 간증입니다. 트루먼은 안경이 없으면 볼 수 없는 지독한 근시였습니다. 그런 그가 1차 세계대전에서 포병 대위로 프랑스에서 싸웠는데 시력검사표를 달달 외워서 신체검사를 통과한 덕분입니다. 1차 세계대전의 마지막이었던 1916년 6월 영국군은 프랑스 북부 솜 강 지역 전투에 25개 사단을 투입했는데, 돌격 명령과 함께 영국의 젊은 병사들은 군장을 짊어지고 독일 군 기관총 총구를 향하여 온몸을 드러낸 채 진흙탕을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서 전진한 사람들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젊은 소위들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50년대 차례로 영국 총리를 지낸 애트리, 이든, 맥밀런이 이런 전투의 생존자들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전쟁이 끝나고 대학에 복학 했으나 함께 전쟁에 나갔던 학우의 3분의 1은 끝내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아들 제임스 루스벨트는 2차 대전 때 해병대 제 2기습대대에서 복무 중 마킨제도의 일본군 기지를 기습하는 매우 위험한 작전을 앞두고 이 작전에서 제외 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만약에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거나 전사를 하면 일본군은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전쟁에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은 해군 참모총장 킹 제독에게 내 아들은 제2기습대대의 장교입니다. 내 아들이 위험한 특공작전에 가지 않는다면 누가 그 작전에 가겠습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의 네 아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세계2차 대전에 참전 하였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어찌 보면 자신들과는 크게 상관없었을 한국전쟁에서 모두 139명의 미군장성들의 자제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그 중에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미군의 사망자는 3만3,686명, 포로와 실종이 8,176명, 부상자는 9만2,134명 이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1952년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 육군원수의 아들인 하이젠하워 소령과 제 3대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대장의 아들도 포함되었습니다. 미 8군사령관 제임스 밴플리트 대장의 외아들 밴플리트 2세는 야간폭격기 조종사로 작전 수행 중 북한군의 대공포화에 전사했습니다. 워커장군은 아들과 함께 한국전에 참전 했고 스스로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하버드대학 교내 예배당 벽에는 한국전쟁에 목숨을 바친 하버드 출신 병사들의 이름이 동판으로 새겨져 있는데 하버드대학 졸업생중 17명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하였습니다. 이들 모두는 미국의 소망이고 기대이었습니다. 여러분, 일본이나 대한민국의 소위 상위 1%라는 사람들은 과연 자기의 자녀들을 국가를 위하여 죽음의 자리와 현장으로 내 보낼 수 있습니까? 맡기신 지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시고 주어진 지경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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