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 아침 9시 예배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김정수 권사
성경 말씀 야고보서 5:12~18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사랑합니다. 그것뿐입니다.
찬송 1288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가족 방문 이옥녀 박문식 성도 딸 사위, 이정석 집사 막내아들 가족,
임명화 권사 아들부부, 심재례 집사 딸 가족
찬송 1616 사랑합니다. 그것뿐입니다.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잖아요.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갈매기 한두 쌍이 가물 거리네
물결마다 잔잔한 바닷가에서
1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13절,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14절,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 지니라
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16절,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17절,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18절,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우리 요양원 터가 800평입니다.
거기에 잔디 정원이 400평입니다.
그런데도 청승맞게
쓰레기장 구석 벤치에 홀로 앉아 책을 읽곤 합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아들이 터벅터벅 다가오더니
아빠 외식하자는 것입니다.
아들은 골프에 푹 빠졌습니다.
골프를 치고 와서
80타에서 70타로 내려가지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어느 경지에 이르려면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목사님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동화처럼
모세의 지팡이가 어떠니?
욥의 인내가 어떠니 하면 되겠습니까?
목사님의 서사도 없이 설교를 한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아무리 큰 교회 목사님이 유창한 설교를 할지라도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1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정말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오래전에 우리 석 권사께서 목사님이 짓궂으시다며
우리 목사님은 청개구리 셔!! 말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목사님은 장난꾸러기입니다.
그렇지만 모두 좋다고 하하하 호호호 웃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행복한 개그맨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처럼 자신만만하여 큰소리 뻥뻥 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맹세하며 호언장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난 당신만을 사랑해요.
우리 사랑이 이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혼율이 60%가 넘고
돌싱이 유행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12절 말씀이 무척 크게 들려옵니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우리 요양원 넓은 뜰에 빨강 양귀비꽃이
기생 양귀비처럼 그렇게도 뽐내시더니
꽃이 지고 나니
뒷모습이 너무나 초라해서
어제 다 뽑아냈습니다.
박영숙 집사께서 땀을 찔찔 흘리며 일하는 목사님 모습을 보고
목사님, 머슴처럼 일도 잘하시네요.
그래서 박 집사을 마님!이라! 머슴처럼 불렀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습니다.
엊그제 청춘이었을 텐데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 노년이잖습니까?
그래도 노을처럼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13절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14절,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 지니라
지난주에
우리 임성례 권사님 임플란트 때문에
원대병원 치과에 두 번씩이나 갔습니다.
휠체어를 밀며 병원을 모시고 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렇게 목사님은 20년을 살았습니다.
보호자가 없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목사님 몫이겠지만
외래 진료 시에는 당연지사 보호자들 몫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임성례 권사 진료 시에는 아들들이 서울 강원도에 계시기에
어쩔 수 없이 목사님이 모시고 갑니다.
그렇지만 진료 때문만은 아닙니다.
진료를 마치고 시장도 가고
외식도 하고
콧바람도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박영숙 집사도 항상 동행합니다.
방금 대표 기도 하신 우리 김정수 권사님도
치매에 헐떡헐떡 숨이 차오릅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옆구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
치매가 심하신 우리 김정수 권사님께서
목사님, 고맙습니다.
그럴 때마다 뼛속까지 권사님이십니다. 감탄합니다.
우리 김응칠 성도님을 예배드리기 전 주물러 드릴 때면
아이고~시원해라. 아이고~시원해라.
이것이 목사님의 기쁨입니다.
우리 임성례 권사는 불룩한 배를 만져 드리고
띵띵한 종아리를 만져 드리며 기도할 때면
얼마나 힘든지
목사님 대상포진 후유증이 오싹거립니다.
그러할지라도 목사님의 행복입니다.
그래서 휠체어에 매달려 사는 우리 임성례 권사님이
목사님 손을 꼭 붙들고 하나둘하나둘 걷기도 합니다.
우리 조용림 권사님은 마태복음 15장의 여인입니다.
25절입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절,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치 이 여인처럼
목사님 설교하는 턱밑에서 부스러기까지 다 주워 먹지 않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은 우리 조용림 권사님의 리액션에 신이 납니다.
그래서 그렇게 치매가 심하신데도 목사님 설교할 때만은
눈빛이 초롱초롱 샛별입니다.
여기에 계신 우리 임명화 권사님도 기도의 용사입니다.
15절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요즘 유튜브를 보면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원로, 송태근 목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퇴하신 목사님들께서 평생 설교하면서 하신 말씀을
은퇴하시면서 송두리째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퇴임하면서
수십억의 전별금 받고
집 받고
퇴직하고도 죽을 때까지 봉급 받고.
그런데 평생 이렇게 설교하지 않았습니까?
평생을 헌신하라!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것을 포기하라!
이렇게 피를 토하며 설교한 목사님들이
퇴임하면서
내 설교는 다 거짓말이었다고 고백하며 퇴임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소경이 따로 있겠습니까?
이거야말로 넌센스nonsense잖습니까?
그런데도 너무나 무식한 것인지 너무나 순수한 것인지
천사 같은 성도님들은 무념무상無念無想올시다.
우리는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씨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박진영 씨가 말하기를 가장 열정을 쏟을 일이 두 가지인데
돈 가지고 흥청망청 사는 것과
절제하면서 바르게 사는 것도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호텔 펜트하우스에서 흥청망청 살아본 박진영씨가
이제 정신 차리고 복음을 말씀하시니 감개무량합니다.
이렇듯 병든 자가 깨달아
다시 새롭게 일어난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16절,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목사님은 죽어가는 생명들을 많이 살렸습니다.
여기에 박영숙 집사님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여기에 이현우 성도님도 목사님이 원대 응급실 모시고 갔는데
응급실에서 목사님께 마지막 말이 목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눈이 뒤집혀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때 친동생에게 전화했더니
더 이상 전화하지 말라며 끊어버렸습니다.
그때
인공호흡기를 끼고
중환자실로 옮기어지고
위에 구멍을 내고
3개월여 만에 겨우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껀득하면 호출이었습니다.
기저귀 사 와라.
물티슈 사 와라.
물 사 와라.
주치의가 보자고 한다.
별의별 심부름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펄펄 살아 장가간다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무어겠습니까?
기도의 힘입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17절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18절,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요즘 강연도 하는 유명한 스님이 어릴 적에 교회를 다녔습니다.
당시 목사님 설교 중에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났다고 하는데
어찌, 의학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믿으면 되는 것을
어찌, 의심하느냐고 나무라시더라.
그래서 교회에 다니지 않고 스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스님도
옳고 그름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린 청년은 어린 목사님께 실망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쓰레기장 구석 벤치에 홀로 앉아 있을 때가 가장 평안합니다.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신학교 신약학 시간에 오병이어 기적이 사실인가?
결론은 믿음보다는
내 생각과 우리 생각에
끼워 맞추기였고 논리적 추리였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도시락,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덩이를
예수께서 찾으시니
어린아이가 도시락 전부를 드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5천의 무리도 가져온 도시락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나누어 먹었더니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의 전설도 이렇게 끼워 맞추기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엘리야는 죽지도 않고 살아서 하늘로 승천하신 분 아니겠습니까?
유명하신 스님께서 이를 어찌 믿겠습니까?
17절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18절,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요즘 밤마다 개굴개굴 울어대는 소리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합창이 있을까 싶습니다.
목사님도 청개구리잖습니까?
어릴 적에 어머님 말씀만 잘 들었더라면
윤석열 대통령보다는 잘되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하나님께 칭찬받는 목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개구리 세 친구가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구수한 냄새가 물씬 나는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가 보았더니 항아리에 구수한 우유가 가득했습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세 친구는 항아리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한참을 허겁지겁 먹고는 아이고~배불러~
그리고 항아리 속을 빠져나오려 하니
미끄러운 항아리 안에서 도대체 뛰어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실컷 배불리 먹은 우유마저 배가 툭 꺼지도록 뛰어오르려 했건만
헛심만 팽겼습니다.
이제 지쳐서 한 친구가 아이고 이 항아리 속에서 죽겠구나.
포기하려는데 둘째 친구가 좀 더 힘을 내서 뛰어올라 보자.
그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만을 기다리자
그러자 셋째 친구가 말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잖아.
그러니 죽을힘을 다해 다시 한번 뛰어보자.
그리고 세 친구는 죽을 힘을 다해 폴짝폴짝 뛰어올랐습니다.
그러자 밑바닥에 굳은 돌 같은 것이 밟혔습니다.
그리고 세 친구는 돌 같은 디딤돌을 딛고
미끄러운 항아리 속을 드디어 탈출했습니다.
개구리 세 친구가 얼마나 힘껏 뛰었는지
우유가 굳어서 버터가 된 것입니다.
개구리처럼
이렇게 죽도록 기도해 보셨습니까?
그러면 어떠한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기에 계신 우리 성도님들은
목사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하루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10년을
우리 석 권사님은 20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우리 박영숙 집사도 남편 때부터 함께 했으니
어언 10년이잖습니까?
그렇지만 목사님은 우리 성도님들께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끙끙 아플 적에
항상 목사님이 응급실로 모시고 가서
응급실에서 함께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누구인가를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 우리 목사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그래서 박영숙 집사도 죽고 싶을 만큼 깡마르게 아팠을 적에
아들딸보다도
목사님이 늘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 목사님이 저절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