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경 무당이 출연한 영화 ‘사이에서’
노중평
무당이 굿을 하는 굿판을 돌아다니면서 무당이야 말로 배우이고, 춤꾼이고, 소리꾼이고, 재비라는 생각을 아니 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흔들어대는 방울에서는 청동팔령을 흔들며 불러대던 마고가 떠오르고, 그들이 던졌다가 걷어 들이는 부채에서는 융풍에서 춤을 추는 한인천제, 명서풍에서 춤을 추는 한웅천왕, 청풍에서 춤을 추는 단군왕검이 어우러져 너울너울 춤을 추기도 하고, 저만큼에서 휘돌면서 불러대기도 한다.
요즈음은 조상을 마음대로 불러대고 휘돌아가는 무당을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제정신이 무엇인지, 전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곳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진작 신학대학 같은 것을 하나 만들어 무당신학박사라도 만들어냈다면 허가 낸 도둑질이라도 가르치련만, 그런 처지가 되지 못하니, 무당사회도 제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정신없이 돌아가는 나라꼴처럼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내가 관심을 두고 바라보는 무당이 한 분 있었다. 그분이 김금화 무당이다. 칠순 나이에도 식솔들을 이끌고 외국나들이를 나가는 무당, 그런 분이 있기에, 외국의 종교학자나 민속학자나 인류학자가 껌뻑 죽게 되어 있다. 그만했으면 나라가 하지 못한 일을 해 온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김금화 무당이 울긋불긋 원색으로 차려입고 휘둘러대는 공연만으로는 한계가 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데, 좀처럼 그런 마인드를 가진 무당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나의 의구심을 일시에 불식시켜주는 돌발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이 사건의 주인공이 이해경 무당이다. 스스로 날라리 무당이라고 하고, 미꼬라고도 한다. 날라리라니, 내가 나리라는 뜻인가? 대감나리? 그런 뜻일까? 하기야 大監은 단군조선시대에 최고의 관직을 가진 최고의 제관이라는 뜻으로 쓰였던 말이다. 그가 슬그머니 자신의 역사정신을 내비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게다가 또 미꼬라고 했으니, 미꼬는 일본에서 부르는 무당이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그가 미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해경씨가 표를 사서 기다릴 테니 그가 출현한 영화를 와서 보라는 것이다. 장소는 월드컵상암경기장이다. 그의 전화를 받고서, 월드컵상암경기장에 극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상연이 시작되는 시간은 토요일 오후 4시 30분이라고 한다. 집사람과 함께 가니 그가 기다리고 있다. 표를 받아가지고 영화상연장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영화를 보았다.
웬일일까? 그가 처음부터 관객을 압도하고 나온다. 무당이 굿을 할 때보다 더 무당 같다. 아, 이런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힘 빼! 힘 빼!” 그의 얼굴, 그의 목소리, 상당히 인상적이다. 대단히 암시적인 도입부이다. 다큐의 수법으로 영화가 진행되어 가는데, 나중에 감독으로부터 들으니. 외국 영화제를 겨냥하여 만들었는데, 국내에서 개봉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장점을 든다면, 우리의 고유한 신명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신명체험이 너무나 엄숙하고 숙연하다. 무당이 인간적인 욕망과 신의 강제적 소명 사이에서 겪는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타른 종교에서 재주를 팔딱팔딱 열두 번을 넘는다고 해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가사설이 얼마나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도 큰 수확이라고 할 것이다.
영화는 상당히 깔끔하게 만들어졌고, 우리의 전통종교인 무교를 알리는 데 손색이 없다. 출연한 사람들이 무당이거나 무당이 될 사람이고, 여기에 현역 재비들이 출연한다. 만약 진짜 배우를 쓰고 직업적인 악사들을 썼다면 영화가 맨송맨송해져서 실패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의 연기와 연주자의 연주의 기량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사람이 무당이다. 무당이 그의 배후에서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신명을 화면에 실어 주어야 하는데, 배우가 이 일을 할 수 없으므로 실패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무당이나 다 출현한다고 해서 영화를 성공시킨다고 볼 수도 없다. 이 두 가지 기능을 다 수행할 수 있는 무당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 이해경 무당의 강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이 두가지 기능을 실패없이 수행하여 스타 아닌 스타로 떠올랐다.
이런 점에서 탁월한 연기력을 타고난 이해경 무당이 앞으로 무당이 굿과 예술을 겸직하여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고 보아서 높이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타큐멘터리 영화의 성공으로 극영화제작의 가능성도 점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옥의 티라고 할까 지적하고 싶은 것도 있다. 앞으로 무교영화나 무교관련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교를 공부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지엽적인 것을 몇 가지를 지적해 보려고 한다.
첫째 무교가 다신교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무교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유일신교이다. 그 신을 九皇大主라고 하였다. 구황은 九桓이 받들어 모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구한은 9900년 전에 한국을 세운 9인종을 뜻한다.
둘째 칠성굿을 자막에서 제석굿이라고 하였다. 칠성굿에서 받들어 모시는 신은 구황대주의 신체인 북두칠성을 의미한다. 제석은 2500년 전에 이 나라에 들어온 외래신이다. 외래신이 칠성신을 덮어쓴 명칭이 제석굿이다. 말하자면 불교의 무교침탈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외국에 수출하려면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인 만큼 우리의 정체성을 살린다는 측면에서 '제석굿'을 '칠성굿'으로 고쳐야 할 것이다.
세째 칠성굿을 제석굿이라고 하더니, 한술 더 떠서 "불교적 색체가 짙다"고 사족을 달아 놓았다. 이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자막은 당장 지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첫댓글 님의 예리하고 섬세한 지적 말씀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냄니다. 평소 무교에 흥미 이상을 넘은 애착을 가진 사람으로써 우리나라의 무교가 큰빛을 보게 되는 그런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학수고대 합니다.수고 하심에 감사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