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다. 눈귀코혀몸뜻으로 제각각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하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식(識)이란 대상을 파악하여 아는 마음, 즉 분별심이다.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다고 했는데, 행 자체가 유위 조작으로써 대상을 선행과 악행으로 나누는 것이며, 바로 이렇게 나누는 분별 작용이 바로 식이다. 행이 일어나면서 식도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또 시간적으로 분별해 보면, 많은 행이 일어나 그 행이 쌓이면 행업이 되고, 비슷한 행업이 쌓여 업습(業習)이 되고, 그 업습은 쌓여서 삶에 장애를 가져오기에 업장(業障)이라고 부른다. 이 업장은 훗날 비슷한 다른 경험을 하게 될 때까지 영향을 미쳐, 그 경험을 보자마자 과거의 업습, 업장으로 곧장 걸러서 해석하고 인식하게 되니 그것이 업식(業識)이다.
악업이 많은 사람은 악한 업식이 많아서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악하게 생각하고 인식할 확률이 높아진다. 행과 식은 업식(業識)이라는 말처럼 하나처럼 활동하며 서로 도움을 주면서 업장을 키우고, 식의 증장을 가져온다.
그러면 식은 왜 소멸되어야 하는 것일까? 식이 대상을 분별해서 보기 때문에 모든 괴로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식의 소멸은 곧 분별심(分別心)이 무분별심으로 바뀌는 것으로, 무분별이란 대상을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무분별심은 곧 대평등심이다. 대상을 분별없이 평등하게 자비로써 바라보는 것이다.
앞의 세 지분을 정리해 보자. 12연기의 모든 지분은 소멸해야 할 허망한 의식이다. 무명이라는 어리석은 의식이 소멸되어 명(明)이라는 지혜로 바뀌고, 행 즉 유위행이라는 허망한 의식이 소멸되어 무위행으로 바뀌고, 식이라는 분별심이 소멸되고 무분별심으로 바뀔 때, 연이어 12연기의 나머지 모든 지분도 연쇄 소멸되어 결국 노병사라는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다는 구조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