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평균 34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그들의 무모한 시도를 막을 방법이 없다.
어쩌면 오진탁 교수가 운영하는 웰다잉 교육’에 기초한 자살 예방법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
시사주간지 시사 IN [55호] 2008년 10월 4일 오윤현 기자 하루 34명! 전국에서 개에 물린 사람이나 서울에서 실연당한 사람의 숫자가 아니다. 놀랍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지금도 한 시간에 한두 명이 어디에선가 농약병이나 수면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망자 수는 24만4874명. 그 중 1만217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률(10만명당 사망자 수) 순위에서도 자살은 약진에 약진을 거듭해서 마침내 지난해에 4위까지 치고 올라왔다(1위 암, 2위 뇌혈관 질환, 3위 심장 질환). 더 끔찍한 것은 증가율이다.
지난 20년간 매년 평균 5%씩 늘어나 ‘할복의 나라’ 일본은 물론, 자살률 세계 1위 헝가리마저 제쳤다. 물론 OECD 국가 중에서도 단연 1위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염세 비관·유전·치정·실연·정신이상 등이 직·간접 원인으로 작용했다. 빈부 격차의 심화, 실업률 증가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도 크게 거들었다. 문제는 원인을 아는데도 자살 증가율을 낮출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전우택 교수(연세대 의대·정신과학교실)와 서동우 원장(김포한별정신병원) 등이 지난해부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이다. 전 교수의 대책은 자살 예방을 위한 10대 국가 전략. “2010년까지 국민의 절반 이상이 자살은 예방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한다. 2010년까지 드라마와 뉴스 등 전체 대중매체 내용에서 자살 행위·정신 질환·약물 남용에 대해 올바르게 다루도록 한다” 등을 담고 있다.
서 원장은 “도박과 범죄 등 사회병리 감소를 통한 이기적 자살 방지, 개인이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건강한 자아 형성을 위한 가정과 학교의 노력” 등을 제안했다.
죽음에 대한 오해로 인한 자살, 예방 가능
그러나 이미 파악했겠지만, 이들 대책은 간접적이거나 미래 지향적이어서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오진탁 교수(한림대·생사학연구소)가 시험 중인 ‘자살 예방 교육 프로그램’은 어떨까. 오 교수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효과 만점’이다.
그가 막고자 하는 자살은 ‘자살과 죽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자살’. 그는 현대인이 이성 문제나 정신 질환 같은 개인적 이유, 실업률 증가와 빈부 격차 같은 사회구조적(사회병리 현상) 이유, 자살과 죽음에 대한 오해 탓에 자살한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 가운데 개인적·사회구조적 이유로 발생하는 자살은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발목을 잡기 어렵지만, 자살과 죽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자살은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떤 생사관을 갖느냐에 따라 죽음을 맞는 방식이 다른데, 존엄한 죽음을 알게 되면 쉽게 자살하지 못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말하는 존엄한 죽음이란 자살과는 다른, 품위 있고 여유와 희망이 있는 죽음(웰다잉)을 뜻한다. 물론 그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
16주 동안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내용은 다음과 같다.
△1~3주 ‘사회병리 현상으로서의 자살’(10가지 사회병리 현상과 생명 경시 풍조, 그리고 스트레스·우울증 등을 학습한다)
△4~6주 ‘자살해서는 안 되는 이유’(자살 시도의 후유증과 삶과 죽음의 참뜻에 대해 이해한다)
△7주 ‘자살 찬양 비판’ △8~11주 ‘죽음, 끝이 아니다’(임사 체험자 등의 증언을 통해 죽음 이후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12~13주 ‘동영상 활용, 죽음 체험과 명상’
△14~15주 ‘자살예방교육 수강생 의식변화’(자살과 죽음에 대한 학기 초와 ·학기 말 의식을 비교).
자살예방교육 수강하면 자살 충동 사라진다
교육 중간에 자살해서는 안 되는 까닭 등도 배우는데, 오 교수는 ‘자살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여섯 가지 꼽는다.
첫째, 자살은 더 큰 고통을 부른다.
둘째, 자살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최근 한 연예인의 자살에서 보듯, 자살하더라도 문제는 남고 그 문제는 유족을 괴롭힌다).
셋째, 자살은 끝이 아니다(자살은 가장 불행한 죽음의 방식인데, 이같은 죽음을 택한 사람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인간에겐는 자살할 권리가 없다(오히려 인간다운 삶의 권리와 존엄하게 죽을 권리만 있다).
다섯째,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남긴다(자살자의 가족이라 낙인 찍히고, 평생 죄책감과 미안함에 시달리는 것).
여섯째, 우리가 태어난 것은 영혼의 성숙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육신이 죽는다고 거기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영혼까지 사멸하는 것은 아니다).
2005년 1월에 개강한 이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은 550여 명. 강의는 학기 초에 수강생에게 네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①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
②자살하면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③자기 판단에 따라 자살해도 되는가
④죽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하는가”가 그것이다.
2005년 1학기부터 2007년 1학기에 수강한 학생 454명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학기 초에는 ①번 질문에 대해 “예”라고 답한 학생이 54%였는데, 학기 말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②번 질문에 대해 학기 초에는 47%의 학생이 “예”라고 답했지만, 학기말에는 “모르겠다”라는 응답자만 한 명 있었다.
③ ④번 질문에 대해서도 학기 초에는 “예”라는 응답이 각각 36%와 51%였는데, 학기 말에는 그 대답이 1%도 안 나왔다.
이성 문제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김 아무개군(일본학과)도 학기 초에는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학기 말 설문에서는 “더 이상 자살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자살용 유서도 쓰고 알약도 사 모은 적이 있다는 이 아무개양(국문학과)도 ‘내 판단에 따라 자살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학기 초에는 “그렇다”라고 대답했지만, 학기 말에는 전혀 다르게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칠 권리가 없듯이, 나 자신도 내 생명을 해칠 권리가 없다”라고 말한 것이다.
죽음을 간접 체험하면(위) 가장 비참한 죽음이라 할 수 있는 자살을 결코 선택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같은 극적 변화가 일어났을까. 오 교수는 “치밀한 커리큘럼 덕”이라고 말한다.
수강생은 강의실 강의와 사이버 강의로 무모한 자살 사례 분석, 자살 이후의 육체적·정신적 간접 체험, 유족의 고통을 관찰한다. 막바지에는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과 자살자의 모습을 비교해, 자살이 얼마나 무모하고 비참한 선택인지를 깨닫기도 한다.
우울증 탓에 늘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한 수강생은 ‘죽음, 끝이 아니다’를 수강하고 의미 있는 소감을 남겼다. “…강의를 들으며 왠지 잘 죽어야겠다, 죽음에도 가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서 준비해야겠다.”
오진탁 교수가 2년 전 여름(6~8월) 서울 강남에서 ‘웰다잉 체험교실’을 운영한 결과, 두 달도 안 되어 대다수 참가자가 자살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첫 시간에 참가자의 50%가 “그렇다”라고 응답했는데, 마지막 시간에는 단 한 명만이 같은 대답을 한 것이다(두 명은 모르겠다고 답함).
‘자살하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첫 시간에는 40%가 “그렇다”라고 대답했지만, 마지막 수업에서는 단 두 명만이 그 대답을 꺼냈다.
이같은 효과 덕에 요즘 오 교수는 학교·병원·군부대 등에 초대되어 ‘자살 예방 바이러스’를 기꺼이 전파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운영 중인 ‘웰다잉 교육’ 중심의 자살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사회복지 시설이나 군부대 그리고 교도소 등에 파급되기를 바란다. 효과가 검증되어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유족이나 주변 사람이 겪는 심리적 고통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살자 34명은 겉으로 드러난 숫자일 뿐이다. 드러나지 않는 예비 자살자는 그 두 배, 세 배가 넘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이 가정이나 조직에 균열이 생기고, 경제적 손실도 발생한다. 하루빨리 실효성 있는 자살 예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방황하는 사이, 지금도 한 시간에 한두 명이 어둠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시사 IN [55호] 2008년 10월 4일 오윤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