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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가 넘치는 베테랑 제작자 신철 대표가 로보트 태권V를 영화화한 <로보트 태권V>(가제)를 한창 준비 중이다.<은행나무 침대> <엽기적인 그녀> 등 가장 앞서가는 대중 영화를 만들었던 그가 이제 <로보트 태권V>로 영화 산업을 변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태권V 부활을 꿈꾸다
“한국에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기억되는 캐릭터가 있던가. 성인 95퍼센트, 어린이 81퍼센트가 아는 캐릭터가 있던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좋아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던가. 이 정도면 한국의 대표 캐릭터다.”
1999년, 김청기 감독은 ‘태권V를 구하고 싶다’며 신씨네를 찾아왔다. 그렇게 신철 대표와 태권V의 인연이 시작됐다. 만화가였던 아버지(신현성 화백) 덕분에 만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신철 대표는 픽사와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사를 만들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을 꿨다.
그래서 당시 한창 떠오르던 3D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볼까 했는데 스토리도 만만치 않았고 구현할 기술력도 문제였다. 150억 원 이상 들어갈 제작비 마련도 어려웠다. 다른 회사로 넘기자는 말도 나왔다. 그리고 신씨네에선 ‘핫한’ 다른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 중이었다.
2001년 <엽기적인 그녀>가 초대박이 났고, 신철 대표는 차기작으로 이소룡의 CG 부활 프로젝트 <드래곤 워리어>를 준비하겠다며 미국을 오갔다. 그 사이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 창고에서 우연히 <로보트 태권V> 듀프 네가 필름이 발견됐다.
신철 대표는 이듬해 2005년에 김청기 감독 및 제작자 유현목 감독으로부터 태권V 영구 공동 저작권자와 독점 사업권자 계약을 체결하는 한편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로보트 태권V> 복원 사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2006년 5월 (주)로보트태권브이란 이름으로 캐릭터 브랜드 회사를 론칭했다.
태권V ‘원 소스’를 가지고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물론 온라인 게임, 뮤지컬, 출판, 캐릭터 사업, 테마파크 등 ‘멀티 유스’ 사업을 준비하는 단계였다. 김태희 문근영 등의 소속사인 나무액터스는 태권V의 공식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회사로 선정됐다. 태권V는 배우들과 동등하게 관리를 받는 셀러브리티 위치가 됐다. 저작권과 초상권에 대한 탄탄한 경계망을 구축한 것이다. 완벽하게 복원된 1976년 작 <로보트 태권V>는 2007년 초에 극장에 걸렸다. 관객 수는 75만 명. 넥타이 부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결과였다. 재개봉은 태권V 신화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였다.
무술을 하는 로봇의 매력
“일본은 사무라이, 스시, 스모 등 문화적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태권도가 있다. 국가 브랜드로서 국가적으로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태권V에 대한 신철 대표의 믿음은 쉽게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아이디어에 영감을 준 중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미국에서 <드래곤 워리어> 공동 제작을 진행했던 윌리엄 타이틀러 프로듀서는 태권V 이야기를 듣고 ‘미국에서도 좋아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쥬만지>와 <폴라 익스프레스> 등 어린이 영화를 주로 제작했던 그는 ‘무술을 하는 로봇’이라는 특징에 끌렸다. <트랜스포머>의 성공으로 할리우드는 로봇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일본의 다양한 로봇들이 할리우드로 소환되던 시기였다. 그 중에 무술을 하는 로봇은 태권V가 유일했다.
프로듀서와 자연스럽게 공동제작 논의가 이뤄졌다. 아시아와 할리우드를 연결시켜 보자는 양쪽 프로듀서들의 의지가 담긴 결과였다. 그러나 태권V 첫 번째 영화는 무조건 한국 시장을 목표로 한다는 신철 대표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2006년 미디어다음 ‘나도 만화가’ 코너에 4부작으로 연재됐던 <브이>를 발견하면서 실사 영화 계획이 구체화됐다. 태권V 조종사 훈이의 30년 후 인생을 거칠게 그린 이 웹툰은 실사 영화 <로봇 태권V>(이하 <태권V>) 스토리를 만드는 초석이 됐다.
좀 더 구체적인 스토리텔링 연구를 위해 <브이>의 작가 제피가루와 함께 장편 웹툰을 기획, 2007년 1월부터 10월까지 연재를 했고 독자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원작의 에필로그에 가까웠던 웹툰에 1976년 이후 한국 역사에 대한 비판 의식이 더해지면서 색다른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이야기가 변형되고 변주돼도 태권V에 대한 강한 신뢰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태권V를 사랑했다. 더 이상 태권V는 추억의 아이콘이 아니었다. 시대를 초월한 대한민국의 대표 로봇이었다.
독창적인 이야기, 독창적인 디자인
“일본 과학자들의 꿈이 아톰을 만드는 것이다. 콘텐츠의 꿈이 기술을 추동한다.”
실사 영화 기획을 결정하면서 신철 대표의 행보가 분주해졌다. 감독을 논의하면서는 <세븐 데이즈>의 원신연 감독이 물망에 올랐다. 연출에 대한 재능 외에 무술감독 출신이라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신철 대표는 원신연 감독을 만나 한 시간 동안 태권V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감독은 난데없는 로봇 영화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지만 계속 태권V가 눈에 밟혔고, ‘다른 사람이 하면 배가 아플 것 같아’ 연출을 수락했다. 시나리오도 직접 완성한다는 조건이었다.
컴퓨터 그래픽도 큰 숙제였다. 디지털 작업 과정에서 방향을 잡고 이끌어갈 사람이 필요했다. 신철 대표는 <구미호> 때 시각효과 팀원 중 한 명이었고 지금은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박관우 실장을 ‘시각효과 전문 프로듀서’로 불러들였다. 그는 “기술적으로 한국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뭔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시각효과 업체들을 대상으로 기술력 테스트를 한 결과, 국내에서 도전해 볼 만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모두 일곱 개 업체로 컨소시엄을 꾸려 각 업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작업하는 방향이다.
박관우 프로듀서가 판단하기에 현재 한국은 배경을 만드는 기술에 있어선 할리우드 수준이다. 문제는 캐릭터의 움직임 표현이다. 태권V를 둘러싼 액션이 주로 무너지고 부서지는 표현들인데, 이는 아직 한국 업체들이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지점이다. 거대 액션 신에 GIS(지리정보시스템)를 접목하는 등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신철 대표의 말에 따르면 <태권V>의 시각효과 작업은 “<괴물>의 열 배 정도는 복잡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작업은 태권V의 메카닉 디자인이다. 마징가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과거를 인정하는 동시에, 그 시대와는 다른 독창적인 디자인을 창조해 내야만 한다. 진행되고 있는 시나리오에 따르면 영화에서 태권V는 구형과 신형 두 종류가 등장할 예정이다. 애니메이션 디자인을 모티프로 한다 해도 실사 영화에선 과학적으로 더 정교해져야 현실감을 얻는다. 메카닉 디자인 마인드가 전무후무한 한국에선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다.
좀 더 부드럽게 헤딩하고자 <트랜스포머> 메카닉 디자이너에게 원본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맡겨보기도 했다. 동양이 로봇을 인간에 가깝게 보는 데 비해 서양 디자이너는 훨씬 기계에 가까운 로봇을 그려왔다. 두 지점을 절충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이 이어졌다. 아직도 디자인은 개발 중이고, 신철 대표는 개인적으로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하며 완성 버전을 개봉 전까지 공개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사 영화 제작비는 150억 원. 개봉은 2010년 여름 예정이다.
태권V 영화는 시작일 뿐
“좀 더 생각을 확장하면 돈이 될 수 있는 게 많다. 영화가 갖고 있는 정서적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원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
태권V 프로젝트에 영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신철 대표의 궁극의 목표는 영화가 아니다. 그는 영화 콘텐츠를 확장해 더 많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엽기적인 그녀>는 아시아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뒀고 중국과 일본 양국에서 히트한 유일한 영화가 됐지만, 그게 전부였다.
리메이크 판권을 산 할리우드는 아이디어를 변형해 별다른 어려움 없이 <마이 쌔시 걸>을 만들었다. <엽기적인 그녀>를 일본에 배급한 어뮤즈 엔터테인먼트는 수익으로 빌딩을 세웠다. 중국에서 불법으로 팔린 DVD 추정치는 1억 장에서 3억 장. 돈으로 환산하면 70억~80억 수준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건 ‘흥행작 남발한 신철 대표가 빚이 있다’는 충무로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그 반성이 태권V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로 이어졌다. 신철 대표는 영화 기획에서 브랜드 기획으로 발상을 전환했다. 미키마우스 같은 브랜드가 얼마나 큰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 주목했다. “테마파크, 출판, 공연, 완구, 키덜트, 패션, 디지털 컨버전스 등 중심을 잘 세워놓고 흥행 파워를 연결할 수 있다. 100억 원 예산 애니메이션이 발상을 바꾸니 3조 원 이상의 비즈니스가 됐다.” ‘브이 게임즈’는 태권V 온라인 게임을 개발해 빠르면 올해 여름 오프 베타 버전을 오픈한다.
영화 개봉 즈음인 2010년 정식 오픈이 목표다. 그리고 테마파크가 있다. 현재 지식경제부가 정한 미래선도산업 중 하나가 ‘로봇’이다. 지난해 말, 로봇에 대한 관심과 수요를 늘리기 위한 프로젝트인 ‘로봇랜드’ 최종 사업자로 인천광역시와 마산시가 선정됐다. 이 중 인천광역시 로봇랜드에 태권V가 메인 캐릭터로 들어간다. 111층 높이에 ‘태권V 타워’가 만들어져 한국 로봇의 상징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다.
그동안 태권V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다양한 노력도 계속됐다. 국기원은 과거 ‘깡패용 무술’에서 ‘어린이 필수 체육’으로 태권도의 위상을 변화시켜 준 태권V에게 4단 명예 단증을 수여했다. 신철 대표는 태권도 품새를 완벽하게 저장한 태권V 로봇을 만들어 전 세계로 수출하겠다는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다. 작년에는 유엔 난민기구 UNHCR의 한국 친선 사절로 임명됐다.
“한국의 자산을 가지고 한국 시장만 바라볼 순 없다. 대한민국은 인류를 사랑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 태권V는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동시에 인류의 올바른 진화에 기여하는 문화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실사 영화 중 한 장면에선 태권V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시점이 들어갈 예정이다. 한국 영화에서 이런 범지구적인 시선이 나온 건 처음이다. 항상 지구를 미국과 일본이 주로 지켜왔지만 2010년에는 한국 로봇이 지구를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태권V 세대가 만드는 미래
“우리에겐 세대를 연결해 줄 문화적 아이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태권V 같은 캐릭터야말로 블루오션이 아닌가.”
현재 실사 영화를 만드는 현장 인력들은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 시리즈를 극장에서 보고 자란 세대들이다. 태권V 때문에 한때 초등학생 장래 희망 1순위가 과학자였고, 동네 태권도 체육관은 꼬마들로 넘쳐났다. 원신연 감독도 그 시기를 겪었고, 박관우 시각효과 프로듀서나 CG팀 멤버들 모두 그렇다. 이들은 모두 태권V 부활에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로망이 실현된 셈이랄까. 자신들이 태권V를 보며 품었던 꿈과 희망을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는 어른의 입장이 담겨 있다.
그래서 종종 원신연 감독은 신철 대표에게 ‘목숨을 바치겠다’는 문자를 보내곤 한다. 마징가의 영향을 받고 만들어진 로봇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 시절 추억마저 바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지나온 로봇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토대로 태권V 디자인을 재구성하는 게 현실적이다.신철 대표가 <태권V>에 매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들에게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슬로건인 ‘꿈과 희망의 비밀기지’엔 아버지의 진심이 담겨 있다. 가족을 겨냥한 한국 영화가 거의 없는 가운데, 아이들은 디즈니 캐릭터를 보고 자라고 반다이 비주얼의 장난감을 갖고 논다.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 세대들도 하나둘 아버지가 됐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태권V를 맞이하라
“한국 영화사의 넥스트 패러다임을 찾는 영화사가 되겠다. 20년간 이 일을 해온 선배가 할 일이다.”
1999년부터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서서히 새로운 태권V가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역시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태권V가 다시 나올 때가 됐나 보다. 10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이제야 진행이 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때가 돼야 시집을 갈 수 있는 거지. 악을 쓴다고 가지나.(웃음) 로봇랜드도 국가에서 실행하고 문대성 선수가 IOC 위원이 돼서 위원장에게 태권V 피겨 선물도 하고. 나올 때가 됐다.”
때를 알아보는 건 신철 대표 전문이다. 신씨네 창립 작품 <미스터 맘마>가 흥행에 성공했고, ‘신씨네 컴퓨터 그래픽스’를 만들고 <구미호>를 제작했다. <결혼이야기 2> <101번째 프로포즈> 등 망한 영화도 있지만 <은행나무 침대> <편지> <약속> 등 흥행사에 획을 그은 영화들도 그의 손을 거쳤다. 실험작 <거짓말> 때는 음란물 배포 혐의로 경찰서도 들락거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 영화 1세대 프로듀서로서 <태권V>를 통해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한국 영화의 넥스트 패러다임을 찾는 것”이다.
신철 대표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커다란 시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선배로서 다음 세대가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돕겠다는 책임감도 갖고 있다. “경제를 만드는 그릇을 빨리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무가 현재 그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태권V가 지구뿐 아니라 한국 영화 산업도 구할 수 있을까? 용의주도한 신철 대표는 이제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는다. ‘하면 된다’만 믿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