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17(주일) 행 22:30~23:11 “두려워말고 담대하라” 예산수정교회 이몽용 목사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마음 속에는 말하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관계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인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심지어 믿음의 사람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보면 아주 강한 사람처럼 생각합니다. 감옥에서도 찬양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복음을 전하고,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바울 역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담대하라.” 이 말씀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흔들리는 사람에게, 지쳐 있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왜 바울은 다시 담대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오늘 우리는 왜 다시 담대할 수 있을까요?
1. 주님이 네 곁에 계시니 담대하라(22:30~23:5)
오늘 본문은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의 최고 종교기관입니다. 그러나 오늘 그 공회는 진리를 찾는 자리라기보다 분노와 감정으로 가득한 자리처럼 보입니다. 그 자리에서 바울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23:1) 그러자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령합니다. 재판도 시작하기 전에 폭력을 사용합니다. 율법을 판단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율법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입장에서는 자기 민족에게 버림받고, 이해받지 못하고,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억울한 상황입니다. 23:10을 보면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논쟁이 아니고, 실제 생명의 위협입니다. 아마 바울 안에는 “나는 이제 끝나는 것인가?” “나는 혼자가 되었구나.” 라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밤,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두려움 속으로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환경이 변해야 담대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확신이 사람을 담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다윗도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곁에 있으니 담대하라” 적용) 지금 나는 어떤 외로움이나 두려움 속에서 “혼자”라고 느끼고 있습니까?
2. 주님이 네 믿음을 아시니 담대하라(23:6~10).
공회 안에는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부활 문제로 서로 갈라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말합니다.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23:6), 이 말이 떨어지자 공회 안은 순식간에 분열됩니다. 바리새인은 부활을 믿었고, 사두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회는 진리를 찾지 못하고 서로 싸우기 시작합니다. 아마 바울은 큰 낙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하던 자기 민족의 영적 현실이 완전히 무너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울은 끝까지 “부활”을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오해했지만, 주님은 바울 안에 있는 믿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이 말은 “나는 네 믿음을 안다.” “나는 네 중심을 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지만 때때로 낙심합니다. 그러면 마음 속에 “내 믿음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믿음을 안다.” 사람은 몰라도 주님은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담대할 수 있습니다. 적용) 사람은 몰라줘도 주님께서 알고 계신 내 믿음의 싸움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의 계획이 남아 있으니 담대하라(23:11).
그 날 밤, 주님은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이 말씀은 바울의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지금 상황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곧이어 40명이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합니다.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바울은 실제 죽음의 공포 속에 있습니다. 아마 바울 안에는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라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이 말은 “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건강은 어떻게 될까, 자녀는 어떻게 될까, 경제는 어떻게 될까, 노후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늘 “앞으로” 때문에 불안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는 미래의 문제로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적용) 내가 끝난 것처럼 느끼는 문제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직 이루실 일이 남아 있다고 믿을 수 있습니까?
결 론
오늘 본문 속 바울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울 곁에 계셨고, 바울의 믿음을 알고 계셨고, 바울의 미래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담대하라.” 왜냐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내가 네 믿음을 알고 있으며, 내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경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환경은 흔들려도 주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두려움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담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