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 췌장, 담관 등이 서로 연결된 통합 장기 오가노이드(organoid)를 세계 처음으로 성장시키는데 성공했다.
미국 신시내티 아동병원 다카노리 다카베(Takanori Takebe) 박사팀은 5년간의 연구 끝에 간∙췌장 담관이 통합된 장기유사체를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둠으로써 인체 발달 연구와 정밀 및 이식의학 등의 응용분야에 새 전기를 마련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25일자에 발표됐다. <관련 동영상>
오가노이드란 줄기세포를 3차원적으로 배양하거나 재조합해 만든 미니 유사 장기로, 실제 장기에 있는 여러 유형의 세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인체 대상 연구를 위한 정교한 도구를 제공해, 인체 조직들이 어떻게 서로 협동해서 작동하는지를 탐구할 수 있다.
신시내티 어린이병원 오가노이드 전문가들은 이미 영양분을 흡수하는 융모 특성을 지닌 장과, 음식을 소화하는 위산 생성 위(胃) 오가노이드 등 여러 오가노이드들을 성장시킨 바 있다.
장 오가노이드가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는 주요 순간을 촬영한 초점 공유 현미경 이미지. 혼합된 세포 형태의 두 ‘회전 타원체’로부터 간과 췌장 및 담도관이 연결되는 초기 형성 단계를 나타내는 융합된 원시-장(proto-gut)으로의 전환 과정을 보여준다. ⓒ Cincinnati Children’s
이번 연구의 주요 성과는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약물 연구의 필요성을 줄이고, 정밀의학 개념을 선명하게 가속화하는 한편, 앞으로 실험실에서 이식 가능한 조직을 성장시킬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다케베 박사는 “연결성(connectivity)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이번에 우리는 기관 형성 이전 단계의 조직 생성 방법을 디자인함으로써 조직들이 자연적으로 발달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5년간의 탐구 끝에 목표 도달
다카베 박사는 이전 연구에서 간 오가노이드의 초기 단계 형태인 간의 ‘싹(buds)’을 대량 생성하는 방법을 시연했었다. 또 일부 비만환자에게서 간 손상과 염증을 일으키는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을 포함해 질병 상태를 반영하는 간 오가노이드를 성장시킨 바 있다.
다카베 박사는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2018년 일본학술진흥회상을 수상했고, 디스커버지는 2013년에 그의 업적을 100대 과학적 성취 중 5위로 선정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의 업적 가운데 이번 연구가 가장 파급력이 높은 연구라고 강조했다. 다카베 박사는 “이전에 장기 분화에서 오가노이드의
연결성에 대해 언급했었는데, 이런 발달이 일어나도록 배양 시스템을 조정하는 데 5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배아 발달 아주 초기에 형성된 각 구체의 세포가 서로 만나 변형되기 시작하는 모습. 동영상 캡처. ⓒ Cincinnati Children’s
세 가지 원시 장기(proto-organs)는 함께 성장
연구 과정에서 제일 어려웠던 부분은 가장 초기 단계였다. 다케베 박사는 논문 제1저자인 히로유키 고이케(Hiroyuki Koike) 박사(현재 일본의과대 재직)와 함께 하루 몇 시간씩 연구에 매달려 이 과정을 완수했다.
이들은 인체 피부세포에서 출발해 이 세포들을 원시 줄기세포로 되돌렸다. 이어 해당 줄기세포들이 앞 창자와 중간 창자라고 적당히 이름 붙인 두 개의 매우 초기 단계의 ‘회전 타원체(spheroids)’를 형성하도록 유도, 자극했다.
이 세포 구체들은 배아 발달 아주 초기에 형성되었다. 인체에서는 임신 첫 달 말기에, 그리고 쥐에서는 임신 단 8.5일 만에 만들어졌다. 이 구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장기로 융합, 변형돼 마침내 소화관이 되었다.
실험실에서 이런 구체를 키우는 작업은 적시에 올바른 성분을 사용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작업을 거쳐 구체들이 충분히 성숙되면 다음 단계는 좀 더 쉽다.
일단 구체들을 특수 실험실 접시에 나란히 위치시킨다. 이어 오가노이드 성장을 돕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겔에 이 세포들을 현탁시킨 다음, 조심스럽게 혼합한 성장 매체군을 덮은 얇은 막 상부 위에 세포들을 올려놓는다.
다카베 박사는 “이 지점에서 세포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고 설명했다.
오가노이드 배양 69일째에 간과 췌장, 담관 오가노이드가 형성된 모습을 나타낸 모형. 동영상 캡처. ⓒ Cincinnati Children’s
연구팀은 단순히 두 구체 사이의 경계에서 각 구체의 세포가 서로 만나 변형되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세포들은 스스로 특성화된 세포로 전환됐고, 세포에 부착한 화학적 표지 덕분에 색이 변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융합되고 변화한 구체들은 곧 가지로 뻗어나가 특정 장기에 속하는 새로운 세포 그룹으로 이어졌다. 이 세포들은 70일 동안에 걸쳐 더욱 정제되고 뚜렷한 세포 타입으로 계속 증식했다. 마침내 미니 오가노이드는 마치 음식을 소화하고 여과시키는 것처럼 담즙산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고이케 박사는 “이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우리는 이 과정에 성분을 더 보태거나 다른 요소들을 첨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며, “이 생물학적 과정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통합 장기 시스템, 획기적 연구 기회 제공
신시내티 아동병원 ‘줄기세포 및 오가노이드 의학센터(CuSTOM)’장인 아론 존(Aaron Zorn) 박사는 이번의 발전적 연구가 여러 가지로 유용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존 박사는 “이번 연구가 획기적인 점은 통합된 장기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라며, “연구 관점에서 이는 정상적인 인간 발달을 연구할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다카베 박사는 장기 이식에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장기 조직의 크기를 크게 성장시키겠다는 희망을 오랫동안 품어온 만큼 현재의 한정된 수준을 넘어 연구에 더욱 매진할 생각이다.
이들 연구팀은 이미 혈관과 결합조직 등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세포주와 함께 면역세포들을 추가하는 방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간 췌장 담도 통합 오가노이드에서 담즙이 흐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동영상 캡처. ⓒ Cincinnati Children’s
“향후 간 환자들에게 평생 치료 제공 가능”
이번 성과는 연구나 진단 목적으로는 더욱 즉각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밀의학 분야에서 의사들은 심각한 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정확한 약 복용량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용량 등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을 정확하게 결정하기 위해 유전 데이터와 다른 정보들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많은 장기 가운데 살아있는 장(gut)은 과학자들이 임신 중에 유전자 변이와 다른 요소들이 어떻게 장기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아기가 태어난 뒤 병적 상태를 치료할 수 있는 더 나은 표적 약물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정확히 연구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한다.
일반적인(generic) 인체 오가노이드를 연결한 시스템(connected system)은 별도로 나눠져 있는 세 개의 오가노이드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환자를 위한 일련의 장(gut) 오가노이드 세트를 성장시키면 더욱 정교한 진단과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
다카베 박사는 “현재의 간 재생의학 접근법은 담관 연결이 안 돼 난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고, “우리는 다중 오가노이드 이식 시스템으로 이 문제를 풀 준비를 갖춰 언젠가는 간 질환 환자들에게 평생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실제 담도폐쇄증을 일으키는 유전자(HES1)가 결핍된 장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이 장 오가노이드가 해당 유전자 결여로 어떤 피해를 입는지를 입증했다.
따라서 만약 과학자들이 이 유전자 변이를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신생아에게 힘든 간 이식을 하지 않고 담도 기능을 보존할 수 있는 치료법이나 세포 이식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