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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3월 2일 월요일
[(자)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다니엘 예언자는, 주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고백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9,4ㄴ-10
4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5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6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7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8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도신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분께서는 당신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느님의 협력자로서 그분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자비와 용서’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사제가 죄를 용서할 때,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권능보다 더 큰 권능을 사용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때 베푸신 그 사랑을 지금도 자비와 용서로써 계속 흘려보내고 계십니다.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 전해 온 그 사랑을 기억한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 자비로운 사람”(루카 6,36)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서로 용서하고 자선을 베풀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자비와 용서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상적인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행위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우리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내미는 용서의 손길은, 하느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생명의 숨결처럼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전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함께하시고 싶지 않나요?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생명을 이웃에게 건네시고 싶지 않나요? 오늘부터 자비로운 마음으로 먼저 용서하고, 먼저 베푸는 삶을 시작해 봅시다.(김재형 베드로 신부)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요즘 창세기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성조들의 이야기에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의 굴곡진 인생 스토리에서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장자권을 빼앗고 하란으로 달아났던 야곱 가족과 일행이 형 에사우를 만나는 장면은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머나먼 타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야곱은 이제 더 이상 어머니 치마폭에 싸여 놀던 철부지 소년이 아니었습니다. 탐욕스럽고 변덕스러운 장인 라반 아래서 뼈 빠지게 일하던 그의 마음 안에는 마치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가 자리 잡고 있었으니, 형 에사우였습니다.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서 철없던 시절 형에게 저질렀던 실수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야뽁 건널목을 건너는데, 에사우를 만나기 전, 진정성 있는 용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실시했습니다.
야곱은 형에게 심부름꾼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라고 지시합니다. “나리의 종인 야곱이 이렇게 아룁니다.” 야곱은 완전히 자신을 바닥까지 낮춥니다. 형에게 동생이 아니라 종으로라도 받아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야곱은 형에게 줄 선물을 엄청나게 준비했습니다. 그 숫자가 어마어마합니다. 암 염소 이백 마리와 숫염소 스무 마리, 암 양 이백 마리와 숫양 스무 마리, 어미 낙타 서른 마리와 수나귀 열 마리. 큰 목장 하나를 만들 정도의 가축입니다.
뿐만아니라 야곱은 야뽁 건널목 건너편에 에사우가 무장한 장정 400명과 함께 대기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밤을 지새우며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 형의 손에서, 에사우의 손에서 부디 저를 구해주십시오. 그가 들이닥쳐서 어미 자식 할 것 없이 저희 모두를 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보십시오. 에사우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아 달아난 야곱은 오랜 객지 생활을 하며 대가족을 이루며 어른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의 인품, 그의 신앙도 크게 성장한 것입니다.
형을 만나기 직전 야곱의 모습이 눈물겹습니다. 형 에사우가 눈앞에 나타나자 그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면서 7번이나 땅에 엎드려 큰 절을 했습니다.
에사오는 동생의 진정성 어린 사과에 냉랭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풀립니다. 원망과 저주가 사라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 동생을 향한 측은지심이 저절로 올라옵니다.
마침내 에사우가 야곱에게 달려와서 그를 껴안았습니다. 동생의 목을 끌어안고 입맞추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함께 한참을 울었습니다.
보십시오. 야곱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처절히 반성했습니다. 그의 마음 안에는 빨리 용서를 청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마음의 표현이 엄청난 선물 공세요, 한없는 자기 낮춤이었습니다.
참된 용서와 화해는 거저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진정 어린 반성과 지속적인 자기 성찰과 용서를 청하려는 구체적인 노력, 그리고 목숨 건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야곱은 형 에사오를 향해 주인이라고 칭합니다. 형을 주님, 곧 하느님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야곱과 에사우는 서로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미워하면 늑대처럼, 용서하면 강아지처럼
전삼용 요셉 신부님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사순 제 2주간 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뼈아픈 숙제를 하나 내주십니다. "너희 아버지가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 6,36) 그리고 이어서 남을 심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속에서 열불이 납니다. "아니, 주님! 그 인간이 저한테 한 짓을 아시면서 어떻게 용서하라고 하십니까?"
사실 우리가 용서를 못 하는 이유는 도덕성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겁이 나서 그렇습니다. 저 인간을 용서했다가는 내가 손해 볼 것 같고, 또 무시당할 것 같은 생존의 두려움이 우리를 옹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 한번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여러분, 집에서 키우는 개와 들판을 뛰어다니는 늑대 중 누가 더 자유로울까요? 척 보기엔 늑대가 자유로워 보이죠. 울타리도 없고, 목줄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생물학적인 수치를 보면 정반대입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연구가 짐 대처의 기록 『늑대의 지혜』를 보면, 무리의 대장인 알파 늑대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가장 높습니다. 왜일까요? 잠시도 쉴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냥에 실패하면 굶어 죽어야 하고, 다른 영역의 늑대에게 물려 죽을까 봐 잠잘 때도 한쪽 눈을 뜨고 잡니다. 늑대는 자유로운 게 아니라 생존의 공포에 사로잡힌 노예일 뿐입니다.
반면, 주인 있는 개는 어떻습니까?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지만, 이 녀석들은 세상 편합니다. 먹이 걱정 없고, 천적이 나타나면 주인이 몽둥이 들고 나와서 지켜줍니다. 개가 누리는 그 평화와 자유는 주인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영성 생활도 똑같습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보호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미워한다는 건, 하느님께 이렇게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 제 일에 참견 마세요. 제 원수는 제가 갚겠습니다. 저는 제 방식대로 제 자존심 지키며 살겠습니다!" 그렇게 선언하는 순간, 하느님은 존중의 의미로 뒤로 물러나십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그때부터 여러분은 광야의 늑대처럼 홀로 서야 합니다. 내 자존심 내가 지켜야 하고, 내 이익 내가 챙겨야 하니 잠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미움이라는 건 결국 하느님의 보호를 걷어차고 스스로 독박을 쓰는 미련한 짓입니다. 자신의 형제를 죽인 자녀를 받아들여 보호해주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공포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은 그 해답이 용서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만이 우리 생존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로 얻는 이 '하느님의 보호'가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는 실화가 있습니다. 바로 성녀 마리아 고레티를 살해했던 알렉산드로 세레넬리의 이야기입니다.
알렉산드로는 감옥에 갇힌 초기 3년 동안 그야말로 '미친 늑대'와 같았습니다. 자신을 단죄하는 세상을 저주했고, 면회 온 주교님께 침을 뱉으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었고, 그는 차가운 독방에서 분노와 공포에 질려 홀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늑대의 비참한 모습 그대로였죠.
그런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꿈속에서 마리아 고레티가 나타나 백합꽃을 건네며 그를 용서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순간 알렉산드로를 옭아매던 증오의 사슬이 풀렸습니다. 그가 먼저 용서를 받아들이고 자신도 세상을 용서하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27년의 형기를 마치고 나온 이 살인범을 세상은 외면했지만, 교회가 그를 품었습니다.
마리아 고레티의 어머니는 그를 아들로 받아들였고, 카푸친 수도회는 그를 수도원의 정원사로 받아들여 평생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나를 용서했고, 교회가 나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로는 증오 속에 홀로 서 있을 때는 가장 비참한 죄수였지만, 용서라는 관문을 통과해 하느님의 보호 아래 들어갔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늑대처럼 홀로 서서 평생 공포 속에 살 것인가, 아니면 용서라는 관문을 통과해서 하느님의 따뜻한 안방으로 들어갈 것인가. 용서하는 순간 우리는 하느님의 보호라는 보험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지키고 있는 집 안에서 아기는 더 이상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짜 자유이고 평화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교부의 말씀처럼, 우리 마음이 주님 안에서 쉬기까지는 결코 평온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의 새장을 열고 미움이라는 밧줄을 끊어버립시다. 하느님의 보호라는 거대한 바다에 나를 내던질 때, 비로소 우리는 두려움 없는 참된 생명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베푼 자비의 되만큼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아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정태현 신부님의 ‘성서 입문’을 읽고, 요즘은 이냐시오 영성을 소개하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하기’를 읽고 있습니다. 제가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 수련’을 중심으로 신학생들의 30일 피정에 함께 했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습니다. 저자는 각 수도회의 영성을 알려주는 예화를 이렇게 들려주었습니다. “프란치스칸 사제, 도미니칸 사제, 예수회 사제가 함께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미사 중에 전기가 나갔습니다. 프란치스칸 사제는 전기가 나간 것을 두고 가난한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도미니칸 사제는 빛의 소중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예수회 신부님은 지하로 내려가서 퓨즈를 교체해서 다시 불이 들어오게 했습니다.” 영성은 다리와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다리는 나무로 만들었고, 어떤 다리는 강철로 만들었고, 어떤 다리는 시멘트로 만들었습니다. 어떤 다리는 아치교로 만들었고, 어떤 다리는 현수교로 만들었고, 어떤 다리는 사장교로 만들었습니다. 다리의 재질과 기능은 다를지라도 목적은 사람이나 차량의 이동을 돕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성의 목적도 신앙인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지난 1월 25일 주일입니다. 금요일부터 눈이 내렸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평일이면 성당을 닫으면 되지만 주일이라서 고민이 있었습니다. 교구에 문의했습니다. 다른 본당에서도 교구에 문의했던 것 같습니다. 교구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주일미사 의무에 관한 면제 권한은 교구장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교구는 기상악화에 따른 주일미사 불참에 대해서는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의무를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올 수 있는 사람은 주일미사에 참례하라고 했습니다. 기상악화로 주일미사를 빠지는 것은 의무에서 면제가 되지만 올 수 있는 사람은 와도 된다는 공문이었습니다. 저와 부주임 신부님은 교구의 지침대로 성당 문을 열었습니다. 차량으로 갈 수 없어서 사제관에서 걸어갔습니다. 부주임 신부님과 저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4번의 주일미사가 있었습니다. 15명, 12명, 30명, 7명이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평소 주일미사에는 800명이 넘게 왔습니다. 적은 인원이지만 함께 미사를 봉헌했고,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기상악화에도 성당에 오신 분들을 위해서 주일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미사 역시 교우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다리였습니다.
‘흑기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 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술자리에서 간혹 흑기사를 볼 때가 있습니다. 술이 좀 과했거나,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부득이하게 술을 마셔야 할 때에 대신 술을 마셔주는 우정(?)을 보여 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술 상무’라는 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거래처와 회식이 있을 때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술도 곧잘 마시면서 거래를 성사하게 만드는 직원이 있습니다. 본인이 원하지는 않지만, 친구를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들입니다. 눈 내린 길을 조심조심 운전하고 와서 주일미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분도 흑기사입니다. 지상 최대의 흑기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앉은뱅이는 일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나병환자는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이 아니라 몸소 행동으로 흑기사가 되어 주셨습니다. 돌에 맞아서 죽어야 했던 여인의 죄를 묻지 않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누가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라고 율법 학자에게 물었습니다. 율법 학자는 강도당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흑기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오늘의 성인
성녀 안젤라(십자가의)(Angela of the Cross)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연도 : 1846-1932년
같은이름 : 곤잘레스, 마리아 데 로스 안젤레스 게레로 곤살레스, 안젤리따, 안젤리타, 앙헬라, 앤젤라, 엔젤라
십자가의 성녀 안젤라는 1846년 1월 30일 에스퍄냐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의 중심지인 세비야(Sevilla)에서 가난하지만 신심 깊은 가정의 딸로 태어나 천사들의 마리아 게레로 곤살레스(Maria of the Angels Guerrero Gonzalez)라는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미래의 성녀인 그녀는 집안에서 안젤리타(Angelita)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삼위일체 수도회에서 요리사로서 일했고, 어머니 역시 세탁실에서 일했다. 그들은 1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자녀는 6명뿐이었다.
안젤리타는 신심 깊은 부모의 가르침과 모범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고 어린 나이부터 묵주기도 바치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종종 어머니가 본당에서 제대를 정리하는 동안 동정 성모의 성화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견되곤 했다.
5월 성모 성월이 되면 그녀의 집에는 동정 성모께 바쳐진 간단한 제대가 차려졌고, 그녀의 가족들은 묵주기도를 암송하며 성모님께 특별한 시간을 봉헌했다. 안젤리타는 8살 때 첫 영성체를 하고 이듬해에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녀는 정규 교육을 조금밖에 받지 못하고 어린 소녀 때부터 신발가게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인이자 신발 수선의 스승인 안토니아 말도나도(Antonia Maldonado)는 신심이 깊은 여성이었다.
매일 종업원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성인들의 삶을 읽었다. 성당 참사회 회원인 세비야의 호세 토레스 파딜랴(Hose Torres Padilla) 신부는 안토니아의 영적 지도자로서 ‘성인을 만드는 분’이란 명성을 얻고 있었다. 안젤리타는 16살 때 토레스 신부를 만나 그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수도회에 들어가고 싶은 안젤리타의 소망은 커져갔고, 19살 때 산타크루스(Santa Cruz)에 있는 맨발의 카르멜 수녀회에 입회하고자 했지만 병약한 몸 때문에 거절을 당했다. 대신 그녀는 토레스 신부의 권고를 따라 콜레라에 걸린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콜레라 전염병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번졌기 때문이다.
1868년 안젤리타는 세비야에 있는 애덕의 수녀회에 다시 한 번 입회를 신청했고, 여전히 건강이 좋지는 않았지만 허락을 받았다. 애덕의 수녀회 수녀들은 그녀의 건강을 위해 그녀를 쿠엥카(Cuenca)와 발렌시아(Valencia)로 보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수련기간 중에 다시 애덕의 수녀회를 나와야 했고, 집으로 돌아가 신발가게에서 계속 일을 했다.
토레스 신부는 안젤리타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따로 있음을 믿고 있었지만 그 계획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었다. 안젤리타는 1871년 11월 1일 십자가 아래서 복음 전도자로서 일생을 살겠다는 개인적인 허원을 발했다. 그리고 1873년 환시를 통해 새로운 사명을 시작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는 기도 중에 예수님이 매달려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는 십자가가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즉시 하느님께서 그 빈 십자가에 자신이 매달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 또한 그들과 함께 가난하게 되기를 요구하고 계심을 이해하게 되었다.
안젤리타는 토레스 신부의 뜻에 순명하며 신발가게에서 계속 일하면서 자유 시간에는 상세한 영적 일기를 쓰는데 시간을 쏟아 부었다. 이는 하느님의 부르심대로 장차 그녀가 살아야 할 삶의 방법과 이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875년 8월 2일 세 명의 다른 여성들이 안젤리타와 합류했다.
그들은 세비야에 집을 하나 빌려 함께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그날부터 그들은 밤낮으로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돕기 시작했다. 십자가의 안젤라라는 수도명을 얻은 안젤리타 원장수녀의 지도하에 십자가의 수녀회 수녀들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 있지 않을 때는 확실히 세상을 떠나 관상 생활에 전념했다.
그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기도와 침묵을 엄격히 지켰다. 그러나 그들은 밖으로 나갈 필요성이 있거나 가난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봐야 할 때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십자가의 안젤라 원장수녀는 다른 수녀들을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돕고 사랑하기 위해 온 천사처럼 보았다.
1877년 두 번째 십자가의 수녀회 공동체가 세비야 주(洲)의 우트레라(Utrera)에 설립되었고, 다음해에 야야몬테(Ayamonte)에도 하나 더 설립되었다. 하지만 그 해에 토레스 신부가 선종하면서 호세 마리아 알바레스 신부가 수녀회의 두 번째 영적 지도신부로 임명되었다. 십자가의 안젤라 원장수녀가 살아있는 동안 다른 23개의 수녀회 공동체가 설립되었고, 수녀들은 애덕과 가난과 겸손의 모범으로 모든 사람들 돌보고 감화시켜 나갔다. 사실 십자가의 안젤라 수녀는 모든 이들에게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로 알려졌다.
십자가의 안젤라 원장수녀는 1932년 3월 2일 세비야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982년 11월 5일 세비야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3년 5월 4일 마드리드의 콜론(Colon) 광장에서 100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른 네 명의 복자들과 함께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녀는 안젤라(앙헬라) 데 라 크루스(Angela de la Cruz) 또는 마리아 데 로스 안젤레스 게레로 곤살레스로도 불린다.
성 가롤로 (Charles)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127년
같은이름 : 가롤루스, 까롤로, 까롤루스, 카롤로, 카롤루스, 샤를, 찰스
플랑드르(Flandre)와 아미앵(Amiens)의 백작인 카롤루스(Carolus, 또는 가롤로)는 매우 현명하고 자비롭게 백성을 다스렸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란 칭호를 얻었다.
그의 부친은 덴마크의 왕 성 카누투스 4세(Canutus IV, 1월 19일)이다.
그는 불과 5세 때에 플랑드르의 백작 작위를 받았고, 그 후 장성하여서는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십자군에도 참가하여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는 항상 하느님께 대한 신심을 가장 중하게 여기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성 도나티아누스(Donatianus) 성당으로 맨발로 미사에 참례하러 가던 중에 그에 대한 불길한 음모가 싹트고 있었다.
이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항상 위험 중에 있지만,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다. 만일 우리가 죽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참으로 의롭게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시편 150을 외웠다.
그는 성당의 제대 앞에서 인간들의 추악한 악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통회하던 중 자객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 자객은 그의 조카가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는 높은 직책을 수행하였으나 항상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였으므로 이를 시기한 사람들에 의해 살해된 것이었다.
그의 유해는 벨기에의 브뤼헤(Bruges) 주교좌 성당에 안장되었고,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83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복자 하인리히 소이에(수소)
Blessed Henry Suso
Beato Enrico Suso (Susone) Domenicano
(Uberlingen, Germania, 21 marzo 1295 - Ulm, 25 gennaio 1366)
Born:21 March 1295 at Uberlingen, Germany as Heinrich von Berg
Died:25 January 1366 at Ulm, Germany
Beatified:1831 by Pope Gregory XVI
Enrico = possente in patria, dal tedesco
Order of Friars Preachers; Dominicans; Order of Preachers
헨리쿠스 수소(Henricus Suso, 또는 헨리코 수소)는 유명한 도미니코 회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의 뛰어난 제자로, 독일 남서부 슈바벤(Schwaben)의 콘스탄츠(Konstanz)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베르크(Berg)의 헨리쿠스 백작이고, 그의 어머니는 수소 가문의 성녀 같은 분이었다. 그래서 그의 실제 이름은 하인리히 폰 베르크(Heinrich von Berg)였으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수소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13세 때에 콘스탄츠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신비 생활과 신적 사랑을 통해 강한 영적 변화를 체험하고는, 18세에 '영원한 지혜와 영적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콘스탄츠에서 공부를 마친 후 쾰른의 에크하르트의 학교에서 대학 공부를 하였다. 공부를 마치고 콘스탄츠로 돌아온 그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놀라운 현시를 보았으며, 예수 성명을 특히 공경하고, 천주의 모친께 남다른 신심을 지녔기 때문에 가끔 ‘신비가’란 소리를 들으며 생활하였다.
그는 매우 아름다운 신심서적을 저술하였는데, “영원한 지혜에 관한 소책자”(Das Buchlein der ewigen Weisheit)가 가장 유명하다. 이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작품으로 알려진 "준주성범"(Imitatio Christi)과 함께 여러 세기에 걸쳐서 인기를 누린 수소의 문학적, 신비학적 걸작이다. 그는 1348년 울름(Ulm)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가서 생활하다가 1366년 1월 25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831년 4월 16일 그의 '문화의 길'(viam cultus)을 높이 평가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학자들은 그를 "독일 신비가들 가운데, 아니 어쩌면 모든 신비 저술가들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참고자료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0권 - '주조, 하인리히',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4년, 7869-7872쪽.
(가톨릭홈에서)
하인리히 소이에(수소)의 놓아두고 있기- 정달용신부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그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한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해보면, ‘버리고 떠나 있기Abgeschiedenheit’이다. 또는 ‘두루 놓아두고 있기Gelassenheit’이다. 이것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1260~1328)가 평생을 두고 생각하고 가르친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한때 다음과 같은 설교를 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알지 않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첫째,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으로 가난해지려면 ‘원한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둘째, ‘아무것도 알지 않는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으로 가난해지려면 ‘안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지 않았다.
셋째,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으로 가난해지려면 ‘가진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것이 사물이든 자기 자신이든 ‘가진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가난한 사람’은 ‘버리고 떠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두루 놓아두고 있는 사람’이다.
놓아두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제자였던 하인리히 소이세는 1295년경 3월 21일 스위스의 콘스탄츠에서 출생했다. 콘스탄츠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들어간 소이세는 수도원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1313년부터 1318년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물리학, 형이상학 등을 중심으로 철학을 전공한다. 이어 1319년부터 23년에는 슈트라스부르그 수도회 대학에서, 1323년부터 1327년까지는 쾰른의 수도회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다. 이때 스승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만난다. 콘스탄츠 수도원으로 돌아온 소이세는 선생Lector으로 후배를 가르치고 이후 20년간 그 곳에서 산다. 1330년경 그의 가르침은 이단異端의 의심을 받아 선생으로서의 직책을 정지당한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이 시기에 ‘두루 놓아두고 있기Gelassenheit’라는 신비사상을 터득하게 된다. 1347년경 소이세는 독일 울름의 수도원으로 옮긴다. 그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는 ‘두루 버리고 떠나 있기’라고 하는 자신의 신비사상을 익히며 살았으리라 추측된다. 136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울름 수도원에 머물렀다. 소이세는 《진리의 서書》 《지혜의 서》 《생애》 등 중세 독일어 저서를 남겼으며 1831년 복자福者 위에 올랐다.
소이세는 스승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스승의 이러한 가르침을 잘못된 오해로부터 건져낸다.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소이세에 의하면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있는 것이 아니다.’ ‘무無’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모든 것의 그리고 일체의 것의 ‘근원根源’이며 동시에 ‘목표目標’이다.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리고 ‘저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으로부터 그리고 일체의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그리고 심지어 자기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두루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그리하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와 ‘하나가 된다’. ‘이렇게 있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니-있는 것’ 즉 ‘무無’로 드러나는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와 ‘하나가 된다’. 이것이 하인리히 소이세의 ‘신비사상神秘思想’이다.
‘그르게’ 놓아두기
‘버리고 떠나 있다는 것’ 그리고 ‘두루 놓아둔다는 것’은 잘못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잘못된 놓아두기’가 될 수 있다. 즉 ‘그르게 놓아두기’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 진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의 ‘과업課業’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결코 하나의 되어버린 ‘상태狀態, Zustand’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과정으로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하나의 완성된 그리하여 고정된 상태로 오해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마르게리테 폰 포레테Marguerite von Porete, 1310년 사망)은 ‘무無가 되어버린’ 영혼에 대해서 그리고 ‘자유로워진’ 영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한 영혼(사람)은 ‘옳은 일’이나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옳은 일’이나 ‘선한 일’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무無’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옳은 일’이나 ‘선한 일’에서 벗어나 ‘전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제 이렇게 ‘자유로워진’ 영혼(사람)은 ‘단식’ ‘고행’ 그리고 ‘기도’ 등을 따로 힘쓰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상관없는 일’이다. ‘관심 밖의 일’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람(소이세의 작품에 나오는 ‘이름 없는 무법자無法者’)도 있다. 어느날 소이세에게 사람의 모습을 가진 하나의 형상이 다가 왔다. 소이세가 물었다. 그리고 그가 대답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어느 곳도 아니다.”
“너는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을 원하는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네 이름은?” “이름없는 무법자다.”
“네 이성理性이 목표로 하는 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유다.”
“무슨 말이냐?”
“사람이 전적으로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도 세계도 상관하지 않고, 앞도 뒤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구애받지 않는 자유는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올바로 놓아두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내가 설교할 때, 나는 언제나 첫 번째로 ‘버리고 떠나 있기’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즉 사람은 ‘자기 자신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람은 단순한 선성善性 즉 ‘신神 속에’ 들어가서, 그와 ‘하나의 모습eingebildet werden’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 말하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어떤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선한 일werke로부터 벗어나’, ‘전적으로 자유로워지려 한다’하여 그들을 나무라고 있다.
에크하르트는 루가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10,38-40)를 가지고 그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고 있는 마르타와는 달리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는, 단순히 ‘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앞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잠잠히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마리아는 그 후 사도들을 따라 다니면서, 부지런히 빨래하고 밥하는 일을 했다.
하인리히 소이세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면서 ‘두루 놓아두고 있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서술해 내고 있다. ‘놓아두고 있는 사람der gelassene Mensch’은 ‘자기 자신과 모든 것을 놓아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옳은 일’이나 ‘선한 일’을 한다. 다만 그는 이 모든 일을 그에 마지막까지 ‘집착하지 않고’ 그 일들을 ‘놓아두는’ 그러한 마음으로 한다.
‘참으로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일 속에서’ ‘쉬고 있다’. 그리고 ‘일 속에서’ ‘한가롭다’.
그리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그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는 일이나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고요하다.
- 정달용 / 신부. 대구가톨릭대 교수(철학). 저서로 《그리스도교 철학》, 다수의 철학 논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