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초 곰보배추.
날씨가 무척 춥다. 눈이 살짝 녹은 어느 날 몸을 움크리고 콜록거리며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지어 들어오다 문득 마당을 보니 연보라빛으로 염색한 문둥이 같은 풀이 하얀 눈속에서 비쭉 고개를 내밀고 있다. 못생기기도 했으려니와 봄에 캐어 버릴 생각을 하니 몸도 좋지 않은 터라 은근히 짜증이 난다.
뽑아도 뽑아도 언제 씨앗을 내렸는지 이 맘 때만 되면 저 녀석만 얄밉게 턱하니 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생긴 걸로 보아선 먹지 못하는 녀석이 분명하다. 뽑아 버릴 때는 비릿한 냄새마저 풍겨 불쾌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다.
어느 날 온가족이 감기에 걸려 몸살을 앓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은 일요일이라 병원이나 약국을 갈 수가 없었다. 보일러를 틀어 방바닥을 쩔쩔 끓게 하고 이불 속에서 떨고 있는데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뒷산 말랭이에 살면서 약초를 뜯어다 파는 녀석인데 술만 처먹으면 제 에미, 애비도 몰라보는 녀석이라 그리 달갑지 않다. 가뜩이나 몸이 아파 귀찮은데 녀석은 누런 니를 드러내며 썩은 미소를 짓는다. 그러더니 모종삽으로 꼭 저를 닮은 못생긴 풀을 파낸다.
"집에 대추하고 감초있는가?"
녀석은 못생긴 풀과 대추, 감초를 넣고는 한 주전자를 푹 끓여 감기에 좋다면서 우리 앞에 내민다. 약초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는 녀석이라 내키지는 않았지만 너무 괴로운 터라 마지못해 마셨다.
"한숨 푹 주무시게."
녀석은 능글맞게 웃으며 제 집 마냥 냉장고 문을 열어 먹다 남은 과매기와 소주를 꺼내 들고 가버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정신은 맑아졌고 아픈 목은 가라앉았으며 기침도 하지 않는다. 신기하리만치 몸도 가볍고 개운하다.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풀 이름이 무어냐고..
곰보배추란다. 논밭두렁이나 잡초가 무성한 곳에서 사시사철 볼 수 있는 흔한 풀인데 이런 신통한 능력이 있는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곰보배추는 설견초, 여지초, 만병초라고도 하는데 그 이름처럼 한 겨울에도 휴면인 밭이나 논두렁. 앞마당, 그늘 진 귀퉁이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다. 잡초로 또는 독초로 오해받는 풀이기도 하다.
이 녀석은 말 그대로 만병통치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초, 건초는 물론 효소, 담금주나 막걸리를 만들어 먹어도 효능이 탁월하다. 이 녀석의 능력으로는 부기, 구충, 요통, 알콜중독, 금연, 치통, 편도선, 기침, 천식, 파상풍, 담석제거에 좋고 악창이나 종기도 뽑아낸다.
음건한 건초를 가루내어 생초를 푹 달인 물에 개어 환을 만들어 상비약으로 저장해서 복용해도 좋다. 앞서 말했듯 감초와 대추를 넣고 푹 끓여 뜨거운 차처럼 마셔도 좋다. 생즙은 악창과 종기에 바르면 되고 생초를 끓여 여성의 질염이나 치질, 탈항에 씻어주면 효과가 좋다.
지금 감기몸살로 고통을 받고 계시다면 마당이나 텃밭을 눈여겨 보세요. 혹시 알아요? 연보라빛으로 살짝 부분염색한 녀석이 능글맞게 웃고 있을 지..
해강.
약초연구소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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