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콤플렉스
나는 감히, ‘비상콤플렉스’는 ‘외디프스콤플렉스’보다도 그 울림이 더 큰 콤플렉스라고 선언할 수가 있다. 프로이트의 말대로 ‘아버지 살해’가 문화를 움직여 가는 근본적인 힘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보다 나은 인간, 보다 완전한 인간에 대한 상승 욕망 때문이지, 성적 욕망 때문이 아닌 것이다.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말이나 다윈의 ‘적자 생존’이라는 말도 우리 인간들의 비상콤플렉스와 상승 욕망을 증명해 주고 있는 데, 왜냐하면 그 말들은 한 치의 빈 틈도 없이 우생학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상승 욕망은 권력 욕망이나 성적 욕망보다도 그 울림이 더 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인간의 욕망에 맞닿아 있다. 우리는 타인들을 지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도 않고, 아버지를 살해함으로써 종을 보존하려는 성적 욕망에 종속되어 있지도 않다. 보다 나은 인간, 보다 완전한 인간, 즉 신적인 인간에 대한 상승 욕망이 권력 욕망이나 성적 욕망을 자라나게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외디프스콤플렉스는 조건없이 비상콤플렉스의 하위개념으로 편입되어야 하며, ‘아버지 살해’는 ‘비상콤플렉스’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설명되고 실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날아오른다’는 동사는 ‘달린다’와 ‘뛴다’라는 동사와도 다르고, ‘간다’나 ‘걷는다’라는 동사와도 다르다.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새는 호랑이와도 다르고, 뱀과도 다르고, 백상어와도 다르다. 우리 인간들은 호랑이처럼 빠르게 달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달릴 수는 있고, 뱀처럼 재빠르고 날렵하게 기어다닐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어다닐 수는 있다. 그리고, 더욱더 백상어처럼 멋지게 헤엄을 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헤엄을 칠 수는 있다. 그러나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 다닐 수는 없다. 아니,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기는 커녕, 그 흉내조차도 거의 낼 수가 없다. 우리는 마라톤 우승자를 ‘인간기관차’라고 부르고, 백미터 경주의 우승자를 ‘인간 탄환’이라고 부른다. 인간기관차는 가장 오랫동안 가장 빨리 달릴 수가 있다는 것을 뜻하고, 인간탄환은 새처럼 가장 빠르게 날아다닐 수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백미터 우승자와 마라톤 우승자는 단순한 개인들만이 아닌 데, 왜냐하면 그 기록의 기쁨이나 그 헌사의 품격에는 모든 인간들의 염원이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다 더 새에 가까운 인간들이고, 우리 인간들의 보편적인 이상형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하나의 거대한 콤플렉스를 형성해 왔고, 그 반대방향에서 상승주의에 대한 미학이 양식화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반경환, [상승주의의 미학]({행복의 깊이 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