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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추수감사주일
○ 레위기 23장 34절 하나님을 위한 추수감사절
해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식물들, 동물들, 사람들, 심지어 태양과 달과 별들도 다 탄생의 시기가 있고 사라질 때도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모든 인간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것들을 가르치십니다. 온 천지만물은 모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모든 피조물들은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매우 합당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임무와 사명을 다하면 사라집니다.
복잡한 세상 뿐 아니라 인간 세계 역시도 끊임없이 새로 시작하는 일에서부터 마치는 일들이 계속 반복됩니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나라건 다 똑같습니다. 우리 나라도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여러 차례 나라가 생겼다 없어져서 이름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사실 조선이 무너지고 대한민국이 세워진 것은 몇 십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형태가 각 나라마다 다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도, 기업도, 나라도 새롭게 생기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전도서를 보면 진정한 새 것은 없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전도서 1장 5-11절입니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다고 하십니다.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 아래 새 것이라고 부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이전에 태어났던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새롭다고 말하는 것이 실상은 그런 유형의 일들이 있었는데 다시 반복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는 새 일은 새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옛 일을 반복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3장 1-8절을 보면 이런 것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때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역사의 특징은 반복이 됩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하는 일들은 있습니다. 이것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시작이지만 하나님에게서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하셨던 일들을 이루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그것을 경험하는 인간들에게는 놀라운 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계획하셨던 일들을 새롭게 시작하시는 큰 그림으로 성경에 그려 넣으셨고 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 일은 한 사람을 선택하시는 것부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복되게 하시기 위해서 바벨론 땅 마게도니야에 살고 있는 이름없는 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그 이름이 바로 아브람인데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거룩한 삶을 위하여 친척과 본토, 그리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순종하여 떠난 아브라함의 자손을 번성시키셔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거기서 430년 동안 이스라엘의 인구는 불어나고 불어나서 무려 장정의 숫자만 60만명이 넘었을 때 사탄은 애굽왕의 마음에 염려를 불어 넣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압제하고 박해하며 태어나는 남자아이들을 다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눈의 가시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박해를 더 심하게 하였고 도움을 받을 곳이나 나라가 없었던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불러 온 세상의 복이 되겠다고 하신 그 약속을 되새기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이 폭정에서 구원해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울부짖음과 기도 소리를 들으셔서 이스라엘 사람이면서도 애굽 왕자로 자랐다가 이스라엘을 위해 일한다고 애굽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으로 도망을 쳤던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때가 모세의 나이 80세일 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는 자격이 도저히 안된다고 하면서 부르심을 사양했던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 자신의 권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세는 자신의 형인 아론과 같이 애굽 왕 바로의 궁으로 쳐들어 갑니다. 그리고는 바로에게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보내라”고 하셨다고 당당하게 선포를 합니다. 바로왕이나 신하들이 볼 때 그것이 얼마나 하찮아 보이고 웃겼겠습니까?
그런 바로왕은 마음을 강팍하게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으로 바로와 애굽과 애굽의 신들을 벌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마친 후 애굽의 왕궁에서 가축들까지 모든 처음 난 자들이 죽은 후에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갈 때 그냥 나가지 말고 애굽 사람들에게 재물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재물을 달라고 하자 두려움에 떠는 애굽 사람들을 빨리 애굽에서 내보내고자 자기들의 재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재앙을 내리실 때 애굽의 장자를 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화를 면하게 하셨습니다. 죽음의 사자는 이 문설주에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은 어디든지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유월절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세 가지 기억하고 지켜야할 절기를 가르치셨습니다.
유월절은 구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스라엘이 지켜야할 절기는 칠칠절입니다. 칠칠절은 첫 열매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씨를 뿌렸던 보리와 밀을 처음으로 추수한 것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인 초막절은 모든 수확이 끝난 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러니까 초막절은 오늘날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막절을 일곱 번째 달 15일에 일주일 동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일곱 번째 달은 유월절을 기준으로 한 일곱 번째 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달이 유월절인데 이는 삼월에 걸립니다. 이 일곱 번째 달인 초막절이 지나고 10월이 되면 우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한 해의 모든 중요한 절기들이 유월절인 삼월부터 시작하여 초막절인 일곱 번째 달 곧 10월에 다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경우는 11월 말이 되어야 모든 농사가 마무리 되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절기는 어떤게 보면 일년의 중요한 때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제사를 드리라는 의미로 정해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삼대 절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오늘날의 교회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구원, 칠칠절은 첫 열매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초막절은 추수한 곡식의 저장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예수님의 재림과 영원한 천국의 입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절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 성령의 사역으로 인한 교회 세움,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과 영원한 천국으로의 입성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 가운데 오늘은 추수감사절이기 때문에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레위기 23장 34절의 말씀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이 말씀을 보면 초막절을 지키는데 누구에게 지키라고 말씀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고 하시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이 초막절을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염두해 두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브라함의 자손들로써 모든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을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7절의 앞 뒤에 기록된 말씀을 읽어보면 됩니다.
갈라디아서 3장 5-9절의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초막절을 지키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것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에는 후에 자신이 보내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 가운데 아들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이스라엘,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되는 것이고,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초막절에 참여하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가랴 14장 16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영역을 벗어난 전세계 사람들이 함께 지키게 될 초막절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이 말씀은 언젠가는 이방나라들이 예루살렘에 전쟁을 일으키고 대대적인 공격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로 끝이 납니다. 그로 인해 온 셰계가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행하여 경배하며 경외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해마다 초막절이 되면 이방나라들이 예물을 들고 예루살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몰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절을 지키라고 이르라고 하시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모든 사람들에게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라”고 명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가 추수감사절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이 넘치시는 하나님의 백성인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초막절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초막절을 지키되 여호와를 위하여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레위기 23장 34절의 말씀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여러분들이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은 여러분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드려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을 절기로 지키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여러분들로 가득찬 예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또한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으로 가득차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는 아들을 보시면서 크게 기뻐하시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시면서 많이 사랑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겸손히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을 보시면서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여러분이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따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것은 예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곧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은 이런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믿음과 또한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4장 8절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손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마음을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기뻐받으십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셔서 그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32절을 보면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적은 무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성도의 마음은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십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어떤게 하나님 나라를 주십니까? 전도를 통해서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을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보내신 아들과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람들이 믿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그 일을 전도로 하게 하시는 데 세상이 볼 때나 마귀가 볼 때나 그것은 정말로 미련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로 믿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받으십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영적인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때 기뻐받으십니다. 영적인 예배는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게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추수감사절에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여러분 자신을 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예배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위한 예배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예배입니다. 전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위한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기사를 보면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날을 사는 사람, 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특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절기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예배드리는 사람으로써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이 추수감사주일에 여러분들을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빈손으로 하나님을 찾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초막절을 7월 중순에 드리라고 하셨던 이유에 대하여 신명기 16장 13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추수를 다 한 다음에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초막절 제사의 시기가 한 해의 농사를 마치고 추수한 다음에라야 진정한 감사가 나오는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 번의 절기 모두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16장 16절입니다.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하나님을 뵈옵는 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뵈옵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 예배는 하나님을 뵈옵기 때문에 축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추수를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영광돌리라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한 해가 너무나 어려워 소출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감사는 더 안될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이나마 잘되게 해주신 것을 기뻐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 감사를 예물을 드리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이렇게 한해를 인도하시고 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며, 또 드리면서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다. 억지로 인색하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많이 사랑하시기에 그리고 아들 안에서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구원과 영생을 주셨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마음은 감사가 넘쳐 자발적으로 드리고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런 성도에게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성도님을 기뻐하셔서 그의 삶을 복주십니다.
오늘 드린 이 하나님을 위한 추수감사로 인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인 여러분을 기뻐하시고, 또 여러분들의 삶에 언제나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구원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쓰임받으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