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매머드 잡는 남자
이길환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48|146×210×16mm|336쪽
18,000원|ISBN 979-11-308-2072-9 03810 | 2023.7.10
■ 도서 소개
자본의 그늘에서 허덕이는 현실의 인간이 절박함에 찾아내는 역사의 시공
이길환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매머드 잡는 남자』가 <푸른사상 소설선 48>로 출간되었다. 각각 다른 삶을 살아온 인물들의 상실과 역경이 생생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들이 생존을 추구하는 절박함은 독자의 마음에 크고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 작가 소개
이길환
1994년 중편 「타인의 침상」으로 『오늘의 문학』 신인작품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아르마딜로』 『영화 속의 남자』 『하늘채 사랑』 『길에게 묻다』 『불조직지심체요절』, 창작집으로 『찔레꽃 화장』 『살아 있는 돌』이 있다.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 해양문학상 은상을 받았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목차
▪작가의 말
진묘수(鎭墓獸)
바퀴벌레 인간
매머드 잡는 남자
구름 농원
닻
천도재(遷度齋)
공산성(公山城)
안드로메다 가는 길
씨앗 불
코로나19에 관한 변증법
▪창작 노트 _ 달관적(達觀的) 인생과 소관(所管)의 책임
■ '작가의 말' 중에서
세 번째 창작집을 발간한다. 최근에 쓴 작품들 중에서 열 편을 골라 엮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편소설 「안드로메다 가는 길」이다.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76일 동안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고, 그 후 3년쯤 지나서 썼으니 이 소설은 10여 년쯤 되었다. 나머지 작품들은 2, 3년 전에 썼거나 1년이 채 못 된 것들이다.
그동안 쓴 소설들을 다시 읽어보며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선정했다. 나름대로 각기 다른 소재와 인물들이 들어앉은 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처음 쓰기 시작할 때처럼 설렘이 온다. 공주박물관 앞과 무령왕릉에 있는 진묘수와 공산성 둘레길을 걸으며 소재를 찾아 글을 썼고,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바퀴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가장과 시너를 몸에 뿌리고 분신하는 공장 노동자, 어머니의 혼을 달래려고 천도재를 지내는 아들이 작품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작품을 쓰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고도 교사 발령을 못 받아 박물관에서 구석기시대인으로 분장하고 아르바이트를 한 소린(「매머드 잡는 남자」), 주인공과 같은 학교를 나오고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주인공보다 먼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미지(「코로나19에 관한 변증법」), 은행원이지만 비정규직인 세아(「구름 농원」), 섬에서 크고 자란 복례(「닻」), 제각각 다른 삶을 살아온 다른 인물들이지만 새삼 여운이 남는다. 소설을 쓰는 동안 이들과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며 동고동락했다. 때문에 모두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나는 가끔 꿈을 꾼다. 비현실적인 허구 속 사람들이지만, 꿈속에서 나는 그들과 오랜 시간 같이했다. 작품이 끝난 다음의 후일담도 듣고, 허구가 아닌 현실에서 그들을 만났다. 소설에서는 슬프거나 우울해 보였던 인물들이 환장하게 흐드러진 봄꽃처럼 웃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동안 가물어서 곡식이 죄다 시들시들하더니, 비가 많이 와서 생기가 돌고, 뒤늦게 들깨 모종을 심는단다. 나도 글 파종을 한다고 했다. 글을 심는 마음으로 작품집을 발간한다.
■ 추천의 글
매머드 잡는 남자의 모티브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현실, 하나는 역사. 현실이니 역사니 하는 말은 지나치게 광범위할 뿐 아니라 관념적이기까지 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이길환 소설을 이 둘을 빼고 설명하긴 어렵다. 이길환의 현실과 역사는 말에 그치지 않는 구체성과 절실함이 내재되면서 그 작품에 뼈와 살을 구축하고 상상과 상징을 치장한다. 풍성한 자본이 드리운 깊은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의 인간이 생존의 절박감에 내몰리면서 찾아내는 역사의 시공, 그 현실과 역사의 교직이 성실하고 진지하다. 묵직하되 가독성이 높다는 점도 매우 귀하다.
― 박덕규(문학평론가, 소설가)
■ 출판사 리뷰
이길환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매머드 잡는 남자』는 벼랑 끝에 선 현대인들이 겪는 상실과 역경을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는 자본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들의 생존을 향한 절박함과 고뇌를 묵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표제작인 「매머드 잡는 남자」는 박물관에 단기 계약직으로 채용된 청년들이 구석기시대 원시인의 생활상을 재현하는 흥미롭고 이색적인 소재가 돋보인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한 ‘나’와 임용고시에 합격했지만 아직 발령을 받지 못한 ‘소린’, 그들은 구석기시대인이 되어 온몸에 숯검댕을 칠하고 갈대로 엮은 이엉을 두르고 의미 불명의 소리를 지르며 매머드 동상에 덤벼들어야 한다. 실직을 당한 뒤 가족에게 바퀴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가장(「바퀴벌레 인간」)과, 기계처럼 살기 싫다며 노조를 만들어 사측과 맞서다가 결국 분신을 시도하는 공장 노동자(「씨앗 불」)의 모습도 인간 소외의 시대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오늘날 사람들의 민낯을 그리고 있다.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불교 의식을 소재로 한 「천도재(薦度齋)」와 백제시대 도읍지인 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산성을 배경으로 한 「공산성(公山城)」은 불교와 샤머니즘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일가족을 그린 「코로나19에 관한 변증법」도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 작품 속으로
아내와 싸운 다음 날부터 나는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벌레가 되어간다는 착각이 든 것이다. 그것도 아내가 말한 바퀴벌레로 서서히 변신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거울을 자주 보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는 창문에 블라인드를 내리고 알몸으로 거실에서 서성거렸다. 내 몸이 정말로 바퀴벌레로 변신을 하는가. 바퀴벌레가 날갯짓하듯이 나는 두 팔을 벌려 허공에 허우적거렸고, 바닥에 엎드려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기어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거울을 보면 사람의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바퀴벌레로 변신하려면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듯이 변신해야 하는데, 필요한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침실에서 알몸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있었다. 몇 시간을 그렇게 웅크리고 있자 정말로 어깨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듯했다. 두 다리와 팔이 짧아지고 여러 개의 다리가 다시 생기는 듯했다. 눈 위에는 길게 더듬이가 생겨나고, 입이 뾰족해지는 듯했다. 나는 마침내 바퀴벌레가 된 것이다.
(「바퀴벌레 인간」, 54쪽)
나는 더욱 힘차게 산책로를 뛰어다니고 매머드 사냥에 열을 올렸다. 산책로에 서 있는 두 마리의 커다란 매머드를 향해 달려가서 돌창으로 찌르고 다리를 부여잡고 넘어뜨리는 시늉을 수시로 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내가 진짜 구석기시대인 같다며 환호를 했고, 일부는 박수를 보냈다. 그때마다 나는 킹콩처럼 두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괴음(怪音)이었다. 관람객들이 더욱 우렁차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나는 답례를 하듯 커다란 매머드의 이빨에 매달려 거꾸로 재주를 넘었다. 관람객들이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 소릴 들으며 나는 꿈쩍도 안 하는 매머드가 문득 쓰러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석장리 박물관 입구에는 머리를 들고 쓰러진 매머드가 있고, 주위에는 매머드를 향해 돌창을 휘두르거나 던지는 구석시시대인이 있다. 구석기시대인의 공격으로 신음하며 죽어가는 매머드의 형상이 갑자기 눈앞에서 펼쳐졌다. 나는 매머드의 이빨에서 내려와 다시 돌창으로 매머드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매머드 잡는 남자」, 79쪽)
생산직으로 입사해서 관리직으로 전환해준다는 회사가 있다고 형에게 말하자 형은 내가 사회 경험이 없어서 그걸 믿는 거라고 했다. 형의 친구도 예전에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되지 않아 생산직에서 삼 개월만 근무하면 관리 파트로 옮겨준다는 말을 듣고 일했는데 삼 년이 되어도 생산직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어수룩한 사람은 그렇게 당한다며 형은 내가 생산직이라도 입사하려고 하자 극구 반대였다. 형의 말이 옳았다. 빽도 없고 돈도 없고 학벌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사람은 한 번 입사한 곳에서 쉽게 보직을 좋은 곳으로 옮길 수 없었다. 형도 생산 라인의 한 곳에서 십 년 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다. 밤낮없이 라인을 따라 흘러가는 자동차의 차체를 따라가며 볼트를 조이고 용접을 하며 십 년 동안 일하고 얻은 것이 무급 정리해고였다.
(「안드로메다 가는 길」, 2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