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학을 접었다. 날씬하게 잘 접었다.
그런데 누가 접은 거냐고 물으면 내가 접었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내가 접은 것은 없다. 내가 접은 종이학도 나 혼자 접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무를 심었을 것이고, 누군가가 그 나무에 물을 뿌렸을 것이고,
누군가가 그 나무를 베었을 것이고, 누군가가 그 나무로 종이를 만들었을 것이고,
누군가가 그 종이를 나에게 가져다줬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나에게 종이학 접는 법을 가르쳐 줬을 것이고,
누군가는 나에게 종이학 접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을 소개해 줬을 것이고,
누군가는 나에게 종이학 접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을 소개해 준 사람을 소개해 줬을 것이다.
천 번을 접는다 해도 나 혼자 접은 종이학은 없다.
내 손을 잠시 만난 종이학이 있을 뿐.”(정철, ‘행복한 동행’중에서)
자기가 접은 종이학이지만 결국은 내 손을 잠시 만난 종이학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내 손을 통한 것은 무엇이든 내가 한 것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제 아이가 이런 말을 12살 때 하였다면 너무도 놀라고 제 아이 같지 않아 소름이 끼쳤을 것입니다.
이 놀람은 제 아이가 너무 일찍 철들고, 조숙함에 대한 놀람만은 아니고,
그보다는 이런 말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지 저의 문제가 아닐까요?
아이의 독립선언에 대한 놀람이고, 독립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놀람일 것입니다.
이것은 12살 때의 놀람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이가 30이 되고 40이 되어도 하느님의 아이가 아니고 제 아입니다.
40먹은 아들이 저에게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하고 핀잔주듯 말한다면
지금도 놀라고 못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제 제 아이가 독립선언을 할 만큼 컸음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자식으로 돌려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하고 하느님께서 선언하시는 소리가
오늘 하늘에서 천둥과 같이 들려와도 놀라지맙시다!
사랑합니다!
첫댓글 내가 아닌 우리로서 더불어 산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잃은 소년예수를 애타게 찾으신 부모님께 돌아 온 섭섭한 말~~
그 모든 것을 조용히 마음에 새기시는 성모님을 본 받아야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