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證言) - [50] 신미식 (申美植) - 자기 부정의 길 8. 신앙과 생명
그러나 비행장에 내려선 나는 보기 좋게 그 기대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일본에 가기 전 나는 1년 정도 효진님을 돌보고 있었다. 갓난 아기를 돌보자면 낮도 밤도 없다. 갓난아기가 하자는 대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당시 나는 얼굴색도 푸르스름하고, 너무 말라서 정말 보기 흉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나는 비행장 트랩을 내릴 때, 마중 나온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어쩌다 핸드백을 뒤집어엎는 실수를 했던 것이다. 웅크리고 앉아 핸드백에서 떨어진 물건을 하나하나 줍고 있는 나의 모습에 최봉춘 선생은 완전히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나의 모습에 대해 최봉춘 선생은 꽤 불쾌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것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축복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나는 최봉춘 선생을 단지 뜻을 위해 함께 일할 동지라고 생각했었다. 다행히 나는 일본어를 할 수 있어서 이 분과 함께 뜻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부로서 남편의 마음에 들도록 애쓰겠다고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선생님으로부터 길러진 나는 모든 것을 그와 같이 진행하려고 했기에 사실 최봉춘 선생의 기분을 살필 여유도, 일본의 사정을 고려할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모든 것을 좀 더 주의 깊게 사리고 했더라면 잘되어 갔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지금 와서 생각하지만, 그 당시 나는 나름대로 일본에서 뜻을 위해 원리 강의를 하는 등의 목회의 생활에 매우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최 선생과 나는 서로 터놓고 한번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출발했지만 뜻을 중심한 생활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그런 생활을 하는 중엔 물론 의견의 대립으로 싸움도 많이 했지만, 서로가 뜻을 놓고 일하는 가운데 일어난 것들이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그다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의 개인적 문제는 사실 미국에 간 후에 구체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