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 홀대로 드러난 중국과 미-서방 관계...강내희 교수 페이스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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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 53분 ·
<의전 홀대로 드러난 중국과 미-서방 관계>
최근에 중국을 방문하는 서방 정치인이 ‘물먹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독일의 총리 올라프 숄츠가 4월 14〜16일 중국을 국빈 방문하기 위해 충칭 공항에 내렸을 때 그를 맞은 이는 충칭시의 부시장이었다. 독일은 유럽 최강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 나라의 총리가 국빈으로 공식 방문한 것이니 중국도 총리 아니면 정치국원 등 중앙정부의 고위 인사가 나와서 맞이하는 것이 의전 도리상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중앙정부의 누구도 내보내지 않았고, 지방 도시인 충칭시에서도 시장도 아닌 부시장이 나가 그를 맞이했단다. 숄츠는 한마디로 물먹은 셈이다.
미국의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이 4월 24〜26일간 중국을 찾았을 때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블링컨이 냉대를 받으리라는 것은 예상된 일이기는 하다. 그의 방문 목적은 러샤와의 긴밀 관계를 끊지 않으면 미국은 중국에 경제 제재를 가할 것임을 경고하기 위함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블링컨은 상하이를 통해 중국에 도착해서 베이징을 통해 떠났다. 그가 상하이에 도착할 때 마중 나온 중국 관리가 누구였는지 알면 그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블링컨을 공항에서 맞이한 인사는 쿵푸안(Kung Fu-an)으로, 상하이의 시장도 부시장도 아닌, 상하이 외교관계 책임자라고 한다. 블링컨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 귀빈용 빨간 융단도 깔리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베이징을 떠나는 블링컨의 모습은 더 황당했던 모양이다. 매체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공항을 떠나는 블링컨을 환송하기 위해 나온 중국의 고위 관리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세계 최강대국 국무장관께서 공식 방문을 마치고 떠나시는데 주빈국에서 환송도 하지 않았다니 외교 의전상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여 과연 사실인지 확인해봤다. 블링컨 환송을 위해 중국에서 아무도 내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오보로 여겨진다. 중국 외교부의 북미대양주 관계 책임자인 양타오(Yang Tao)와 블링컨이 공항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X에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에서는 그런 장면이 보도되지 않았고, 주중 미국대사인 니콜라스 번스 혼자서 블링컨을 환송하는 장면만 떠돌았을 뿐이다. 러샤의 공영 타스 통신이 “블링컨은 고아처럼 중국을 떠났다”라고 보도한 것은 그런 점을 가리키는 듯하다.
숄츠와 블링컨이 중국에서 받은 대접을 보면 지금 서방 국가들과 중국의 관계가 얼마나 냉담한지 알 수 있다. 독일 및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그 두 나라와 러샤의 관계와도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국가들을 대변하는 것이 미국과 그 우방국이라면, 그에 맞서 비제국주의 비서방을 대변하는 것이 중국과 러샤다. 물론 비서방에는 이란, 브라질, 남아공화국, 북한 등도 포함된다.
서방과 비서방은 그 규모에서는 크게 비대칭적인 셈이다. 서방 제국주의 세력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G7 국가들과 호주, 한국, 유럽, 특히 EU 국가들을 포함한다면, 비서방은 중국, 러샤를 중심으로 한 브릭스 국가들만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동아시아, 남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의 다수국가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를 단순하게 그렇게 두 세력으로 양분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그래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 서로 넘을 수 없는 강이 형성됨으로써 세계도 크게 서방과 비서방으로 양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숄츠와 블링컨이 중국에 와서 한 말은 기본적으로 러샤와의 협력을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 중국은 러샤와 교역하는 것은 중국의 기본 권리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중국이 러샤가 무기 생산하는 데 필요한 첨단 기술을 제공한다고 트집을 잡고 있고, 중국은 자기들은 정당한 교역을 할 뿐이라고 하며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블링컨은 중국에 대해 ‘과잉 생산’을 그만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요구는 블링컨보다 먼저 그러니까 4월 4〜9일에 중국을 방문한 재무장관 재닛 옐런이 닷새 동안 주야장천 내놓은 요구이기도 하다.
중국더러 러샤와는 손 끊으라 하고, 과잉 생산도 중단하라고 숄츠와 블링컨, 옐런이 요구하는 것은 사실 미국과 서방의 일방적 요구로 말이 되지 않는다. 특히 미국은 지금 중국에 아무런 대가도 없이 러샤와의 교역을 막으려 하고, 또 중국의 산업생산력 증대를 과잉 생산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과잉 생산’이란 중국이 과거와는 달리 장난감이나 의류와 같은, 부가가치가 크지 않은 싼 상품의 양산으로만 그치지 않고 전기자동차나 배터리 등 고급기술이 가미된 고부가 상품의 양산 체제를 수립한 것을, 즉 중국으로서는 산업 발전의 성공을 거둔 것을 가리키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이 계속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은 미국에는 자국 경제의 경쟁력에 위협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의 산업 발전과 성공을 불허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세계는 지금 서방과 비서방이 서로 다른 자본주의적 생산을 추구하고 있고, (중국과 러샤, 이란 등) 비서방의 주요국 일부는 미국과 서방이 여전히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축적의 길에서 한발 비껴서서 산업적 생산 중심의 발전 경로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 효과가 발생한 듯 이제 러샤는 러샤대로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우크 군과 그를 지원하는 나토를 모든 전선에서 압도하고 있고, 중국은 중국대로 경이로운 생산력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러샤와 중국이 이상적인 생산 관계나 사회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아니겠으나, 두 나라는 생산력 증진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큰 성과를 내는 것 같고, 특히 국제관계에서는 미국 등 집단서방보다 분명 훨씬 더 나은 자세를 보여준다. 그런 점은 팔레스타인의 가자지역을 유린하고 있는 이스랄에 대한 양측의 태도에서도 분명한 셈이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집단서방이 이스랄의 팔인 집단학살을 용인하거나 무기 지원을 계속하는 것과는 달리 중국과 러샤는 그것을 비판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실패하기는 했어도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식 회원 가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집단서방이 역사적으로 제국주의로 발전해왔다면, 중국과 러샤 등 비서방은 제국주의의 피해를 받았거나 그에 저항하며 발전해온 것의 차이가 그렇게 드러났다고 여겨진다.
러샤와 중국, 그리고 올해 브릭스에 가입한 이란 등의 굴기로 비서방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그리고 외교적으로 서방을 압도하지는 않더라도 그와 비등한 힘을 비축함에 따라 국제관계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번에 중국이 숄츠와 블링컨을 대상으로 외교의전을 통해 물 먹인 것도 그런 점을 보여주는 예에 속한다. 오랜 제국주의 지배에 물들어 비서방 국가들을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것이 익숙한 미국 등 서방 국가가 태도를 바꾸지 않고 계속 안하무인으로 나오면 후자 국가들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러샤가 우크전쟁을 통해 나토와 미국을 패퇴시키고 있는 모습, 최근에 이란이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지원하는 이스랄의 영토를 처음으로 미사일로 공격한 일 등을 보면 이제 비서방이 그냥 당하고만 있을 것 같지 않다. 특히 중국은 세계 두 번째의 경제 대국, 아니 PPP로 따지면 제일 대국이 되었는지라 더 당당한 태도를 드러낼 공산이 크다.
5월 중순에 러샤 대통령 푸틴이 중국에 온다. 푸틴은 중국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 22년 2월에 중국에 와서 우크 사태와 관련해 중국 주석 시진핑과 의논한 적이 있다. 우크 전쟁이 막바지에 도달한 지금 그가 중국에 다시 오는 것은 아마도 시진핑과 전쟁 종결 방식을 놓고 의논하기 위함일 공산이 크다. 푸틴이 중국에 오면 외교의전은 숄츠 등이 왔을 때와는 당연히 완전히 다르게 최상의 환대를 할 것이 분명하다. 반면에 중국은 서방에 대해서는 분명히 거리를 두고 있다. 블링컨이 베이징을 떠날 때 중국의 고위층 인사 누구도 환송하지 않은 것이 그 증거 아니겠는가.
자주 접하는 텔레그램 채널 <슬라비안그라드>에 올라온 단신의 일부 내용을 소개한다. “예외주의스탄(Exceptionalistan, 항상 예외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을 ‘스탄국’으로 지칭하는 이름인 듯)에 보내는 중국의 메시지는 이제 아주 명확하다. 안정과 ‘하향 나선’ 중 하나를 선택할 것. 하향 나선은 너희 몫이다. 강력하고 결정적인 탈-달러화 정책이 곧 온다—빠르면 올해 안에. […] 윈윈을 위한 중국의 협력 선단은 항구를 떠나 수평선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중국은 이제 미국에 협력하자고만 말하는 것 같지 않다. 이번의 외교 홀대를 보면 미국더러 “해볼 대로 해봐라, 우리는 우리대로 할 터이니” 하고 말한 것 같다. 국제관계는 힘의 관계이고, 힘은 변하는 법이니 앞으로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분간은 양국의 협력관계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미국의 사이가 그렇게 되면 서방과 비서방의 관계에도 비슷한 흐름이 생길 수 있다. 이 변화가 세계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