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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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 전통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전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문화 칼럼니스트 김승국] 여러 해 전 국내 문화예술회관 종사자 전문역량 강화를 위하여 전국의 문예회관 종사자들을 이끌고 유럽 해외연수를 떠난 적이 있었다. 주 방문국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였는데 ‘베를린 도이치오퍼’, ‘베를린 필하모닉’, ‘드레스덴 젬퍼오퍼’, ‘라이프치히 오페라하우스’, ‘비엔나 국립 오페라 극장’, ‘로나허 극장’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적인 극장을 둘러보는 행운을 가졌다. 우리 일행은 각 공연장의 관계자들과 미팅을 통하여 선진화된 공연장 운영 시스템을 알아보았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기획 및 홍보 시스템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극장 시설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는 김에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도이치오퍼’에서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를, ‘드레스덴 젬퍼오퍼’에서 오페라 ‘토스카’를, ‘비엔나 국립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 ‘엘렉트라’를 감상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관현악단의 연주와 오페라를 감상하는 기쁨도 컸지만, 우리나라 출신의 연주가들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단원들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나라 출신의 성악가들이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에서 주연급 배우들로 활동하고 있는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 가슴이 뿌듯해졌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무수한 음악 영재들은 ‘쇼팽 국제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베르디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등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에서 성악이든 기악이든 간에 한 해에 여러 차례에 걸쳐 영광스러운 수상을 거머쥘 만큼 우리의 연주 능력은 크게 신장하였다.
정작,한국의 전통음악은 모르는 클래식 음악학도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늘 밝은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유럽 유학을 마치고 온 클래식 연주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현지에서 유학 생활하던 어느 날 저녁 현지 학생들을 물론 유학하러 온 학생들과 한자리에 모여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돌아가면서 소개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한다. 마침내 자기 차례가 되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관하여 이야기해주었더니, 그곳에 모인 현지 학생들과 유학생들이 한국이 5,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국가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한 나라라는 것에 무척 놀라워하는 분위기가 느껴져 어깨가 으쓱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음악을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의 전통 음악곡들의 멋과 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유학생들이 자기 나라의 전통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소개 순서로 이어졌는데 다들 자기 나라의 전통음악을 멋지게 연주 혹은 노래하여 속으로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마침내 자기 순서가 되어 우리 가곡 ‘선구자’를 정성 다해 불러주었는데, 노래를 듣고 나더니 현지 학생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런 노래 말고 한국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여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 현지 학생이 듣기에는 ‘선구자’의 음악어법이 자기네 유럽 음악어법과 다른 것이 없어서, 한국의 전통적인 선율 음계로 구성된 한국의 노래를 듣고 싶어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부끄러웠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그 클래식 연주자는 자기 자신은 어려서부터 클래식 위주의 공부에만 매몰되어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전통음악에 대해 교육받은 것이 별반 없었고 관심조차 두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막상 외국에 나가보니 우리 전통음악의 소중함을 알겠다고 하면서, 한국 사람이라면 단소 등 간단한 악기로 간단한 전통음악 하나쯤 연주할 줄 알고, 우리 민요 하나쯤, 혹은 판소리 단가 하나쯤 부를 줄 알고, 기본 전통 춤사위 정도는 출 수 있도록 정규 교육과정에 꼭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 작곡가의 작품이 세계 클래식 무대에서 연주되는 사례 거의 없어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나아가보겠다. 우리나라 작곡가들의 작품 중 전통음악에 기반을 둔 클래식 음악이 세계적인 공연 시장에서 호평받으며 세계적인 연주가나 성악가들에 의해서 연주되거나 불리고 있는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2008년 로린 마젤의 지휘로 ‘뉴욕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시 동평양대극장에서 연주한 북한 작곡가 최성환 작곡의 '아리랑 환상곡'의 감동은 지금도 가슴이 벅차고, 1972년 뮌헨올림픽 전야에 공연하여 격찬받은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그리고 이건용의 ‘첼로산조’, '만수산 드렁칡' 등 정도가 내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꿈꾼다. 한국의 민요나 전통음악을 소스(source)나 소재로 활용하여 보편화된 서양악기로도 세계인들이 공감하고 세계인들도 연주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를 작곡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탈리아 오페라를 극복한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 서유럽의 음악을 받아들여 자국의 전통을 자연스럽게 녹여 낸 러시아의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 헝가리의 리스트, 체코의 드보르자크의 음악과 같은 성공적인 사례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도 윤이상의 곡들로 구성해 기획 연주회를 열만큼 윤이상이 세계적인 작곡가로 위치를 굳힌 데에는 윤이상의 음악에는 유럽의 작곡가들에게는 없는 한국의 전통적 색채가 깔려있다는 점이다. 서울대 김승근 교수는 “(윤이상이 자라난) 통영은 그의 음악적 재료의 원천이 되는 곳으로, 일제강점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랑극단의 가무극, 오광대놀이, 잔칫집에서 울리는 풍악 등 한국의 전통음악이 마을에 가득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세계적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는 전통을 기반으로 차별화, 특성화된 예술성 필요
그것은 비단 클래식 음악의 윤이상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화가로 유럽에서 명성을 떨친 이응노나 박생광, 미국에서 명성을 떨친 김환기도 유럽이나 미국의 화가에게는 없는 한국의 전통적 색채가 그들에게 깔려있었기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음악 영재들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기반 없이 서양음악을 학습하기 때문에 기존의 클래식 음악과는 차별화되고 특성화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음악, 서양악기로도 충분히 연주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 작곡에 종사하는 작곡가들은 우리의 전통음악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학습할 것을 권고한다. 아마도 지금의 클래식 음악가가 되기까지 우리의 전통음악에 관한 학습 경험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적 소양을 갖췄기 때문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의 전통음악을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의 전통 음악곡들의 멋과 흥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전통음악이 차별화되고 특성화된 작곡 소재의 보고(寶庫)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전통음악의 기반 위에 서양음악을 해야,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
또한 클래식 음악을 교육하는 전문교육 기관에서는 교육과정에 반드시 다양한 전통음악 곡의 감상, 선법, 악조, 장단 등을 교육하고 부전공으로 국악기 연주를 포함해보길 바란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전공자는 해금이나 아쟁을, 트럼펫, 호른, 트롬본, 튜바, 클라리넷 전공자는 피리나 단소를, 플루트 전공자는 대금이나 소금을, 하프 전공자에게는 가야금을 부전공으로 학습하게 하여 짧은 산조 하나쯤은 연주하게 하고, 타악기 전공자에게는 장구와 꽹과리를 부전공으로 학습하게 하여 사물놀이 가락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악 전공자는 판소리는 성대를 상하게 할 수 있으니, 민요, 가곡, 가사, 시조를 부전공으로 학습하게 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서양음악 전공자들이 우리 전통음악의 기반 위에 서양음악을 공부한다면 단단한 내공을 가진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하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용재오닐과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가 해금산조를, 첼리스트 양성원이 아쟁산조를,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대금산조를, 트럼페터 안희찬이 피리산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과연 불가능한 상상일까? 이들의 서양악기 연주 실력은 가히 세계적인 정상급 수준으로서 자랑스럽긴 하나, 결국 서구의 작곡가들이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것이고 이들만큼 연주를 잘하는 연주가들은 세계 곳곳에 많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연주가들이 최소한 우리나라의 전통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다면 세계의 어느 연주가들보다도 더욱 경쟁력 있는 세계적인 연주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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