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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가?
이번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기존의 청와대(靑瓦臺)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면서 한 말이 “공간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다.”라고 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하여 의미 있는 화두(話頭)를 던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청와대라는 권력의 공간을 볼 때 사실 우리는 현대사의 영욕(榮辱)이 수차에 걸쳐 교차해 왔음을 보아왔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퇴임할 때 온전하게 청와대에서 나온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그것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풍수·도참(風水圖讖)사상가라면 청와대가 자리 잡은 북악의 터 가 기(氣)가 사나운 터라고 말할 법도 합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비롯하여 혁명을 통하여 근대국가의 초석을 다진 박정희 대통령, 그 이후 전두환·노태우의 군사정권과 민주화 이후 이어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추궁은 엄중하고 냉혹했습니다.
저 또한 역사의 험난한 굴곡을 보면서 ‘북악의 터와 청와대가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 하고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판단에 의해 파면 되었을 때,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어 동기회 홈페이지에 ‘북악(北嶽)을 보면서’라는 글을 올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청와대라는 물리적 공간이 대통령을 어떤 심리적 상태로 몰고 갔을까?’하고 숙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든 권력(그것이 정치적 권력이든, 종교적 권력이든)은 그들만의 공간을 창조해왔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오랫동안 사회적 지위가 물리적 공간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간파해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사회적 지위와 공간 사이의 연결고리는 우리의 생각과 환경에 깊이 파고들어 있습니다. 왕의 자리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대기업 CEO의 사무실도 대체로 빌딩 최고층에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펜트하우스(Penthouse)는 옥상가옥이라는 말이며 고층 건물의 꼭대기에 있는 최고급 주거 형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비싼 ‘더 펜트하우스 청담’은 공시가격으로 168억 원을 한다고 합니다. 뉴욕의 센터럴 파크타워 펜트하우스는 3,497억 원에 매물로 나왔기도 합니다. 사회적 지위와 공간이 은유적으로 연계되다 보니 우리는 일상적 대화에서도 상급지를 아래가 아닌 ‘윗선’ ‘윗분’이라고 보통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연이 만든 공간인 그랜드 캐니언이나 빙하가 만든 피오르해안 그리고 백악기의 하얀 절벽을 보면, 엄청난 공간과 시간의 균열 앞에서 우리 인간이 참으로 왜소하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든 문명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나 조각상을 보고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며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아 본 경험이 있습니다.
문명이란 엄청난 노동력이 투입된 그 시대의 정신적·기술적 역량이 최고조에 다다른 건축물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는 것 또한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힘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지마할과 같은 균제(均齊)와 조화의 미(美)를 갖춘 건축물은 뛰어난 미인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뛰어난 미인 앞에서 숨이 멈추듯이 타지마할 앞에서도 숨이 멈출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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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건축이 사람의 삶을 위한 공간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삶의 공간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삶을 조율한다는 말입니다. 일종의 되먹임 현상인 피드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는 문명의 코드를 읽는 독법을 소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권력, 전쟁, 사랑, 교역, 종교이며 이 다섯 가지는 톱니처럼 맞물려 역동적인 역사를 만들기도 하고 몰락의 역사를 만들기도 합니다.
권력이나 종교신앙은 그것이 정통성을 위한 것이든 신성(神聖)을 위한 것이든 거대 건축을 지향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영국의 한 건축가가 명명한 거대 건축 지향성(Edifice Complex)이라고 부르며 영국의 스톤헨지,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石像) 그리고 피라미드나 앙코르와트에서 현대의 초고층 빌딩에 이르기까지 적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인간의 기술이 그러한 승리를 거둔 데 대한 긍지와 기쁨이 있는가 하면,
이러한 승리를 얻기 위하여 지불 된 인간의 가혹한 노동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마음이 있어 서로 갈등을 이룹니다.
건축양식 또한 시대와 나라마다 양식을 달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건축이라 하면 로마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건축은 팍스로마나 시대의 건축을 모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역사에서 겉핱기 식으로 우리가 배운 것으로는 로마네스크양식, 고딕양식, 르네상스양식, 바로크양식, 로코코양식 등이 시대마다 달리하여 그림인 회화와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이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던 영국의 대표적인 건축인 웨스트민스트 사원 또한 고딕양식으로 그 웅장함과 성스러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돔 양식의 건축 또한 로마의 판테온에서 시작된 것으로 이슬람의 모스크 건축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북아프리카의 수단과 무어인의 건축 그리고 페르시아와 무굴제국의 모스크에서 대부분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石窟庵)의 벽과 천장도 돔 양식이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또한 권위를 과시한답시고 돔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권력은 그것이 발휘되는 장소 즉 공간의 상징성을 통해 그 정체성과 성격을 드러냅니다.
특정 장소는 원래의 기능을 넘어 형태와 사용방식에 따라 시간적, 공간적 상징성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구로공단(九老工團)은 수출 주도로 경제개발을 시작한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하여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공단으로서 가발(假髮) 공업과 섬유산업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자동차산업을 위시한 중화학(重化學)공업으로 전환되면서 쇠락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속된 말로 공순이라 불리었던 우리나라 여공(女工)들의 애환이 서렸던 곳입니다. 공동화(空洞化)되어가던 구로공단이 정보와 벤처기업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건물도 리모델링 하며 바뀌어 나갔습니다. 이제는 구로공단이 벤처기업의 메카가 된 것을 봅니다.
또 왕십리 넘어 에 있는 성수동 지역 공장들은 열악한 중소기업들이 들어선 오염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실험적 문화공간의 허브가 되어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활력있는 거리가 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권력의 상징성이 된 청와대를 옮기면서 “공간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이유로 용산 국방부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겼습니다. 저는 다른 이유로 청와대 건축의 허상과 몰락을 보면서 윤석열의 결단을 지지하였습니다. 물론 저는 구체적인 실행에 있어서 전문가의 식견도 없거니와 합리적인 행정절차에 대해서 논할 입장도 아닙니다만 일단은 긍정적으로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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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들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 대통령이 역사의 엄중한 추궁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과 파면에서 가장 치욕적인 것을 보여줌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의 자정(自淨)능력을 위해서라도 빅근혜 현상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라는 거인이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심어준 독특한 향수로 인하여 대통령이 된 면도 있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캐릭터가 중요한 자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처녀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매력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박근혜는 자기의 사생활을 폐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육영수 여사와 아버지를 비운으로 잃어버린 여자의 한이 응축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롤 모델을 헨리 8세의 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으로 삼았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이 평생 처녀로 있으면서 신비한 카리스마로 신료(臣僚)들 위에 군림한 것같이 주변의 인물들을 압도했습니다.
저는 일 년 365일 동안 하루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박근혜를 보고 사실 불안하게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시대에 오랫동안 비서실장을 했던 김정렴은 박정희의 사생활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던 사람입니다.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국가원수의 자리는 긴장의 끈을 한시라도 놓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긴장을 박정희는 저녁이 되면 참모와 테크너크랫들과 술과 곁들여 허심탄회하게 정책을 논하기도 하고 맞담배를 권하면서 친목을 도모해 갔습니다. 박정희 시절에 유능한 관료들이나 경제인들이 많았던 것은 박정희 나름대로의 그런 용인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자리를 박근혜는 비선 실세들과 성형외과 의사, 그들 그룹 내의 주사 아줌마와 기치료(氣治療) 아줌마들이 점령했습니다. 일상적인 문자 메시지에도 나타난 걸 보면 그런 추론은 조작된 것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가공된 카리스마는 주변의 최측근 인사들도 대화 나누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자기의 운명이 될 줄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런 캐릭터와 달리 그녀의 운명을 결정하는 물리적 공간이 또한 존재합니다.
북악(北嶽)은 서울 분지를 북쪽에서 감싸고 있는 자연 요새(要塞)입니다. 광화문과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일제(日帝)는 그 기슭에 총독 관저를 짓고, 광화문에는 조선총독부를 지었습니다. 식민지배를 위해 조선왕조의 기(氣)를 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해방이 되면 왕조의 신운(神運)을 살리기 위해 당연히 제거되어야 할 유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조는 사라졌고, 해방이 되었지만 권력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이 공백이 된 해방공간에서 지식인과 그 추종자들은 좌·우 이념 대립으로 국론은 분열되었습니다. 일제의 적폐(積弊)를 청산하려는 의지는 무위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조선총독부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철거되었지만, 사실 그 건물은 건축학자들의 식견에 의하면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물론 오욕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니 후손들의 교육적 가치를 위해 보존해 두자는 의미도 있었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그 건물이 그 시대 문명의 기술적 총화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건물을 해체하는 데도 전문기술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총독 관저는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해방 이후 이 관저는 미군정(美軍政)의 거처로 쓰이다가 우리 정부가 수립되면서 초대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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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거주하면서 경무대(景武臺)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경복궁의 경(景)과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었습니다. 그 후 윤보선 대통령 때에 이르러 파란 기와로 된 집이라 하여 미국의 백악관(White House)을 대조하여 청와대(靑瓦臺 Blue House)로 개칭하였습니다.
지금의 청와대는 노태우 대통령 때 이를 헐고 새로 지은 것입니다.
경호와 안전을 중시하여, 화재 시에 위험할 수 있는 목재도 쓰지 못해 결국 청와대 본관은 한옥 모양을 본뜬 콘크리트 기와집이 되었습니다. 전통 한옥과는 거리가 먼 한옥도 아니고 양옥도 아닌 족보도 불분명한 기형적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지금의 우리 국력으로는 그 위상에 맞는 시민과 잘 소통할 수 있는 장소를 택해 우리의 전통 가옥으로 새로 지어보는 것도 생각해 봄직도 합니다.
지금의 족보도 없는 청와대는 본관 2층에 있는 대통령을 접견하기 위해서는 관저 입구까지 걸어서 10분, 카펫이 깔린 위풍당당한 2층으로 올라가서 집무실에 들어서면 대통령이 앉아 있는 책상까지 15m에 이르는 고난의 행군(?)이 이어집니다.
최고의 VIP를 만나기 위해서는 일종의 이런 학대는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와대라는 물리적 공간이 대통령을 어떤 심리적 상태로 몰고 갔을까?’ 여러분은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간이 어떻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삶을 조율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통이 되지않는 공간 배치에 의하여 분위기는 냉기가 흐르고 엄숙한 기운이 주위를 감싸고 돕니다. 그리고 거기의 주인인 박근혜는 얼음공주로서 스스로를 유폐(幽閉)시켰습니다. 거기에 무슨 인격적인 조우(遭遇)와 인간적인 교감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제가 늘상 하는 말이지만 우리 정치판에는 분노만 있고 유머가 없다는 것이 우리 정치 수준을 말해 주는 바로미터라는 것입니다. 권력은 겸손을 잃어버리면 오만 밖에 남지않는 극명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바로 ‘우아한 냉혹’이 됩니다.
“성공한 권력자는 자기의 성공방정식에 집착하면 오만에 빠진다. 그 휴브리스(Hubris)를 조심하라” 역사학자 토인비 박사의 말입니다.
그것은 박근혜 개인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의 비극을 끝내기 위해서는 이제 청와대를 옮겨야 합니다. 북악의 기슭은 군림하는 자리로서 맞을는지 몰라도 시민과 소통하는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대통령 관저를 자유민주주의에 맞는 우리만의 서사(敍事)를 새롭게 만들어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갈지 우리는 기대를 갖고 지켜볼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워싱턴에 있는 미국 대통령의 관저(官邸)는 1800년에 완공된 것으로 본래 ‘대통령의 집(President’s House)’으로 불리었으며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은 거주해 보지도 못하고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부터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이트 하우스(白堊館)로 명명한 것은 1812년 나폴레옹이 영국을 제재하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내림으로써 미·영 전쟁이 일어나 관저가 영국군의 방화로 검게 그을린 외벽을 흰색 페인트로 칠한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또한 흰색은 인류가 최초로 쓴 색깔이기도 합니다.
흰색의 재료는 분필의 재료가 되는 탄산칼슘이며, 이 성분은 흔히 공룡의 시대라고 불리는 백악기(白堊紀) 지질시대에 형성된 것입니다. 이 거대한 석회암층에서 백악기라는 말이 유래되었으며 미국의 대통령 관저를 굳이 백악관이라 한 것은 중생대의 지질시대인 백악기가 유독 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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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띤 바위로 되어 있어 그런 유서 깊은 이름을 붙인 듯합니다.
특히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 해안이나 영국의 도버해협, 네덜란드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해안 절벽이 거대한 백색 지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질학자가 아니더라도 유럽인에게는 익숙한 공간입니다. 특히 영국의 남부 브라이턴 지역의 해안 절벽은 거대한 백악지층으로 이루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지질학자라면 꼭 가보아야 하는 명소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전문가도 아니면서 지질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각 지층에는 지금은 사멸하고 없는 생명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화석은 침묵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생명에 대해 말해 주고 있으며, 심지어 나무까지도 규화목 화석으로 남아 있는 걸 보고 고생물학자들은 진화의 발자취를 읽고 있습니다.
헉슬리와 함께 다윈의 이론을 열렬히 지지하고 보호자로 자처했던 런던 왕립학회 회원인 찰스 라이엘 경(卿)도 『지질학 원리』를 쓴 지질학자였습니다. 백악관의 명칭을 이야기 하다보니 이런 자연사(自然史)의 유서 깊은 서사도 나왔습니다만, 그와 함께 백악관은 역사성과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의 서사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1830년대에 미국을 방문하여 장기간 체류하면서 직접 미국 사회를 관찰하며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쓴 프랑스 외무장관 알렉시스 토크빌이 고찰한 것처럼, 오로지 구(舊)세계의 군주제 국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정치적 아마추어들이 있는 발생단계의 국가만이, 민주주의라는 오래된 사상을 새로운 것으로 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언인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인간의 정치 세계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백악관은 시민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인간의 자유와 정치적·경제적 주권을 가진 시민에게서 출발한 것으로 깊은 서사를 간직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공간과 인간의 의식에 대한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치열한 정책논쟁으로 유명한 영국의 의회가 있는 웨스트민스트 궁(宮)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진화학자이며 사회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와 함께 학문 간의 통섭(統攝)을 추구하는 진화학 및 과학철학을 주도하는 장대익 교수가 영국 의회가 가지고 있는 공간에 대하여 고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축약하여 말씀드릴까 합니다.
세계 2차대전으로 런던은 독일군의 공습으로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습니다.
1943년 10월 영국 의회는 폐허가 된 하원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재건축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하원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당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나섰습니다.
“이제 우리는 재건축을 해야 할 것인지,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연설 문장은 이제 전설이 되어 전해 내려옵니다.
“우리는 건축물을 짓지만, 그 이후로 그것은 우리를 짓습니다.”
처칠이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지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세상 사람 다 아는 일이지만, 그가 노벨 문학상을 탄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시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재능은 인정할 것입니다. 그 재능은 그가 대단한 독서가였으며, 그중에서도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을 존경하여 그의 저서 『로마 제국 쇠망사』를 늘 옆에 두고 다녔다는 데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는 정치가이고 군인이었으며 문필가였습니다.
그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의회의 재건축에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한 데에서도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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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양당 의원들이 논쟁을 치열하게 이끌어낼 수 있는 전통적인 형태(긴 의자에서 서로 마주 앉는 직사각형 형태)를 고수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많은 국가의 의회구조는 지금의 우리 국회의사당 내부처럼 반원 형태임을 고려한다면, 전통을 고수하자는 그의 주장은 보수적인 결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안보와 민생에 치열한 토론을 위해 직면의 구조를 선택한 그의 충심은 납득이 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한 가지 주문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좌석 수를 줄여서 모든 하원의원이 자리에 앉을 수 없게 하고, 고정석을 만들지 말라”는 주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외일지 모르지만 사실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원의원 공간에 모든 의원을 앉힐 수 있을 만큼 넓다면, 거의 텅 비거나 반쯤 찬 상태에서 활기 없는 논쟁을 벌일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 의회의 핵심은 치열한 대화와 토론인데 이것은 작은 공간에서 더 잘 진행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밀집 공간에서 더 치열하게 논의할 수 있고 더 친밀해질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전쟁 중에도 의회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공간의 효율을 핵심적으로 파악한 처칠의 천재성이 보이는 장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1950년에 새로 완공된 하원에는 좌석 수가 427석밖에 되지 않았으며(당시 회원의 수는 646명), 침이 튈 만한 거리에서 양당 의원들이 치열한 논쟁을 펼치는 광경은 영국 의회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표현은 매우 흥미로운 것입니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식’과 ‘국민 소통’을 위해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했습니다. 비록 처칠처럼 세련된 표현은 사용하지 못했지만, 공간과 의식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명제를 던진 것은 사실입니다.
공간 전문가들이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용산 이전 문제에 대해 강력한 반발을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윤석열 당선인처럼 정말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우리는 단언할 수 있을까요.
엄밀하게 보면 그의 ‘지배한다’는 처칠의 ‘짓는다(shape)’보다는 훨씬 강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공간에 의해서 사람들의 의식이 획일적으로 결정된다는 뜻은 공간 결정론처럼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이슈는 용산(국방부)이라는 특정공간을 어떻게 새로운 권력장소로 상징화하고 이에 상응하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가일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권력을 가진 집단이 그들의 파워를 ‘기념비적 건물’ 축조에 사용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한 사례가 많습니다. 용산(국방부) 주변에는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등 이미 ‘기념비적 상징물’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실이 정말로 국민과 거리감 없는 소통의 장소가 되려면 기존의 기념비적 상징물을 대통령실과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육화된 상징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단순 논리로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결정론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를 도와주는 개념화에도 결정론은 항상 위험을 수반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인간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론은 인간을 광기로 몰아갔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간에 대한 개념도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한 여백(餘白)을 남겨 두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2022년 10월 1일 사이버 총무 김 정 율 올림
첫댓글 잘 읽었읍니다. 수고많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