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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우승, 주장 알베르토
줄리메 컵을 높이 들고...
[ 역대 최고의 대회, 1970년 제9회 멕시코 월드컵 ]
제9회 1970년 월드컵은 북중미의 멕시코에서 5월 31일부터 6월 21일까지 총 22일간 치러졌습니다. 이 대회는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이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아름다운 축구쇼를 선보인 ‘역대 최고의 축제’로 회자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 대회부터 선수교체, 옐로 카드 등 새로운 규정이 도입됨에 따라 이전과 같은 거친 경기운영이 사라졌으며, 한층 공격적인 스타일의 축구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밖에 FIFA는 역대 최초로 ‘우승 해트트릭(3회 우승)’을 달성한 브라질에게 줄리메컵 영구 소유권을 부여하며 한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 골을 넣고 환호하는 자이르징요, 이탈리아와 결승전에서...
FIFA에 가입된 138개국 가운데 71개국이 참가를 신청, 14장의 본선 진출 티켓을 놓고 자웅을 겨뤘습니다. 또한 피파는 개최국 멕시코가 자동 진출권을 부여받은 북중미에도 1장의 티켓을 부여하는 한편, 아프리카와 아시아(오세아니아 포함) 그룹에도 각각 1장씩의 티켓을 부여하여 제3 대륙을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전 대회 우승국 잉글랜드가 본선으로 직행한 유럽은 2장의 티켓을 희생시켜야 했습니다. 이러한 FIFA의 결정은 전 대회 아프리카 국가들의 예선 보이콧, 그리고 북한이 선보인 8강 돌풍을 높이 평가했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두 장의 티켓을 잃어버린 유럽 지역예선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자리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강팀들이 대거 같은 조에 편성된 결과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네덜란드, 유고, 헝가리 등이 모두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이변이 연출됐고, 그로 인해 유럽 측의 불만은 점차 한계치를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FIFA는 월드컵 본선 출전국을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리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게 됩니다.
* 페루와의 예선전, 펠레의 슈팅
< 대회를 빛낸 명선수들 >
1970년 대회 당시의 브라질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추앙받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펠레는 가장 밝게 빛나는 별 중의 별이었습니다. 29세의 펠레는 젊은 시절만큼 폭발적이지는 않았지만, 풍부한 경험과 숙련된 테크닉을 앞세워 경기 전체를 마음먹은 대로 컨트롤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펠레의 모습을 ‘축구의 신’에 비유했고, 이 대회 활약을 통해 펠레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펠레와 함께 70년 월드컵 전 경기 득점(7경기 7골)을 기록한 자이르징요, 재치 만점의 찬스 메이커 토스타오, 그리고 미드필드진의 핵심 리벨리노와 게르손 등은 이른 바 ‘황금의 5중주’를 이룬 스타 선수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팀의 주장이자 우측 수비수 알베르토와 팀의 막내 수비형 미드필더 클로도알도 역시 대회 내내 기복 없이 꾸준한 활약을 펼쳐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 전설의 축구황제 펠레
준우승국 이탈리아에서는 간판 공격수 리바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습니다. 리베라 역시 고비 때마다 중요한 골을 터뜨리며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수비진에서는 주장 파케티가 이탈리아의 대회 초반 283분 무실점 행진을 주도하며 준우승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그 외에도 득점왕을 차지한 서독의 폭격기 게르트 뮐러, 그 뒤를 든든하게 받친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 페루의 에이스 쿠비야스, 우루과이 수문장 마주르키비쉬, 잉글랜드의 보비 찰튼과 보비 무어 등 기라성 같은 스타 선수들이 1970년 대회를 화려하게 수놓았습니다.
특히 게르트 뮐러는 1954년 대회의 항가리의 코치스, 1958년 대회의 프랑스 퐁텐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한 대회 2회 해트트릭 기록을 달성, 월드컵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 멕시코 월드컵 포스터
< 본선 대진표 >
1조 소련, 멕시코, 벨기에, 엘살바도르
2조 이탈리아, 우루과이, 스웨덴, 이스라엘
3조 브라질, 잉글랜드, 루마니아, 체코
4조 서독, 페루, 불가리아, 모로코
< 축구 전쟁 >
월드컵 본선 진출의 길은 나타를 타고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처럼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이 와중에 북중미 예선전에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급기야는 양국이 피를 부르는 전쟁에 돌입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로까지 발전합니다.
1969년 6월 8일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열린 1차전은 온두라스의 승리였습니다. 온두라스의 전국은 승리의 기쁨으로 휩싸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두나라의 전통적인 적대감정 때문에 이 승부의 귀추는 예의 주시되고 있었습니다.
엘살바도르는 인구가 넘쳐 지난 60년 동안 30만에 달하는 인구가 땅이 넓은 온두라스에 이민해 들어갔으며 이들이 온두라스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사회의 상층부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두라스인들에게는 눈의 가시가 되고 있었습니다.
2차전은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열렸습니다. 엘살바도르의 애국시민들과 국경을 넘어온 온두라스의 애국시민들은 경기장에서 운집하여 열렬히 응원전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엘살바도르가 3대0으로 이기자 극도로 흥분한 관중들이 경기장에서 난투극을 벌이면서양국간의 축구전쟁이 드디어 막을 올렸습니다.
온두라스의 응원단은 모두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트럭에 실려 당장 국경 밖으로 쫓겨나갔습니다. 그러자 같은 시각 온두라스에서는 좀 더 고약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온두라스의 전역에서 엘살바도르인들에 대한 보복행위가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던 겁니다.
살인, 약탈, 방화로 테구시갈파의 시가지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끔찍한 린치가 광범위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3일 양국은 국교를 끊었습니다. 두나라가 1승 1패 동률로 제3국에서 최종전을 벌이기 나흘전의 일이었습니다.
* 3차전에서 승리한 엘살바도르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북중미 A지역 최종전은 FIFA가 지정한 대로 멕시코시티에서 6월 27일 열렸습니다. 살벌한 분위기에서 열린 이 경기는 관중보다 경찰이 더 많았던 시합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경기는 엘살바도르가 연장전 끝에 3대0으로 승리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승부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7월 13일 새벽,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에 선전포고를 하고 국경을 돌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엘살바도르의 기갑부대는 중앙돌파를 시도하고 공군기들은 수도를 비롯한 각 도시를 무차별 폭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두라스의 즉각적인 반격으로 전면전으로 번진 축구전쟁은 전사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두 대륙(남미와 북미)을 연결하는 가느다란 허리는 당장이라도 동강이 날듯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전쟁은 사흘 동안 치열하게 계속됐습니다. 온두라스는 낙하산 부대를 엘살바도르의 후방에 떨어트리고 유격전을 벌이는 등 안간힘을 썼으나 전황은 매우 불리했습니다.
* 진격하는 엘살바도르 군
OSA(미주기구)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전투를 중지하도록 촉구했고 16일 오전을 기하여 전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후퇴에 패전을 거듭한 온두라스는 드디어 휴전을 수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5일 전쟁’이었습니다. 양국은 이 전쟁을 통하여 1만 7천명의 사상자와 15만명의 난만이 발생했습니다.
월드컵 진출에 실패한데다 패전의 슬픔마저 겹친 온두라스 국민들은 이제 바다보다 깊은 슬픔이 무엇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말로 온두라스는 ‘깊다’라는 뜻인데 1502년 8월 14일 콜럼버스가 네 번째로 항해 중 이곳 해안에 표류했을 때 “닻을 내리려 했으나 해저에 닿지 않을 만큼 깊다”라고 한데서 유래했습니다.
엘살바도르는 이후 아이티와 최후의 예선전에서 승리하면서 멕시코행 티켓을 거머쥐게 됩니다. 파란 많은 여정이었습니다.
< 부당판정으로 관중석에서의 총격전 >
본선이 열리면서 홈팀 멕시코와 엘살바도르 전이 벌어지면서 관중석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전반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희극은 꺼벙한 에집트인 주심 후세인 칸딜씨가 어리버리한 판정으로 경기의 유연스러운 맥을 자꾸만 중단시킴에 따라 가장 희극스러운 요소를 묶으면서 눈깜박할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전반이 거의 끝날 무렵 멕시코의 미드필더인 곤잘레스가 자기진영 중앙에서 엘살바도르의 마르티네즈를 걷어찬 것입니다.
* 아즈테카 경기장
주심은 엘살바도르의 프리킥을 선언했으나 정작 프리킥 지점에서 엘살바도르 선수가 공을 차려고 폼을 재기도 전에 공을 냅다 찬 선수는 옆에 섰던 멕시코의 페레즈였습니다. 폭소가 터져 나왔으나 그 웃음소리는 우렁찬 환성을 바뀌었습니다. 페레즈가 도둑질해서 내찬 공은 파길라가 받아 치고 들어가다가 멋진 크로스를 올리고 이를 발디비아가 슛팅으로 골문을 가른 것입니다.
칸딜씨는 이를 골인으로 선언하면서 이 희극의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망연자실했고 땅을 치고 통곡을 했으나 주심 칸달씨의 고집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공이 문안에 박혔으니 골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칸딜씨의 해석은 그야말로 말이 차례가 없고 줄거리가 없었습니다. 4만여 엘살바도르 응원단은 열이 날대로 나 있었습니다. 팀은 주심에게 격렬하게 항의를 했으나 칸딜씨는 전반 종료 휘슬을 불고 그대로 심판실로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프리킥이 도난되는 순간 칸딜씨는 이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후반 경기가 속개됐으나 이미 김이 샌 엘살바도르는 팀웍마저 잃어버려 내리막길을 치달았고 석점을 내리 내주면서 0대4로 대패했습니다. 경기 종료의 휘슬이 이 희극스러운 한판을 마감하는 순간 엘살바도르 관중들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 브라질-잉글랜드 조예선
아무래도 경기는 졌지만 무언가 분풀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본부석 건너편 스탠드에서 일어난 한발의 총성이 이 폭발적인 위기를 정돈시켰습니다. 총성은 멕시코의 한 애국자가 옆에 앉은 또 다른 애국자를 사살함으로써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태양에 산심장의 피를 바쳤던 그 옛날 아즈텍의 신화를 소생시킨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주심이 엉터리 심판을 보는 등 멕시코팀을 너무 봐주어서 이겼다”고 주장하는 정직한 애국자를 “아니다, 우리가 아시다시피 실력으로 이기자 않았느냐”고 말다툼을 벌이던 두 멕시코 애국자 중 한 애국자가 마침내 주머니의 권총을 꺼내 간단하게 승부를 끝냄으로써 희극의 한판이 비극의 한판으로 마무리된 것입니다.
< 세기의 명승부, 이탈리아-서독의 준결승전 >
* 양국 선수
이탈리아와 서독의 준결승, 이것은 멕시코 대회까지의 월드컵 40년 역사가 일찍이 경험해본 일이 없는 세기의 대결로 가장 극적이고도 가장 화려한 한판의 드라마였습니다.
이 풍운의 경기는 이탈리아의 킥 오프로 막을 올렸습니다. 공격수가 들어오면 전후좌우에서 둘러싸고 공을 빼내는 이탈리아의 수비포진 그 유명한 카테나치오는 문자 그대로 빗장수비였습니다.
* 서독팀
전반 8분 이탈리아의 보닌세냐가 서독 스위퍼 슐츠를 제치고 강타를 때린 것이 서독문의 왼쪽 모서리를 찔렀습니다. 이제 이탈리아의 승리가 점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의 공식은 단 한점의 리드일지라도 카테나치오로 충분히 지킬 수 있는 것이므로...
과연 이탈리아는 훌륭히 지켜나갔습니다. 서독의 파상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전반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후반전도 계속 흘러 전광판의 계시기가 멈췄습니다. 90분이 다 간 것입니다.
그러나 이날의 주심 야마사끼씨는 휘슬을 불지 않았습니다. 경기 중의 로스타임을 2분 더 가산한 것입니다. 후반 46분 드디어 연장전을 불러오는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습니다. 그라보스키가 이탈리아의 미드필드를 뚫고 오른쪽으로 돌더니 문전으로 낮고 강한 크로스를 실려 보내자 총알처럼 달려들던 슈넬링어가 몸을 던지면서 오른발로 공을 맞힌 것이 골인된 것입니다. 실로 경기종료 15초 전의 일이었습니다.
연장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연장 전반 4분, 서독의 리베로 베켄바우어가 카테나치오에 갇히면서 이탈리아의 폴레티에게 차여 넘어짐으로써 팔을 다쳤습니다. 어깨를 심하게 다친 베켄바우어는 왼쪽 겨드랑이 아래로 붕대를 돌려감아 팔을 고정시켰습니다. 멕시코 관중들의 우렁찬 응원을 받으면서 이 공격의 천재는 씩씩하게 서독의 공격진을 이끌어 갔습니다.
연장 5분 마침내 역전골이 터졌습니다. 서독의 주장 대머리 젤러가 머리로 받아 로빙시킨 볼을 폴레티가 엉뚱하게 처리하자 쫓아 들어간 폭격기 뮬러의 지연탄이 데굴데굴 굴러들어가 이탈리아의 문안에서 터져버린 것입니다.
* 폭격기 뮬러
2대1로 서독이 앞서자 경기는 여기서 끝나는가 싶었습니다. 8회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의 박두익에게 통한의 결정타를 맞았을 때처럼 이탈리아 최고의 골키퍼 알베르토시의 두눈은 빨갛게 상기되었습니다. 그 옛날의 악몽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공은 둥근 것.
5분 뒤에 이탈리아의 동점골이 터졌습니다. 2대2...이번에는 이탈리아의 태양 리바가 역전골을 터트렸습니다. 이 예측불허의 난전은 아직도 몇골은 더 터질 것 같았습니다.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서독의 대머리 주장 젤러의 헤딩패스를 폭격기 뮬러가 이 대회 열 번째의 개인 득점을 기록하면서 이탈리아의 문을 가른 것입니다.
경기종료 10분을 남기고 3대3, 최후의 동점을 이루었습니다. 연장 후반 9분이 이 한판의 승부를 마감한 결정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좌측을 통과한 보닌세냐가 중앙에 세찬 크로스를 때려 보내자 달리던 전차 리베라가 발대기로 공의 각도를 결정한 것이 서독의 문에 그대로 꽃혔습니다.
* 혈투
4대3, 이탈리아의 승리가 극적으로 피어난 순간이었습니다. 다음날 이탈리아의 한 신문은 1면 톱기사의 커트를 독일말로 ‘당커 쉔’(감사합니다)이라고 뽑아 이탈리아의 결승진출을 서독에 감사했습니다.
하필 서독의 감독 이름이 ‘당커 쉔’의 의미없는 부사 ‘쉔’과 철자 하나 틀리지 않은 ‘쉔’그대로여서 그 제목은 쉔 감독의 작전미스를 꼬집는 뉴앙스가 살아나는, 아무튼 재미있는 표현이었습니다.
* 폭격기 게르트 뮬러
< 결승전, 브라질-이탈리아 >
* 양팀 선수
제9회 멕시코 원드컵은 공격의 대가 브라질과 수비의 명수 이탈리아의 최후 격돌로 압축되었습니다. 9회 대회의 피날레를 장식한 이 한판은 양팀이 모두 월드컵 2승의 관록을 업고 있어서 어차피 황금의 컵 ‘줄 리메’의 영원한 은퇴를 약속한 일전이었습니다.
줄 리메 컵은 3회 우승국에게 영구히 소유할 수 있도록 약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탈리아, 그들의 짙푸른 유니폼 색각 때문에 그들의 별명은 아주리였습니다. 이탈리아 말로 푸르다라는 뜻의 아주리는 흔히 디자이너들이 ‘이탈리안 블루’라고 말하는 짙은 청색을 말합니다.
*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팀
* 노랑색 군단 브라질팀
노랑색의 브라질팀의 감독 자갈로 감독은 하느님의 은총이 내려질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발카레기 이탈리아 감독은 하느님의 축복은 이탈리아 팀에 내려질 것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창과 방패의 전투가 벌어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결전의 날, 멕시코의 찬란한 태양이 아즈테카 경기장의 고원을 어루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즈테카 경기장에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앉은 12만명의 대관중도 세계 수억의 축구팬들도 이 한판의 매듭이 어떻게 맺어질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 이탈리아팀 주장 파케티
공격이 수비를 이길 것인가. 혹은 수비가 공격을 묶을 것이가 하는 해묵은 논쟁이 또 다시 심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모든 운명론은 결과로부터 귀납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킥 오프의 순간부터 이 승부의 진리를 연역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경기 시작과 함께 이탈리아의 불룩한 카테나치오 포진이 사다리를 이루면서 브라질의 포진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공을 잡은 이탈리아의 태야 리바가 왼쪽을 급습, 강슛을 때렸으나 브라질의 골키퍼 펠릭스가 쳐내면서 위기를 걷어냈습니다. 과연 이탈리아의 음악적인 카테나치오 포진은 격렬한 악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브라질의 현란한 움직임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반 18분 드디어 브라질이 선제점을 빼냈습니다. 어느 때처럼 좌측 엔드라인까지 치고 들어간 왼발의 명수 리벨리노가 길고 높은 크로스를 올려 보내자 이탈리아의 수비진을 뚫고 솟아난 검은 진주 펠레의 빛나는 머리에서 헤딩슛이 터진 것입니다. 한마리 돌고래가 솟아오르듯이...
* 첫골을 터뜨린 펠레
이 장관의 선제점은 과연 축구황제 펠레의 환상적인 득점력이 아무도 뒤따를 수 없는 영역에까지 도달하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펠레의 이 득점은 브라질 대표팀이 월드컵 대회에서 올린 1백번째 득점인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한점을 뒤지자 이탈리아의 빗장수비는 수비선을 전방으로 이동시키고 만회작전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철각을 내던지는 공포의 태클은 포진의 변화를 이용한 극심한 소모전의 양상가운데 처절하게 펼쳐졌습니다.
전반 38분 아마 자기 나름의 표현의 자유에 도취된 클로도알도가 문전에서 발뒤꿈치로 백패스한 공을 날쌔게 가로챈 보닌세냐가 뛰어나오는 팰릭스의 전진 수비를 물거품으로 만들면서 브라질 문을 가른 것입니다. 과연 최후의 순간이 어떻게 찾아들지는 전혀 미지수였습니다.
12만 대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리고 10억이 넘는 세계의 축구팬들이 위성중계를 통해 이 한판의 운명을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전반은 1대1 동점으로 끝났습니다. 후반이 시작되면서 역시 이탈리아는 카테나치오로 더욱 문을 잠그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격의 달인 브라질은 더욱 현란한 움직임으로 이 빗장수비를 허물려고 덤벼들고 있엇습니다.
* 알베르토의 마지막 골
최후의 순간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찔러 들어오는 극심한 태클의 와중에서 공을 빼낸 자이르징요는 뒤따르는 게르손에게 짧게 백패스하며 임무를 전달했습니다. 좌측으로 치고 들어간 게르손이 보닌세냐의 슬라이딩 태클보다 반박자 빠르게 강슛, 허리높이로 날아간 운명의 공은 브라질 골키퍼 알베르토시의 필사적인 다이빙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문의 오른쪽 구석에 박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스코어는 이제 2대1, 브라질이 또다시 우위를 확인한 셈이었습니다. 승부의 균형이 깨지자 경기의 리듬이 경쾌하게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가 빗장을 열고 맞짱 한번 뜨자고 전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공은 브라질 선수들의 발에서 발로 경쾌하게 연결되면서 좌측 터치라인에서 단 일격에 오른쪽 끝으로 결전무대를 옮기는 변화무쌍한 작전의 중심지를 빗속의 나비처럼 흘러다니고 있었습니다.
브라질의 이러한 템포 조정은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를 효과적으로 교란시켰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의 체라는 방향감각을 잃을 만큼 혼미한 상태에서 갈팡질팡함으로써 드디어 빗장이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후반 26분 하프라인에서 10m 정도의 지점에서 프리킥을 얻은 브라질은 전형적인 포스트 플레이로 또 한점을 추가함으로써 이탈리아의 추격세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게르손이 왼발로 띄워 이탈리아 페날티 에어리어 우측에서 솟아오른 펠레의 머리에 맞혔습니다. 공은 쫓아 들어오는 자이르징요의 타이밍에 절묘하게 걸려 들었습니다. 알베르토시가 문에서 뛰어나와 덮치기 전에 자이르징요의 왼발이 닿았습니다. 떼굴떼굴 굴러간 공은 이탈리아의 문안에서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오른손을 뻗어 허공을 찌르면서 기뻐 날뛰던 자이르징요는 일순 무릎을 꿇고 잔디 위에서 장궤하더니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성호를 그었습니다. 아즈텍의 태양이 화려한 조명을 보내는 가운데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자이르징요를 감쌌습니다. 월드컵 역사에 최초로 자이르징요가 매 경기마다 득점을 기록한 것입니다.
** 브라질, 줄리메 컵 영원히 차지
3대1이 되자 브라질은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브라질의 공격은 재봉틀의 북실이 풀리듯 섬세하고 그리고 우아하게 한없이 플려 나갔습니다. 대회 최대의 콤비라고 불리던 보닌세냐와 리바 콤비도 이탈리아가 미드필드를 함락당하고 부터는 그만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한판의 경기는 브라질의 공격 축구가 이탈리아 수비 축구를 항복시킨 기념비적인 한판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플레이를 한편의 산문이라면 브라질의 그것은 그야말로 시였습니다. 펠레, 자이르징요, 토스타오, 리벨리노의 움직임은 그 미세한 동작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언어였고 그들의 작전은 득점이라는 주제를 향한 조화된 율동이었습니다.
최후의 결정타가 터진 것은 종료 3분전, 이탈리아에게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단 하나 남은 희망마저 탈출해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빗장이 뽑힌 것입니다. 약관 20세의 클로드알도가 하프라인에서부터 신선한 드리볼로 이탈리아 수비진을 벗겨내기 시작했습니다.
한사람, 두사람, 세사람, 네사람... 발레리나처럼 리드미컬하게 이탈리아 수비진 한 무더기를 이끌고 나아가던 막내 클로드알도는 몰고 가던 볼을 자이르징요에게 연결했습니다. 공은 또다시 페날티 에어리어 우측에 있던 펠레가 받아 움직임을 일단 정지시키고 이탈리아 최후의 수비와 대치, 숨막히는 순간이 흘렀습니다.
펠레가 움칫거리며 공을 옆으로 살짝 치더니 손가락으로 공을 가르켰습니다. 뒤에서 전력 질주해 들어오는 알베르토를 본능적인 직감으로 꿰뚫어 본 펠레의 의도가 이탈리아의 네트를 찢으면서 최후의 충격을 안긴 것입니다. 알베르토의 대포알 같은 슈팅은 멕시코 월드컵의 대미를 장식하는 슛이었습니다.
타임업의 순간, 아즈텍 경기장은 광란의 도가니로 변했습니다. 흥분한 팬들이 경기장에 몰려나와 펠레 등 브라질의 일레븐을 헹가래쳤고 백넘버 10번인 펠레의 유니폼을 서로 가져가겠다고 아우성치면서 수십명이 벌떼처럼 달라붙어 조각조각 찢어 나눠 가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브라질 자갈로 감독은 눈물을 흘렸고, 이탈리아의 패배를 인정한 발카레기 감독도 "지금 이 브라질팀을 이길 수 있는 팀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 브라질 주장 알베르토, 경기가 끝나고...
황금의 월드컵 줄리메는 형언할 수 없는 극성스런 팬들의 광란 속에 드디어 은퇴의 순간을 맞았습니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월드컵 축구의 상징 줄리메 컵이 끝내 브라질에 유혹당한 것입니다. 멕시코의 오르다즈 대통령으로부터 월드컵을 수여받은 브라질의 주장 알베르토는 컵에 조각된 승리의 여신에게 키스를 한 뒤 이어 열명의 선수들이 돌아가며 차례로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탈리아의 2천7백만 축구팬들이 TV로 시상식을 지켜보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했고 브라질에서는 광란의 물결이 전국토를 뒤덮었습니다. 리오의 중심가의 교통은 마비되고 창문마다 지붕마다 브라질 국기를 든 시민들이 "브라질! 브라질!"을 소리 높여 외쳤으며 모든 방송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브라질 국가만을 계속 내보냈습니다.
22일 밤 절정을 이룬 각종 환영행사에서 44명이 사망했고 22일 오후 4시부터 23일 정오사이에 리오의 중심가 대병원을 노크한 부상자 수만도 1천8백 명이 넘었습니다. 폭죽과 삼바 리듬의 홍수 속에서 총기발사, 교통사고, 추락사고, 심장마비 등으로 무수한 사람이 생명을 잃었지만 브라질의 승리에 대한 축하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23일 갈레오 국제공항에 개선하는 선수들을 환영하려고 5천여명의 팬들의 경찰 저지선을 뚫고 들어가 선수들을 얼싸안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이어서 연도의 200만 리오 시민들은 선수들이 지나갈 때 환영의 노래를 불러대며 광란의 축제를 벌였습니다.
비바 브라질!! 만세 브라질!! 더 이상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경기를 펼친 브라질 팀에게 인류는 뜨거운 감사를 표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