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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부속중고등학교11회
 
 
 
카페 게시글
쉼터 스크랩 아프리카에서 무지개를 보다-무지개 인종, 무지개 문화의 나라
오리(신인성) 추천 0 조회 146 07.08.24 14:0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아프리카의 피카소 부족이라고 불리는 은데벨레족의 전통문양은 화려하기 이를데가 없고 그 다양한 무늬는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이 없다고 한다. 은데벨레족의 전통문양 구슬 공예품.

 

남아공이라는 나라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지개 문화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무지개 문화라는 말은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남아공 영국 성공회 대주교인 데스먼드 투투 대주교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17세기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진출해서 개척을 하고  처음 둥지를 틀었다. 그 후 식민 세력 다툼으로 다시 앵글로색슨의 자손인 영국인들이 오랜 세월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뿌리를 내려 이 땅을 지배했다.처음으로 이 땅에 정착했지만 백인에게 주인의 자리를 내주어야했던 코이족이나 산족은 더 이상 이 땅에 남아있지 않다. 우리에게 부시맨으로 알려져 있는 마지막 코이족과 산족은 대부분 수용소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죽어갔다고 한다.

 

 

 남아공에 가장 먼저 정착해서 살던 코이족이나 산족(우리에게는 부시맨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은 이제 더이상 남아공에서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 부시맨들은 대부분 형무소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가 죽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남아공 인구의 70프로 이상은 흑인이 차지하고 있다. 백인과 흑인 그리고 컬러드들. 거기에 금광과 다이아몬드 채굴 산업 번창 시기에 노동자로 유입되어 들어온 인도인들과 중국인들. 남아공은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인종들이 한데 섞여 색색의 무지개 문화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곳이다. 가정어(가정에서 쓰는 언어를 말함)로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정통 네덜란드계 백인. 남아공의 전형적인 백인들로 아프리카너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문화와 언어에 자부심을 느끼며 완고하고 지극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케이프타운의 근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만난 컬러드들. 주말을 맞아 가족모두 시내 나들이를 나섰다. 보따리 보따리 장을 봐서 챙겨놓고 집으로 돌아갈 차 편을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큰 트럭뒤에 열댓명씩 모여서 나들이를 나서곤 한다.

 

간혹 남아공의 전형적인 이 아프리카너들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심지어는 싸잡아 인종차별주의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런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옳지 않지만, 같은 백인이라고 해도 다른 유럽계 백인과 비교해 보수 성향이 짙은 게 사실이다. 또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는 전형적인 아프리카너들은 소위 콧대가 세고 고집스러우며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프리카너들은 절대로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가령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 대한다고 해도 손을 흔들어 반갑게 인사를 한다고 해도 그건 단지 인사일 뿐이고 그때뿐이다. 남아공의 전형적인 아프리카너들은 절대로 쉽게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건 전적으로 생활하면서 느낀 개인적인 것이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백인들 사이에서도 아프리카너는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들로 통한다. 자신의 뿌리에 대해 지나치게 자부심을 가지고 필요없이 고지식하고 완고한 전형적인 아프리카너들은 아직도 시골 농가에서 고집스럽게 살아가며 영어 배우기를 거부하고 실제적으로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코버스와 애너마리는 전형적인 아프리카너이다. 영어를 쓰지 않을정도로 보수적이거나 완고한 편은 아니지만 시골 농가를 지키면서 자신들의 조상이 가꾸던 땅에서 여러가지 과일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같은 백인이지만 가정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그들은 전형적인 아프리카너들과는 달리 다국적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영국계 아버지와 독일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사람. 할아버지는 포르투갈에서 왔고 할머니는 스코틀랜드 출신.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영어권 백인들은 남아공 아프리카너들에 비해 조금 더 사교적이며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기도 조금 더 쉽다고 말할 수 있다. 남아공의 아프리카너들이 대부분 농업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그 기득권을 행사하는 것에 비해 영국계 백인들은 주로 산업과 서비스 업계에 진출해서 성공한 사례가 많다.

 

남아공 인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컬러드이다. 컬러드들은 애초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백인들과 남아공 원주민이던 코이족이나 산족과의 결합에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수세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인종의 결합으로 생겨난 혼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어로 아프리칸스어를 쓰며 대부분 케이프타운이 속해 있는 웨스턴 케이프 지방에 집중되어 살고 있다. 그들은 백인 언어를 가정어로 쓰면서 백인 사회에 편입되길 갈망하지만 백인 사회에도 편입되지 못하고 흑인 사회에도 편입되지 못한 채 여전히 자신들의 정체성 확보에 갈등을 하고 있는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물개섬으로 가는 배를 타는 헛베이에서 만난 컬러드들. 남아공의 컬러드들은 대부분 정체성 갈등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남아공의 컬러드들은 또 뛰어난 입담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 즐겁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남아공에서 가장 믿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컬러드들이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그런 선입견과는 달리 대부분의 컬러드들은 사교성이 뛰어나고 친근하기 때문에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남아공 경제의 한 부분을 장악하고 있을 만큼 부유한 컬러드들도 있다지만, 많은 컬러드들은 그리 부유하지 못하며 아직도 시골 농가에 일군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인구의 10프로도 되지 않는 컬러드들은 주로 웨스턴 케이프 지방에 집중되어 살고 있다. 많은 수의 컬러들은 백인 농장의 일꾼으로 살아간다

 

남아공 전체 인구의 70프로 이상을 흑인이 차지하고 있는데, 피부가 검은 색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종족은 아니다. 공식 언어가 영어와 아프리칸스어를 제외하더라도 9개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종족이 모여 산다는 의미가 된다. 아직도 깊은 오지에는 홈랜드라고 하는 지역에 저마다의 부족 왕들이 존재한다. 물론 어떤 실권을 가진 존재들은 아니고 상징에 불과한 왕이지만, 나라에서는 그 이름에 맞는 대우를 해주곤 한다. 선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대통령도 가끔 그 홈랜드의 왕을 방문하는 일도 있다.

 

코사족 전통 가옥의 내부 모습. 코사족은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사회로 주택 구조도 역시 여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

 

케이프타운이 속해 있는 웨스턴 케이프 주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흑인은 코사족이다. 남아공의 대통령인 타보 음벡기나 전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 모두 이 코사족 출신이다. 코사족 신화에 의하면 코사라는 말은 ‘성난 사람들’ 이라고 한다. 코사족은 남아공 여러 흑인 인종 중에 서양인들과 가장 먼저 접촉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코사족은 그 거주지가 주로 케이프 지방이기 때문에 케이프를 통해 정착하기 시작한 백인과의 교류가 가장 빨랐다는 이야기이다.

 

선시티 민속마을에서 만난 전통 공연. 어느 부족이 어느 부족인지 알수 없게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의 춤사위와 땅을 울리는 듯한 음악소리에서 비로소 아프리카 대륙의 주인다운 강인감을 엿볼 수 있었다.

 

코사족의 전통 치료사들은 다른 부족에 비해 유명한 편이다. 그 이유는 다른 부족의 전통 치료사들은 가히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방법에 의존해 병을 치유하려고 하는 것에 비해 코사족 전통 치료사들은 자연 약초를 이용해 병자를 치료하는 나름대로 과학적인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사족의 홈랜드를 방문해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케이프타운 타운쉽 투어 때 전통 치료사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조금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그 명성과는 달리 실망의 수준을 넘어 슬픔을 느낄 정도로 너무 시설도 기술도 초라하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했다. 동굴처럼 시꺼먼 공간 안에 약초를 모아놓은 병은 먼지가 쌓이고 쌓여 약재로 쓸 수 있을까 싶었고, 지붕마다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온갖 동물의 박제나 손발톱 등은 전통치료사라는 느낌보다 마치 무속인 같은 느낌을 더 강하게 느끼게 했다. 코사족이 웨스턴 케이프 지방에 많이 집중되어 살기 때문에 이 지방에서는 학교 수업에 코사어로 수업을 하고 있다. 케이프타운의 유명한 타운쉽의 모든 이름 역시 코사어로 붙어졌다.

 

타운쉽에서 만난 코사족 여인. 막 결혼한 여자들은 치마 위에 덧치마를 입어 금방 결혼한 새댁인 것을 표시한다.

 

코사족과 더불어 남아공의 비중 높은 흑인은 줄루족이다. 줄루족은 품성이 용맹스럽고 호전적인 것으로 자주 묘사되곤 한다. 19세기 초 용맹스러운 흑인 전사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샤카 줄루의 등장으로 줄루족은 남아공 내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게 되었으며, 현재도 콰줄루나탈 주에 줄루 왕국을 가지고 있다. 샤카 줄루가 약소 부족에 불과 하던 줄루족을 일정부분 영향력 있는 부족 국가로 발전시킨 것이다. 줄루족의 구슬 공예는 은데벨레 족의 그것과 더불어 아름답고 정교하기로 유명하고 남아공 내의 전통 공예품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코사족 남자에 비해 줄루족 남자들은 신체가 조금 더 건장하고 골격이 큰 편이다.

 

샤카 줄루의 후예로 남아공 흑인 부족중에 가장 호전적이며 전투적인 부족으로 꼽히는 줄루족의 성인 남자. 줄루 족은 무기를 잘 다루는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

 

줄로족의 결혼한 여성과 미혼 여성의 전통 의상 차림. 성인 여자가 쓰고 있는 구슬로 만든 모자는 줄루족 여자의 큰 상징이다.

 

남아공에 사는 흑인 부족 중 가장 신비스런 부족 중의 하나가 은데벨레 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다름 아닌 그들의 예술적 감각 때문이다. 그들의 전통 가옥은 흰 바탕에 원색의 기하학적 무늬가 들어가는데, 신기하게도 한 채도 같은 문양을 가진 집이 없다고 한다. 남아공의 피카소 부족이라고도 불리는 은데벨레족의 의상은 그 색깔이 화려함의 극치를 보인다. 특히 여성의 전통 의상의 경우 구슬로 일일이 꿰어 만든 섬세한 치마나 허리 장식 또한 위에 걸치는 화려한 원색의 천은 그들의 검은 피부색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전통 복장을 한 은데벨레 여인들이 앉아서 구슬을 이용한 화려한 장식품을 만들고 있다.

 

유명한 구슬 다리 장식을 착용하고 화려한 담요를 두르고 있는 은데벨레 부족의 성인 여자의 모습.

 

이밖에도 남아공에는 소토, 샹간, 벤다족 등 여러 부족이 있지만, 그들의 전통 모습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쉽지 않다. 처음에는 아프리카라고 하니 원시 부족이 모여 사는 곳을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기대도 했었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우리가 볼 수 있는 흑인은 대부분 도시에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가난한 흑인들뿐이다. 아직도 전통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사는 각 부족의 홈랜드가 있지만, 너무 오지라 쉽게 가볼 수가 없었다. 조하네스버그 가까이 위치한 레서티 민속마을에서 전통 가옥이나 전통의상을 입은 부족들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잠시 엿볼 수가 있었다.

 

수투족의 젊은 청년들. 재미있는 모양의 모자와 화려한 색깔의 담요를 두르는 것이 소토족 남자들 전통복장의 특징이다.

 

이렇게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무지개 문화를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다름 아닌 남아공이다. 지난 반세기 이상 잔인한 인종차별주의로 심한 갈등을 빚어냈던 남아공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가고 있지만, 여러 인종 사이의 골 깊은 갈등의 화합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여정 중에 있다. 여러 가지 색이 모여 찬란한 무지개를 만드는 것처럼, 다른 인종이 섞여 사는 남아공 역시 남아공만의 독특한 문화와 진정한 무지개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은데벨레 부족의 전통가옥. 기하하적이고 화려한 무늬의 은데벨레족의 전통 문양은 유럽의 유명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tip-공식 언어만 11개


남아공은 공식 언어가 11개이다. 비공식 언어까지 하면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적지 않은 공식 언어만으로도 얼마나 다양한 문화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영어와 아프리칸스어가 가장 널리 쓰이는 공식 언어이지만, 초등학교나 고등학교는 지역에 따라 코사어나 줄루어를 추가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아프리칸스어는 최초 남아공에 이주해왔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진출과 더불어 생겨난 말로 많은 부분이 네덜란드 언어에서 가져왔고 독일어와도 유사한 발음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칸스어는 영어보다 약 20년 뒤늦은 1931년에 공식 언어로 지정되어 가정마다 사용할 것을 권장했지만, 실제로 아프리칸스어를 쓰는 가정은 아프리카너들과 컬러드들에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아파르트헤이트 붕괴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던 조하네스버그의 소웨토 청년 봉기는 흑인 학교에서 아프리칸스어로 수업할 것을 강요한 것이 발단이 되기도 했다.

 

남아공 전형적인 아프리카너들은 아프리칸스어만 사용하고 영어 배우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 대농장의 농장주이기도 한 토종 아프리카너들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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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9.06 23:30

    첫댓글 난, 처음에 동호가 올린 줄 알았답니다. 왠걸, 오리양이 빨빨거리시며 언제 아프리카로 가셨는지... 열정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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