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밝게 더 기쁘게
오늘부터 연중시기 끝까지 요한묵시록의 말씀을 독서로 듣게 됩니다. 마지막 때에 관하여, 종말에 관하여 말하기 위해서는 시작이신 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작이신 분이 마치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가 시작이 아니라 인류 구원의 섭리가 시작입니다.
여기서 영화의 명대사를 인용하게 되네요. 주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 시작을 하고 마치시기까지 계획대로 섭리하시고, 계획대로 완성하십니다. 여기에서 주님의 초점은 우리의 구원에 있습니다. 회개를 바라시고 회개하도록 바라보시는 주님의 시선은 늘 우리 자신에게 향해 있습니다. 어쩌면 내가 나 자신을 보는 것보다 더 나를 전지전능하신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저는 성당 계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전능하신 그리스도”이콘을 가끔 바라봅니다. 일단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예수님의 눈입니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아주 다릅니다. 참 사람이시오 참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표현한 것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시작과 마침의 눈으로 묵상을 해보게 됩니다. 나의 시작과 나의 마지막을 바라보시는, 모든 것을 바라보시는 주님으로 묵상해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님의 시선, 바라봄 안에 있습니다.
올라오는 계단에 십자가 모양으로 붙여놓은 예수 성심 성화를 비롯해서 많은 예수님 그림들이, 그림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시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눈길과 마주하면서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도록 말이지요.
그 시선에서 무엇을 느끼시나요? 부담스러우신가요? 그럴 수 있습니다. 너무 똑바로 쳐다보세요. 사실 죄가 많아 가지고 똑바로 못 쳐다봅니다. 다른 사람 눈을 바라보는 것은 별로 부담스럽지 않은데 유독 예수님 눈길은 부담스럽단 말이지요. 그런데 또 부담스럽긴 하지만 불편하지는 않지요? 그래서 많은 느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보다 보면 문득 깨닫습니다. 날 한참 전부터 보셨는데, 계속 바라보고 계셨는데, 난 이제야 바라보는구나 하고 말이지요. 대림시기 전까지, 주님 바라보는 묵상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저처럼 그리 불편하지 않으시면 그 앞에 머물면서 주님 바라보다 보면 각자 느껴지는 바가 있을 것이고 묵상하는 바가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 바라보다 보면 주님 눈길 닮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질투의 눈, 시기의 눈, 성난 눈, 짜증섞인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눈처럼 그 시선을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을 마주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담스러워도 아이컨텍 하면서 주님을 담게 되면, 그 닮은 눈길로 오늘 하루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첫댓글 깨닫습니다. 날 한참 전부터 보셨는데, 계속 바라보고 계셨는데, 난 이제야 바라보는구나... 아멘...
아무생각없이 지나다닌 계단에 예수님 성화 다시 바라보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양쪽눈이 다르다는것을.
우리성당 성화는 원본처럼 다르게 그려지지 않아서 좀 아쉽습니다.
그래서 아래 그림 참고하시라 올립니다
왼쪽 사진은
왼쪽 얼굴을 대칭으로 만들어놓은 것이고
오른쪽 사진은
오른쪽 얼굴을 데칼코마니로 대청해 놓은 것입니다.
왼쪽이 인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고
얼굴 오른쪽 면은 신성을 부각시킨 것으로 해석됩니다.
와~감사합니다~자세히보입니다.예수님표현이 심오하고 놀라워 검색해봤습니다.
"판토크라스토 그리스도 " 자주들어와 나를 보시는 눈과 오른쪽의 눈을 묵상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