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 위에 세운 우승, 그리고 한국 체육을 바꾼 한 선수의 책임감
새해 첫 대회부터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말레이시아 오픈, 세계 최고 등급의 슈퍼 1000 대회.
안세영은 또 한 번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이제 이 장면은 더 이상 ‘이변’도, ‘놀라움’도 아니다.
그저 세계 1위 안세영에게 자연스러운 풍경일 뿐이다.
그러나 이 우승은 단순한 기록 추가가 아니다.
이 우승은 버텨온 시간에 대한 보상이고,
상처 위에 쌓아 올린 신뢰이며,
한국 배드민턴, 나아가 한국 체육 전체를 흔들어 놓은 한 선수의 증명이다.
■ 고난 속에서 완성된 챔피언
안세영의 커리어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은 잔혹할 정도로 고됐다.
무릎은 이미 한 번 무너졌고,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는
찢어진 힘줄을 안고도 코트에 섰다.
걸을 수 없을 만큼 아픈 다리로 셔틀콕을 쫓았고,
그 끝에서 금메달을 들어 올렸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충분한 재활은 없었고, 보호는커녕 관리조차 부실했다.
그는 “참으면서 뛰었다”고 말했고,
그 말은 한국 스포츠 행정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리고 파리 올림픽 금메달 직후,
안세영은 침묵하지 않았다.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비체계적 선수 관리, 부상 대응 실패,
선수촌에 남아 있던 낡은 위계와 악습을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의 발언은 불편했지만, 반드시 필요했다.
그 결과는 분명했다.
정부 감사, 협회장 해임 요구, 규정 개정,
개인 후원 허용, 선수 지원 시스템 전면 재정비.
안세영은 단순히 우승한 선수가 아니라,
협회를 움직인 선수였다.
■ 안세영을 만든 힘 — 재능이 아닌 DNA
안세영의 가장 큰 장점은 명확하다.
강한 체력, 끈질긴 수비력과 넓은 코트 커버력, 헤어핀과 네트 플레이의 정교함, 경기 흐름을 읽는 탁월한 완급 조절.
세계 중계진이 그를 ‘무결점(impeccable)’이라 부르는 이유다.
그는 상대를 쓰러뜨리기보다,
지치게 만들고, 흔들고,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다.
이 힘은 어디서 왔을까.
그 배경에는 아버지 안정현 씨가 있다.
전 복싱 국가대표, 링 위에서 몸으로 버텨온 선수.
안세영의 체력과 투지,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근성은 훈련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분명 DNA의 영역이다.
셔틀콕은 가볍지만, 안세영의 경기에는 언제나 복싱 선수처럼 단단한 하체와 한 방을 버텨내는 정신력이 있다.
■ 분명한 약점,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경고
그러나 안세영은 완벽하지 않다.
그의 단점 역시 분명하다.
세계 최상위권 선수들과 비교하면 폭발적인 공격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스윙 스피드가 빠른 타입은 아니다.
무엇보다 수비 중심의 플레이 스타일은 부상 위험이 크다.
많이 뛰고, 오래 버티고, 끝까지 받아내는 방식은 승리를 보장하지만 몸에는 잔혹하다.
이미 무릎이 그 경고를 보냈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이 아니라 관리다.
더 많은 우승보다 더 오래 뛰는 것이 중요하다.
안세영은 한국 배드민턴의 현재이자 미래이고, 이제는 대한민국 체육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그를 지키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다.
■ 끝이 보이지 않는 재능, 그러나 끝까지 가야 할 길
BWF 중계진은 말했다.
“이 젊은 선수의 재능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맞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재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라는 것을.
안세영은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
이제는 더 많이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
더 참지 않아도 된다.
더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된다.
부디, 부상에 지지 않고
시스템에 다치지 않으며 자신의 속도로 오래 뛰기를.
새해 첫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바란다.
안세영이 오래, 아주 오래
대한민국 체육의 중심에 서 있기를.
ㅡ스포츠 칼럼리스트 김정훈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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