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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운서예전각연구실 원문보기 글쓴이: 청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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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고산유고 제2권 소(疏)
갑신년에 올리는 소〔甲申疏〕 헌문대왕(憲文大王 인조) 22년(1644) 2월, 공이 해남(海南)에 있을 때 지었다. 상소가 올라갔으나 답하지 않았다.
삼가 아룁니다.
임금의 명에 급히 달려가는 것이 신자(臣子)의 상경(常經)이긴 합니다만, 병이 있으면 사정을 봐주는 것도 본디 국가의 상전(常典)입니다. 생각을 분수에 넘지 않게 하는 것이 도를 지키는 상훈(常訓)이긴 합니다만, 소견이 있으면 반드시 진달드리는 것도 본디 임금을 사랑하는 상정(常情)입니다.
그렇다면 신이 비록 미물과 같이 보잘것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어찌 감히 충성과 사랑을 위주로 하지 않고, 한갓 두려워하여 삼가려고만 하면서, 군부(君父)의 앞에 소회(所懷)를 죄다 말씀드리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이 감히 병에 걸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유 및 성상의 물약유희(勿藥有喜)의 처방을 가지고, 우러러 면류(冕旒)의 아래에 아뢰게 되었으니, 삼가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유념해 굽어살피시어, 사람이 못났다고 그 말까지 폐하지 마시고, 언외(言外)의 뜻도 아울러 통촉해 주소서.
신이 비록 형편없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신자(臣子)의 분의(分義)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습니다. 성상께서 편찮으신 날을 당하여 내국(內局 내의원(內醫院))에서 급히 부르는 명이 있었고 보면, 신이 감히 먹던 것도 뱉어 내고 잠자는 것도 잊은 채 별똥별처럼 얼른 달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신이 전에 외람되게 궁학(宮學)의 사부(師傅)로 있을 적에 오래도록 특별한 은총을 받은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고, 또 신이 성산(星山)의 수령으로 재직할 적에는 시론(時論)이 극력 공격했지만 성상이 애써 막아 주셨으며, 신이 해변에 물러나 숨었을 적에는 당시의 재상(宰相)이 죽이려 했지만 성상께서 살려 주려고 하셨는 데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때 영외(嶺外)로 유배된 것만도 실로 크나큰 사은(私恩)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1년도 채 못 되어 또 갑자기 은사(恩赦)를 입었으니, 신이 목석(木石)이 아닌 바에야 어찌 감격할 줄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이 은혜를 갚으려는 정성이야말로 심상(尋常)한 분의(分義) 이상으로 만만 배나 더하다고 할 것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신이 소싯적에 어버이의 병환으로 인하여 의가(醫家)를 조금 섭렵하긴 했습니다만, 미묘한 그 이치에 대해서는 본디 어수룩하기 그지없고, 또 신의 몸에 병이 생긴 뒤로는 더욱 효험이 없음을 절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0여 년 전부터는 일체 포기하고서, 향곡(鄕曲)의 의원이 없는 곳에서 급병(急病)에 대해 문의해 오면 가끔 수응(酬應)할 따름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제가 옳다거나 제 실력을 확신하지 못한 채, 항상 남을 그르치고 자신을 그르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니 더군다나 지존(至尊)의 옥체(玉體)에 안위(安危)가 걸린 일에 대해서, 여러 의원들이 정선(精選)한 말의(末議)에 끼어들 수가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긴 하지만, 이 몸이 멀리 외방(外方)에 있으면서 마음이 약청(藥廳)에 걸려 있는 이때를 당하여, 역마(驛馬)를 치달려 주먹밥을 전해 먹으며 순식간에 천리(千里)를 달려간 뒤에, 금달(禁闥 궁문(宮門))의 밖에서 이 몸을 바쳐 상약(嘗藥)의 대열에 참여할 수만 있다면, 보익(補益)하는 일이 전혀 없다고 해도, 그 영광과 행운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다만 신은 타고난 체질이 허약해서 포류(蒲柳)처럼 먼저 쇠하였는데, 임신년(1632, 인조10)에 큰 병을 앓은 뒤로 기력이 갑자기 떨어지더니, 병자년(1636)에 자식을 잃고 나서는 정신이 날로 흐려졌습니다. 그리고 정축년(1637) 봄에 이르러 홀연히 예전에 없던 변고를 당했는데, 참혹했던 강도(江都)의 일과 비통했던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일에 한 생각이 미칠 때마다 뼛골이 시리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면서, 마치 정신병에 걸려 미친 듯 치달리는 사람처럼 되곤 하였으며, 이로부터는 정력(精力)이 모두 고갈되고 기식(氣息)이 실낱과 같은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더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외(嶺外)에서 돌아온 뒤로는 집안일을 사절하고 선영(先塋)의 옆에 초옥(草屋)을 엮어 놓고는 땅속에 들어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에 먹는 것도 두 번 쪄서 익힌 보리밥 몇 홉에 불과합니다. 신의 부모의 무덤이 한 경내(境內) 안에 있는데도 성묘하러 가지 못한 지가 벌써 4년이나 됩니다. 이런 기력으로는 산 넘고 물 건너 먼 길을 여행할 가망이 전혀 없기에, 하늘을 바라보고 눈물을 머금으며 땅에 엎드려 대죄(待罪)할 뿐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신이 성상에게 말씀드린 물약유희(勿藥有喜)의 처방이라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그 병통을 드러내어 밝힌 뒤에 치료한다.”라고 하였으니, 신이 먼저 병의 근원을 논한 다음에 치료 방법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마음은 일신(一身)을 주재(主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장(五臟) 육부(六腑)와 구규(九竅), 백맥(百脈)과 기혈(氣血), 음양(陰陽)의 순역(順逆)과 성쇠(盛衰)와 안위(安危)가 모두 하나의 마음에 매어 있습니다. 하나의 마음이 편안하면 백 가지 몸이 모두 편안하여, 풍한(風寒)ㆍ서습(暑濕)과 귀매(鬼魅)ㆍ백사(百邪)가 어떻게 들어올 수 없지만, 하나의 마음이 불안하면 이와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사람이 “마음이 고요하면 만병이 없어지고, 마음이 동요하면 만병이 생겨난다.〔心靜萬病息 心動萬病生〕”라고 하였으니, 이는 음미할 만한 말입니다.
오늘날 나라의 일이 어렵고 힘든 것이 천고에 없던 바이니, 성상의 마음속의 일이 어떠할지는 말씀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상의 옥체가 불편하신 것은 단지 성상의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요, 성상의 마음이 불편하신 것은 단지 국가의 일이 불편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 의원들이 진찰할 적에 어찌 병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지 못했겠습니까마는, 단지 약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고서 그저 도규(刀圭 의약(醫藥))의 말단에만 기대려 한다면, 날마다 귀신같은 처방을 올린다 해도 실제로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도 의원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보면, 신의 소견이라고 해서 다른 의원들과 다를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전하께서 의원으로 신을 부른 이상에는, 국가의 일에 대해서 신이 감히 끼어들어 논할 바가 아니니, 신은 우선 의도(醫道)를 가지고 충심(忠心)을 바칠까 합니다.
신이 삼가 요량해 보건대, 성상의 옥체가 병에 걸린 심천(深淺)의 정도를 사람의 일에 비유한다면, 회계오백(會稽五百)의 날에는 이르지 않았고, 치료하는 난이(難易)의 정도를 사람의 일에 비유한다면, 행분일배(幸分一杯)의 때에는 이르지 않았으니, 어찌 《간이방(簡易方)》과 《득효방(得效方)》을 가지고 이 병을 치료할 수 없겠습니까.
인삼(人參)은 원기(元氣)를 보양하여 참찬(參贊)하는 공이 있으므로 삼(參)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인데, 인재(人材)에 비유하면 대부종(大夫種)과 소하(蕭何)의 부류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대황(大黃)은 능히 묵은 기운을 밀어내고 새 기운을 불러와 오장(五臟)을 안정시키는 것이 마치 난세를 평정하여 태평을 이루는 것과 같기 때문에 장군초(將軍草)라고 부르는 것인데, 인재에 비유하면 범려(范蠡)와 한신(韓信)의 부류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하늘이 약물(藥物)을 내는 것이 어느 세상이고 없지 않으니, 어찌 인삼이나 대황이 없는 때가 있겠습니까. 오직 제대로 가려내어 잘 쓰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감초(甘草)는 다른 약들을 중화시키고 백 가지 독을 없애 주기 때문에 국로(國老)라고도 부르는데, 인재에 비유하면 〈진서(秦誓)〉에서 말한 단단일개신(斷斷一介臣)이 여기에 해당하니, 비록 다른 약들이 있더라도 이것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그런데 대극(大戟)은 감초와 반대되는 성질을 갖고 있어서, 비록 감초가 있더라도 대극을 섞으면 칼처럼 사람을 죽이니, 이 또한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다.”라고 하였고,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만약 약이 아찔하게 현기증이 날 정도로 독하지 않으면 병을 고칠 수가 없다.〔若藥不瞑眩 厥疾不瘳〕”라고 하였으니, 이것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옛사람이 약을 쓰는 것을 어렵게 여기면서도 약을 가려내는 것을 더욱 어렵게 여겼으니,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신농씨(神農氏)처럼 약을 잘 가려내도록 하소서. 《서경》에 이르기를 “묻기를 좋아하면 넉넉해지고, 자기 소견대로만 하면 작아진다.〔好問則裕 自用則小〕”라고 하였으니,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황제가 기백(岐伯)을 얻은 것처럼 스승을 스스로 잘 얻도록 하소서.
옛날에 주유(周瑜)가 병에 걸렸을 때, 제갈량(諸葛亮)으로부터 바람과 구름은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일어나 앉았고, 손바닥에 쓴 한 글자를 보고서 병이 나았습니다. 금일에 신이 말한 것은 신이 멋대로 지어낸 것이 아니고, 모두 고인의 방술(方術)로 전하의 병을 기막히게 맞힌 것입니다. 전하께서 유념하고 성찰하여 이 말의 뜻을 음미하신다면, 화제(和劑)하여 진어(進御)하는 것을 기다릴 것도 없이 성상의 마음이 반드시 퍼뜩 깨어나실 것이니, 이것이 바로 물약유희(勿藥有喜)의 처방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소서.
《서경》에 이르기를 “백공(百工)은 각자 맡은 기예의 일을 가지고 임금을 간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외람된 혐의를 피하지 않고 감히 미천한 정성을 바치는 것은 실로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인데, 그 말이 약을 논하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이는 또한 각자 맡은 기예의 일을 가지고 임금을 간하는 의리를 따른 것입니다.
신이 오래도록 초야에 엎드려 조가(朝家)의 격례(格例)를 알지 못하는 데다, 병세가 바야흐로 극심하여 심신(心神)이 어수선한 탓으로 말이 대부분 두서가 없게 되었으니, 그지없이 황공하여 떨리는 심정을 더욱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孤山遺稿』2권 > 소(疏)
甲申疏 憲文大王二十二年二月。公在海南時。疏上不報。
伏以急趨君命。雖是臣子之常經。有病許免。固亦國家之常典。思不出位。雖是守道之常訓。有懷必達。固亦愛君之常情。則臣雖螻蟻微末。豈敢不以忠愛爲091_300a主。徒以嚴憚爲務。不盡所懷於君父之前乎。以故臣敢將微臣病未運身之由及聖上勿藥有喜之方。仰溷於冕旒之下。伏願聖明留神垂察。勿以人廢言。而幷燭言外之意焉。臣雖無狀。臣子分義。聞之熟矣。當聖上違豫之日。有內局驛召之命。則臣敢不吐食忘寢。星火奔赴。況臣之昔忝宮學之師也。久叨異數。不可勝記。臣之守職星山也。時論力攻而聖上力遏。臣之屛伏海上也。時宰欲殺而聖上欲活。嶺外之謫。實出鴻私。而未滿一年。遽蒙恩赦。臣非木石。豈不知感。圖報之誠。實出尋常分義之外萬萬矣。第念臣091_300b少緣親病。略涉醫家。而微妙之理。素所昧昧。身病之後。尤覺無驗。十餘年來。一向抛棄。鄕曲無醫之處。時酬急病之問。而猶不自是而自信。常恐誤人而誤己。況於至尊玉體之安危。可奉諸醫精選之末議乎。雖然當此身在遐外心懸藥廳之際。馹馳傳餐。瞬息千里。致身禁闥之外。得參嘗藥之列。則補益雖蔑涓埃。榮幸豈有際涯。第緣臣稟質虛弱。蒲柳先衰。壬申大病之後。氣血頓虛。丙子喪子之後。精神日耗。至於丁丑之春。遽遭無前之變。江都之慘。南漢之痛。每一念至。骨驚心折。有若中風狂走之人。自此精力澌盡。氣息如縷。一加一日。自091_300c嶺外還後謝絶家事。結茅祖塋之傍。以俟入地之日。一日所食。不過重烝麥飯數合。臣之父母之墳。在於一境之內。而不能往掃。已至四載。以此氣力。決無跋涉脩程之望。瞻天飮泣。跼地待罪。罔知所措而已。臣所謂聖上勿藥有喜之方者何也。古人云發其病而藥之。臣請先論病源。次及治法。心者一身之主宰。故五臟六腑九竅百脈氣血陰陽其順其逆其盛其衰其安其病。無不係於一心。一心安則百體皆安。而風寒暑濕鬼魅百邪無自而入。一心不安則反是。故古人有言心靜萬病息。心動萬病生。旨哉言乎。當今國事艱虞。千古所091_300d無。聖上方寸間事。不言可想。然則聖體之未寧。只由於聖心之未寧。聖心之未寧。只由於國家之未寧也。諸醫診視。豈不見病源之所在乎。第不知非藥能愈。而徒責於刀圭之末。則雖日進神方。無益於事矣。然臣亦以醫得名。則所見與諸醫奚異。況殿下以醫召臣。則國家之事。非臣所敢預論。臣請姑以醫道效忠焉。臣竊伏料聖體受病之淺深。以人事譬之。則不至於會稽五百之日。治療之難易。以人事譬之。則不至於幸分一杯之時。豈無簡易方得效方可以治此者乎。人參能補元氣。有參贊之功。故以參名之。譬之人材。091_301a則大夫種,蕭何之類也。大黃能推陳致新。安和五臟。如戡禍亂以致大平。故以將軍草名之。譬之人材。則范蠡,韓信之類也。天生藥物。無世無之。安有無人參,大黃之時也。惟在能辨而善用之如何耳。甘草和諸藥解百毒。故又名國老。譬之人材。則秦誓所謂斷斷一介臣也。雖有諸藥。無此則難矣哉。而大戟有反甘草之性。雖有甘草。雜以大戟則殺人如劍。此又不可不戒者也。古語云。良藥苦口利於病。書曰。若藥不瞑眩。厥疾不瘳。此又不可不知者也。古人以用藥爲難。而尤以辨藥爲難。伏願殿下辨藥如神農然。書曰。好問則裕。自用則小。伏願091_301b殿下能自得師。如黃帝之於岐伯然。昔者周瑜有病。聞詣葛不測風雲之說而起坐。見其掌心一字而病愈。今日臣之所言。非臣杜撰。無非古人方術而切中殿下之病。殿下留神省察而有味於斯言。則不待和劑進御。而聖心必已醒然矣。此非勿藥有喜之方乎。伏願殿下念哉念哉。書曰。工執藝事以諫。臣所以不避猥濫之誅。而敢獻芹曝之誠者。實出愛君之心也。而其言不外於論藥。則其亦執藝事以諫之義也。臣久伏林藪。不識朝家格例。而病勢方劇。心神錯亂。言多不次。尤不勝惶恐屛營之至。謹昧死以聞。
첫댓글 춘원당한방박물관(파고다공원옆)- 시내 교통 좋은 곳이니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