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회전환상(純粹回轉幻想)
홀로 즐기다(獨樂독락)
라고 써서 팽이라고 읽는다
팽이는 홀로 무엇을 즐기는가
*
단숨에 내던져져
그 위치에 존재하게 되는
한 가닥의 다리 날카롭게 찔려
맹목적으로 발끝으로 서서
홀로 회전하는 의미를
새삼 스스로에게 묻는 방자한 소리가 없는 바는 아니지만
축심(軸心)이 전하는 땅의 마찰열이 무언의 대답이다
영혼의 빛에 물들어서
동녘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온다
안개비 자욱한 숲속
쓰러져간 몇 개의 팽이의
야윈 어깨가 보일락 말락 한다
귀를 스치고 안개 속에서 다시금 들려오는
모멘트 소리(죽음을 잊지 말라)
그 목소리를
외려 화려한 악(惡)으로 듣고
회전을 빠르게 한 친구들
불이라든가 바람이라든가 비에 쓰러져
나보다 앞서 간 녀석들
피로에 지쳐 어깨를 떨구고
보이지 않는 양팔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시대의 밑 빠진 늪에 가라앉아 버린 녀석들에의
추운 너의 속죄
이 굶주림을 어찌하랴
나는 잠자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회전의 궁극은 바로 곧바로 서는 것
서둘러 산 녀석들의 순수회전
살아남은 자의 시각도 마침내 수직으로 흡수되고
흔들
흔들
정처 없는 방황
성숙에는 썩은 내음이 떠돈다
아무래도 좋다
존재함으로써 처치 곤란한 위치에서의
마침내 횡전정지(橫轉靜止)의 주검 위에
조용히 일어서는 순수회전 환상
나의 팽이는
풍요한 회전 곧바로 선 채 죽음의 모습을
홀로 즐기다
불은 지금도 뜨거운 여름날의 기억의 주름에 불타고
바람은 지금도 하늘을 무심코 불어가고
비는 지금도 안개 낀 숲에 자꾸 내리고
[언제나 얼마간의 불행 ],문학수첩, 2005.(김광림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