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 1830~1896), ‘불타는 유월(Flaming June: 빛나는 준)’,
1895년, 캔버스에 유채, 120.6×120.6cm, 중남미 푸에르토리코 폰세미술관.
한 젊은 여성이 고양이처럼 몸을 둥글게 웅크린 채 대리석 벤치에 누워 잠들어 있다. 하늘거리는 밝은 오렌지색 드레스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 1830~1896)이 그린 ‘(Flaming June: 빛나는 준)’(1895년·사진)은 가장 사랑받는 빅토리아 시대 명화 중 하나다. 한데 제목이 왜 ‘불타는 유월’일까?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e 'Medici) 묘
-낮과 밤의 의인상(Tomb of Giuliano de' Medici)' 중 〈밤 Night〉. 피렌체 성 로렌초 대성당.
미켈랄젤로(Michelangelo),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e 'Medici) 묘-낮과 밤의 의인상
(Tomb of Giuliano de' Medici), 1526-1534년, 650×470cm, 대리석, 피렌체 성 로렌초 대성당.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가 위촉 받은 메디치(Medici)가 묘당은 교황 레오 10세(Leo X)의 아버지 로렌초, 로렌초의 동생 쥴리아노, 그리고 또 레오 10세의 동생인 쥴리아노, 그의 조카 등 로렌초가의 4명의 묘를 안치하는 묘당이다. 네무르스의 공작 쥴리아노와 울비노의 공작 로렌초의 묘소는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쥴리아노의 석관 위에는 〈낮 Day〉과 〈밤 Night〉을 의미하는 남성상과 여성상이 있다. 그 위에 쥴리아노 상이 있다. 쥴리아노 묘의 밤과 낮, 로렌초 묘의 〈새벽 Dawn〉과 〈황혼 Dusk〉은 하루를 상징한다.
협죽도(夾竹挑) [학명: Nerium indicum Mill.] 꽃말: 주의, 방심은 금물.
레이턴은 19세기 말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20년 가까이 왕립아카데미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 그림을 그린 건 그의 명성이 최고조에 달해 있던 65세 때였다. 그림은 도덕적 교훈보다 회화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시각적 쾌락을 중시했던 그의 예술적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모델의 포즈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조각 ‘〈밤 Night〉’을 참조했다. 사실 모델의 몸은 비현실적이다. 길게 늘어난 허벅지와 목, 접힌 팔은 거의 완벽한 원을 이루지만,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한 포즈다. 여자 뒤에는 햇빛을 받아 이글거리며 빛나는 바다가 묘사돼 있다. 오른쪽 식물은 협죽도(夾竹挑)로 지중해성 기후에선 6월에 가장 큰 꽃이 핀다. 아마도 화가는 6월의 어느 날 자신의 화실에서 잠든 모델의 모습을 보고 이 그림의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왜 그림 제목이 ‘불타는 유월’인지가 설명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오렌지색 드레스다. 속살이 훤히 비치는 데다 잠든 여자의 볼도 붉게 상기돼 있어서 감상자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실제로도 화가와 모델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건 그 시대에 흔한 일이었다.
이 그림은 1895년 왕립아카데미 전시에 출품돼 큰 찬사를 받았다. 이듬해 1월 24일 레이턴은 영국 왕실에서 남작(男爵) 작위도 받았다. 화가로서 최초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협심증(Angina pectoris: 狹心症)으로 세상을 떠났다. 단 이틀 사이에 그는 인생 최고의 명예와 허무를 다 겪은 셈이다. 결국 그림은 캔버스 위에서 생애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던 화가의 뜨거웠던 유월을 대변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 1830~1896)
✵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 1st Baron Leighton, 1830~1896)은 영국의 화가, 조각가이다. 역사, 성서, 고전 고대의 요소를 주로 다루었다. 1896년 화가로서는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세습 남작작위를 받았다.
이 그림은 중남미 푸에르토리코 폰세미술관에 소장하고 있어서 "남반구의 모나리자"로 불리고 있으며 작가가 사랑하는 여성 "도로시 딘"을 그린 것이다. 레이턴은 비혼주의 화가로 50살이 넘어서도 혼자 살았는데 어느날 29살이나 어린 하층민 출신의 여성을 만나면서 동거를 하게 되며 그녀의 별명으로 "도로시 딘"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1855년 런던 왕립아카데미 전시회에서 그가 그린 "플로렌스 거리를 행진하는 치마부에의 마돈나(Cimabue's Madonna Carried in Procession)" 그림을 빅토리아 여왕이 거액에 구입하면서 유명해진다. 1878년에는 왕립아카데미 원장이 되었으며 1878년에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1886년에는 준남작(準男爵)의 칭호를 받았다. 죽기 바로 전날 영국 화가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남작(男爵)이 되는 영예를 누렸다. 하지만 레이턴은 법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작위(爵位) 칭호는 사망후 하루만에 소멸되었다.
프레더릭 레이턴,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Perseus and Andromeda)',
1891년, 235x129.2㎝, 워커 아트 갤러리, 영국 리버풀.
프레더릭 레이턴, '알케스티스를 구하기 위해 죽음과 싸우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가 타나토스를 가볍게 제압하고 있다.
프레데릭 레이턴, ‘플로렌스 거리를 행진하는 치마부에의 마돈나
(Cimabue's Madonna Carried in Procession)’, 1855년.
프레데릭 레이턴, ‘어부와 세이렌(The Fisherman and the Syren)’, 1891년.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동아일보 2024년 06월 20일(목) 「이은화의 미술시간(이은화 미술평론가)」/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