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논설위원 이규태(李圭泰) 선생 2 [허주작가님께서 주신글]

[허주(글옮긴이)]

[허주작가님께서 주신글]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규태(李圭泰) 선생 2

선생은 명동에 있는 막걸리 집을 자주 가셨다. 옥호는 명월옥이지만 주인의 용모를 따서 '대머리 집'이라고 부른다.

메뉴는 막걸리 소주 생선찌개 두부구이 묵무침 등 소박한 것들이었다.

술집은 외상 주는 재미로 간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은 외상값 덕분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최불암 모친이 운영하던 명동의 '은성'이라는 술집에서 외상값 독촉을 받자 즉석에서 써내려간 시다.

이외수는 외상값을 갚기 위해 신춘문예에 응모해서 얼떨결에  당선 되었다고 한다.

왜 사는가? 왜 사는가?…외상값 때문이야!

황인숙은 단 석 줄로 완성한 '삶'이라는 시에서, 삶을 외상값에 비유하여. 빚 때문에 사는 인생이라고 했다.

외상값 장부에 오른 명사들

배우로는 조지훈 최일남 이순재 변희봉

언론인 김중배 이규태 이경식 진념

대폿집은 뜨내기들에게도 외상을 주고 할부로 갚아도 될 만큼 인간미가 넘쳐났다.

기자들 월급봉투에는 명세서가 붙여있었다. 여직원과 미리 짜고 숫자를 본인이 써 넣을 수 있게 한자리를 비워놓았다.

아내에게 봉투 줄 때에는 약간 여유가 있어. 그 돈으로 외상값을 갚았다.

1980년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건네는 비율은 필리핀 85%, 일본 80% 태국 75% 미국과 영국은 20~15%였다고 한다. 아마도 한국은 필리핀보다 높은 95%는 되지 않을까?

선생의 막걸리 오덕(五德)

문인들이야 누구나 술을 즐기지만 선생은 막걸리를 유별나게 좋아하였다.

막걸리를 마시면 은근한 향기가 우러나오는 진한 여운이 오랫동안 혀를 감싼다.

취하되 인사불성(人事不省)까지는 가지 않고,

배가 고프거나 힘이 없을 때는 요기가 되고

기운을 북돋워주며.

시련이 찾아와도 막걸리를 마시면 넌지시 웃을 수 있고,

함께 마시면 응어리가 풀린다.

1.한 잔 마시면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2.두 잔 마시면 得道 (득도)를 하고
3.석 잔 마시면 神仙 (신선)이 되고
4.넉 잔 마시면 鶴(학)이 되고
5.다섯 잔 마시면 염라대왕도 무섭지 않다.

씨받이 송사 - 이규태 논설위원의 글

지주 어른이 장가든 지 10년이 가까워도 아내에게 태기가 없었다.

대를 이을 자식을 얻기 위해,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도 보고. 굿도 해보고 부적도 붙여보고 의원에게서 약방문도 받아보고 별에 별 짓을 다 해도 모두가 허사였다.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이웃 마을에 사는 머슴을 은밀히 찾아가, 대를 잇지 못해 조상에게 면목이 없게 된 사정이야기를 했다.

머슴의 아내를 빌려 씨받이로, 대신 포태시켜 줄 것을 간청하였다.

머슴은 듣기 민망한 부탁을 접하고 처음에는 정색을 하며 거절하였다. 그렇지만 간절히 애원하는 주인님의 부탁을 마냥 남의 일 같이 모른 체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며칠 고민 끝에 머슴은 승낙하고 말았다.

마침내 주인과 약속한 날이 왔다. 밤이 깊어갈 무렵, 머슴은 주안상을 들이라 해서 아내에게 독한 술을 억지로 마시게 했다.

아내가 취하여 잠이 깊게 들자, 안방에 눕히고 집 밖에서 기다리던 주인을 불러들여 아내와 합방을 하도록 했다.

씨가 귀한 집안인데도 용케 아내는 바로 태기가 있었다. 해가 바뀌어, 드디어 낳은 게 아들이었다.

애지중지하게 기른 아들은 어찌나 영특한지 다섯 살에 벌써 소학을 띠었다. 신동이라고 소문이 10리 안 밖에 자자했다.

머슴 부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주인과의 언약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비록 딴 아낙을 빌려 나은 아들이지만 자신의 친 아들이라 생각하고 주인은 항상 이를 애석하게 생각했다.

주인은 아들을 찾을 목적으로 고을 사또에게 여차한 사실을 고하기에 이르렀다.

사또는 두 사람을 관아로 불러 문초를 하는데, 아들을 찾아달라고 소원한 주인의 주장이 사실로 들어났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 했습니다.

신부 집에 보내는 함에도 꼭 씨앗을 넣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볍씨가 길러낸 나락은 마땅히 주인 것이옵니다.

한편 대를 이을 자식을 얻기 위해 부득이한 일이지만, 기른 정이 워낙 커서 주인에게 내 줄 수 없다는 머슴의 주장에도 일리 있어 보였다.

판단이야 세속의 이치를 쫒으면 모두가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사또는 어떻게 판결해야 할지 난감했다. 

머슴의 어린 아들이 나섰다.

"사또 나으리! 농사를 지으려 했으나 종자가 없어 이웃 어른에게 볍씨를 얻어 모내기를 했습니다.

그 후 벼가 탐스럽게 자라는지라, 볍씨를 빌려준 어른이 탐을 내, 벼를 추수할 권리는 볍씨 종자 주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이 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사또께서 힘없는 머슴의 처지를 헤아리시어 바른 처결을 해 주시옵소서!

사또는 무릎을 치며, 어린놈이! 똘망 똘망하구나!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아비는 아이를 포태시킨 종자 주인이 아니라, 똘망하게 키운 머슴이다. 라는 판결을 내렸다. 

까꿍 아침산책  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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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글옮긴이)]

선생의 막걸리 오덕(五德)

문인들이야 누구나 술을 즐기지만 선생은 막걸리를 유별나게 좋아하였다.

막걸리를 마시면 은근한 향기가 우러나오는 진한 여운이 오랫동안 혀를 감싼다.

취하되 인사불성(人事不省)까지는 가지 않고,

배가 고프거나 힘이 없을 때는 요기가 되고

기운을 북돋워주며.

시련이 찾아와도 막걸리를 마시면 넌지시 웃을 수 있고,

함께 마시면 응어리가 풀린다.

1.한 잔 마시면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2.두 잔 마시면 得道 (득도)를 하고
3.석 잔 마시면 神仙 (신선)이 되고
4.넉 잔 마시면 鶴(학)이 되고
5.다섯 잔 마시면 염라대왕도 무섭지 않다.

씨받이 송사 - 이규태 논설위원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