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491 (491) 제43장 험로중첩 대체 호용은 언제 청설사를 내보내 뇌일봉을 쓰러뜨린 것일까? 아니,청설사의 그 가늘고 보잘 것 없는 몸뚱이로 진악신권의 가공할 권세를 뚫고 뇌일봉에게 접근했다는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진산 월은 황급히 쓰러진 뇌일봉에게 다가갔다. 동중산이 호위하듯 그의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다. 뇌일봉은 시체처럼 꼼짝 않고 누워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중독 증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나 이마에 푸른빛도 보이지 않았고,침이 흐르거나 눈동자가 돌아가지도 않았다. 체온도 떨어지지 않았고 호흡도 정 상이어서 얼핏 보기에는 잠에 골아떨어진 것 같았다. 하나 뇌일봉의 맥문(脈門)을 짚어본 진산월의 표정은 무겁게 굳어졌다. 뇌일봉의 맥은 거의 정지된 상태 였다. 진산월은 한참 동안 그의 맥을 짚어 보고서야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니고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 음을 알 수 있었다. 멀쩡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사람의 맥이 이렇게 약하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게 다가 뇌일봉처럼 내공이 강한 무림의 고수가 순식간에 의식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진산월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동중산을 향해 무어라고 나직하게 소곤거렸다. 동중산은 그의 말을 듣더니 머뭇거리는 기색으로 조그맣게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진산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한몸 정도는 지킬 수 있으니 어서 가보아라.” 동중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 차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빠르게 상원건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 상 원건은 장력을 날려 다섯마리의 홍선사를 상대하느라 쩔쩔 매고 있었다. 그의 실력으로 뱀 다섯마리를 제거하지 못할 리 없으나,혹시라도 홍선사가 상소홍에게로 갈까봐 그녀의 앞을 막느라 의외로 고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중산은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재빨리 암기를 날려 두마리의 홍선사를 쓰러뜨렸다. 칙! 칙! 홍선사 두마리가 시뻘건 피를 사방으로 뿌리며 바닥에 나뒹굴자 그제야 상원건은 한숨을 돌린 듯 나머 지 세마리의 홍선사를 매섭게 몰아붙여 갔다. 동중산은 그를 대신해 홍선사를 향해 암기를 날리며 황급히 소리쳤다. “상대협. 여기는 제게 맡기고 장문인께 가보십시오. 뇌대협의 상세가 심상치 않은 듯합니다.” 상원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번개같이 삼장(三掌)을 내갈기고는 뒤로 훌쩍 몸을 날렸다. “부탁하오.” 상원건이 진산월의 옆으로 다가와 보니 진산월은 뇌일봉의 몸을 자신의 뒤로 감춘 채 호용과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진산월은 붕대를 맨 오른손으로 장검을 뽑아들고 있었는데,그에게서 이장쯤 떨어진 곳에 홍선사 한마리 가 두 토막 난 채 쓰러져 있었다. 아마도 호용은 뇌일봉이 쓰러진 틈을 타서 진산월에게 손을 쓰려다 발각된 모양이었다. 진산월은 수중의 장검을 들어올리며 호용을 향해 빙긋 웃음을 던졌다. “내가 검을 뽑을 수 있다는 건 예상치 못했소?”<계속> 492 호용은 몸을 움찔하더니 입가에 묻은 피를 씻어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나는 오른손을 다쳐서 정상적으로 검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뱀 몇 마리 상대하는 것은 어렵잖게 할 수 있소.” 호용의 두 눈에 새파란 안광이 번뜩였다. “노신이 네놈을 죽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네놈의 손이 멀쩡해도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저 늙은 놈이 쓰러진 꼴을 보고도 모른단 말이냐?” 호용의 위협적인 말에도 진산월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물론 당신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주머니들을 몽땅 풀어버린다면 나도 곤궁에 처하겠지만,그전에 아마 당신의 머리통이 잘려지고 말 거요.” “미친 놈. 노신이 비록 약간의 내상(內傷)을 입었지만 네놈 따위가 노신의 털 오라기 하나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으냐?” 진산월은 수중에 들고 있는 장검을 가볍게 흔들며 웃었다. “나는 일전에 비검술(飛劍術) 하나를 배운 적이 있소. 당신과의 거리가 사장 정도인데,이 정도 거리면 당신이 주머니 하나를 풀기 전에 당신의 미간에 검을 관통시킬 수 있을 거요. 게다가 당신은 지금 심맥 (心脈)이 상해 제대로 신법을 펼치지도 못하는 상태 아니오?” 분노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호용의 턱밑에 늘어진 주름살이 부르르 떨렸다. “지금 네가 노신을 위협하는 게냐?” “위협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거요. 당신이 순순히 물러난다면 모르지만,그렇지 않다면 이곳이 당신의 무덤이 될 거요.” 호용은 푸르뎅뎅한 얼굴로 진산월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며 두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노신은 네놈의 허풍 따위는 믿지 않는다.” 진산월은 수중의 장검을 가볍게 늘어뜨리며 어깨를 폈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오.” 호용의 눈가가 실룩거리며 입술을 뚫고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호용은 몇 번이나 주머니로 손을 가 져갔으나 그때마다 머뭇거렸다. 진산월의 말마따나 그녀는 지금 내공을 끌어올려 신법을 펼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뇌일봉의 진악 신권의 위력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더 무서워서 내상이 상상외로 심각한 상태였다. 내공을 끌어올리 기는커녕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바닥에 쓰러져 치료를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산월의 말대로 그녀가 주머니를 열어 황관사와 청설사를 풀어놓으면 진산월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 몰 라도 그녀 또한 진산월이 날린 비검에 당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천신만고 끝에 뇌일봉을 쓰러뜨린 지금, 이대로 물러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했다. 망설이고 있던 호용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가에 괴이한 미소를 떠올렸다. “호호…네놈을 죽이는데 굳이 노신이 나설 필요도 없지.” 진산월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있게 대꾸했다. “당신은 혹시 저 옆에 서 있는 두 명의 죽립인들로 하여금 나를 상대하게 하려는 거요?” 호용은 그가 자신의 속내를 단숨에 궤뚫어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으나 이내 징그럽게 웃었다. “호호…그렇다. 네놈이 그들을 상대할 때 노신이 귀염둥이를 푼다면 네놈이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느 냐?”<계속> 493 진산월은 피식 웃었다. “내가 굳이 그들을 상대할 필요가 있겠소?” “네놈이 아니면 누가….” 호용이 채 무어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뇌일봉의 상세를 살피고 있던 상원건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 켰다. “미흡하겠지만 이 몸이 그들을 막아 보겠소.” 호용은 사나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까부터 네놈이 눈에 거슬리던 참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보아하니 무명지배(無名之輩)는 아닌 것 같 은데….” 상원건은 씁쓸하게 웃었다. “불초는 상원건이라 하오. 워낙 변변찮은 이름이라 당신은 들어보지도 못했을 거요.” “오라…. 네놈이 실없이 남의 일에 끼어들기 좋아한다는 비룡객이란 놈이구나. 난주(蘭州) 부근에서 얼 씬거린다고 하더니 여기에는 무슨 일로 나타났느냐?”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도 갑자기 중원의 바람을 쏘이고 싶었나 보오.” 호용은 여러 차례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비룡객 상원건이라면 물론 두명의 죽립인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진산월은 호용이 상대해야 하는데,그녀는 솔직히 진산월의 비검을 피할 자신이 없었다. 진산월은 그녀의 표정이 수시로 변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담담하면서도 힘있는 음성으로 입 을 열었다. “이제 다섯을 세겠소. 그동안 당신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나는 무조건 손을 쓰겠소. 하나….” 진산월이 수를 헤아리자 호용은 눈가를 실룩거리고 있다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 허우대만 멀쩡한 놈이 감히 노신을 위협하다니…오늘은 이대로 물러난다만 조만간 네놈의 배를 갈 라 그 뱃속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야 말겠다.” 호용은 바닥에 피가 섞인 가래침을 뱉고는 몸을 돌렸다. “가자.” 두명의 죽립인이 그녀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랐고 정해,낙일방과 싸우던 죽립인들도 하나둘씩 몸을 빼내 그들을 따라 몸을 날렸다. 다만 응계성과 싸우던 세명의 죽립인들만이 자신들을 놓아주지 않는 응계성 을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계성,그만 돌아오너라.” 진산월이 응계성을 부르자 그제야 응계성은 검을 멈추었으나 얼굴에는 불만의 기색이 역력했다. “장문사형. 조금만 더 있으면 그놈들을 모조리 요절낼 수 있었는데 왜 말리는 겁니까?” 응계성이 고리눈을 부릅뜨고 진산월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진산월은 말없이 바닥에 누워 있는 뇌 일봉을 가리켰다. 그제야 응계성은 입을 다물고는 황급히 뇌일봉에게로 다가왔다. 임영옥과 대치하고 있던 맹파는 유심한 시선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히죽 웃었다. “대체 죽립 아래 어떤 얼굴이 숨어 있는지 궁금하군. 오늘은 이만 헤어지겠지만 우리는 조만간 다시 만날 거야. 그때를 기대하라고.” 임영옥은 침착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때는 당신의 음식솜씨가 좀더 나아졌기를 바라겠어요.” “흐흐….검술만큼이나 입도 날카롭군.” 맹파는 음산하게 웃더니 훌쩍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은 허깨비처럼 허공을 훌쩍 날아 호용이 사라진 곳 으로 멀어져 갔다.<계속> 494 그제서야 임영옥은 뇌일봉에게로 다가왔다. “뇌숙부님은 괜찮은가요?” 뇌일봉의 상세를 살피고 있던 상원건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좋지 않소.” 중인들은 모두 걱정스러운 얼굴로 뇌일봉을 내려다 보았다. 뇌일봉은 의식이 전혀 없었고 맥박도 극히 미약한 상태였다. 상원건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당혹스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독사에 물려 중독된 것은 알겠는데 이런 증상은 처음 보는구려. 이 정도 시간이 흐르면 독이 골수에 파고들어 숨이 끊어지거나 아니면 온몸에 독기가 번져 피부가 퍼렇게 변색되는 게 보통인데,이렇게 맥 박만 약해진 경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소.” 상원건은 뇌일봉의 앞가슴을 반쯤 풀어헤쳤다. “보시오. 중독된 증상이 전혀 없지 않소?” 중인들이 보니 과연 뇌일봉의 앞가슴은 조그마한 상처도 없이 깨끗했다. 가슴 부위는 심장이 있기 때문에 인체의 모든 혈관이 지나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일단 혈관에 독기가 침투하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가슴 부위에 어떤 식으로든 그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뇌일봉의 가슴은 어린 아이의 그것처럼 깨끗해서 눈을 씻고 보아도 중독되어 의식불명인 사람의 가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진산월은 잠시 뇌일봉의 몸을 살펴보다가 상원건을 돌아보았다. “상대협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상원건은 잠시 침음하다가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기는 한데….” “그게 무엇입니까?” “뇌대협이 청설사에 물린 순간 그걸 알고 전신의 진기를 끌어올려 심맥을 보호하고 동시에 스스로의 혈관을 봉쇄했을 수도 있소. 그렇게 되면 독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스스로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마오.” 진산월은 눈을 번쩍 빛내며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뇌대협은 정신은 멀쩡한데 몸만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란 말씀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오. 그렇지 않고는 맹독의 독사에게 물렸는데 독기가 퍼진 흔적도 없이 그냥 쓰러져만 있다는 것이 설명되지 않소.” 진산월은 상원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뇌일봉은 강호에서의 경험이 누구보다도 풍부할 뿐 아니라 전신에 뛰어난 공력을 지닌 무림의 고수였 다. 아무리 청설사가 보기 드문 영물(靈物)이라고 해도 이토록 맥없이 쓰러진다는 것은 뇌일봉답지 않은 일이었다. 상원건의 말대로 뇌일봉이 독기를 억제하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를 확인해 보는 길 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의술이 뛰어난 명의(名醫)에게 뇌일봉을 데려가는 것이었다. 진산월을 비롯한 종남파의 고수들 중 의학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일행 중 그나 마 상원건만이 조금 알고 있지만,그것도 그동안의 풍부한 강호 경험으로 얻은 수박 겉핥기 식의 견문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계속> 495 진산월은 마음을 결정하고는 중인들을 돌아보다 정해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정해는 진산월이 자신을 쳐다보자 그의 생각을 짐작한 듯 빠르게 다가오며 물었다. “뇌대협을 다른 곳으로 모시려고 하십니까?” “네가 수고를 해줘야겠다.” “맡겨 주십시오. 그런데 어디로 모셔가야지요?” “이곳에서 낙양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 석가장으로 가서 석공자를 찾아가라. 그러면 아마 솜씨 좋은 명의(名醫)를 섭외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요.” 대답은 시원스럽게 했지만,정해의 얼굴 한 구석에는 일말의 아쉬운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천룡사와의 일전에서 활약하여 명성을 떨치고 싶은 것은 그를 비롯한 모든 종남파 고수들의 소망이었 다. 그런데 천룡사와 싸우기로 한 사천성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중도에 뒤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 정해 가 아닌 누구라 해도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진산월도 그런 정해의 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해 외에는 다른 적임자를 찾을 수 없었 다. 뇌일봉은 누가 뭐라 해도 종남파에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런 뇌일봉이 의식불명의 상태가 되었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안전한 곳으로 그를 옮겨 상처를 치료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종남파의 모든 고수들이 이번 여정(旅程)을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으니 필연적으로 그들 중 한 사람에게 일을 맡겨야 하는데,그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낙일방과 응계성은 성격이 너무 급하고 모가 나서 안심하고 부상자를 맡길 수 없었다. 동중산 또한 아 직은 선뜻 신임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임영옥은 여인의 몸이라서 의식도 없는 뇌일봉을 떠맡기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다고 종남파의 일원도 아닌 상원건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진산월은 정해를 선택한 것이다. 정해는 침착하고 영리하며 책임감도 강한 성격이라 이번 일을 맡기기에는 가장 적임자였다. 정해도 자신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아쉬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선뜻 수락한 것이다. 진산월이 정해에게 뇌일봉을 운반하면서 조심해야 할 사항들을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고 있을 때,상원건 이 다가왔다. “진장문인,한 가지 부탁 말씀이 있는데 들어 주시겠소?” “말씀하십시오,상대협.” 상원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슬쩍 자신의 딸인 상소홍을 쳐다보았다. “정소협이 뇌대협을 석가장으로 모시고 가려는 모양인데,그때 내 딸아이도 동행하면 안되겠소?” 진산월은 처음에는 의아해했으나,이내 상원건의 의중을 짐작했다. 상원건은 이번에 벌어진 일로 사천성 으로 가는 길이 자못 흉흉하다는 것을 알고는 상소홍의 안위가 걱정돼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 려 하는 것이다. 진산월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요. 정사제도 혼자 가는 것보다는 심심하지 않아서 한결 좋을 겁니다.” 상원건은 씁쓸하게 웃었다. “고맙소. 자식이라고는 저 녀석 하나뿐이어서 나도 헤어지기는 싫지만,아무래도 이번 여정에는 별 도움 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내심 걱정했었소.”<계속> 496 상소홍이 그의 말을 들었는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황급히 다가왔다. “아빠. 싫어요. 난 아빠와 같이 갈래요.” 상원건은 엄격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내 말을 들어라. 너는 정소협과 함께 낙양으로 가거라.” 상소홍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아빠….” “천룡사와의 일이 모두 끝나면 석가장으로 너를 찾아가겠다. 그동안 말썽 부리지 말고 얌전하게 지내 야 한다.” 상소홍은 울먹이며 무어라고 입을 열려 했으나,상원건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온화하면서도 듬직 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이곳에 있으면 나는 네가 걱정되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너도 이 아비의 실력을 알고 있지 않으냐? 네 몫까지 천룡사 놈들에게 호된 맛을 보여줄 테니 안심하고 있어라.” 상소홍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도 자신이 그에게 도움은커녕 짐이 되기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 었다. 조금 전에도 상원건은 홍선사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쩔쩔매지 않았던가? 앞으로는 그보다 더욱 심 한 상황이 벌어질 게 뻔한데,그때 상원건이 그녀 때문에 곤궁에 처하기라도 한다면 그녀로서는 그보다 낭패스럽고 후회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입을 꼬옥 다물고 있다가 상원건을 올려보며 애써 방긋 미소지었다. “오실 때 그냥 빈손으로 오시면 안돼요.” “무얼 사다 줄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보아라.” “사천의 명물(名物)인 옥잠(玉簪)이오.” “그래. 반드시 사 가지고 오마.” 두 부녀는 서로 마주 보고 웃었지만,그 웃음 속에는 아릿한 슬픔과 진한 아쉬움이 흐르고 있었다. 정해와 상소홍은 시체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뇌일봉을 안고 낙양으로 향했다.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중인들의 표정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떠올라 있었다. 상원건은 딸의 모습이 수림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한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아쉬움을 떨치려는 듯 진 산월을 돌아보며 물었다. “참,진장문인께서 배웠다는 그 비검술이 무언지 알 수 있겠소?” “천외비홍(天外飛鴻)이라는 겁니다. 본파의 비전검술 중 하나지요. 하지만 저는 아직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습니다.” 상원건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럼 조금 전에 그 말은….” “물론 완벽하게 익히면 사장 밖의 적도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 있겠지만,제가 그 정도가 되려면 몇 년 을 더 수련해야 할 겁니다.” 상원건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고 말았다. “하하…정말 대단하구려. 그런데도 말 몇 마디로 호용 같은 여마두(女魔頭)를 도망치게 하다니….” “그녀도 아마 제 말을 반신반의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녀 같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명은 더욱 소중하 게 여기는 법이지요. 절대적인 자신이 없는 한 그녀로서는 몸을 피할 수밖에 다른 선택이 없었을 겁니 다.” “맞는 말이오. 그런데 진장문인은 우리가 그녀를 만난 게 정말 우연이라고 생각하시오?” 진산월은 조용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연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다른 속셈이 있기 때문이었는지는 조만간 알게 될 겁니다. 우연이라 면 한 번으로 그치겠지만,다른 속셈이 있다면 이번 한 번뿐이 아니게 될 테니까요.” <계속> 497 진산월 일행이 무림맹 관서지단의 첫번째 집결지인 백토강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미시(未時)경이었다. 백토강은 사실 그리 크지 않은 작은 시진(市鎭)이었다. 이곳에 있는 주루를 모두 합쳐도 열개가 채 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작고 허름한 주루가 집결지인 화호루(華好樓)였다. 이렇게 작은 시진에 있는 조그만 주루를 집결지로 정한 것으로 보아 무림맹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 천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음이 확실했다. 진산월 일행은 화호루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평안객잔(平安客棧)에 자리를 정했다. 화호루로 가봤자 사람 들로 북적거려 소란스러울 게 뻔했기 때문이다. 화호루로 정보를 수집하러 갔던 상원건이 잠시 후에 돌아와서 약간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짐을 풀 필요가 없네. 벌써 다음의 이차 집결지가 정해졌더군.” “그곳이 어디입니까?” “형자관(荊紫關)일세.” 형자관은 하남성과 호북성,섬서성이 만나는 경계에 있는 지역으로 예로부터 군사요충지로 이름이 난 곳 이었다. 백토강에서의 거리는 소림사에서 백토강까지의 거리와 비슷했다. 응계성이 투덜거렸다. “이 자식들이 완전히 널뛰기를 하는군. 이럴 거면 아예 처음부터 형자관으로 가라고 할 것이지 왜 자 꾸 이리저리 오라가라 하는 거야?” 진산월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상원건을 향해 물었다. “언제까지 형자관에 도착해야 하는 겁니까?” “삼일 후요. 형자관 남쪽 끝에 있는 운몽거(雲夢居)라는 곳으로 삼일 후 자정까지 집결하라고 했소.” “그렇다면 하루의 여유는 있군요. 오늘은 이곳에서 자고 내일 일찍 출발하는 게 좋겠습니다.” 낙일방이 옆에서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런데 많이들 왔나요?” “의외로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네. 내가 물으니 대략 오십여명쯤 왔다더군.” “겨우 오십명요? 소림사에서 출발할 때는 관서지단의 인원이 삼백명도 넘었잖아요?” “일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겠고,나머지는 아마도 중간에 발을 돌린 것 같네.” 낙일방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상원건은 씁쓸하게 웃었다. “아마 생각이 바뀐 것이겠지. 아니면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참가해 봤자 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던 지….” “혹시 우리처럼 도중에 서장고수들의 습격을 받아서 그런 건 아닐까요?” “그건 아닌 것 같네. 내가 여기저기 물어보았는데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 설마 서장에서 무공이 떨어지는 고수들만 일부러 노렸을 리도 없고,습격당한 고수들이 모조리 몰살했을 리도 없으니 우리는 예외적인 일을 당한 셈이지.” “그것 참…아무튼 우리는 이래저래 운이 없었군요.” 낙일방이 어린 나이답지 않게 혀를 차자 상원건은 빙긋 웃기만 했다. 진산월이 어슬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튼 뭘 좀 먹어야겠군. 피곤할 텐데 일찍 식사를 하고 푹 쉬자고. 내일부터는 더욱 험한 꼴을 당할 지도 모르니 말이야.” 진산월의 말이 그대로 실현되리라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98 백토강에서 형자관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관도(官道)를 따라 남양(南陽)을 지나는 길이고,다른 하나는 관도를 무시하고 거의 직선으로 가 는 길이었다. 관도를 따라 가는 길은 물론 아주 편하고 안전했지만,너무 돌아가는 길이라 아무리 빠른 말을 갈아타도 삼일 내에 도착하기가 어려웠다. 반면에 직선으로 가는 길은 빠르기는 했지만,대신 세개의 하천과 두개의 커다란 산을 넘어야 하는 상당 한 험로(險路)였다. 진산월 일행은 주저없이 두번째 길을 택했다. 다행히 그들 중 특별히 무공이 떨어지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험하고 거친 여정에도 불구하고 순탄하게 전진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발길이 처음으로 멈춘 곳은 단하(湍河) 강변이었다. 단하는 한수(漢水)의 지류 중 하나로,그리 크지 않은 강이었다. 하루 만에 백토강과 형자관의 중간 지점 에 있는 마산구(馬山口)까지 단숨에 달려온 중인들은 단하를 쉽게 건널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그들 의 예상은 보기 좋게 깨지고 말았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배를 구할 수 없다니….” 응계성이 쌍심지를 돋우며 소리치자 낙일방은 자신도 답답한 듯 머리통을 긁적거렸다. “그게 말이에요. 마침 이 일대에서 요사이 커다란 행사(行事)가 벌어지고 있는데 배들이 모두 그 행사 에 참여했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행사가 있기로서니 배 한척도 안 남기고 몽땅 쓸어갔단 말이냐?” 낙일방은 마치 자신이 잘못하기라도 한 양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는군요.” 응계성은 마침내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제기랄.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군. 비켜. 내가 직접 알아보겠다.” 응계성은 낙일방을 밀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낙일방은 응계성의 뒤통수를 향해 혀를 낼름거리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사형이 가도 별 수 있을 줄 아나? 괜히 쓸데없는 시비나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런데 의외로 잠시 후에 돌아온 응계성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응계성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낙일방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없기는 왜 없어? 이놈이 잘 찾아보지도 않고 허튼 소리만 하고 있어.” “어이구,사형. 제발 말로 좀 해요.” 낙일방은 뒤통수를 싸매고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다 겨우 일어났다. 얼마나 아팠는지 낙일방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네놈이 자꾸 요령만 피우니까 그렇지.” 낙일방은 우거지상을 지으며 뒤통수를 마구 문지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응계 성을 바라보았다. “그럼 사형은 배를 구했단 말이에요?” 응계성의 주먹이 다시 올라갔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사형,제발 주먹 좀 함부로 휘두르지 말아요. 그런데 정말 배가 있었어요?” 낙일방이 자꾸 되묻자 응계성은 눈을 부릅떴다. “그럼 내가 네놈처럼 실없는 소리를 한단 말이냐? 밖에 나가보면 될 거 아니냐?” 낙일방은 연방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조금 전에는 나루터에 배 한척 보이지 않았는데….”<계속> 499 응계성은 득의만면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네놈은 아직 멀었다는 거다. 나룻터에서 강을 따라 쭉 걸어 올라가면서 훑어보니 제법 쓸 만 한 배가 한척 있더구나. 사공하고 흥정도 모두 끝마치고 오는 길이다.” 중인들은 항상 화만 낼 줄 알았던 응계성이 말끔하게 일을 처리했다고 하자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낙일방은 마치 무슨 희한한 동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응계성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었다. “응사형도 이제 사람구실을 할 줄 아는군요…아니,취소예요. 취소!” 낙일방은 농찌거리를 던지다가 응계성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다가오자 ‘어마 뜨거라’하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진산월이 웃으며 응계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다. 어쨌든 더 늦기 전에 어서 강을 건너가자.” 진산월이 응계성을 다독거리며 일행과 함께 강변으로 가니 과연 배 한척이 나룻터에서 멀지 않은 모래 사장 앞에 묶여 있었다. 배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진산월 일행이 충분히 올라탈 수 있을 정도였다. 사공 한 사람이 뱃전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진산월 일행이 다가오자 천천히 일어났다. “지금 출발하시렵니까?” “그렇소. 강 건너 적미(赤眉)까지 갑시다.” 일행이 모두 배에 올라타자 사공은 노를 저어 강심(江心)을 향해 배를 움직여갔다. 날은 어느덧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어서 강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은 늦은 단풍으로 누렇게 물들어 있었고,하늘은 높고 청명했다. 낙일방은 절로 흥이 솟구쳐 멋진 시구라도 한수(首) 읊고 싶었으나,마땅히 떠오르는 구절이 없어 끙끙대 고 있었다. 그때 문득 그는 강물 위에 무언가 기이한 물체가 둥둥 떠내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한그루의 커다란 통나무였다. 잔가지가 무성하게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나무꾼이 벌목 (伐木)을 하던 것 중 하나가 강으로 떨어진 모양이었다. 잔가지에 매달려 있는 나뭇잎들이 하나같이 누 렇게 변색되어 있는 모습이 왠지 보는 이의 마음을 묘하게 잡아끌었다. 그것을 보자 낙일방은 문득 괜찮은 시구 하나가 생각이 났다. “북풍은 흰구름을 불러오고(北風吹白雲),만리 길에 단하를 건넌다(萬里渡河湍).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벅차올라(心緖逢搖落),가을이 지는 소리를 차마 들을 수가 없구나(秋 聲不可聞)….” 원래 이것은 초당(初唐)의 시인인 소정이 남긴 ‘분상경추(汾上驚秋)’라는 시로,원 구절은 ‘만리도하 단(萬里渡河湍)’이 아니라 ‘만리도하분(萬里渡河汾)’이었다. 하나 분하를 단하로 고치니 지금의 분위기와 썩 잘 어울려 낙일방은 큰 소리로 시를 읊조리고는 씨익 웃는 것이었다. “괜찮군. 역시 이런 날씨에는 시 한수가 적격이란 말이야.” 그는 혼자 도취되어 중얼거리다가 무엇을 보았는지 눈을 크게 치켜떴다. “저게 뭐지?” 그들이 탄 배쪽으로 떠내려오고 있는 통나무의 가지 틈에서 무언가 번쩍하고 빛났던 것이다.<계속> 500 처음에 낙일방은 자신이 잘못 보았나 싶어 안력을 돋워 한참 동안이나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이내 그의 눈이 부릅떠지며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이 흘러나왔다. “앗? 저것은….” 바로 그 순간,누군가가 그의 등을 세차게 잡아당겼다. “조심해라.” 팟! 그와 동시에 통나무의 가지 틈에서 날카로운 섬광(閃光)이 튀어나와 방금 전까지 낙일방이 서 있던 허 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등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낙일방은 영문도 모른 채 그 섬광에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낙일방은 모골이 송연해져서 식은땀을 주르르 흘리며 자신을 잡아당긴 사람을 돌아보았다. “자…장문사형. 고맙습….” 진산월의 표정은 무겁게 굳어 있었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우선 적의 암습(暗襲)에 대비해라.”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통나무 가지더미에서 갑자기 몇 개의 인영이 튀어나와 배 위로 뛰어올랐 다. 그와 함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배의 뒤편에서 노를 젓고 있던 뱃사공이 재빠르게 겉옷을 벗어 중인 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중인들은 무심결에 뱃사공이 던진 옷을 황급히 피했으나,그가 왜 갑자기 옷을 벗어 자신들에게 던졌는 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쩍 마르고 왜소한 것 같았던 뱃사공의 상반신은 온통 잘 발달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강철같이 단단해 보였다. 뱃사공은 상반신을 드러낸 채 중인들을 향해 웃었다. “흐흐…스스로 무덤을 찾아 이곳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았소. 이제 그만 무덤 속으로 사라져 주셔야겠 소.” 통나무에서 뛰어올라 온 사람들은 기형도(奇形刀)를 손에 든 다섯 명의 장한들이었다. 그들은 특이하게 도 전신에 나무 빛깔의 기름을 먹인 옷을 입고 있었는데,두 눈과 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온통 뒤집 어쓰고 있어서 도무지 어떻게 생긴 작자들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뱃사공의 웃음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양 그들은 일제히 손에 들린 기형도를 휘두르며 진산월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좁은 배 안에서 느닷없이 다섯 명의 장한들이 뛰어올라 병기를 휘두르자 달리 피할 곳이 없었다. 더구 나 장한들의 무공은 생각 외로 뛰어나서 배 안이 온통 도광(刀光)에 휩싸여버렸다. 어쩔 수 없이 진산월 일행은 검을 뽑아들고 그들에게 대항했으나 좁은 배 안에서 마음대로 운신(運身) 할 수가 없어서 검을 펼치는 데 크게 장애가 되었다. 장한들의 병기는 끝이 뾰쪽하고 도신(刀身)이 유달 리 짧아서 마치 분수아미자(分水蛾眉刺)를 조금 길게 만든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이렇게 좁은 공간에서는 상당히 효율적이어서 일반적인 장검을 소지한 진산월 일행에 비해 크게 유리했다. 더구나 그들이 칼을 사용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중원(中原)의 그것과는 크게 달랐다. 중원의 검법이나 도 법은 대부분 휘두르는 것을 위주로 하고 있었으나,그들은 찌르기를 기본으로 하여 그 속에 베고 긋는 기법들을 교묘하게 섞어넣고 있었다. 낙일방과 응계성은 몇 초 지나지 않아 그들의 특이한 도법(刀法)에 당황하여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말았다. <계속> 501 차창! 장한의 칼을 피하던 낙일방이 옆에서 사선(斜線)으로 베어 들어오는 또 다른 장한의 일도(一刀)를 제대 로 막지 못하고 하마터면 그대로 격중당할 뻔했다. 때마침 상원건이 장력(掌力)을 날려 낙일방을 위기에 서 구해내며 소리쳤다. “조심하게,이자들이 사용하는 것은 대막(大漠)의 흑월도법(黑月刀法) 같네.” 흑월도법이라는 말에 진산월의 옆에서 그를 호위하며 검을 휘두르고 있던 동중산이 놀란 숨을 들이마셨 다. “헛! 그렇다면 이들이 대막의 고수들이란 말입니까?” “그건 모르지만 아무튼 이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대사막(大沙漠)의 무공인 것만은 확실하오.” 동중산은 눈에 불을 켜고 보았으나 장한들의 도법이 중원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점을 알 수 없었다. 대막은 중원에서 너무 멀고 장성(長城)에서도 한참이나 위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서역을 왕래하는 상 인들 외에는 대막의 인물들을 만나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더구나 대막의 무공을 볼 기회는 더욱더 드 물 수밖에 없었다. 중원인들은 대막의 고수라고 하면 늘 채찍을 휘두르거나 바람막이 옷을 입고 둥그런 반월도(半月刀)를 휘두르는 파란 눈의 색목인(色目人)을 연상했는데,지금 진산월 일행을 습격하는 인물들은 반월도를 사용 하지도 않았고 색목인들도 아니었다. 느닷없이 강물 속에서 튀어나와 습격을 해온 다섯 명의 장한들은 하나같이 동작이 빠르고 민첩했으며, 칼을 휘두르는 솜씨 또한 눈이 현란할 정도였다. 게다가 칼을 쓰는 방식이 워낙 생소하고 특이해서 낙 일방은 물론이거니와 응계성과 상원건까지도 적지 않은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기이한 것은 뱃사공의 행태였다. 웃통을 벗어던진 채 금시라도 덤벼들 듯했던 뱃사공은 배의 가장 후미에 우뚝 선 채로 두 눈에 기광을 뿌리며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줄곧 임영옥,한 사람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아마 그가 사랑의 열병에 빠져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몰랐다. 하나 뱃사공의 시선이 온통 음침한 살기(殺氣)와 괴이한 광망으로 이글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렵잖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임영옥 또한 뱃사공이 자신만을 집요하게 주시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녀가 아직 검을 뽑지 않고 진산월 옆에 나란히 서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 사람이 악의에 찬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데 섣불리 몸을 움직여 허점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장내의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처음에 장한들의 괴이한 도법에 크게 당황했던 낙일방은 상원건의 도움으로 몇 차례 위기에서 빠져나온 후 조금씩 냉정함을 되찾고 침착하게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반면 응계성은 그들을 쉽게 쓰러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쩔쩔매는 신세가 되자 분노가 들끓어 오르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되었고,연방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상원건은 그가 당장이라도 고함을 내지르며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그들을 향 해 덤벼들 것 같아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계속> 502 동중산은 가끔씩 날카로운 암기를 날리며 그런 대로 잘 견뎌내고 있으나 암기가 바닥난다면 그도 어려 움에 처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 상원건은 연거푸 장력을 날려 장한들의 공세를 무디게 만드는 와중에도 주위의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고 는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이 상태로 버티기만 해서는 어려운데…저들의 인원이 이들만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나저 나 저들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우리를 암습한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자들의 행동으로 보아 이미 사전에 진산월 일행을 습격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음이 분명했다. 진산월 일행은 대막의 고수들과 어떠한 원한관계도 없는데,대체 무슨 이유로 그들이 습격을 해온단 말 인가? ‘혹시 이자들의 습격이 호용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상원건은 그런 의심이 들었으나 지금 당장은 아무 것도 확인해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때 지금까지 배의 후미에 서 있던 뱃사공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전신에 공력을 가득 끌어올리고 있는지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배가 크게 흔들렸다. “어엇?” 낙일방과 응계성은 배가 금시라도 뒤집힐 듯 기우뚱거리자 당황하여 허둥거렸다. 그들은 가뜩이나 장한 들의 도법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는데,이제는 배가 흔들려 바닥이 마구 움직이자 도저히 마음먹은 대로 검법을 펼칠 수가 없었다. 장한들의 칼이 한층 더 매섭게 몰아치자 두 사람은 급격히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장한들은 특수한 훈 련을 받았는지 배가 거센 풍랑을 만난 나뭇잎처럼 마구 흔들리고 있는데도 동작이나 도법이 조금도 흐 트러지지 않았다. 다시 뱃사공이 크게 한 걸음을 내딛자 배는 후미의 삼분지 일 정도가 강물 속에 잠겼다가 다시 빠져나 왔다. 그 바람에 배의 반대편에 서 있던 진산월과 임영옥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임영옥은 그래도 곧 신형을 고정시켰으나,진산월은 하마터면 강물 위로 떨어질 뻔했다. 그 순간,뱃사공의 몸이 허공을 넘어 임영옥에게로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의 신형은 정말 비호처럼 무섭게 빨랐다. 휘익! 배의 중간에는 다섯명의 장한들과 낙일방,응계성 등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들 중 누구 도 자신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임영옥에게로 날아가는 뱃사공을 제지하지 못했다. 제지하기는커녕 뱃 사공이 허공으로 솟구치기 전에 바닥을 세차게 걷어차는 바람에 배가 마구 흔들려 응계성 등은 중심을 잡기에도 바쁜 실정이었다. 임영옥은 이미 뱃사공이 걸음을 내디딜 때부터 오른손을 늘어뜨려 검을 움켜잡고 있다가 그가 허공을 날아오자 번개같이 출검(出劍)했다. 그녀의 검을 쓰는 솜씨는 놀라운 것이어서 검이 뽑혀지는 동작을 채 보기도 전에 검광(劍光)이 허공을 가르며 뱃사공을 향해 쏘아져갔다. 하나 뱃사공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날아오는 동작을 그대로 유지 하며 오른손을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땅! 뱃사공의 오른손에는 분명 아무런 병기도 쥐어져 있지 않았는데,갑자기 귀청이 떨어지는 듯한 음향이 터져나오며 임영옥이 발출한 검광이 허공으로 튕겨져나갔다.<계속> 503 “헛!” 누군가의 입에서 경호성이 흘러나왔다. 임영옥은 한 차례 신형을 휘청거렸으나 이내 몸을 비스듬히 뉘며 장검을 좌에서 우로 그어댔다. 쑤아앙! 마치 대나무숲을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튀겨 올랐던 검광이 뚝 떨어지며 수평으로 뱃사공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갔다. “흐흐흐…멋진 횡소천군(橫掃千軍)이구나.” 뱃사공은 음산하게 웃으며 달려들던 자세를 바꾸어 훌쩍 뒤로 물러났다. 하나 그녀의 검광이 허공을 가 르고 지나가는 순간,조금 전보다 더욱 빨리 앞으로 다가서는 것이었다. 그의 물러났다가 다가오는 동작 과 속도가 어찌나 정교하고 신속했던지 얼핏 보기에는 그의 몸이 계속 앞으로 다가오고 임영옥의 검이 그의 환영(幻影)을 베고 지나간 것 같았다. 그가 보여주는 이 한 수의 동작은 절정고수가 아니면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어서 싸우는 와중에 도 이쪽을 틈틈이 보고 있던 상원건을 깜짝 놀라게 했다. ‘생긴 건 영락없는 시정잡배 같은데 무공실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일전에 보았던 호용이나 맹파보다 오히려 더욱 뛰어난 고수 같은데….’ 상원건은 임영옥이 그를 잘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으나 지금으로서는 달리 그녀를 도와 줄 방도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낙일방과 응계성을 도와 다섯명의 장한을 격퇴시키는 것뿐이었다. 뱃사공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장의 거리를 압축해 임영옥의 코앞으로 육박해 들어왔다. 항상 냉정 하고 침착했던 임영옥의 얼굴도 이때만은 약간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임영옥은 비스듬하게 기울였던 자세로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에서 마치 눈꽃 이 휘날리는 듯한 새하얀 검화(劍花)가 수십송이나 피어올랐다. 원래 이런 짧은 거리에서는 검을 제대로 휘두르기가 힘들었으나 그녀는 교묘하게도 몸을 회전하는 여력 을 이용해 월녀검법 중의 절초인 옥녀산화(玉女散華)를 펼친 것이다. 옥녀산화는 폭발하듯 짧은 순간에 반경 일장 이내를 검화로 뒤덮어버리는 초식으로,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펼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 합한 무공이었다. 과연 무풍지대를 지나는 것처럼 거칠 것 없이 다가서던 뱃사공의 몸이 주춤거렸다. 뱃사공은 갑자기 그 녀의 검이 폭발하여 수십개의 꽃송이로 변한 듯한 착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 꽃송이 하나에라도 격중된 다면 강철로 이루어진 몸이라 할지라도 갈가리 찢겨지고 말 것이다. 뱃사공의 두 눈에서 번갯불 같은 광망이 뿜어져 나오더니 양팔이 질풍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손이 수십 수백개의 환영을 그려내며 그의 전신을 송두리째 뒤덮더니 뒤이어 폭죽처럼 피어오르는 검화와 정면으로 격돌했다. 파파파팍! 주위 사방이 온통 막강한 경풍과 검광의 소용돌이에 휩싸여버렸다. 그 충돌의 여파가 어찌나 강력했던 지 배가 거의 뒤집힐 뻔했고,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황급히 싸움을 멈추고 날아오는 경력 을 피하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야만 했다. 한바탕 아수라장 같은 소란이 걷히고 장내의 광경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계속> /// 504 임영옥은 여전히 수중에 장검을 든 채 배의 한 편에 오연히 서 있었다. 그 앞에는 뱃사공이 술 취한 사 람처럼 신형을 비틀거리고 있었는데,기이하게도 그의 양팔에는 마치 주사(朱砂)로 그린 듯한 붉은 선이 종횡(縱橫)으로 마구 그어져 있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뱃사공이 몸을 안정시키며 팔뚝을 손바닥으로 쓱쓱 문지르자 붉은 선은 이내 사라져 버렸다. 상원건은 그 붉은 선이 사실은 임영옥의 장검에 맞은 자국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안색이 변했 다. ‘대단한 외문무공(外門武功)이구나. 저 정도의 외문무공은 중원에서도 익힌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 그러고보니 조금 전에도 뱃사공은 임영옥의 검을 맨손으로 받아넘긴 적이 있었다. 그때 상원건은 뱃사 공이 손에 무언가 눈에 잘 띄지 않는 병기를 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이제보니 그때도 지금처럼 맨손으로 임영옥의 검을 상대했음이 분명했다. 외문무공은 원래 전신의 피부를 강철같이 단단하게 단련하는 것으로,중원에서는 철포삼(鐵袍衫)이나 십 삼태보횡련(十三太保橫練),횡가철문전(橫家鐵門栓) 등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것을 완벽하게 익히면 전 신이 그야말로 철갑을 씌운 것처럼 변하는데,이것을 육신갑(肉身甲)이라고 한다. 육신갑의 위에는 기공(氣功)이 있고,그 위에 다시 강기일식이 있으며,최종적인 단계는 내가기공(內家氣 功)과 마찬가지로 금강불괴(金剛不壞)의 경지라고 한다. 하나 금강불괴는 아직까지 누구도 이루지 못한 전설적인 경지로,단지 이론상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백년 내 무림에서 외문무공의 최고 고수로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은 적안철비(赤顔鐵臂) 혁련천좌(赫連天 座)로,그는 외문무공을 강기일식의 경지까지 터득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했다. 뱃사공은 비록 강기일식이나 기공의 단계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검에 격중되고도 별다른 상처가 없는 것 으로 보아 육신갑의 경지에는 이른 것 같았다. 무림에서 철포삼이나 십삼태보횡련을 익힌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육신갑에 도달해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렇게 본다면 뱃사공은 적어도 강호무림의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절정의 외문무공을 익힌 고수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원건은 뱃사공의 햇빛에 검게 그을린 다부진 상체를 한동안 바라보았으나,그가 어떤 무공을 익히고 있는지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외문무공의 종류는 수없이 많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뛰어난 것은 십여종에 불과했다. 그것들은 나름대 로의 장단점과 특색이 있어서 강호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상대의 몸만 보아도 그가 어떤 종류의 외 문무공을 익혔는지 대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나 뱃사공의 몸은 유난히 가슴 근육이 잘 발달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한 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뱃사공은 임영옥의 검에 격중되었던 팔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흐흐…과연 여인답지 않은 놀라운 검술을 지녔지만 오늘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나의 홍라공(紅羅功) 은 그 정도 검기에는 깨어지지 않는다.” 홍라공이라는 말에 상원건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럼 귀하는 홍루대사(紅淚大師)의 문인(門人)이오?”<계속> 505 뱃사공은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그렇소. 비룡객 나리. 그러니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요.” 상원건의 표정은 무겁게 굳어졌다. 언제부터인지 서역의 고수들 사이에서는 서역의 가장 깊숙한 오지(奧地)에 나습고찰(羅拾古刹)이라는 신 비한 절이 있으며,그곳에는 홍루대사라는 괴인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나습고찰은 서역에서도 가장 척박하고 거친 땅의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사찰이 언제,누구에 의해 세워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또한 나습고찰의 주인인 홍루대사는 무공이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고강할 뿐 아니라 성격 또한 괴팍하기 이를 데 없어서 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나습고찰의 십리 안 에 발을 들여놓으면 누구라도 비참한 최후를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소문을 듣고 나습고찰을 찾아간 고수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살아서 돌아온 사람 은 없었다. 적잖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습고찰에 대한 것이 조금씩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나,여전히 나습고찰 은 신비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습고찰의 고수들은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하나같이 무서운 실력 을 지닌 절정고수들인 데다 아무리 사소한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는다는 홍루대사의 규칙을 맹종하는 무 리여서 서역의 고수들에게는 지옥의 사신(死神)보다도 무서운 존재들로 인식되고 있었다. 상원건은 뱃사공이 나습고찰에서 온 인물이며 자신의 정체까지 이미 파악하고 있음을 알자 솔직히 마음 한 구석에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 겉으로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침착한 음성으로 물었다. “귀하는 삼색귀파 호용의 지시를 받고 왔소?” 뱃사공은 소리내어 웃었다. “으하하…내가 어디 그런 할망구의 지시를 받을 사람 같소? 단지 호노파와 같은 목적으로 왔다는 것만 알아두시오.” 상원건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알자 오히려 초조하고 두려웠던 마음이 담담하게 가라앉았다. “귀하의 이름은 무엇이며,나습고찰에서의 직위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소?” 무슨 이유에서인지 뱃사공은 상원건의 질문에 고분고분하게 대답해주었다. “내 이름은 목극등(穆克登)이라 하며,나습고찰의 십대호령(十大護令) 중 일곱번째요.” 십대호령이라면 홍루대사의 직전제자(直傳弟子)들로 나습고찰에서도 가장 무공이 강한 고수들로 알려져 있었다. 상원건은 말만 들었지 실제로 십대호령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습고찰의 십대호령이라 고 하면 서장이나 신강은 물론이고 감숙성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서운 존재인 데,이토록 볼품 없게 생긴 뱃사공이 그들 중 하나라니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기 힘든 일이었다. 상원건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무심결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듣기로는 십대호령은 반드시 두명 이상 짝지어 다닌다고 하던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소?” 목극등의 얼굴에 괴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그는 당신들 발 밑에 있지 않소?” 그 말에 상원건은 낯빛이 변했다. “뭐라고? 그렇다면….” 그 순간,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계속> 506 목극등이 조금 전에 벗어 던진 옷에서 돌연 불길이 솟구쳤던 것이다. 그 불길은 어찌나 빠르게 타오르 던지 중인들이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을 때는 배의 중간 부분이 이미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화르르륵! 후끈한 열기와 함께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러왔다. 낙일방과 응계성,동중산 등은 장한들과 싸우다 말고 갑자기 등 뒤가 뜨거워지자 그야말로 대경실색하도 록 놀랐다. “헛!” “이…. 이게 무슨 일이냐?” 그들은 자신들의 뒤가 이미 불바다로 변해 버린 것을 알고는 경악과 당황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놀라고 당황스러운 것은 상원건과 진산월도 마찬가지였다. 목극등이 벗어 던진 옷에서 이런 괴변(怪變) 이 일어날 줄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하나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들이 주춤하는 사이 불길은 배의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섯명의 장한들은 이미 강물 속으로 숨어 들어간 후였고,목극등만이 배의 후미로 물러나서 기광이 번 쩍이는 눈으로 그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흐흐…. 수중(水中)에서도 조금 전처럼 검을 휘두를 수 있는지 궁금하군. 그럼 물 속에서 봅시다.” 목극등은 히죽 웃으며 강물로 뛰어들었다. 응계성이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망설이는 표정으로 진산월을 돌아보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진산월은 어깨를 한 차례 움찔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하긴? 그 자의 말대로 물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있겠느냐?” “하지만….” 응계성이 무어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진산월이 먼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미 배는 불길에 완전히 휩싸여 도저히 더 이상 서 있을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진산월의 뒤를 따라 임영옥과 상원건,동중산이 몸을 날렸고,낙일방이 우거지상을 짓고 있는 응계성을 끌 어안고 마지막으로 배를 떠났다. 화르르…. 그들의 몸이 물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배는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숨 몇 번 내쉴 만한 짧은 시간에 벌어진 뜻밖의 일이었다. 풍덩! 물 속으로 들어가자 말할 수 없이 냉랭한 한기(寒氣)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진산월은 자신도 모르게 진 저리를 쳤다. 계절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지라 강물은 겉으로 보던 것과 달리 얼음장처럼 차가웠 던 것이다. 그는 황급히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몇 차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니 멀지 않 은 곳에서 동중산과 상원건이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은 채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푸우!” 갑자기 그의 옆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두 개의 머리통이 불쑥 솟아올랐다. 낙일방과 응계성이었다. 낙 일방은 응계성의 몸을 반쯤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었는데,응계성은 이미 몇 모금의 물을 마셨는지 얼굴 이 시뻘겋게 물든 채 연방 코와 입을 벌렁거리며 양 팔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푸…,어푸….” <계속> |
첫댓글 즐독합니다,
ㅈㄷㄱ~~~~~```````
즐감요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ㅈㄷㄳ
즐독하였습니다
잘밨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