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의 부인을 모시고 성城 안 동백꽃나무 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
나 하는 듯이 앉어 계시고, 나는 풀밭 위에 흥근한 낙화가 안씨러워
줏어 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 놓았습니다.
쉬임 없이 그 짓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그 뒤 나는 연년年年히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모두 그때
그 꽃들을 줏어다가 디리던―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어 줄 이가 땅 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내가 줏어 모은 꽃들은 제절로 내 손에서 땅 위에 떨어져 구을르고
또 그런 마음으로밖에는 나는 내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
[서정주시선],정음사,1956.
[나만의 미당시],은행나무, 2024.
카라님이 두 번 joofe님이 한 번 올려주신 '나의 시'
김혜순의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해 버린 것' 을 읽다가
첫댓글 시가 새롭게 읽힙니다. 치마폭이 아닌 의자에 숱하게 주워놓은 꽃잎들이 바람에 흩어지는 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