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신문에 뉴질랜드 관광 기사를 보고 엣날 생각이 나서 이 글을 쓴다.
내가 외항선을 타고 맨 처음 뉴질랜드에 입항한 것이 1977년이었다.
1만톤 급 벌크선이었는데 일본에서 스틸코일을 싣고 갔다. 당시 뉴질랜드와 호주는 '노동자의 천국'이었다.
부두 노무자들은 스틸코일을 하역하다가 커피 타임이 되면 그 무거운 코일을 공중에 메달아 놓은 채 내려와버렷다.
처음에는 사나흘 걸린다던 하역이 아무런 하역기기 사고도 없엇는데 열흘이나 걸렷다.
노무자들이 다음 배가 들어올 때까지 작업을 게속하려고 이런 핑게 저런 핑게로 늦장을 부렷던 것이다.
선원들도 '인간대접'을 받았다. 상륙증도 2장이나 발급해주며 여자친구를 초대해도 좋다고 했다.
그런 나라는 처음 봤다. 그런데 한 방에서 잠을 자는 것까지는 좋은데 돈을 주면 매춘행위로 잡혀간다고 햇다.
그때 나는 1등기관사엿는데, 기관장이 마고 14회 해군사관학교 13기 강덕조 중령이엇다. 강 중령은 내가 해군복무 시
1전단 군수참모를 햇는데, 내가 수리신청서를 들고 군수참모실에 가면 뒷자리에 앉아서 핀잔을 주곤 햇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내가 근무햇던 충남함이 정박 중 매일 게속되는 훈련과 점검으로 부원들이 지쳐서
'보일러 튜브를 왕창 구워먹는 대형사고'가 발생햇기 대문이다. 그 군수참모를 외항선에서 다시 만낫던 것이다.
당시 뉴질랜드 제1도시인 오클랜드에는 한국 교민이 몇 명밖에 되지 않았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오클랜드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젊은 부부가 자주 우리 배에 놀러왓다. 그 젊은 신학생의 안내로 유명한 로토루아 온천 구경을 하게 되었다.
선원들은 김밥을 싸고 즐거운 소풍을 갔던 것이다. 신학생에게는 승합차 기름값 정도만 지불하고.
뉴질랜드는 뱀이 없는 나라다. 오클랜드 시가지를 벗어나가도 전에 사방이 아름다운 공원이엇다.
도로 가에는 목장으로 양떼, 소떼가 평화롭게 풀을 듣고, 산속으로 들어가자 천 년 고목과 맑은 게곡물과
아름다운 호수가 한 폭 그림이엇다. 로토루아 온천이 가까워지자 계란을 삶는 듯한 유황냄새가 점점 더 짙어지며
코를 자극햇다. 온천 지대에 들어서자 진흙이 드러난 온천 지대에서 가스가 부룩부룩 솟아오르며 들끓고 있었다.
그 뻘로 마사지를 한다고 했지만 선원들은 수영복을 빌려 입고 온천 목욕만 했다.
단체 여행객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온 손님들이엇다. 일본에도 유명한 자연 온천이 많은데도...
엊그제 황 선장이 말한 일본 북해도 무로란 노보루베시 온천은 겨울철에 노천 온천으로 남여 혼욕으로 유명하다.
옛날부터 원숭이와 곰들이 싸움으로 입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천연 온천 계곡에 목욕하러 온다고 소문이 났다.
- 나는 1974년 무로란 조선소에서 5600톤 급 트롤선 신안호를 인수하며 그곳에 가 보앗다.
로토루아는 원래 원주민 마오리 족들의 집단 거주구역이엇다. 마오리족들은 원래 북방에서 섬에서 섬을오 이동
뉴질랜드까지 갓다고 한다. 그래서 몽골족의 표시인 엉덩이 푸른반점이 있고 생선회도 먹는다고 햇다.
온천욕을 마치고 마오리족 마을에 가니 사타구니에 샅가리개만 걸치고 머리에 새털모자를 쓴 마오리족 모형과
오두막이 재현되어 있고 민속공예품을 파는 매점도 있고 'Haka'라는 마오리 전통 공연도 했다.
온천수가 끓고 있는 계곡에는 계란을 삶아 팔고 있었다.
가까운 곳이라면 한번 가고 싶지만 너무 멀어 경비가 많이 들어 갈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