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가죽을 벗긴다는 것이 십자가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레위기 7장
어제는 사역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 킴이랑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교회는 요즘 새벽기도회에 약 150명 가량이 나온다. 한번 나올 때 마다 쿠폰 한개를 준다. 이 쿠폰을 10개 모으면 한국돈으로 약 1만원 하는 상품권을 준다.
우리교회 성도님들은 거의 다 tea field (차 밭)에서 차 잎을 따서 킬로당 무게를 재서 고용주에게 갖다 주고 돈을 받는일을 한다.
한달 열심히 일하면 약 15만원 가량을 번다.
그러나 그것은 티 밭에 일이 있을 때 이야기이고 일이 없으면 그냥 직장이 없이 하루 하루를 지내게 된다.
그러니 10일 새벽기도 나와서 받는 1만원 가치의 상품권은 이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된다고 하겠다.
어제는 아들 킴이 성도님들이 새벽기도 나오는 이유가 기도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쿠폰 받기 위해서인데 앞으로는 이 쿠폰 주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새벽기도에 오는 올바른 목적이 아니니 그들이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새벽기도 나올 사람들만 나오게 하는것이 좋지 않겠냐고 한다.
그래서 내가 킴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내가 한국말로 번역해서 옮겨 보도록 한다.
"킴! 너의 생각은 바른 생각인 것 같애. 그 말이 맞지!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새벽기도를 나와야 하는데 이전에 우리 교회 새벽기도 멤버가 몇명이었는지 너 기억하지?
약 8명이었어. 그런데 우리가 쿠폰 주고 난 다음에 매일 평균 150명이 되었지.
난 사실 그들이 새벽기도 안 나와도 상품권을 주고 싶어. 그러나 모든 사람을 다 줄 수는 없지 않니? 너도 알다시피 우리 교회 교인들은 거의 다 가난해. 1만원 상품권은 그들에게 참으로 큰 도움이잖니? 새벽기도를 나오면 일단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지 않니? 하루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그들에게 좋은 일이지.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시 는 분이라고 나는 믿어!
새벽기도 나오든지 안 나오든지 나는 모든 성도님들이 다 집에 먹을 것이 있으면 좋겠어!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다 도와 줄 수 없으니 새벽기도를 상품권을 기대하고 나온다 해도 나로서는 일단 그들이 얼마 안되는 상품권으로 그들의 가족들이 하루 먹을 양식이 테이블에 있을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
너가 엄마 재정을 걱정해 주어서 하는 말인것도 이해하는데 걱정하지 말으렴!
하나님의 마음은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마음이셔! 그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이구 말야! 그러니 계속 새벽기도 참석하는 성도님들 쿠폰을 주도록 하렴. 그리고 상품권을 주도록 하고 말야!"
그랬더니 킴이 잘 알았다고 한다.
내가 선교헌금을 사용하는 용도에 "우선순위"가 있는데 일단 성도님들이나 주민들의 양식을 사 주는 일을 우선시 한다.
일단은 먹고 사는것이 우리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니까 말이다.
나는 이미 30년 전 부터 십의 일조 외에 또 다른 십의 일조를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재정으로 떼어 놓고 살았다.
그랬더니 내게 재정이 넉넉히 있고 없고를 떠나서 습관처럼 "이번 달에는 누구를 도와 주지?" 이렇게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하나님이 나의 모든 필요한 재정을 채워 주었다 하는 것이 나의 재정에 대한 간증이 되었기보다는 "하나님의 눈매"를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영적인 자산"이 되었다고 하겠다.
하나님을 믿게 되면 하나님을 닮아가고 싶어진다.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 가기 힘쓰다 보면 하나님이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하겠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꼭 이웃의 필요도 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레 위 기 7장
8. 사람을 위하여 번제를 드리는 제사장 곧 그 제사장은 그 드린 번제물의 가죽을 자기가 가질 것이며
오늘은 묵상 구절에서 한 단어를 선택하여 "삶의 적용"을 해 보고자 한다.
번제라는 제사를 지낼때 그 절차 중 하나는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일이었다.
짐승의 가죽을 벗긴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의 모습의 예표의 한 부분이라고 한다.
가죽이라는 것이 벗겨질 때와 "십자가 죽음의 수치"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신 모습에는 예수님이 발가벗고 돌아가신것 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은 발가 벗겨서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그 형벌의 성격이라고 한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나이는 서른 셋!! 서른셋의 남자가 발가벗긴 몸으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고통가운데 죽음을 맞이한다고 하는것!
채찍에 맞음으로 온 몸이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한데 거기에 발가벗긴 몸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감히 공감대 형성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 될 수 있을까?
그분은 그러한 모든 고통을 참아내셨는데 그 이유는 한가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셔서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하여 받아야 할 형벌을 우리 대신 지어주셨다는 것이다.
우리 삶에 "수치"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가? 생각하기도 싫고 생각할 수록 마음이 눌리고 어두워 지고 아무랑 말하기도 싫고 어디 도망가고 싶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하면 그 수치심으로 마음이 주저앉고 그러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고!!
수치심과 굴욕감이라고 하는것!
그 정도가 좀 다를 수 있다해도 우리 예수님의 수치와 굴욕을 감히 비교할 사람이 과연 이 땅에 몇명이 될 수 있을까?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오늘은 "가죽"이라는 한마디 성경 말씀 앞에 우리를 위하여 아니 저를 위하여 우리 주님 견뎌 주신 모든 수치와 굴욕과 모욕과 고통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 누구도 "수치심" 때문에 앞 날에 대한 미래가 느을 암울해 있을 사람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 주님 수치의 극치가 되는 모습으로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고 져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입은것을 깨닫고 그 사랑의 빚을 주님께 갚아 드리고 싶다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수치심"에 눌려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제가 마땅히 가져야 할 모든 수치와 굴욕과 모욕을 못 박아 주셨음을 기억하게 도와 주옵소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를 사랑해 주신 주님이 정말 고맙다면 이제는 더 이상 "수치심"으로 마음을 잃어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