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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누가복음”, 영어로 “Luke”인데, 두음법칙 때문에 “누”로 번역합니다. 예를 들자면 “내일(來日)”, “여자(女子)” 같은 말이 두음법칙 때문입니다.
루카는 사도 파울의 인생의 마지막에 파울과 함께 있었던 사람입니다. “루카복음”은 루카가 기록한 복음입니다.
루카는 이전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하였습니다(룩 1:1~4). 루카는 붓을 든 사람이 많다는 말로 루카복음의 기록을 시작합니다. 고대 그리스 문헌에 이와 같은 머리말과 비슷한 글들이 나타납니다. “이야기”(디에게시스)는 구전과 기록된 문서 다 뜻합니다.1) 영화로 “건국 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듯이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1. 천사가 스가랴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예고합니다.
루카복음 1장 8~12절에 “스가랴가 제사장의 봉사를 실행하게 되고. 그가 주(主)의 성소로 들어가서 향을 피우기에 제비에 의해 선발되었고. 그 백성의 모든 그 다수는 그 향의 그 시점에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으나. 향의 제단의 오른쪽에서 주의 천사(angel)가 그에게 보이게 되고. 본 스가랴가 함께 뒤흔듦을 받았고, 무서움이 그 위에 떨어졌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스가랴가 제사장 직무를 실행하는 때가 되어 주의 성소로 들어가 향을 불사르기 위해 제비뽑기로 선발되었습니다(룩 1:8~9).
주의 성소에 분향하는 특권은 일생에 한두 번 주어지는 일입니다. 매일의 제사와 관련해 아침저녁으로 분향하였습니다(출 30:7~8).2)
향 제단의 오른쪽에 주(主)의 천사가 스가랴에게 보였습니다(룩 1:11). 하나님의 천사(天使)가 스가랴에게 나타난(appear) 것입니다.
“사자(使者)가 그에게 나타났다”라고 기록되었고 “시킬 사(使)”입니다. “사자(使者)”라는 말은 “명령이나 부탁을 시켜서 보낸 자”를 의미합니다. 주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한국 신화에 “저승사자”가 있는데, 염라대왕이 시켜서 보낸 자입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한다고 “저승사자”라 합니다.
저승사자를 등장인물로 한 “케데헌”이라는 이름의 만화영화가 있는데 “케데헌”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앞글자만 따서 줄인 것입니다.
케데헌의 노래인 골든(Golden)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2억 6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만화영화를 시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 한국 문화 최고야’ 그러며 한국에 외국인들이 관광 오는데, 한국행 항공권 예약이 급증하게 돼 매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관광을 많이 와 인천공항에 외국인들이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케데헌 성지(聖地)라는 곳들을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북촌 한옥마을, 경복궁, 서울 한방 진흥센터, 국립중앙박물관, 명동, 낙산공원, 남산 서울타워가 바로 외국인들이 관광하러 찾는 장소입니다.
지금 한국 관광 열풍이 불어 외국인들이 달러 많이 쓰면 좋긴 좋은데, 문제는 영화가 악마 영화고, 한국이 악마 영화로 돈을 번다는 것입니다. “저승사자”라 할 때 쓰는 말이 곧 “시켜서 보낸 자”인 “사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루카복음에 나오는 “사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입니다. 하늘에서 온 사자니까, “하늘 천(天)”을 써서 “천사(天使)”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같은 말(앙겔로스)이 11절에 “사자”, 13절에 “천사”로 일관성 없고 통일성 없게 번역되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사자, 즉 주의 천사가 그에게 보이게 되었는데 주의 천사를 본 스가랴가 뒤흔들렸으며 무서움이 그 위에 떨어졌습니다.
그 천사가 말하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너의 탄원이 들음을 받았으며 엘리자베스가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르고.”라고 하였습니다(룩 1:13).
1) 하나님께 탄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시편 4편 1절에 “부르는 때에 대답하여 주소서 나의 올바름의 하나님, 그 고통 안에 당신이 나에게 넓히셨으며(you have relieved me) 나에게 은혜로우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넓은 곳으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을 체험한 사건을 기초로 하여 하나님께 “나에게 은혜로우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은혜로우소서”라는 탄원은 도움을 구하는 기도에서 전형적입니다. 시인은 과거에 도움이 있었음을 회상하며 기도 응답을 요청합니다.3)
“은혜로우소서”(Be gracious)라는 말은 기도의 맥락에서 나옵니다.4)
시편 27편 7절에 “나를 은혜를 베푸시고 나에 응답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시인은 시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통 기도문으로 기도합니다.5) 그는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응답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은 그의 은혜로운 성품 때문입니다.
시편 31장 9절에 “나에게 은혜로우소서 나에게 고통이 있기 때문이며 나의 눈 나의 영혼과 나의 몸이 슬픔 중에 쇠약해졌습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은혜”는 아무 조건도 없이 제한도 없이 베푸시는 은총을 뜻합니다.6)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주시는 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시편 41편 4절에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be gracious), 나의 영혼을 치료해 주소서 내가 당신께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시인처럼 하나님께 “나에게 은혜로우소서”라고 말하여야 하며 이 말은 자주 반복할수록 더 좋습니다.7)
“나에게 은혜로우소서”라는 말은 시편의 기본 간청입니다(시 31:9).8) “은혜로우소서”,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라고 기도하여야만 하겠습니다.
눈물이 나올 만큼 극심한 고통이 여러분에게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는 “나에게 은혜로우소서”입니다. 약을 써도 듣지 아니하고 잠도 오지 아니하고 고통을 참을 수 없는 때에, “나에게 은혜로우소서”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효과가 있습니다.9)
시편 51편 1절에 “하나님이여 당신의 자비처럼 나를 은혜를 베푸시며 당신의 동정들의 많음처럼 나의 위반들을 씻어 버려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어여삐 여겨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소원을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은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거저 주시는 은혜를 희구하는 기도였고, 시인은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동정에 의지해 은혜를 소원합니다.10)
“나에게 은혜로우소서”라는 말은 탄식의 시의 두드러진 점입니다.11)
시편 123편 1~2절에 “하늘 당신께 내가 나의 눈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 주인들의 손에 종들의 눈과 같이 그 여주인의 손에 여종의 눈과 같이 그렇게 우리의 눈이 하나님께 그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까지”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주인들과 여주인들은 종들을 보고 손을 내밀어서 은혜를 베풉니다. 하나님께서 종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손을 내미실 것입니다.12)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시편 123편 3~4절에는 “우리에 은혜로우소서 우리에 은혜로우소서. 우리의 영혼이 안일한 자들의 조소에 만족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한 그는 “은혜로우소서”라고 간청하였습니다.13)
모든 것들이 모든 시간이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으며 해가 뜨고 노을이 지고 꽃향기와 열매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으며 모든 것이 한이 없는 은혜며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사는 것과 꿈을 꾸는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으며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예배의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으며 모든 것이 은혜며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은혜’ 가사 中).
2)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에 대망하십니다.
이사야 30장 18절에 “야훼께서 너희를 은혜를 베푸시게 대망하시고 너희를 불쌍히 여기시러 일어나시니 야훼께서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에게 대망(待望)하는 모든 자의 행복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30장 19절에 “그가 너에 은혜로우실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려는 열망을 가지셨으며 하나님의 은혜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도우실 것이고 그들에 풍요를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은혜롭기 적절한 때까지 기다리실 것입니다.14) 우리가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은혜는 자격이 없는 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단입니다.15)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시고 또한 바라십니다.
3) 하나님을 존중하여야만 하나님께서도 은혜로우십니다.
말라기 1장 6절에 “아들은 아버지를 종은 그의 주인을 존중(尊重)하고 내가 아버지면 어디 나의 존중이고 주인이면 어디 나의 두려움이냐”라고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가볍게 업신여기는 제사장들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들은 말하였기를 “어떻게 우리가 당신의 이름을 업신여겼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말라기 1장 6절~2장 9절은 6개의 논쟁 중 ‘두 번째 논쟁의 말’입니다. ‘제사장들의 태만에 관한 논쟁’이 기록되었습니다.16)
“가볍게 업신여긴다(despise)”라는 단어는 “경멸하다”를 뜻하는데 “경멸(輕蔑)”이라는 한자어는 “가볍게 보아 업신여김”을 뜻하며, “업신여긴다”는 “교만하여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다”를 뜻합니다.
“존중하다(Honor)”라는 단어는 “존경하다”, “영화롭게 하다”인데, “존중(尊重)”이라는 한자어는 “높이어 귀중(貴重)하게 대함”을 뜻합니다.
한글로 “공경하다”로 번역되는데 “존경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존경(尊敬)”이라는 한자어는 높이어 공경(恭敬)한다는 의미를 지니는데 부모에게 공손(恭遜)하고 정중(鄭重)하고 예의(禮儀)가 올발라야만 하며 무게와 가치를 두고 가볍게 보거나 경홀(輕忽)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가볍게 업신여긴다”라는 단어(바자)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가볍다”와 “무겁다”가 반대이듯이 “경멸하다”와 “존중하다”가 반대며,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존중하지도 경외하지도 아니하였으며,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아니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단 위에 완전히 더럽혀진 빵을 접근시킨 자들이고, 그들이 말하기를 “무엇에 우리가 당신을 완전히 더럽힌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말 1:7).
그들은 하나님의 제단 위에 완전히 더럽혀진 빵을 접근시킨 자들인데, 그들은 ‘우리가 무엇 안에 당신을 더럽힌 것입니까’라고 반문합니다.17)
말라기 1장 7절에 “야훼의 식탁은 업신여겨질 것이라”라고 그들은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의 식탁이 가치가 없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18)
에서가 장자의 신분을 업신여긴 것은 영적 유산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오로지 내세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현세에만 관심이 있다면 ‘나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말라기 1장 8절에 “눈먼 것을 희생 제물로 바치기에 접근하게 만들고, 절뚝거리는 것과 병든 것을 접근하게 만드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15장 21절에 “흠이 있어 절뚝거리거나 눈멀었거나 모든 흠을, 너는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지(sacrifice) 말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 때는 아무 흠이 없는 것으로 바쳐야 합니다. 눈먼 것을 하나님께 가까이 오게 만들어서는(offer) 안 되고, 화제를 눈먼 것들에서 하나님께 드리면 안 되었습니다(레 22:22). 눈먼 짐승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지 아니하여야 하였습니다(신 15:21).
그런데 제사장들은 흠이 있는 것들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접근시켰고, 그것은 하나님의 식탁을 경멸(輕蔑)하고 가볍게 업신여긴 행위였습니다.
그들은 희생 제물로 바치기에 눈먼 것으로 접근시켰으니 악한 것이고, 그들은 또한 절뚝거리는 것과 병든 것으로 접근시켰으니 악한 것입니다.
말라기 1장 8절 후반부에, “그것을 너의 통치자에게 가까이 오게 하라 그가 너를 받아들일 것이냐 혹은 그가 너의 얼굴을 들어 올릴 것이냐”고 군대들(hosts)의 야훼께서 말씀하십니다(says).
얼굴을 들어 올린다는 말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는 표현입니다.19)
말라기 1장 9절에 “신(神)의 얼굴을 간청하여서 그가 은혜로울 것이냐 이것이 너의 손으로부터며 그가 너희로부터 얼굴을 들어 올릴 것이냐”고 군대들의 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무가치한 제물을 드리며 은혜를 베푸시기를 간청한 것입니다.20) 그들은 무가치한 제물을 드리며 하나님 얼굴을 뵙기를 간청하였습니다.
말라기 1장 10절에 “또한 너희 안에 누구고 그가 문들을 닫아 너희가 나의 제단 위에 헛되이 비추게 하지 아니할 것이냐, 나에게 너희 안에 즐거움이 없노라 야훼가 말하였으며, 공물을 너희의 손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10절은 새로운 단락의 시작일 수 있고 이전 단락의 끝일 수 있습니다. 무가치한 제물을 바치기보다 성전 문들을 닫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21)
하나님의 물음에 유다가 이제 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고발이 그치고 탄식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늘어날수록 하나님을 더 모독하는 것이 되기에,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의 하는 일 전체를 멈추게 되는 것을 바라십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전 예배를 아예 그만두는 것이 더욱 나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의 모독적인 직무 수행을 통하여 예배를 통한 복을 잃게 되며 덧붙여서 하나님의 분노마저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22)
말라기 1장 11절에 “그 이유는 해의 해 뜨는 곳부터 그 들어감에까지 나의 이름이 크고 모든 장소에서 나의 이름에 제물로 불태우며 접근하니 이는 나의 이름이 민족들 안에 큼이라 군대들의 야훼가 말하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아 그러한 제물을 가져와서 나를 경멸하였느냐? 그러나 동쪽부터 서쪽까지 나의 이름이 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족들에서 제물이 바쳐짐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이 커질 것입니다.23)
하나님께서 스가랴의 탄원이 들으셨고 그 아내가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는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요한”은 “은혜롭게 주다”는 의미의 “하난”에서 나왔는데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주신 아들임을 상기시킵니다.
요한이 태어나 부모가 “요한”, “요한” 하고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은혜롭게 주셨다”, “은혜롭게 주셨다” 이리와 그런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아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주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을 주셨듯이, 우리에게 은혜롭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멸하지 아니하고 존중하여야 합니다. 또 우리가 준비되는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롭게 주실 것입니다.
1) Darrell L. Bock, 『BECNT 누가복음 1』, BECNT 성경주석, 신지철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91-94.
2) John Nolland, 『누가복음 1:1-9:20』, WBC 성경주석 35상, 김경진 역 (서울: 솔로몬, 2003), 138.
3) Nancy L. deClaissé-Walford, Rolf A. Jacobson and Beth LaNeel Tanner,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강대이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115.
4) 김정우, 『시편 주석 Ⅰ』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2005), 308.
5) 김정우, 『시편 주석 Ⅰ』, 607.
6) 김정우, 『시편 주석 Ⅰ』, 673.
7) C. H. Spurgeon, 『스펄전설교전집 시편Ⅰ』, 박문재 역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13), 887.
8) Jacobson 외 2명, 『NICOT 시편』, 473.
9) Spurgeon, 『스펄전설교전집 시편Ⅰ』, 889.
10) Marvin E. Tate, 『시편 51-100』, WBC 성경주석 20, 손석태 옮김 (서울: 솔로몬, 2009), 54.
11) Tate, 『시편 51-100』, WBC 성경주석, 142.
12) deClaissé-Walford 외 2명, 『NICOT 시편』, 1092.
13) deClaissé-Walford 외 2명, 『NICOT 시편』, 1092.
14) Gary V, Smith, 『NAC 이사야 1』, NAC 성경주석, 권대영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673-675.
15) Alec Motyer, 『이사야 주석』, 박문재 역 (서울: 솔로몬, 2018), 548.
16) 차준희·유윤종, 『학개 스가랴 말라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30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 436.
17) 차준희·유윤종, 『학개 스가랴 말라기』, 대한기독교서회 100주년, 442.
18) 차준희·유윤종, 『학개 스가랴 말라기』, 대한기독교서회 100주년, 442.
19) 차준희·유윤종, 『학개 스가랴 말라기』, 대한기독교서회 주석, 443.
20) 차준희·유윤종, 『학개 스가랴 말라기』, 대한기독교서회 주석, 444.
21) Andrew E. Hill, 『학개·스가랴·말라기』,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28, 유창걸 옮김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10.
22) 차준희·유윤종, 『학개 스가랴 말라기』, 대한기독교서회 주석, 444.
23) 차준희·유윤종, 『학개 스가랴 말라기』, 대한기독교서회 주석,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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