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VS 앗시리아 이 양대 제국의 결전에서 정말 중요한 키포인트가 팔레스타인이었는데,
요 지방을 확고히 장악하지 않으면 이집트로 앗시리아가 들어갈 때
보급이 문제가 될 뿐더러 자칫하면 허를 찔리는 수가 있어서 반드시 직접적으로 장악해야만 하는 지역이었죠.
앗시리아가 말기 외에는 생각보다는 "직접적인 통치"를 하지 않는 쪽으로 나갔는데,
이유야 당연히 "돈"때문이었습니다만 때문에 이집트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팔레스타인 지역은
반드시 직접적으로 지배하겠다, 즉 이스라엘과 유다를 비롯한 소국들을 다 멸망시켜야 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뭐 다들 아시다시피 이거, 외교 귀신에 정말이지 앗시리아 입장에선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성 방어전에 능했던 유대 왕국의 분투와 그 왕들의 활약 덕택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세계사 지도에선 슥슥슥 다 앗시리아 색으로 칠하는 모양인데 팔레스타인에 대한 앗시리아의 지배는
그렇게 확고한 편이 되지 못했죠. 그러나....어찌 되었든 결국 이집트는 앗시리아에게 개쳐발리고 망하고야 맙니다.
막상 앗시리아가 에라이 해버리니까..... 결과는....-_-
앗시리아가 저 보급의 불리, 허를 찔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워낙 군사적 실력이 막강했습니다.
한마디로 차포 떼고도 이길 수 있었을 정도로 무지막지했던 거죠.
반면 전반적으로 여러 면에서 앗시리아의 상위 호환이라 할 수 있는 신 바빌로니아는?
약간 비유를 하자면 앗시리아와 신 바빌로니아는 조위와 서진의 관계와 비슷했습니다.
신 바빌로니아의 군사적 실력과 숙련도는 옛 앗시리아의 그것과 거의 필적했지만 앗시리아의 실패를 거울삼아
속주 통치나 문화적 면에선 생각보다 더 신경을 쓴 편이었죠.
게다가 앗시리아와는 달리 전략적으로 중요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완전히 밟아 평정해서,
적어도 대 이집트 전역에선 앗시리아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했었습니다.
한마디로 서촉 병합한 조위 = 사마씨의 서진 요런 꼴이었습니다.
해서 어떻게 봐도 이집트는 신 바빌로니아에게 안될게 뻔했고 사실 이건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견해기도 했습니다만...
하지만 이 시점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집트가 신 바빌로니아에게 좀 밀리는 싸움을 하긴 헀어도 이전 이집트마냥 당하기만 하지 않고,
선방은 여간해선 때려주진 못했지만 오히려 가끔 신 바빌로니아에게 카운터 펀치도 날려주고
그럭저럭 무려 야전에서 대놓고 붙어줄 정도의 실력을 과시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고 하면 사실 다른 이유로, 이집트가 앗시리아의 직접 지배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 체제나 군사 체계가 앗시리아의 그것을 고대로 베끼게 되었다는 것도 있었지만
당시 이집트 파라오가 다름아닌 앗시리아의 왕손이었습니다. -_-
말하자면 전략적 입지는 훨씬 불리해졌어도 전술적인 기본 체급 자체가 올라가 버렸다는 거죠.
뭐 그랬음에도, 오래도록 붙었으면 결국 이집트는 신 바빌로니아에게 안 되었겠지만,
그렇게 시간 끄는 사이 페르시아인들이 실력을 키워서 이집트와의 대결에 발목이 잡힌 신 바빌로니아를
삽시간에 후려쳐서 멸망시키고, 그 다음엔 머...다들 아시다시피...
동오도 아마 서진 상대로 더욱 오래도록 버텼으면 그 다음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 지 모른다,
는 상상을 해봅니다.
첫댓글 주류 종족은 계속 달라져도 이전 시대의 사회제도랄지 문화적 유산 같은 것들은 계속 이어져서 어떤 연속성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몽골이 바그다드를 작살내기 전까지는...
신바빌과 이집트가 머리끄덩이 잡고 서로 조지느라
이득을 본건 페르시아?
동오야 이미 촉이 무너진 순간 멸망을 향해 치달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힘의 균형이 완전히 위-진의 화북으로 넘어가버린지라...이집트야 나일강 일대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버틸수 있겠지만 오가 위치한 강남은 아직 화북이나 촉지방과는 비교도 안되는 미개발지대였으니까요. 굳이 손호의 폭정이 아니더라도 그리 오래 견디지는 못했을 겁니다.
여튼 중근동 역사에서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위상은 엄청나군요. 한번 길게 연재 해보시는 건 어떤가요ㅎㅎ
근데....앗시리아하고 붙을 때는 "나일강 일대의 경제력"으로 버티지 못했는데, 앗시리아보다 더욱 강력했던 신 바빌로니아에게는 버텨냈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이집트가 앗시리아화되면서 전투력과 편제가 업그레이드되었었기 때문. 오나라도 아마 정치가 좀만 잘 되었더라면 버텼을지 모릅니다.
동오도 손권이 세병제를 바꿔보려고 했는지 호족들을 때려잡았는데 그게 이궁의 변으로 나타난게 함정이죠(...) 뭐 노망난 걸 수도 있지만...
여튼 오나라의 봉건적 시스템 상 한계가 분명하고, 여기에 위진이나 촉의 군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그 틀 안에서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앗시리아 지배 후 이집트와 비슷한 양상을 띄긴 어렵지 않았을까 합니다.
생각을 더 해보니까, 앗시리아 지배 후 나타난 새로운 이집트는 손오라기보다는 오히려 동진에 가까웠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비수 대전 직전엔 동진은 손오와 거의 영토는 비슷했지만 실제의 인력이나 편제, 군사력은 손오하고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죠.
그러고보니 동진이 더 비슷하네요ㅎㅎ
진이란 하나의 체제로 통합이 되었다가 갈라져 나왔던 만큼 기존의 지리적 배경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던 사실과도 맞아떨어지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