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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여행1 - 스페인 광장과 포폴로 광장 및 판테온을 거쳐 트레비 분수를 보다!
*** 로마의 꽃 트레비 분수 ***
스위스와 북이탈리아를 함께 여행했던 처남 부부가 피렌체 를 보고는 헤어져 로마 로
가는데, 우린 전에 2번이나 로마를 보았기로 이번에는 시에나와 페루자를 보기로 한다.
그런데 처남댁이 로마 여행 사진 을 보내 왔기에 예전에 로마 - 나폴리여행기를 간추려
줄이고 거기에 처남댁의 이번 로마 사진을 겻들여 싣기로 합니다.
예전에 처음으로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테르미니 역 에 내렸는데 두번째인 오늘은 밤차
를 탄 탓으로 아침 7시에 테르미니역 동쪽에 있는 로마 티뷰르나 Tiburtina 역에 도착한다.
아침 부터 집시 여자 들이 얼씬 거리기로 예전에 지하철에서 3차례나 소매치기 시도를
당했던 끔찍한 생각이 떠올라 라기쥐 라커인 콘시그나에 배낭을 넣는다.
이 도시 로마를 사랑했던 괴테 는 1,786년 9월 독일의 칼스바트를 떠나 이탈리아를
여행했으니, 베로나와 베네치아, 피렌체를 거쳐 로마에 도착한다.
남국은 음울한 분위기의 독일과는 달리 하루하루 새로운 껍질을 벗으며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라,“그나라를 아시나요”“레몬꽃이 피는 그 나라를 아시나요” 라고 적었다.
*** 이른 시각의 스페인광장 ***
우리 4명의 일행은 로마 티뷰르나 역전에서 택시를 타고 스페인 광장 으로 향한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민박집에 가기에는 염치가 없고, 또 달리 문 연 데도 없으니 갈곳도 없으므로...
*** 오드리 헵번 흉내를 낼려도 이른 아침이라 아이스크림이 없네 ***
스페인광장 Piazza di Spagna 136계단은 로마의 휴일 영화의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
을 먹던 곳으로 교황청 스페인 대사관이 있던 자리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네!
계단을 올라가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 를 둘러 보고는 배 모양의 물이 새는 분수라고도
불리우는 바르카치아 에서 물병에 물을 담는다.
*** 이번에 처남 부부는 낮에 갔으므로 이처럼 관광객들이 붐빈다 ***
로마의 명품 거리인 콘도티 거리 Via Condoti 를 걸어 코르소 거리 Via del Corso 를
만나서는 멀리 로마의 북문인 포폴로광장의 오벨리스크 가 보인다.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안토니우스 장군과 클레오파트라 를 격파하고 이집트에서 가져
온 그 오벨리스크가 바로 이것이면 2천년이 되었나 보네!!!
그전에 카이사르 는 폼페이우스 장군을 추격해 이집트로 진격해서는 클레오파트라에
혹해서 아들 카이사리온을 낳아 클레오파트라 모자와 함께 로마로 개선했는 데....
공화제의 유구한 전통을 가진 로마에서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아 원로원에서 암살
당하고 만다.
황망간에 19살의 옥타비아누스는 외삼촌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카이사르의 부장이었던
명장 안토니우스 와 손을 잡는 데....
19개군단 12만 대군을 거느리고 그리스로 추격해 필리피 평원 에서 원로원 암살자들이
동방에서 모은 10만 대군과 격돌한다.
어린데다가 전투 경험이 없어 전술에 있어 안토니우스의 발 뒤끔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다가 병약한 옥타비아누스 는 원로원파 부르투스 군에게 대패 한다.
하지만 전술이 뛰어난 무장 안토니우스는 카시우스군을 격파 하고 브루투스군 을 압박
해 승리를 낚아채 옥타비아누스를 구한다.
그러고는 과거 폼페이우스 가 그랫던 것 처럼 소아시아로 건너가 시리아를 제패하고 가나
안과 이집트까지 손에 넣어 동방을 평정 하여 로마 내전을 마무리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클레오파트라에 미혹해 결혼까지 하고는 로마의 땅 이집트와 팔레스티나를 클레오파트라
에게 바치니 다시 내전이 터지는 데......
BC 31년 동방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은 육군 10만에, 수군은 15만에 520
척의 대함대로 그리스 서부 파트라 에 이르니...
옥타비아누스의 맹장 아그리파 도 육군 9만에 해군은 400척의 대함대를 이루어 진격하니
마침내 악티움 해전 이 벌어지는 데....
전투로 단련된 로마 고참병의 숫자가 많고 전술에 뛰어난 안토니우스에게 부하 무장들은
육전으로 결판을 낼것을 호소했으나......
해군력 우세한 것을 믿는 클레오파트라가 끝내 고집을 관철해 해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로마군이 주로 3단 갤리선(노가 3층) 임에 비해 안토니우스군은 5단 갤리선(노가 5층) 에
숫자도 많은데다가 동풍마저 부니 초전에 주도권 을 잡아가는 데.....
그 수백척 전함들이 맞붙으면서 화염에 싸이는 아비규환의 전투현장을 목도한 클레오파트
라는 여왕에서 일개 아녀자로 전락해 겁에 질려서는 ......
마침 북풍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수하 이집트 함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도망치니!!!!
이것을 본 안토니우스 는 전투고 뭐고 다 팽개치고 연인을 뛰쫓아 전선을 이탈하니 부하
병사들은 사기를 잃고 혼비백산하여 전세는 역전되어 마침내 패하게 된다.
하지만 절벽위 언덕에서 이를 지켜본 10만 안토니우스 육군은 동요하지 않은채 무려
여드레나 주군이 전장으로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했으나....
이미 멀리 이집트로 도망쳐 클레오파트라의 치마폭에 숨은 사령관이 돌아올 기미가 없자
마침내 항복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니....
이후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를 추격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해 이집트를 손에
넣은후 이 "승리를 기념하는 전리품 비석 오벨리스크" 를 가져다 여기 세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옥타비아누스는 마침내 원로원에서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아 제1인자로서
사실상 황제로 로마제정 을 열었던 것이니....
오랜 상념에서 깨어나 북문을 지나 언덕에서 다시한번 오벨리스크를 보고는 되돌아와서는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교회 와 쌍둥이 교회를 건성으로 본후에 남쪽으로 길을 잡는다.
조금 내려와서는 아우구스투스황제 묘 를 찾으니 관광객에게 개방하지 않는 모양인지
폐허가 된 것이......
아무리 둘러 보아도 묘소로 들어가는 문을 찾을 수가 없네! 이집트까지 가서 정적이자
동맹군이었던, 생명을 빚진 안토니우스를 비명횡사케 하고는.....
저 오벨리스크를 가져다 여기에 세울 때 당신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었건만!!!!
*** 3개의 분수로 유명한 나보나 광장 ***
여기서 택시를 타고는 나보나 광장 Piazza Navona 에 내린다. 이 광장은 1세기 말 도미
티아누스 황제가 전차경기를 위해 축조했던 바로크 양식의 원형 경기장으로.....
교황이 즉위하거나 무슨 큰 경사가 있으면 광장으로 통하는 다섯개 도로를 울타리로 폐쇄
하고 테베레 강물을 끌어들여 해전놀이를 한 탓에 "해군(군함)을 뜻하는 나보나" 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 길이 246m, 폭 64m에 베르니니의 걸작들인 4대강의 분수,
넵튠의 분수, 무어인의 분수는 보기에도 일품이네!!!!
*** 넵튠(희랍에서는 포세이돈)의 분수 ***
일찍은 시간인데도 나보나 광장에는 그림을 파는 화가 들이 보이고 분수들이 정말 사실
적이고 세밀하여 볼만하다!
4대강이 흐르는 분수가 수리중이라 좀 아쉬운데, 여긴 그리스- 로마 신화 를 모르고서는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는 것이니....
*** 무어인의 분수 ***
길을 돌아 정사각형 입구 뒤로는 2천년 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아그리파 가 건축
했으며 개별 신전을 갖지 못한 모든 신들 에게 바쳐졌다는.....
거대한 원형 건물인 판테온 Pantheon 에 도착하는데, 기둥 16개의 원통형 건물로 가운데
하늘이 뚤려 있어 빛이 비추니 신비롭기만 하네.....
*** 만신전이라 불리는 판테온 신전의 기둥 ***
대리석 기둥중 하나의 크기가 장정 몇명이 달려들어도 모자라는 엄청 큰 규모의 사원
판테온은 미켈란젤로가 “천사의설계” 라고 극찬했으며......
그 내부에 에마누엘레 2세와 삿소 성모상 아래에는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는 데!!!!
2천년 전에 어찌 이런 거대한 원주형 건물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2천년을 무느
지지 않고 끄덕 없이 견뎠으니.... 이제는 관광객으로 미어 터지네!!!!
그리스- 로마 와 기독교의 차이 는 다신교와 일신교 인 점에 있다. 그래서 수천의 신을
섬긴 로마에서 자기 신전을 갖지 못한 신들을 위해 이런 신전이 필요했으리라....
*** 저 원 구멍으로는 비가와도 물이 잘 새지 않는다네..***
중세 기독교시대에 이교도의 건축물 파괴의 광풍 이 몰아칠 때, 다행히도 이 신전은
교회로 사용 되었었기에 파괴를 면하고 무사했다고 한다.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두오모의 돔 을 구상할 때 이 신전에서 얻은바가 컸으리라! 흔히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신도들을 탄압" 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거라...
"로마는 다신교사회" 로 피지배 민족의 고유종교를 모두 너그럽게 받아들여 재정적 지원
까지 하였다. 그러니 기독교 믿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만신전인 판테온 ***
단지 로마가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 주요 신들 에 대한 제례행사에 기독교도가 참여하기
를 거부 했기 때문에 탄압받았던 것이다.
다신교사회에서는 자기가 믿는 신은 그대로 열심히 믿고, 그외에 나라의 국민이니까,
"나라 신의 제사에 참여"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유일신 을 믿는 기독교도의 입장은 그렇지 않으니 로마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니,
또한 군대에 가는 것과 관리가 되는 것 을 아울러 거부했기 때문에 탄압을 받았던 것이다.
콜로세움에서 기독교도가 사자밥 이 되었다는 것도 먼 후대의 교회의 기록 외에는 다른
사료에는 전혀 찾아볼수 없으니 역사적 근거는 약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데......
그렇다고 사실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고 다른 사료에서 기록될 정도로 대규모는 아니었다
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는 모세의 출애굽 도 당시가 아니라....
먼 후대의 유대인의 기록 외에는 다른 사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라 출애굽
직전 이집트의 람세스 2세는 BC 1274년 팔레스타인 해안을 지나 가나안으로 진격하니....
시리아 카데시 에서 나라의 운명을 건 전투를 한 상대방인 히타이트 의 기록에도 출애굽
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없는 것이라? 히타이트는 그후 이집트에 왕녀까지 출가시킨다!
BC 3천년에 이미 역사시대 가 되어 문자를 기록하는 사관을 둔지 2천년에 가까운 바빌
로니아 와 역시 전문 사관을 두고 매일 매일의 국사를 기록했던 당사자인 이집트 .....
그리고 이집트 및 팔레스타인 해안지대의 도시국가와 활발히 교역을 한 크레타등 그리스
제 국가들 중에서 어디에도 그 출애굽 기록이 단 한 줄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그렇다고, 다른 사료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사실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구약에서
처럼 장정만 60만 에 이르는 그런 대규모는 아니었을 것이고...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무리라면...... 다른 나라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종교로서는 당연히 믿어야 하겠지만....
역사적 사실로 간주 될 때에는 여러 자료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길을 걸어 로타리에 이르니, 이탈리아 통일 황제로 규모가 엄청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Vittoriano Ⅱ 이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낸다.
이놈은 커도 너무 크다!!! 백색 대리석으로 치장한 웅장한 건물위에 그리스식 열주가 늘어
서고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위에 승리의 여신이 월계수와 칼 을 들고 굽어보는 모습이라!
우리나라 서울 세종로에서 칼을 짚고 선 뭉퉁하니 단조롭게 생긴 “메가패스” 이순신장군
의 동상이 생각난다.
우리도 이런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그러면서도 섬세하고 사실적이며 상징적이어서 예술
적 가치가 높은 그런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언제쯤이면 만들 수 있을 려나 ....
거북선을 호위로 거느리고 맹호선 상갑판 위에서 북을 치는 장군! 이런 류로는 모스크바
강 한복판에 높은 범선 위에 버티고 서 있는 "포트르 대제의 조각상" 이 참고가 될려나?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년관 ***
카피톨리노 언덕은 주피터 신전이 세워진 곳으로 지금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대로 계단
과 광장과 박물관이 재건되었다.
광장 옆에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 이 있다지만.... 그건 나중에
보기로 하고.....
*** 2천년에 이어 두번째 찾은(그때는 동전을 뒤로 던졌었다) 트레비 분수 ***
드디어!! 1762 교황의 공모에 따라 폴리궁전 벽면을 이용했다는 트레비 분수 Fontana di
Trevi 에 이르니......
중앙에 형상화 시킨 바로크 양식의 바다의 신 넵튠과 트리톤 조각상이 압권인데 발 디딜
틈도 없이 인파로 가득하다.
그 화려하고 섬세한 분수의 조각들을 구경 할랴, 세계 각국에서 온 청춘남녀들이 돌아서
서 어깨너머로 동전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오게된다고 따라하는 장면을 보랴 정신이 없다.
그 때 요란한 호각소리!!! 그렇다! 사복 경찰이 소매치기 장면을 목격하고는 제지 하려고
호각을 부는 것이니... 여긴 소매치기 소굴인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곳이니 과연 명불허전이다. 넵튠 ( 포세이돈 ) 의 모습이며
말을 몰고 있는 반인 반어인 트리톤 등을 실컷 구경하고는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2천년 전에 아우구스투스가 멀리 산속에서 끌어온 수도교인 "처녀의 샘" 을 1,400 여년
후에 교황 니콜라우스가 복구시킨 샘이.......
훗날 이 트레비 분수의 원천이 되었다니!!!!! 로마인들의 건축 기술이 어떠했는지 정말
감탄할만 하다!
우리 일행 4명은 지하철은 소매치기 걱정 때문에 택시를 잡아 티뷰르티나 Tiburtina 기차역
에 내려 배낭을 찾는다.
그러고는 다시 택시를 타고는 “128, Via Filippo Turati, Rome ” 라고 적힌 쪽지를 보이며
테르미니역에서 한 블록 떨어진 거리라고 하니 택시 기사는 정확히 데려다 준다.
이제 민박집에 배낭을 풀고는 잠시 쉰후에 콜로세움 과 포로로마노 로 갈 예정이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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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분수이네요, 트레비는.....
트레비 분수에
동전은 던지셨나요?^^
언제봐도 관광객들로
붐벼서 동전 던지는게
만만치 않죠~~ㅎ
소매치기 걱정에.....
몇년전에 처음 갔을때는 던졌지요?
잘보고 갑니다~~~
저런 분수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미적 안목을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잘보고 갑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역사적인 도시 로마는.....
몇번이고 다시 찾는 도시이지요?
저 계단에 오드리햅번 땜에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쓰레기를 너무 버려서 ..아이스크림 못먹게 표지판 잇던게 생각나에요 ㅎㅎ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