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증발기들은 지난해 7월 두산중공업이 개발사업자인 프랑스 GDF 수에즈로부터 8억 달러에 수주한 슈웨이하트 2단계 프로젝트에 들어갈 설비들로, 2011년 8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증발기 6대를 납품할 예정이다.
창원 본사 내 원자력 공장도 직원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이곳에서는 新(신)월성 原電(원전) 1·2호기, 新(신)고리 원전 3·4호기에 들어가는 主(주)기기, 울진 원전 1·2호기 교체용 증기발생기 등 국내 원전은 물론, 미국 세쿼야, 중국 싼먼(三門·저장성)과 하이양(海陽·산둥성) 등에 들어갈 10여 기에 달하는 주기기가 동시에 제작되고 있다. 수주된 물량이 많아 원자력 공장은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올 상반기 2조979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28.6% 늘어난 실적이다. 이 회사는 최근 3~4년간 발전설비 등에 대한 수주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발전설비 분야에서 지난 2006년 3조248억원의 수주 실적을 올린 데 이어 2007년에는 전년보다 2배 정도 상승한 7조230억원, 2008년에는 전년보다 18% 늘어난 8조2690억원의 수주를 달성했다. 2006년과 비교하면 무려 173%나 증가한 수치다.
2007년 국내 업체가 해외에서 수주한 발전 프로젝트 중 최대인 12억2000만 달러의 인도 문드라 화력발전소를 비롯해, 15억5000만 달러 상당의 아랍에미리트 M1, M2 복합화력발전소, 2008년 8억 달러의 태국 게코원 석탄화력발전소 등 중동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있다.
해외 M&A 통해 원천기술 확보
두산중공업의 가파른 성장세는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싸도 사갈 수 있는 우리만의 기술이 필요하다.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시장을 선도하는 고부가가치 핵심기술 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朴容眩(박용현) 두산그룹 회장이 지난 6월 경기도 용인 수지에 있는 두산기술원을 방문해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박 회장은 “두산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인프라 지원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꾸준히 인수해 왔다”며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여 이익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확보된 기술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다양한 원천기술을 확보한 두산은 이를 활용해 경쟁력 강화, 자체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발전·담수 등 핵심 분야에서 해외 M&A를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2006년 영국의 두산밥콕을 인수함으로써 발전소의 핵심설비인 보일러 설계 및 엔지니어링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두산밥콕은 알스톰 등과 함께 보일러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4대 기업 중 하나다. 2005년 말에는 미국 AES의 미주지역 水(수)처리 사업부문을 인수해 역삼투압 방식의 海水(해수) 담수화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두산중공업의 R&D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두산중공업은 아랍에미리트·미국·스코틀랜드 등 해외 3곳에 R&D 센터가 있다. 2006년 두바이에 세운 담수 R&D 센터의 경우, 주요 발주처가 중동지역에 있고, 엔지니어링 컨설팅사들도 두바이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어 (담수의 최신 기술 트렌드를 신속히 파악하고 현지의 우수 인력을 직접 활용하기 위해 현지에 설치한 것) ‘현지밀착형 연구소’인 셈이다.
두바이 R&D 센터에는 현직 아랍에미리트 대학교수를 리더급 연구원으로 채용한 것을 비롯해 미국 미시간대학 등 세계 유수 대학의 박사급 연구원 1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담수 플랜트를 설치할 때 바닷물도 지역마다 다르고 고객의 요구도 가지각색”이라며 “두산은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R&D도 고객에 보다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전략 아래 주요 거점에 R&D 센터를 두고 글로벌 R&D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新공법으로 공기 단축
두산중공업이 건설한 오만 소하르 담수플랜트. |
두산중공업이 갖추고 있는 경쟁력의 또 다른 비결은 적극적인 해외 진출이다. 두산중공업은 2006년 50%대이던 해외 수주 비중을 지난해 7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12월 두산중공업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현지 업체와 컨소시엄으로 3억 달러 규모의 대형 역삼투압(RO) 방식 담수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RO 방식은 바닷물에 압력을 가한 다음 특수한 막을 통과시켜 담수를 얻는 방식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RO 3단계 프로젝트는 하루 담수생산량 약 24만t으로, 60만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지금까지 중동지역에서 발주된 RO 방식 프로젝트 가운데 최대다. 이 수주로 두산중공업은 최근 중동지역에서 발주된 대형 RO 플랜트를 싹쓸이 수주하게 되었다.
두산중공업은 1978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라잔 담수플랜트 사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중동 지역에 800만명 이상이 쓸 수 있는 담수 생산 설비를 만들었다. 오랜 경험으로 설계 능력이 좋다는 현지 평가를 받고 있다. 1991년 걸프전이 터졌을 때 대부분 외국 기업이 중동 지역을 떠났지만, 두산은 모든 중동 현장에서 납기를 지키기 위해 남아서 작업을 해 기업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지난 2006년 카타르에서 두산중공업이 해수 담수화 설비 공사를 예정보다 6개월 가까이 앞당겨 완공하자 현지 정부 관계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같은 해 12월 도하 아시안게임을 앞둔 카타르 정부는 마음이 급했다. 물이 부족한 지역이라 제때 완공되지 않으면 아시안게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해외 업체들은 담수 설비를 만들 때 2~4개 정도의 모듈(부품 덩어리)로 나눠 제작해 현지로 가져가 조립을 하지만 두산은 국내에서 완전 조립해 통째로 옮기는 방법을 도입, 공사 기간을 30% 이상 줄였다. 현지에서 모듈을 조립할 경우 작업 환경과 현지 인력의 숙련도가 낮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원자력 전력난 해소와 녹색성장을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두산중공업은 ‘원전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미국에서 새롭게 발주된 신규 원전 3기에 대한 주기기 공급계약을 모두 수주했다. 이에 앞서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5월에는 중국핵공업집단공사(CNNC)와 중국 내 원전 사업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중국 최대의 국영회사인 CNNC는 향후 2020년까지 매년 원전 3기 이상을 건설할 계획이어서, 두산중공업은 이 MOU로 향후 CNNC가 발주하는 중국 신규 원전 주기기 시장에 참여 가능성이 높아졌다.
해외 原電사업에 참여
두산중공업 자회사 두산밥콕이 영국 본사에서 40MW 규모의 純(순)산소 화력발전 연소설비 실험을 하고 있다. |
두산중공업은 이미 2007년 7월 중국 최초의 신형 원전인 싼먼, 하이양 원전에 들어갈 주기기를 수주한 바 있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202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290기(연간 약 25기)의 신규 원전이 건설될 전망이다. 아시아 시장은 인도·중국 등을 중심으로 원전 건설이 적극 검토되고 있고, 특히 중국은 현재의 원자력 설비용량 9GW를 2020년까지 50~60GW로 격상할 계획이어서, 연간 3~4기의 신규 원전 발주가 예상되는 세계 최대의 원전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해외 생산기지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2006년 발전설비 기초소재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유럽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루마니아 최대의 발전설비 소재 업체인 크베너 IMGB(현 두산 IMGB)를 인수했다. 올 5월에는 베트남 두산비나 생산기지를 준공했다. 올 초부터 생산에 돌입한 두산비나는 발전·담수 등을 중심으로 아시아는 물론, 중동 진출의 전초기지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다.
두산중공업은 기술확보를 위한 전략적 제휴도 적극 추진했다. 지난해 9월 두산중공업은 세계적인 화력발전소 엔지니어링 업체인 번스앤로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이 회사의 엔지니어링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기로 했다.
이에 앞서 캐나다 에너지 기술 엔지니어링 회사인 HTC에 대한 15% 지분투자로 2013년 이후 선진국 발전설비 시장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이밖에도 지난해 12월 미국 최대 수처리 엔지니어링 업체인 카롤로와 기술협약을 맺고 인도, 중국 등지에서의 수처리 프로젝트에서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두산중공업의 주력 분야는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 해수 담수화 플랜트다. 두산의 증발방식 담수화 설비의 경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40%)다. 두산중공업은 이들 주력 분야를 계속 육성해 나가는 동시에 21세기에 맞게 進化(진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영국 자회사 두산밥콕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발전기술을 개발, 7월 24일 영국 글래스고 렌프루 본사에서 조안 러덕 에너지 담당 차관을 비롯해 각국의 발전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40㎿ 규모의 純(순)산소 화력발전 연소설비 시연회를 가졌다.
이 설비는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땔 때 질소가 포함된 공기가 아닌 산소만을 주입해 연소 뒤 이산화탄소와 물만 배출되도록 함으로써 나중에 이산화탄소만 따로 모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석탄을 연소시킬 때 산소와 질소로 구성된 공기를 사용, 연소 후에 다량의 질소가 이산화탄소, 물 등과 섞여 나와 이산화탄소만 따로 골라내기가 어려웠다.
이산화탄소 배출 않는 발전기술 개발
두산중공업이 2004년 완공한 하루 담수 생산량 50만t 규모의 아랍에미리트 후자이라 발전담수 플랜트. |
이 설비가 주목받는 것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의 40%가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돼 이를 줄이는 것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탄소 발전 기술은 2013년 포스트 교토의정서 발효 이후 유럽·미주 등 해당지역의 발전소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프랑스 알스톰, 미국 B&W 등 글로벌 기업들이 기술 선점을 위해 연구개발에 주력해 왔다.
이 기술은 당장 상용화가 가능하고 기존 화력발전소의 설비를 고치지 않고 적용할 수 있어 전력회사나 발전소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13년 저탄소 발전기술이 적용될 발전소 시장 규모는 연간 50조~60조원이 될 것으로 두산밥콕 측은 전망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朴知原(박지원) 사장은 “앞으로 純(순)산소 연소기술을 발판으로 저탄소 발전 시장을 선점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풍력,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도 미래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아시아 최초로 3MW급 육·해상 풍력발전 시스템 개발을 마치고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현재 실증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해 2005년 대덕에 ‘미래사업기술 개발센터’를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풍력, 연료전지, IGCC(석탄 가스화 복합발전) 등을 개발하고 있다. 미래기술 개발센터는 2007년부터 300㎾급 발전용 연료전지 기술개발을 위해 자체 실험설비 구축을 완료하고 핵심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또 해수 담수화 부문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처리 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수처리 사업은 전 세계적인 환경오염 및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는 미래 물 산업이다.
수처리 사업은 하수나 폐수를 산업 및 생활용수로 정화해 사용하는 것으로, 현재 세계 시장 규모가 약 33억 달러이지만 매년 15% 이상 성장해 2015년에는 시장규모가 1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중공업은 향후 수처리 사업을 미래 성장엔진으로 육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두산은 그룹 전체적으로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10% 정도 증가한 25조3000억원, 영업이익은 27% 늘어난 1조8000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투자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인 1조5000억원을 하기로 했다.
두산이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경영목표와 투자계획을 세운 것은 지금이 경쟁력 提高(제고)의 適期(적기)라고 판단했기 때문. 1~2년 후로 예상되는 경기 회복기를 미리 대비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朴容晟(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올해는 향후 경기 회복기에 대비해 잠재적 기회를 확보하고 경쟁력을 강화해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갖추는 한 해가 돼야 한다”며 “위기 속에서 희망을 갖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