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트 93
폴 그린그라스 감독의 [플라이트93]은 911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다. 2001년 9월 11일 당시, 이슬람 과격단체의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었던 4편의 비행기 중 2대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충돌해 자폭했고, 또 한 대는 미국방성 펜타곤의 한쪽 벽을 들이받으며 역시 자폭했다. 나머지 한 대는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을 향하여 날아가다가 펜실베니아 외곽 평야에 추락했는데, 이 영화는 그때 추락한 [UA93] 비행기의 실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4편의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무원과 승객을 포함해서 월드 트레이드 센타에 있던 시민들과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건물 내로 진입했던 소방관 등 총 5천여명 이상이 사망한 911테러는, 세계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으로서, 단순히 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의 총돌로만 해석할 수 없는 거대한 변혁의 시발점이 되었다.
미국은 아랍권에 대한 응징을 시작했으며 그것은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불안한 징후는 계속되고 있다. 911테러 당시 유일하게 테러리스트들의 목표대로 국회의사당에 추락하지 않은 UA93에서는 승객들과 테러리스트들의 치열한 사투가 전개되었었다. 그때 일어났던 일이 허구적 상상력이 아닌 실제와 거의 비슷하게 영화화 될 수 있었던 것은, 비행기 내의 수많은 승객들이 각각 기내 전화를 이용하여 가족들과 통화를 하면서 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전화통화 기록은 이 영화가 허구의 가상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에 바탕을 둔, 테러리스트들과 싸운 시민들의 용감한 최후의 투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뉴저지의 미국연방항공국은 새로운 국장 취임으로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한다. 하지만 오전 8시가 지나면서 보스턴에서 LA로 향하던 AA11이 예고없이 항로를 이탈하면서 이상징후가 발견된다. 관제센터에서 교신을 시도하지만 대답은 없다. 그러다 [우리는 비행기들을 납치했다]라는 짧은 말이 들려 온다. 하이 재킹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관제탑은 분주해지지만, 잠시 후 AA11은 레이더에서 사라지고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타 빌딩에 비행기가 충돌했다는 뉴스가 CNN을 타고 보도된다.
뉴저지 관제탑에서도 바라보이는 쌍둥이 빌딩 월드 트레이드 센타에서는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잠시 후, 또 하나의 비행기가 월드 트레이드 센타의 다른 빌딩에 충돌한다. 미 영공에 떠 있는 민항기는 총 4200대. 폭탄을 사용한 테러가 아니라, 비행기 자체를 폭탄으로 이용해서 상상할 수 없는 테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연락되지 않고, 수상한 비행기를 요격할 수 있는 최종 명령은 떨어지지 않는다. 군과 항공국은 미 영공에 떠 있는 4200대의 모든 비행기를 강제 착륙시키고, 해외에서 진입해 들어오는 비행기는 회항시킨다.
그때 또 하나의 비행기가 이상 징후를 보이며 궤도를 이탈하는데, 뉴저지에서 샌프란시스코를 향하고 있던 UA93이었다. 일등석에 앉아 있던 네 명의 테러리스트들은 행동을 개시해서 승객 한 명을 칼로 목을 찌르며 살해하고, 사제 폭탄을 꺼내 위협하며 조종실로 난입해서 조종사 두 명을 죽이고 대신 비행기를 몰기 시작한다. 승객들은 기내 전화로 가족들과 통화하면서 월드 트레이드 센타에 비행기가 충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지금 자신들이 단순한 비행기 납치범에 장악된 게 아니라 거대한 테러의 흉계에 자신들이 탄 비행기가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승객들은 힘을 합쳐 테러리스트들과 최후의 싸움을 시작한다.
너무나 비극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사건 발생 5년이 지나도록 영화화되지 않았던 911테러를 최초로 영화로 만든 사람은 폴 그린그라스 감독이다. 그는 이미 1972년 북아일랜드 데리 시에서 있었던 시민들과 영국 정부와의 유혈 충돌 사태를 영화로 만든 적이 있다. IRA의 무력투쟁과는 다르게, 평화시위를 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시민들의 행진을 영국정부가 가로막으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결국 노인 부녀자 등을 포함한 13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살해되었고, 14명의 시민들이 중상을 입은 이 사건을 폴 그린그라스 감독은 [블러디 선데이]라는 영화로 만들어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 등을 받았다.
그는 911 당시의 비극적 상황을 가장 사실적으로 영화를 통해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진 UA93에 촛점을 맞춰 치말한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가장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UA93이 이륙하기 직전부터 추락하기까지의 91분 동안의 비행을 중심으로, 뉴아크 공항 관제탑, 세계무역센타에 자살 충돌한 두 대의 비행기가 이륙했던 보스턴 공항의 관제탑, 미연방항공국의 작전지휘센타, 북미방공본부의 육군작전센타 등이 교차 편집되면서 긴박하게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플라이트 93]은 영화 전체가 핸드 헬드로 찍혀져서 승객들이 느끼는 불안함과 비극적 전개를 재현하고 있다.
[플라이트93]을 위해서 폴 그린그라스 감독은 허구적 상상력을 최대한 자제하고 시나리오 전체를 가장 사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희생자들의 100명이 넘는 유가족과 7주에 걸쳐서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그래서 46명의 승객 하나 하나의 개인 신상과 말투 습관 등을 조사했으며 사실적인 공포와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전문 배우가 아니라 일반인을 캐스팅했다. 몇몇 프로 배우들을 제외하고 실제 조종사, 스튜어디스, 인반인들이 이 영화에 참여했고 특히 911 당시 미연방항공국장으로 임명되어 첫 출근을 했다가 거대한 사고를 목격한 벤 슬라이니는 직접 자신의 배역으로 출연해서 사실감을 높이고 있다.
[우리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건에 대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승객 중 한 명이었던 크리스틴 화이트 굴드의 딸 엘리스 바단은 위와 같이 말했다. 2002년 미 국회는 [플라이트93] 법안을 통과시켰다. UA93편이 추락했던 펜실베니아주 싱크스빌 근처에 911 추모공원을 만드는 국립공원 법안이었다. 폴 그린그라스 감독은 [플라이트93]에서는 최대한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고 있지만, 국가의 존폐가 위태스러운 국가위기 상황을 맞아서 연락도 제대로 닿지 않는 무능한 대통령과 행정부 대신, 용감한 행동을 보여준 일반 시민들과 당시 유일하게 과감한 결정으로 미 영공에 떠 있는 4200대의 민항기를 강제 착륙시켰던 미연방항공국장의 결단을 높이 사고 있다.
결국 영화는 현실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스크린이라는 거대한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성찰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삶을 삶답게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플라이트93]은 허구의 극적인 이야기가 꾸며내는 순간적인 말초적 쾌감보다는, 우리의 현실에서 길어 올린 충격적 장면으로 무섭게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것이 영화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