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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울 남산(南山)에 오르다
우리는 11시 50분 경에 남산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서울의 명소인 만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요즘은 외국관광객이 수도 없이 몰려들고 있지요. 남산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 우선 남산타워, 팔각정, 봉수대가 생각납니다. 남산타워에 올라 서울전역을 조망해 보면 남산이 가히 서울의 중심이 아닌가 하는 생 각이 들기도 합니다.
남산의 명소 팔각정
남산은 해발 265.2m로 옛날에는 목멱산(木覓山)이라 불렀습니다. 또 종남산(終南山)ㆍ 인경산(仁慶山)ㆍ인경산(引慶山)ㆍ열경산(列慶山)이라 부르기도 했고 순우리말로 남산 을 뜻하는 '마뫼'로도 불렸습니다.
목멱산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기에 남산(南山)이라 불렸는데, 남산은 '앞산'이란 뜻입니 다. 남산은 경복궁의 앞산이죠. 남산인 목멱산은 경복궁의 주산인 북악산(北岳山)과 동쪽의 낙산(駱山), 서쪽의 인왕산(仁王山)과 함께 도성을 이루는 중요한 산입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북쪽의 북악산은 현무(玄武), 동쪽의 낙산은 청룡(靑龍), 서쪽의 인왕 산은 백호(白虎)이고 남쪽의 목멱산은 주작(朱雀)에 해당합니다.
또 목멱산의 모습은 누에를 닮았다 하여 풍수적으로 잠두형(蠶頭形)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잠두봉(蠶頭峰) 혹은 잠두산(蠶頭山)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조선의 조정에서는 남산의 지기(地氣)를 돋우기 위해 한강 너머에 뽕나무 를 정책적으로 많이 심었습니다. 잠실(蠶室), 잠원(蠶院) 등의 지명이 이로 인해 생긴 이름입니다. 누에는 뽕을 먹고 살기에 뽕나무를 많이 심었던 것입니다.
국사당지(國師堂址)임을 알리는 표지석
남산의 옛이름인 목멱산(木覓山)은 도성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산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태조 3년인 1394년에 한양천도 단행하게 됩니다.
이에 앞서 새 도읍이 되는 궁궐의 좌향을 어떻게 앉히느냐가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풍수에 밝은 무학대사(無學大師)는 인왕산(仁王山)을 주산(主山)으로 해서 동면(東面) 하고 정사(政事)를 해야 사직이 길이 안녕하다고 주장했고,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은 군왕은 예로부터 남면(南面)하고 정사(政事)를 보았다고 주장하며 북악산(北岳山)을 주산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주장이 첨예했지만 결국 정도전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북악산을 주산으로 궁궐을 짓게 되니, 낙산(駱山)이 좌청룡(左靑龍)이 되고 인왕산(仁王山)이 우백호(右白虎)가 되고 목 멱산이 안산(案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따라 도성(都城)을 쌓게 되었습니다.
안산(案山)이란 주산(主山)을 대하고 있는 산입니다. 주산이 주인이라면 안산은 손님이 되고, 주산이 군주라면 안산은 신하가 되고, 주산이 우리나라라면 안산은 외국에 해당 합니다. 안산이 안정되어야 나라가 안정되는 것입니다. 가령 신하가 드세고 외국이 강성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풍수상으로 안산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야 좋다고 합니다. 안산인 남산은 너무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였을까?
태조 4년인 1395년, 태조는 이조(吏曹)에 명하여, 북악산 산신을 진국백(鎭國伯)으로 봉(封)하고, 남산의 산신을 목멱대왕(木覓大王)이라 봉(封)하여 산꼭대기에 사당을 지어 모시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제사를 봄ㆍ가을로 지내게 했습니다. 이를 목멱신사(木覓神祠)라 했는데 국사당(國師堂)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팔각정에서 기념사진 모두 즐거운 표정입니다.
이 목멱신사는 고종 때까지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인 1925년, 조선총독부 는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자신들이 모시는 신보다 목멱신사가 위에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여 이전을 강요해 신사를 인왕산으로 옮겼다 고 합니다. 남산의 신을 인왕산에 모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지요. 그 후 광복 이 되고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하였지요. 집권 말기인 1959년, 정부는 이 자리에 이승 만 대통령을 기리기 위한 팔각정을 세우고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정(雩南亭) 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한 치 앞을 못 본 것인가? 그만 1960년 4.19의거 때 철거되고 말았습니다. 건립된 지 불과 수개월도 안 되어... 그후 1968년 11월 11일 다시 팔각정 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는데 현판은 걸리지 않았습니다. 목멱정(木覓亭)은 어떨지...
남산의 상징 남산타워. N서울타워 -염화님 사진-
「N서울타워(N Seoul Tower)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2가 남산 공원 정상 부근에 위치한 전파 송출 및 관광용 타워이다.
1969년에 착공하여 1975년 7월 30일 완공되었다. 높이는 236.7m, 해발 479.7m이다. 수도권의 지상파방송사들이 이 타워를 이용하여 전파를 송출한다. 전망대에서 서울 시내 전역을 내려다 볼 수 있으며, 맑은 날씨에 찾는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다.
남산에 있어서 보통 남산타워라고 널리 부르지만, 안전행정부에 등록된 정식 명칭은 "YTN서울타워"이다. 1980년 개방 이후 현재까지 서울에서 해발 높이로 가장 높은 위치 에서 높은 전망대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오는 2016년 잠실에 롯데월드타워가 개관할 때까지 지위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위키백과에서-
85타임캡슐
「여기 1985년 9월 22일 현재 대한민국 땅위에 사는 대한민국사람들의 생각과 생활과 환경을 나타내보이는 466점의 물건과 기록들이 묻혀 있습니다. 그 주제는 이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지혜와 노력과 솜씨를 다 해 이룩한 문화와 문명의 산물들이 타임캡슐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사업은 이 시대 대한민국의 가장 권위있는 신문의 하나인 중앙일보가 창간 2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것입니다. 500년 후인 2485년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후손들이 이 타 임캡슐을 열어 우리와 만나는 기쁨을 나누어 주기 바랍니다.
1985년 9월 22일 대한민국 서울 중앙일보」
500년 후 개봉할 때 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가 압니까? 우리의 자랑스런 후손이 우리 자신들일지... ㅎㅎㅎ ^^
이곳은 포토존 대각화님
오랜만에 뵙는 정순님
늘 봉사와 이웃을 따뜻하게 해 주시는 미소님
해치 서울(HAECHI SEOUL)
해치는 서울시의 마스코트입니다. 해치는 흔히 해태(獬豸)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태의 한자어는 해치(獬豸)입니다. 이 동물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 의 동물입니다.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 가운데 뿔이 하나 있습니다. 화재나 재앙을 물리 친다하여 궁궐 좌우에 석상(石像)으로 새겨서 세웠습니다. 특히 광화문 앞의 해태상은 유명합니다. 해태와 해치는 같은 이름인데 해태는 늘 화재예방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 엄숙한데 해치는 귀엽고 깜찍하네요. ^^
해치상 옆의 정순님
미소님도 살며시
염화님
다른 분들은 어디로 가셨나요?
웬 사람이 이리도 많을까요? ^^
N서울타워 주변의 "사랑의 자물쇠"
남산에 올라 변치 말자고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고 맹세한 이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는 사실을 눈으로 보니 놀랍기만 합니다. 이렇게 맹세한 그들은 그 약속을 굳게 지키 고 있을까요? ㅎㅎㅎ ^^
굉장하지요? 묘법님?
이곳은 사랑을 맹세한 곳이기도 하지만 전망대입니다.
무엇을 보시는 걸까요?
아직도 산벚꽃이 많이 남아 있음으로 봅니다.
미세먼지 황사로 날씨가 흐리지만 멀리 하야트호텔이 보이네요.
화려했었을 벚꽃의 자취가 보입니다.
남산을 즐기는 법우님들
남산봉수대(南山烽燧臺)
봉수대터(烽燧臺址)에 대하여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 / 시대 : 조선시대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번지 1호
「목벽산(木覓山) 봉수대터는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京烽燧)라고 불렀었는데 전국 의 봉수가 집결되었던 곳이다.
봉수제도는 신호체계에 따라 연기나 불을 피워서 변방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까지 전달 하여 알리며, 해당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알려 빨리 대처하도록 하는 일종의 통신수단이 다.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불을 피워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봉수는 남산에서 집결하였고, 남산 봉수대는 제1봉수대에서 제5봉 수대까지 다섯 곳의 봉수대가 있었다.
제1봉수대는 함경도 - 강원도 - 양주 아차산, 제2봉수대는 경상도 - 충청도 - 광주 천림산, 제3봉수대는 평안도 강계 - 황해도 - 한성 무악 동봉, 제4봉수대는 평안도 의주 - 황해도 해안 - 한성 무악 서봉, 제5봉수대는 전라도 - 충청도 - 양천 개화산에 이르는 봉수를 받았다.
이곳은 1993년에 김정호의 <청구도> 등의 관련 자료를 참고해서 남산의 다섯 개 봉수 대 중 하나를 복원한 것이다.」 - 안내판에서 옮김 -
성곽의 모습
서울성곽에 대하여
지정번호 : 사적 제10호 / 시대 : 1396년(태조 5)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일원
「이 성곽은 1396년(태조 5)」에 쌓아서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을 에워싼 도성(都城)이다. 1422년(세종 4)에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바꾸고 여장(女牆. 성가퀴. 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을 쌓아 성벽을 더 높게 만드는 보수 공사를 하였다.
1704년(숙종 30)에는 취약한 부분을 튼튼하게 고쳤고, 영조 때에는 동쪽 성곽에 적을 쉽게 방어하고 감시할 수 있는 치성(雉城 성벽을 바깥으로 돌출시켜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효과적 으로 방어하기 위한 시설)을 쌓았다.
성곽은 둘레 약 18km에 높이는 대략 12m 가량으로 한양을 둘러선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의 능선을 이었다. 불규칙한 지형 때문에 약간씩 틀어졌지만 사방에 대문(大門)을 내고, 그 사이에 소문(小門)을 열었다. 4대문(四大門)은 동쪽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 돈의문(敦義門), 남쪽 숭례문(崇禮門), 북쪽 숙청문(肅淸門. 뒤에 肅靖門으로 개칭)이고, 4소문(四小門)은 동북 홍화문(弘化門. 뒤에 惠化門으로 개칭), 동남 광희문(光熙門), 서북 창의문(彰義門), 서남 소덕문(昭德門. 뒤에 昭義門으로 개칭)인데, 흥인지문 앞에만 옹성(甕城. 성문을 지키기 위하여 성문 밖에 쌓은 성)을 두었다.
태조, 세종, 숙종 때 쌓은 성벽은 그것을 만든 방법과 돌 모양도 각각 달라 시대 변화에 따른 기술의 변화를 살필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근대 되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성벽과 성문은 훼손되고 겨우 일부만 남았었으나 해방 이후 현재까지 제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 이 계속되고 있다. 」 - 안내판에서 옮김 -
☞ 안내판의 글 중 생소한 용어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작은 글로 설명을 달았고, 한문도 추가 시켰습니다.
또 다른 곳에도 "사랑의 자물쇠"가 엄청나게 많네요.
남산을 두루 살피니 시간도 많이 흘러 12시 반이 넘었기에 어디에서 점심을 먹을까 하여 하산하며 적당한 자리를 찾던 중 팔각정 쉼터가 있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때 석원님은 오후에 약속이 있다며 극구 가신다는 것을 함께 요기라도 하시고 가라며 말려 점심을 함께하였습니다.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펴 놓고 즐거운 공양시간을 보냈습 니다.
남산으로 소풍 온 느낌입니다.
함께하는 즐거움 중 함께 먹는 일도 더할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점심을 마치고 커피 한 잔까지 얻어 마시니 원기가 충전되었습니다. 점심 후 석원님은 긴히 볼 일이 있어 보내드리고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여기는 '잠두봉 포토아일랜드'라네요.
묘법님과 정파님은 어디를 가리키시는지...
묘법님, 사진 잘 나왔지요?
정파님, 남산 괜찮으셨지요?
정순님과 비니초님
보살법우님들 여기 모여 보세요.
복사꽃을 배경으로 다시 한번~
이웃사촌끼리 ^^
정파님과 함께
잠도봉 포토아일랜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다음 남산 분수대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면서 보니 남산길이 새롭게 단정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오랜만에 남산을 찾았는지 실감하였습니다. 식물원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고 남산분수대도 파헤쳐져 있 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변모를 시도하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니 끝없는 변화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은 끝으로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그 밖의 이모저모를 올려 보고자 합니다. _(())_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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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러 사진 중 왜 도시락 먹는 사진이 눈에 더 들어오는지요... 아침 밥도 먹고 출근했는데... ㅎㅎ
상춘객이 참 많습니다.
이번에 다소나마 남산을 정리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_()_ _(())_
멀쩡한 산이 네 개로 보일 때는 위장을 위로해 주는 것이 최고지요.
관광버스가 남산에 외국관광객을 계속 부리고 가더군요.
나들이는 먹는 재미가 솔솔 ㅎㅎㅎ
날씨가 차고 바람 또한 많이 불어 따사로운 햇님이 짱 좋았답니다. _()_
남산구경도 식후경이죠.


_()_ _(())_
비가 오고 나면 시야가 깨끗한 법인데 요즘은 불청객 황사가 그 룰을 깨고 있네요.
그래도 그만 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복사
향기 그윽한 봄 정취에 식도락을 겸한 
거운 시간이였습니다. 
_()_
오래 전에 남산을 올랐을 때는
생각없이 올랐는데 이번에 올랐을 때는 역사를 많이 더듬어 보았습니다.
많이 느낀 하루였습니다. 곳곳에 복사
이 피어서 길손들이 많은 위안을 받았으리라
_()_ _(())_
남산의 중요성을 새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우님 뭘 보나 물으셨죠?
묘법이 사는집 찿아보았내요. 오랜만에 남산 코 맡에 살면서 올라가 보았내요.
함께한 시간 넘 즐거웠고 멋진 사진 다시 보니 땡큐~~....나무묘법연화경()()()
거기서 보이시던가요



_()_ _(())_
아침 일찍 일어나 남산을 오르락 내리락하시면 좋으실 듯합니다.
허기사 저도 북악스카이웨이 가 본지 오래 되었어요.
5시 기상을 해도 아침이 무척 바쁘네요. 가끔 걸어 가면서 예불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