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을 버리고 고로 들어가는 원인
1. 고락의 근원을 알지 못함이요, 2. 가령 안다 할지라도 실행이 없는 연고요, 3.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자행 자지로 육신과 정신을 아무 예산 없이 양성하여 철석 같이 굳은 연고요, 4. 육신과 정신을 법으로 질박아서 나쁜 습관을 제거하고 정당한 법으로 단련하여 기질 변화가 분명히 되기까지 공부를 완전히 아니한 연고요, 5. 응용하는 가운데 수고 없이 속히 하고자 함이니라. |
다 아는 얘기지요? 어려운 단어 없잖아요.
- 알고 실행하는 것의 중요성
결국은 ‘알고 실행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알고 실행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문제이지요. 그래서 낙을 버리고 고로 들어가는 겁니다.
학생 교우들이 생각났습니다. 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게임을 하면 혼날 것을 모르고 그저 게임을 합니다. 그리고 등짝을 한 대 맞고, ‘게임하면 혼나는구나’ 알게 됩니다. 그래서 혼나는 것을 알게 되지만, 끊지 못합니다. 알아도 실행을 못하는 거지요. 나중에는 습관이 되어 책상에 앉으면 책보다 컴퓨터를 먼저 켭니다. 이미 습관으로 굳어져서 ‘고쳐봐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또 합니다. ‘한 게임만, 한 시간만 하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오래갈까요? 평일에 잠깐 참았던 게임을 주말에 몰아서 하루 종일 하게 됩니다.
금연은 담배를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것이라는 말인데, 그렇게 하면 나중에 다시 돌아가기가 쉽습니다. 경계 하나 큰 것 오면 ‘한 대만 펴야지’ 하다가, 흡연으로 복귀하는 거지요.
이런 식으로, 알아도 실행하려 해도, 습관이 되니까 계속 반복해서 고를 수용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씩 보겠습니다.
1. 고락의 근원을 알지 못함이요,
고락의 근원에 대해 지난 주 이번 주에 설명을 드렸죠. 우연한 고락, 지어서 받는 고락, 정당한 고락, 부정당한 고락, 영원한 고락, 일시적인 고락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내가 지금 낙을 얻어보겠다고 열심히 했는데 결국에 이것이 고를 불러오는 것이구나’를 그동안은 몰랐어도, 이제는 알아야지요. 그래야 고를 버리고 낙으로 갑니다.
2. 가령 안다 할지라도 실행이 없는 연고요,
요즘 학생들에게 일을 같이 하자고 말하면, ‘안하겠다’고 말합니다. 불편하고 힘들어서 안 하겠대요. 여기까지는 괜찮지요. 하기 싫어서 안한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문제입니다. 하기 싫어서 안 한다고 말하면, 제가 할 말이 없어요.
요즘 학생들은 하기 싫으면 안 해버립니다. 고와 낙 아무 상관없이요. 고와 낙이 뭔지, 고락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는 거지요. 피부에 와닿지도 않고요. 주위 웬만하면 다 해결해주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자력없이 키우면, 학생들이 안 하고 사는 게 반복됩니다.
원학습코칭 영상을 본 적 있습니다. 24살의 어떤 사람의 동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사람은 8년 째 학교도 안가고 게임만 합니다. 집에서 계속 게임만 한답니다. 게임 아이템 사는 데만 8천 만 원이 들었대요. 왜 그러느냐 물으니까, 학교 가기 싫었대요. 구속받는 것 같았대요. 그래서 그렇게 사는 거지요. 그런 사람은 고치기 어려워요. 자기도 고치려고, 게임 아이디 지우고, 컴퓨터 부수고 다 해봤는데 안 고쳐진대요.
작은 것을 싫다고 해도, 본인이 해봐야하고 부모가 시켜야 합니다. 작은 일도 싫어도 해버릇해야해요. 그래야 다른 일도 하게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습관이 되어서 다른 일도 다 못합니다. 알긴 알지만 실행이 없어요.
그 청년은 본인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그저 게임하는 것만 좋아합니다. 현실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답니다. 계획도 서원도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알아도 실행을 못 하는 겁니다.
아는 데 왜 실행을 못하지요? 무엇을 해야할지 방향도 없고, 계획도 없기 때문입니다. 담배를 끊으면 좋음을 알지만, 왜 끊어햐 하는지를 몰라서 못 끊습니다. 확실한 목표와 서원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방향과 서원, 계획이 확실히 있어야 실행이 되고, 습관대로 안 할 수 있습니다.
3.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자행 자지로 육신과 정신을 아무 예산 없이 양성하여 철석 같이 굳은 연고요,
자행자지로 철썩같이 굳어버린 것은 ‘습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원도 계획도 세웠는데도 실행이 안 되면, 왜 그렇지요? 서원이 있다 해도, 감정 따라 기분 따라 안 하는 사람은 왜 그러지요? 서원은 있는데 게임 한판 하고 해야겠다고 하고요.
돌리기 쉽지 않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한 번 두 번 하다보면, 관성이 생겨서 그쪽으로 가려는 습관이 생깁니다.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갑니다. 방향을 다시 잡아서 돌려놓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원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을 늦게 만나면 쉽지 않습니다. 그전에 물든 것을 다 빼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40세에 만나면 40년동안 다 습관을 빼야 합니다. “원불교가 사람잡네”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수요공부방 나오신 사람들은 그동안 물든 것을 빼고, 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계시지요. 공부방 안 나온 사람들은 다른 물을 들이고 있는 중이지요.
4. 육신과 정신을 법으로 질박아서 나쁜 습관을 제거하고 정당한 법으로 단련하여 기질 변화가 분명히 되기까지 공부를 완전히 아니한 연고요,
물든 것을 빼려고 노력해요. 담배 피던 것도 끊고요. 술 마시는 것도 안하려고 하고요. 열심히 해서 줄였다 쳐요. 담배 한 개피로 줄이고, 술 마시는 것 1잔으로 줄이고, 웹툰 보는 시간도 20분으로 줄였다고 줄였다 쳐요.
그렇지만, 기질변화가 되지 않으면, 경계가 왔을 때 다시 돌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법으로 질박아서 기질변화를 분명히 해놓지 않으면, 경계오면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담배 끊는 사람들은 본인도 본인을 못 믿는 사람이 많지요. 기질변화가 완전히 안되어서 그렇습니다. 큰 경계오면 담배 또 시작할 수 있어요.
항마위 될 때까지는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항마하여 토가 떨어질 때까지는, 자신을 믿고 안심하면 안됩니다. 그때까지는 공부를 계속해야 해요.
5. 응용하는 가운데 수고 없이 속히 하고자 함이니라.
많이들 해보셨죠? 벼락치기 하는 거요. 속히 하려 하는 거지요. 도박, 복권도 다 욕속심입니다.
공부도 수고 없이 속히 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훈련 나면 견성하겠지’, ‘법회 참석하면 일주일간 잘 살겠지’ㅡ 수고 없이 속히 하려는 마음입니다. 상시훈련으로 단련해야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수고 없이 속히 하려는 것입니다. 인과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내가 공부를 어느 정도 해야겠다’ 알고, 그에 맞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수고 없이 속히 하려고만 할 수 있습니다.
<고와 낙을 대하는 공부법>
고락의 원인을 알고, 오늘부터 실행을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칩시다.
고락의 대소유무 자리를 알고, 고락을 완전히 수용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지만, 한 방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와 낙이 오면 또 그대로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며 삽니다.
결국, 이 몸을 가지고 있으면 그 고락을 면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공부를 어떻게 하라고 대산종사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이 있습니다.
- 고를 대하는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이냐.
첫 번째는 인고(忍苦)ㅡ참는 공부입니다. 공부심으로 참는 것입니다. 참지 않으면 시작이 안되어요. 마음공부하는 사람은 일단 멈춰야지요. 고가 오면 일단 잡아놓고 멈추어야합니다. 여기서부터 시작을 해야합니다. 고는 계속 오고, 갈수록 커집니다. 지금 고를 안 받았다고 해서, 안오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더 크게 오고, 갈수록 더 크게 와서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안고(安苦)ㅡ편안히 받는 공부입니다. 고를 수용하고 편안해져야 합니다. 무릎이 아픈 환자가 있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왜 나에게 이런 것이 왔나 하고 고통스러워 하다가 참습니다. 그러다가 계속 아프다보면 그 뒤에는 편안해집니다. 받는 요령도 생깁니다. 이때에도 공부심이 들어가야 합니다. 왜 왔는지 원인도 알아야합니다.
첫 번째 단계인 인고할 때는 주위에서 도와줘야 합니다. ‘무조건 참고 감내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주위에서 같이 알고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서 스승과 동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다음 단계인 안고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받다보면 고통의 크기가 점점 작아집니다. 참을 만 해요. 편안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낙고(樂苦)입니다. 임원을 할 때 처음에 너무 힘들어서 고통스러워 하지만, 참고 하다보면 주위에서 도와주고 하니 편안해집니다. 그 후에는 어느샌가 즐겁게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하던 것이 즐거운 것이 되어요.
앞의 단계를 안 거치고 낙고로 오기는 어려워요. 인고에서 안고로, 안고에서 낙고로 갑니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망고(忘苦)’입니다. 고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낙고’단계 까지는 고와 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익숙한 고는 즐겁게 받더라도, 새롭게 오는 고는 고통스럽게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네 번째 망고의 단계가 되면, 고와 락이 따로 없음을 알게 됩니다. 고와 낙을 넘어서는 겁니다. 거기까지 가야합니다.
그렇지만 시작은 인고입니다. 인고를 안 하면, 안고, 낙고, 망고도 안됩니다. 겉멋만 있는 사람들은 ‘망고’부터 합니다. 그런 사람은 말로는 ‘고락이 없는 거야’하면서도 자기는 고락에 휘둘리고 다닙니다. 인고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생로병사의 자연적 고는 달게 받는 게 공부입니다.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음성고는 작용적 고라서 내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로병사는 근본적으로는 못 바꿔요. 결국에는 다 겪게 됩니다. 그래서 달게 받아야합니다.
결국에는 인고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 낙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고는 이렇게 하는데 낙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낙이 오면 당연하게 받을 것인지 감사하게 받을 것인지, 있는 족족 펑펑 쓸 것인지 아껴 쓸 것인지, 혼자만 취할 것인지 나누어 취할 것인지, 좋구나 하며 즐겁게 받아들이든지 이것이 실체가 없는 것인지 알아채든지ㅡ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낙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고는 괴로우니까 해결하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낙에 대해 고민하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낙도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낙을 잘못수용하면 고가 되기 때문입니다. 복권당첨자가 불행해지는 경우가 8-90프로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부자가 되었는데 불행하다고 합니다. 낙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면 고가 됩니다. 낙을 수용하는 것이 더 큰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낙이 왔을 때 어떻게 그 낙을 쓸 것인지는, 마음의 힘이 없는 사람은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변의품 10장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자가 묻습니다. “극락과 지옥이 어느 곳에 있나이까.” 대종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이 죄복과 고락을 초월한 자리에 그쳐 있으면 그 자리가 곧 극락이요, 죄복과 고락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자리가 곧 지옥이니라” 하셨습니다.
고와 낙을 초월한 자리에 있어야 극락입니다. 고는 피할 수 없습니다. 몸을 받으면 고는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정당하게 수용하여야 정당한 고가 됩니다. 낙이 와도 정당하게 수용해야하고요. 고락을 초월한 자리에 바탕해서 수용하면 그것이 바로 극락이고, 그것이 고락에 대한 법문을 내신 이유입니다.
<질문>
문_ 심하은 교우님
낙을 버리고 고로 가는 것은 인과를 믿고 알아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과 중에 어떤 것은 쉽게 믿겠는데, 어떤 것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겠는지요?
답
인과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 잘 살잖아”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 뺨을 한 대 때렸다고 칩시다. 무엇이 인과일까요? 내가 바로 뺨을 한 대 맞는 게 인과일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생애에는 뺨을 안 맞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인과가 없는 걸까요? 뺨은 안 맞고, 엉덩이를 차였다고 쳐요. 그러면 인과가 아닌 걸까요? 내가 A를 때렸는데, B가 나를 때렸다고 쳐요. 인과가 아닌 걸까요?
인과를 초등학교 수준에서 생각하면, 준 사람한테 그대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과가 아닙니다.
인과는 연(緣)이 있어야 합니다. 연은 무궁무진합니다. 때도 다르고, 상황도 다릅니다. 꼭 항상 똑같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인과는 지금 올 수도 있고 나중에 올 수도 있고, 이런 형태로 올 수도 있고 저런 형태로 올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들은 마음의 힘이 세니까 오더라도 괜찮고, 힘이 약한 사람은 죽을 수도 있는데요.
인과를 받는 것은 정해져 있지만, 형태도 다르고 시기도 다르기 때문에, 인과 하나하나는 정확히 모르는 겁니다. 그렇지만 내가 마음의 힘이 세지면, 인과를 받는 시기, 상황, 형태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정업(定業)입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되면 어떻게 받는지는 조절할 수 있어요. 죄복을 임의로 할 수 있습니다. 죄업 몰아서 받기도 하고, 복을 몰아서 쓸 수도 있습니다.
인과는 복잡합니다. 특히 요즘 사람들은, 특히 과학자들은 인과를 잘 안 믿으려 해요. 1 더하기 1이 2가 되어야 믿으려하니까요. 그렇지만 인과는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인과를 넓고 깊게 볼 수 있어야 확실히 인과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한번에는 안되요. 인과에 대해 연마해야 합니다. 인과가 이렇게도 오고, 저렇게도 오는구나 ㅡ 많이 경험하고 알아봐야 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까지 갖춰가는 것입니다.
인과는 쉽지만, 너무 쉽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문_ 최도민 교우님
고가 언제 오느냐 생각해봤는데, 괴로운 생각을 할 때였습니다.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괴롭습니다. 그럴 때 멈춰야겠다고 생각하는데도, 습관 때문인지 잘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답
괴로워하는 마음을 멈추고 싶은데 계속 올라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일 좋은 방법은 괴로운 마음이 나게 하는 그 고민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괴롭게 하는 상황을 해결해야 해요. 가장 쉬운 해결책입니다.
그렇지만, 나를 괴롭게 하는 일이 살면서 얼마나 있을까요? 무지하게 많습니다. 다 해결하지 못하지만, 해결하려고 노력하고는 삽니다. 마음으로만 공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공부를 오해하면 안됩니다. 마음만 바꾼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일단 외적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인고입니다.
괴로운 생각나는 때를 봅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괴로운 생각을 나게 하는 앞의 생각을 놓는 것도 해결의 방법입니다. 괴로운 생각 앞의 생각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것을 해결해야합니다.
그래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일이 정당한가 아닌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괴로운 생각이 해결이 안되고, 앞선 생각도 해결이 안됐을 때는 그 일이 정당한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스스로에게는 그 괴로움, 경계를 해결할 힘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내가 한마음을 바꾸면 그냥 해결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이 일을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해결해야 된다’는 마음 보다는 ‘이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의외로 쉽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문_ 김경욱 교우님
과거에 지은 업을, 닥쳐오기 전에 녹이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
업을 약하게 받는 방법은 ‘참회’입니다. 내가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죄업을 참회해야합니다. 신앙의 출발은 참회입니다. 참회하지 않고 사은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계속 거짓말하는데, 어떻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까? 진(眞)참회에 들었을 때 업을 녹일 수 있습니다. 참회를 하다가 잠깐씩 진참회에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변화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참회를 계속 해봐야해요.
저도 교무 2년차 때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헌배를 하면서 ‘잘못했습니다’ 참회 기도를 계속 했습니다. ‘제가 뭐를 잘못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잘못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땀도 나고 눈물도 나면서 기도했어요. 미웠던 마음이 다 녹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참회를 하니까, 정말 좋구나 싶었습니다. 참회가 신앙생활의 시작임을 느꼈습니다.
물론, 미워지는 상황이 다시 생기면, 다시 요란해지겠지요. 그래도 예전처럼은 아니게 됩니다. 넘어설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업장을 미리 방지하고, 과거에 내가 모르고 지은 업장을 녹여낼 수 있는 방법이 참회입니다.
|
첫댓글 수고해주신 김혜진, 배성해, 김인의 교우님~ 감사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