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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안나푸르나(8,091m)로 떠나려고 하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故 박영석 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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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2011년 10월에 안나푸르나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다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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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해졌다.
산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런 영웅을 알았다는 게 여간 큰 기쁨이 아니었기에 그만큼 상실감도 컸다. 나는 그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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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는 마음을 담아서 네팔로 떠나기 전에 故 박영석, 신동민, 강기석의 사진을 넣은 추모 현수막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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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진 위에 ‘영원한 산이 되소서!’라는 문장을 넣고, 영문으로 ‘Be one with the mountain forever!’라고 썼다.
- ▲ 안나푸르나를 뒤에 두고 故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을 기리는 제를 지냈다. 뒷줄 맨 왼쪽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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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7시간을 비행해 네팔에 당도했으나 주위 환경은 내가 생각한 설산의 맑은 기운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음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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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분위기, 사람들의 남루한 옷차림, 무질서한 거리 풍경, 뿌옇게 내려앉은 회색빛 공기 등은 히말라야라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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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운 이름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았던 거대한 설산과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음울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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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이 대비되어 쓸쓸해졌다.
카트만두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국내선 항공기를 이용해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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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파와 포터, 주방팀과 합류해 나야풀로 이동해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지누단다에서 엄홍길 대장이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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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는 휴먼스쿨 현장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히말라야에서 얻은 영광을 현지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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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길 가운데에 말과 나귀의 배설물이 널려 있었지만 조금도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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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달린 것이라곤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이곳에서 말과 나귀는 매우 소중한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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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는 중요한 길목에는 반드시 마을이 있어서 사람들을 만나는 특별한 재미가 있었다. 욕심 없는 어른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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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가 맑은 아이들은 내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었다. 그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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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 두 손을 모아 ‘나마스테’라고 인사했다. 30kg이 넘는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왜소한 포터들이 위대한 스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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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느껴졌다. 그들은 비록 미천한 삶을 살고 있을지언정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즐거운 표정으로 생활했다.
드디어 히말라야에서의 여섯 번째 밤을 지낼 마차푸차레(6,993m) 베이스캠프에 당도했다. 로지(산장) 뒤에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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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껏 아무도 오르지 못한 마차푸차레봉이 떡 버티고 서있었으며, 옆에서는 안나푸르나봉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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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주위는 온통 만년설로 덮여 있어 어디선가 설인이 뚜벅뚜벅 걸어 나올 듯한 신비한 풍경이었다. 갑자기 눈이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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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걱정됐지만 로지에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 보니 금방 잊혀졌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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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비아그라 한 알을 먹고 침낭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로지의 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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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추워서 핫팩을 가슴에 안고 잠을 청했다.
‘위대한 대한의 청년’ 박영석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컵라면으로 요기한 다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향해 출발했다. 설산에 부딪혀-
내려오는 새벽바람이 혹독하게 차가워서 코의 감각이 무뎌지고, 손끝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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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을 받은 마차푸차레의 험상궂은 눈동자가 우리를 집어삼킬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1시간 반 정도 올라간 끝에 해발 4,130m의 ABC에 당도했다. 서너 개의 로지가 눈 속에 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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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있었고, 거인처럼 우뚝 솟아 있는 안나푸르나는 아침 햇살을 받아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로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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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는 故 박영석 대장의 평소 신념이 새겨진 동판이 붙어 있었다.
히말라야의 거친 돌로 쌓아서 만든 故 박영석 일행의 위령탑 앞에 서니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무언가가 뭉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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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구쳤다. 그건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었다. 위령탑 꼭대기엔 네팔 사람들이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행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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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며 걸어주는 하얀 목도리 카타가 걸려 있었다. 가족들이 가져다 놓은 듯한 사진과 이미 말라버린 꽃송이 몇 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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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게 놓여 있었다. 누군가 펼쳐 놓은 태극기 위에는 ‘위대한 대한의 청년’이란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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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붙은 사진 속 故 박영석 대장의 눈은 정확히 안나푸르나의 정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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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국에서 만들어온 현수막을 펼치고 초라한 제상을 차렸다. 제수라야 육포, 곶감, 초코파이, 사탕 몇 개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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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지만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은 그에 비길 바 아니었다. 여기까지 짊어지고 오는 사이 쪼그라져버린 팩소주를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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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세 사람의 사진을 보니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그 분들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하는데 목이 메어서 잠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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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의 중간쯤에 어마어마한 양의 얼음 덩어리가 무너져 내려 쌓인 곳이 보였다. 저기 어딘가에 故 박영석 대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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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려 왔다. 박영석 대장이 거대한 얼음 구덩이 속에서 훌훌 털고 나오는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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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을 보았다. 빨리 내려오라고 후배들을 다그치는 故 박영석 대장의 피 끓는 환청이 들려왔다. 정상을 응시하는 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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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대장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 가슴으로 와서 꽂혔다.
故 박영석 대장의 도전정신과 불굴의 의지는 결코 죽지 않았다.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과 가슴 안에서 새로운 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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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나리라. 님이 해내지 못했던 코리안 루트는 누군가에 의해서 기필코 개척되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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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그리고 영원한 산이 되소서!
첫댓글 월간잡지 <산>에 원고를 보냈더니 3월호에 실어주었네요
글을 실어준 것만도 고마운데 양말, 무릎보호대, 비빔밥, 모자까지 보내주는군요
졸작이지만 읽어보시고 안나푸르나 앞에서 느꼈던 우리들의 마음을 짐작해 보세요
감동의 장면 소개 잘하였어요.
문학작가 소질이 다분해요.
근데 ABC 베이스 캠프 높이가 3,140m가 아니고 4,140m인것 같은데----
@현암 역시 회장님의 예리한 눈이 오류를 찾아내시는군요
ABC의 높이는 바로 수정하여 놓겠습니다
제가 높이는 쓰지 않았는데 편집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군요
짝짝짝...
가슴뭉클 감동~~
비빔밥은 일인분인가요??ㅋ
그날의 감동이 아직도 선합니다
멋지십니다... 가보고 싶어지네요
친구 따라 강남을 간다고
친구와 설악산 대청봉 등반산행의 내용이 2012년 월간 산 5월호에 실리고 부터 나의 직업을 산악인이라고 하면서 찜찜햇는데
이제는 안나푸르나를 산행한 나의모습이 2014년 월간 산 3월호에 실렸으니 나의 직업을 산악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네.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으로 만 안나푸르나 등반 정보를 얻고서 무작정 출발을 햇지만
실제 경험해보니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등반이었네.
8명의 산사나이의 사진을 보니 다시 감동의 순간이 생각나네.
8명 중에서 6명의 산사나이를 저번 주 남한산성에 보았으니 더욱 반가웠네.
추억을 회상하며 살기보다는 새로운 추억을 쌓으면서 살아야 아름다운 인생이지
축하드리고, 더 큰 발전이 있길 기도합니다. 매번 산행시 감동 뭉클한 산행기에 감탄합니다만. 전문 잡지에 기고해서 전 산악인이 함께 공유하는 산행기는 더더욱 빛을 발할것입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추카드립니다,.. 가슴뭉클한 산행기 ..
진정한 산악인의 정신이 느껴집니다..
마음은 히말리아에....
쏠쏠한 산행기에 푹 빠졌다가 나갑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