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님의 의견을 중하는바입니다..
저두 몇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많은 사람들이 알구있는 삼국지는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로써 거의 내용의 반정도는 허구에 가까운
소설의 형식을 갖추었다구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전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으면서 많을것을 느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하나의 다른면을 살펴보면
특히 조조와 유비의 인물대립을 볼수있습니다..
난세의 간웅이라 표현하던 조조는 결국 황건적의 난과 격동기의 현실에 능한 위대한 혁명가라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우유부단한 전통계승의 강경보수주의파로써
오직 한(漢)을 이으려는 목적은 새로운시대 창조를 요구하는 하늘의 이치를 거스를 뿐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일부 보는이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도 할수 있을것입니다.
거기에 제갈공명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발판을 유비에게 자리잡음으로써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는 인물이라 할수 있을것입니다..
물론 이건 저의 다른 면에 대한 해석일뿐입니다.
허나 삼국지역시 선과악의 구조를 띠면서 유비와 조조를 첨예하게 대립이 묘사되구 있습니다.
결국 역사의 바른현실과 소설속의 역사는 전이하게 다를뿐입니다.
휴~~ 저의 의견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계신 여러분들이 있겠죠.. ^^;
허나.. 저는 언제든지 비판하는 사고를 통해 더욱 새로운것을 느끼고 싶은것 뿐입니다..
아! 혹시 삼국지를 자세히 아는분께 하나물어보구 싶은게 있습니다.
어,, 여포가 초선에게 빠져 동탁을 죽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삼국지를 보면 이부분이 약간씩 다름니다. 동탁을 죽인 여포가 초선에게 달려가보자 초선이 자결을 하는 내용이 거의 주류를 반면, 이문열삼국지에선 초선이 여포가 조조로부터 압박을 받는 그때까지도 곁에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타면 초선은 그때까지 살아있다는 것인데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어리석은 저의 소견을 들어주신 여러분께
감사~~~ (--)(__)(--)
: 정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 촉의 백성은 99만 위는 460만 오는 250만.
: 양인 개병이던 시절 동원가능한 총병력은 통상 전체의 10%.
: 즉 병력은 10만:46만:25만. 또한 당시 경제력은 황하유역에 집중된 상황이라 오와 촉은 절대 위의 상대가 될수 없었습니다.
: 적벽대전에 동원된 조조의 100만이나 오원정때의 촉 75만은 과장입니다.
: 그나마 오와 촉이 끝까지 버틸수 있었던 이유는 장강과 사천이라는 자연적 방패때문이었습니다.
:
: 저역시 촉과 유비를 사랑했습니다.
: 부질없는 짓이지만 방통이 그렇게 죽지 않고 촉원정을 성곡시켰더라면... 제갈공명이 형주에서 오와 동맹을 굳건히 하고 형주북부의 위군을 모두 몰아내었더라면, 그리고 촉이 병,양주를 영유했더라면 어쩜 천명은 촉으로 넘어갔을수도...
:
:
: : 제가 말씀드리는 중국 전국시대는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가 있었던 삼국시대입니다. 많은 분들도 나관중 원작인 삼국지를 보신분이 계실것입니다.(또 일본의 요코하마 미쓰테루)
: : 위의 연대를 보면
: : 1.조조 2.조비 3.조예 4.조방(이때 삼국통일)
: : 군사:사마중달(사마의)
: :
: : 촉의 연대를 보면
: : 1.유비 2.유선. 군사:제갈공명(제갈량)
: :
: : 오의 연대를 보면
: : 1.손견 2.손책 3.손권. 군사:육손
: :
: : 이렇게 됩니다.
: : 유비가 한실의 역사를 회복하기 위해서 일어나 삼국통일을 목적을 위해 앞으로 달렸지만 의제인 관우운장과 장비익덕이 죽자 그 충격을 받아 100만대군으로 오나라를 공격했으나 대책없는 공격으로 전멸해서 유비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유비의 유언은 제갈량에게 옥좌에 오르라고 했으나 제갈량은 유비의 태자인 유선을 옥좌에 앉히고 북벌을 했다. 그런데 막판에 제갈량이 죽음을 맞이하자 촉의 희망은 너무쉽게 허물어 졌다. 부귀영화만 누리는 촉황제 유선은 그냥 위에게 무릎을 꿇어 촉이 멸망하였다. 결론은 제갈공명이 죽자 촉이 너무 쉽게 허물어졌다는 것이다. 이 세계의 어느 역사든지 피의 역사이고 지금도 피로써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