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역의 전적지로서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서울의 동쪽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삼국시대의 여러 성들이다. 오늘날의 광진구 강동구 송파구 및 경기도 하남시 지역에 한강을 끼고 산재해 있는 아차산성 풍납리토성 몽촌토성 남한산성 이성산성 등은 백제가 이 지역에 도읍을 정한 이래로 삼국간에 치열한 항쟁이 전개되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아차성은 오늘날의 사적 제234호인 아차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아차산 산행지도] 5호선 아차산역 2번출구 롯데리아를 지나서 조금 내려오면 SK주유소앞에서 좌측골목으로 올라가면 영화사지나기전 좌측으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계단을 올라서 산길로 올라서서 소나무숲을 지나 길은 두개의 길로 갈라지고 팔각정을지나 좌측길과 만나게 되고 아차산 정상인 제4보루성으로 오르는길이다 좌측으로 들어서면 바위지대가 나오고조망이좋아 서울시내를 비롯하여 멀리 경기도 까지 바라볼수 있다 .야간에 올라서면 화려한 서울시내 불빛에 매료가 된다.바위지대를 따라 오르니 소나무와 참나무로 둘러싸인 249.9m봉에 도착한다잠시후 대성암 입구의 우측길을 만나고 잠시후 그네터가 나온다.그네터를 지나면 산길은 우측의 한강을 따라가듯 정상으로 이어진다.아차산정상인 4보루성은 주성인 아차산성의 전진기지라고 하며, 고구려 병영의 온돌과 토기, 철기가 발견되었다는 유적들이 산재 되어있다.송전탑을 지나 긴고랑고개 이정표(삼각점 795m, 긴고랑입구 1,495m)가 나온다.삼각점의 거리는 용마산에 설치된 삼각점을 기준하는것 같다.긴고랑고개를 지나 용마-2헬기장 올라서면 좌측(서쪽)으론 용마산 정상으로 가게되고 우측(북)은 망우산에서 망우리 고개로 이어진다.망우산길로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아 헬기장이 나오고 길은 깔닥고개라 부르는 사거리 고개까지 5분여를 내려오게 된다.깔닥고개 사거리 나무의자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는 앞쪽의 희미한 길을 두고 좌측으로 들어서니 무덤이 한두기씩 보인다.포장도로를 얼마간 내려가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 오르막길로 올라간다.고개를 오르니 좌측에 팔각정이 나오고, 우측으로 팔각정이 다시 보이고, 망우산 안내도가 보인다.길은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오고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가는 부분에 동락천샘터가 에서 내려오면 철조망으로 만든 문이 보인다.문을 지나 좌측으로 언덕 넘어에 길과, 우측길이 나온다우측길은 정각사와 형제약수터라고 안내판이 써있는 이문안입구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길고, 언덕위의 좌측길은 계단을 내려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안골마을로 내려선다
▲ 1코스 (3시간) 영화사⇒아차산 공원 안내도⇒249.9m봉⇒그네터⇒제 4보루성⇒용마산 갈림길⇒깔닥고개⇒동락천⇒안골
▲ 대중교통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o 2번 출구⇒영화사⇒동의초등학교⇒아차산 주차장 5호선 광나루역 1번 출구⇒광장중학교⇒광장초등학교 앞 좌회전⇒아차산 o 버스 2호선 강변역⇒워커힐 아파트 방면 01번 마을버스 이용⇒광장초 중학교 하차 2호선 구의역 1번 출구⇒03번, 04번 마을버스 이용⇒영화사 입구 하차 ▲ 도로정보 천호대교 북단⇒아차산역 방향 100m 우측 길 진입⇒광장중학교 앞 좌회전 굴다리터널⇒직진⇒정립회관에서 100m 전방 삼거리⇒좌회전 ⇒50m 우측 주차장
▲ 아차산성 아단성, 아차성, 장한성, 광장성이라고도 불려지는데 아차산성은 백제가 수도인 한성(하남 위례성)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962년 워커힐 호텔이 건립되면서 그 일대에 포함되었고, 1973년에 사적 제234호로 지정되었다 ▲ 영화사 광진구 구의동에서 광장동으로 너머가는 고갯마루 왼편의 아차산 남서쪽 기슭 구의동 산 9번지에 위치해 있다. 절은 원래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화양사라고 이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절에 있는 미륵불이 고려말의 것으로 짐작되므로 늦어도 고려말 이전에 창건되었다고 볼 수 있다.태조 4년(1395)에 이 절의 등불이 궁성에 까지 비친다고 하여 용마산 아래의 군자동으로 옮겼다가 뒤에 다시 중곡동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 대성암 아차산 동남쪽 215m 능선상에 한강을 바라보고 위치해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구리시 아천동 산 57번지에 해당된다. 대성암은 신라 진덕왕 원년(647)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고, 이름을 범굴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후 고려 우왕 원년(1375)에 나옹화상이 중창하여 대성암이라 하였다. 조선 영조 26년(1750)에 거사 방지성이 폐허 터에 초가 암자 한칸을 세웠고, 그후 거처하고 있던 승려가 기와를 올렸다. 고종 19년(1882)에 임오군란으로 불에 탔고, 이후 연차적으로 중건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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