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그림은 플랑드르(네덜란드·벨기에) 화가 얀 마쉬스(Jan Massijs; Matsys, 1509~1573)의 1566년작 〈불평등한 애인들(De ongelijke minnaars; The Unequal Lovers)〉 혹은 〈매매련애(賣買戀愛; De koopliefde; The Purchasing Love)〉이다.
그리고 아랫모깃글의 꽁무니에 붙딸린 그림은 네덜란드 화가 코르넬리스 삽틀레벤(사프틀레벤; Cornelis Saftleven, 1607~1681)의 1655년작 〈동물들의 대학(College of Animals; 동물대학; College van Dieren)〉이다.
뭐, 하여튼, “쉽게 짧게 글쓰기 요망하는 개체와 사회의 무분별한 미신, 모순, 편의주의의 숙주”(☞ 참조)가 찔끔 지적되었어도, “쉽게 읽히는 쉬운 글의 속임수와 기만성(☞ 참조)”이 얼핏 지적되었어도, 2015년 7월 8일 20시 28분쯤에 한국어로써 글쓰인 〈제도간계론(制度奸計論)〉(☞ 참조)이라는 딱 한 문장(文章)짜리! 그래서 길쭉한, 기다란, 장황한 한 문장짜리! 그래서 장장한 단문(單文)짜리! 모깃글은 한사코 주구장창 쉽게 술술 매끄럽게 읽히는 짤막짤막한 문장만 편애하여 편신해버릇하는 쉽게주의자, 편의주의자, 단문주의자(短文主義者)의 짤막짤막한 입맛에 깔딱깔딱 영합하거나 아첨하도록 다음과 같이 다다다다(☞ 참조) 짤막짤막하게 썰려서 얼추 후룩룩 뚝딱 누덕누덕 수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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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하는 모든 제도에는 가족제도, 결혼제도(☞ 참조), (입시제도; 학벌제도; 취업제도와 얼키고설킨) 교육제도, (대리의회제도; 투표-선거제도; 대리사법제도와 암합하는) 정치경제제도 따위도 포함된다.
이 모든 제도는 대체로 똥념보다 더 지독한 통념들을 강조하고 강요한다.
적어도 한반도에는 그런 통념들의 기원, 유래, 역사를 거의 한 번도 의심하지도 의심하고프지도 않았고 못했을뿐더러 의심하려고 엄두조차 못 내본 개체나 집단이 있다.
여태껏 그런 개체나 집단은 여태껏 각자의 의식-무의식을 괴롭힌 원흉들이 바로 그런 제도들과 그것들의 제정자(製定者)들인 줄을 거의 모른다.
그런 원흉들은 그런 개체나 집단을 ‘아등바등 바락바락 악착스럽게 경쟁하며 살아가야 할 학교=일터(직장)=시장판=시궁창=고해’로 몰아붙인다.
그런 원흉들은 그리하면서 그런 개체나 집단에게 그런 고통과 경쟁을 당연하고 불가피한 필연·운명·운수·팔자들로 믿기도록 공연히 암암리에 교육·주입·선전·홍보·강조·강요한다.
그러나 그런 개체와 집단은 그저 선량하고 불쌍하며 가련하다고 측은지심받는 소시민, 서민, 양민, 평민, 일반인, 민중, 민초라고 자처한다.
또한 그러면서 그들은 그저 각자 일개인의 무능력탓, 무지탓, 욕심탓, 남탓자기탓이라고만 착각시키고 강조하며 주입하는 똥념보다 더 구린 통념들의 오랏줄에 자의반타의반으로 묶여 가까스로 꼼틀대기밖에 할 수 없을 따름이다.
그따위 제도들은 애초부터 그런 무의심자들의 선조들이 생존하려고, 번식하려고, 언필칭 즐거우려고, 편리하려고, 안락하려고 서둘러 발상하고 황급히 고안하여 다급히 얼버무려 만든 부실하고 졸속하여 엉성한 것들이었다.
그런 선조들은 자신들의 후손들마저 자신들의 생존여건들과 똑같은 여건들에서 살아갈 줄로만 알았으리다.
그래서 그런 선조들은 후손들에게, 특히 후손들의 의식-무의식에, 그따위 제도들을 그토록 옹골차게 주입했으리다.
그랬으니 아, 어쩌랴, 난망토다, 가련토다, 부실토다, 얼토당토 않토다 ……
왜냐면, 어쨌거나, 바로 그따위 제도들을 이용하여 갖가지 이득과 권력을 정취(政取)하거나 강취(强取)하거나 폭취하여 기득하고 향락하거나 탕진할 수 있는 개체나 집단도 여태껏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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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누덕누덕 썰린 문장들마저 자잘하게 깔딱깔딱 다다다다 채썰리면, 그러니까 ‘다쩜’을, 또 그러니까 이른바 서술형 종결 어미 ‘다’와 ‘마침표’를 꼬랑지에 붙단 낱말(단어)들만 열거되거나 나열되면, 동물대학 재학생들에게나 쉽게 술술 매끄럽게 읽힐라나말라나.
(2023.12.06.19:50.)